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가 먼저이고, 이념이 그 다음에 온다. 고전적 멜로디다. 실존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근원적 멜로디가 보편적 멜로디다. ‘보편적인 것’이 무시무시한 것. ─생-로-병-사의 멜로디가 가장 무시무시한 것. 멜로디가 반복이 운명이다. 누가 거기서 벗어나겠는가. 근원적 그 고통·모순의 멜로디-반복으로부터.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혹은 넷 셋
「뚱뚱한 것의 권력」을 쓰고 난 뒤의 변화다
지하철 한 줄에 일곱 명을
확인한다
지하철 한 줄에 일곱 명이 없으면
누구 때문인지 살핀다
누가 자리를 널널하게 앉고 있는가
누가 뚱,뚱한가,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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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의 길만 따라갔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몸의 길다란 고통의 길이 시작된다
마음의 고통에 예민한 몸의 마음
마음의 고통을 좌시할 수 없다는 마음
놀라운 몸의 우정
몸의 고통은 마음의 고통을 나누지 않고
온전히 자기 것으로 한 것
마음의 고통의 길만 따라가보았으면 좋겠다
마음의 고통으로만 살고 싶다
마음의 고통이 몸의 고통을 이기고
마음의 고통만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싶다
몸의 고통이 너무 심하다
시인은 시로 말한다. 개인 시집으로 말한다. 사화집으로 말한다. ‘시인의 산문’으로 말한다. 무엇을? 그의 몸뚱어리를 말한다. 그의 몸뚱어리에 붙어있는 정신을 말한다. 그의 몸뚱어리를 둘러싼 세계를 말한다. 세계를 시대로 고쳐 말할 수 있겠다. 시대정신으로 고쳐 말할 수 있겠다.
타인의 시를 통해 말할 수 있겠다. 타인의 시에 ‘심정’[해설]을 덧붙여 말할 수 있겠다. 이 경우도 넓은 의미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겠는지.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그의 몸뚱어리를 말한다. 그의 몸뚱어리에 붙어있는 정신을 말한다. 그의 몸뚱어리를 둘러싼 세계를 말한다. 여기서 ‘그’는 나이다. 박찬일 시인이다. 생산미학과 영향미학은 어긋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