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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이경수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8년, 대전

최근작
2024년 7월 <한국 여성문학 선집 7>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2006년에서 2016년 사이에 발표한 글들 중 시인론의 성격을 지니거나 특정 시인의 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 글들만 추려 다섯 번째 평론집을 묶는다. 비교적 최근에 쓴 글들과, 2004년, 2006년, 2012년에 세 권의 비평집들을 묶으면서 책의 성격상 함께 묶지 못했던 글들을 여기 함께 묶었다. 햇수로 10년 가까이 쓴 글들을 시인을 중심으로 묶어 놓고 보니 그동안 꽤 넓은 스펙트럼의 시인들과 만나 왔음을 새삼 알 수 있었다. 정진규, 이승훈, 이건청, 문정희, 조정권 등의 원로 시인들로부터 박태일, 이문재, 하종오, 최정례, 오태환, 조용미, 김참, 복효근 등의 중견 시인들, 그리고 이영광, 김경주, 박성우, 장석원, 김이듬, 권자미, 이승희, 신해욱, 김지유, 윤석정, 김진완, 강호정, 박도희, 김재근, 박승, 전형철, 송민규 등의 젊은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시를 읽고 글을 써 오며 가슴 설레고 떨렸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십대 청춘을 보내며 시와 인연을 맺은 후, 1999년에 비로소 비평가로서 이름을 얻었고 어느새 18년이 넘는 시간을 시 비평에 매진해 왔다. 좋은 시를 읽으며 설레고 가슴 벅차오르던 기억, 혼자 몰래 시를 끄적거리던 시간의 절박함, 닿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망과 안타까움. 시에 대한 평론을 쓰며 내가 기억하고자 했던 초심은 아마도 이런 것들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이따금 시 비슷한 것을 끄적거리기도 하는데 고백컨대 그것은 좋은 비평을 쓰기 위한 마음 같은 것이다. 이 비평집에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라고 이름 붙였다. 나에게 시의 자리는 늘 무한한 가능성의 자리였다. 너는 너인 데 그치지 않고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존재. 그 이행의 동력과 가능성에 시의 현재와 미래가 있음을 나는 믿고 싶다.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이 나빠져 가도 그런 세상과 타협하고 무릎 꿇지 않는 시의 정신, 바깥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달아나는 시의 몸. 그것을 나는 꿈꾼다. 이 비평집에 실린 서른 편의 글도 그런 꿈의 과정이나 결과였다. 여기 인용된 서른 명의 시인들은 이미 멀찌감치 달아나 다른 몸으로 다른 꿈을 꾸며 살고 있기도 하다. 나의 가난한 언어로 그들의 시를 묶어 둘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인들의 꿈을 지지한다. 더 멀리, 더 깊이 달아나기를……. 너는 너를 지나, 나는 나를 지나, 우리는 우리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기를……. 2017년 봄의 문턱, 흑석동에서

이후의 시

2007년에서 2016년 사이에 발표한 글들 중 우리 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한 글들을 추려 네 번째 평론집을 묶는다. 비평가로서의 관점과 색깔을 보여 줄 수 있는 글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쓴 글들을 주로 묶었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08년 가을 흑석동에 새로운 둥지를 튼 이후에 쓴 글들이다. 비평이라는 글쓰기는 내게 절박한 존재 증명 같은 것이었다. 학술적 연구로는 해소되지 않는 글쓰기 욕망을 풀 수 있는, 바깥으로 난 창 같은 것이기도 했다. 비평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나는 숨을 쉴 수 있었고 살아 숨 쉬는 문학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이제 이십대 적 나와 문우들을 떠올리게 하는 오늘의 청춘들과 만나며 시가, 비평이 지금의 내게 어떤 의미인지 가끔 묻곤 한다. 어느새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삶의 몇 고비를 넘었다. 그사이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후퇴해 왔다. 몇몇 고비들을 넘으며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고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했던가.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이십대를 다시 살아 볼 기회를 내게 주려는 것일까. 사춘기를 다시 앓는 사람처럼 여전히 나는 들끓고 있는 것도 같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살아온 대로 길을 내고, 살아온 대로 죽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한 걸음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비평가로서 내가 지킬 수 있는 덕목이 아닐까 한다. 원고를 추리고 정리하며 2008년 이후 내가 살아온 자취를 더듬어 본다. 몰래 꾸었던 꿈도, 잊어버렸던 기억도 원고의 갈피갈피에서 부스스 일어나 눈뜬다. 시를 읽으며 그 속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부끄럽고 아팠던 순간이 묵혀 두었던 원고 더미에서 눈을 뜬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마흔 넘어, 새 둥지를 튼 이후 쓴 이 원고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한동안 두려웠다. 나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아니, 절박함에 기대 써 왔던 내 글들이 이제 어떤 힘으로 써질지 두려웠던 것일 게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또 다른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시를 읽고 글을 쓰는 기쁨. 힘들다 투정하면서도 놓아 버릴 수 없었던 그 기쁨을 잃어버릴까 봐 나는 또 조바심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조바심이 읽혀서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나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 본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 년 가까이 공백이 있긴 했지만 이만하면 쉬지 않고 꾸준히 우리 시에 대한 글을 써 온 것 같다. 이 비평집에 실린 글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문학의 장 안에서 ‘미래파’ 이후의 우리 시에 대해 전망하고 모색한 글들. 그리고 2009년의 용산 참사,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2013년 체제,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불어닥친 희유의 사태와 촛불의 새 바람 등 우리 사회를 강타한 바깥의 사건에 추동되거나 대응하면서 펼쳐진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과 고투에 대한 기록들. 특히 2014년 이후에 쓴 글들은 망각과 싸우며 오래 읽고 쓰고 행동하겠다는 ‘304 낭독회’에서의 다짐을 기억하며 쓴 글들이다. 이렇게 이 비평집은 ‘이후의 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의 언어는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이 땅에서 꿈틀거리며 움트고 있는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에, 그 불가능성의 가능성에 기대어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려 한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2017년 봄의 문턱, 흑석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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