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름대로 시를 ‘당의정(糖衣錠) 시’와 ‘환약(丸藥)의 시’로 나누어 버릇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당의정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단맛을 풍기는 무언가를 껴입고 그 모양이 자못 매끈하고 야멸찬 느낌이 드는 반면에 환약이라는 단어는 환이라는 동글고 고담하고 애잔한 이미지에 약이라는 옹이까지 붙어 쓴맛이 배어 나오는 데다 색조도 검은색, 회색 같은 무채색이 태반이다.
비호감에 외면받기 십상인 이런 환약의 시를 왜 30년간 간단 없이 빚어 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무슨 억하심정이나 옹고집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고, 아마도 세상사 인간사 양지쪽보다는 음지쪽에 더 눈이 가고, 기쁨보다는 슬픔이 있는 곳에 더 마음이 쏠리고, 한발 앞서 뛰어가기보다 한발 뒤처져 걷는 일에 더 정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도 이렇게 하여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붙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그동안 남의 눈치 안 보고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대지 않고 온갖 것에 부대끼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싫은 내 색 한번 없이 묵묵히 참고 견디며 오늘에 이른 이들이 하냥 안쓰럽고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하직의 인사도 못 올리고 보내드린 어머니 영전에 뒤늦게 이 시집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