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마음사전1』이 나온 지 7년 만에 두 번째로 마음사전을 다시 묶는다. 솔직히 많이 망설였다. 큰 인기를 끈 책도 아닌데, 후속편이 나와도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1을 읽지 않은 사람이 2를 읽을까. 차라리 마음사전이라는 제목 대신 다른 책 제목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1에 실은 제주어 낱말이 예순 개 남짓이다. 제주어는 아주 많으니까 이왕에 사전 형식을 취했으니 많은 독자가 없더라도 2, 3, 4, 5……. 꾸준히 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제주대학교에서 제주어 사전 관련 전시회를 한 적 있는데, 이 책이 목록에 있었다. 어느 도서관에는 이 책이 문학이 아니라 사전류 코너에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제주어 동시 교실 강사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면서 제주어를 잘 모르는 게 부치로와(부끄러워) 시작한 창작 노트였는데, 여기까지 왔다.
제주어 사전을 펼쳐 낱말을 보다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또 아주 생소한 낱말을 만나면 그 낱말이 담긴 의미를 종그는(좇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시인은 언어 탐구자이기에 내 몸, 내 마음 어느 한 부분에 전해 오는 제주의 옛이야기를 할 때야 말로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의 아내 김신숙 시인은 귀신보다 글자가 무서운 것이라며, 글자의 효험을 강조했다. 여덟 살 새록은 내게 언어의 신비로움을 선사해 준다. 이 책을 준비하는 막바지에 봉아름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제주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제주어 선생님 김세홍 시인과 나의 문장 선생님 김지희 소설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이 책 이곳저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부족한 글을 묶어 책으로 빚어 준 걷는사람은 복 받을 것이다. 못난 글을 그림으로 윤색해 준 박들 화가와 삼달 센트럴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신숙아, 고치 글라(같이 가자). 새록아, 몽케지 말앙(뭉그적거리지 말고) 재기 가게(얼른 가자).
앞으로도 먼물질을 나가는 마음으로 제주 바당에서 제주어를 캘 작정이다.
2025년 제주시 에이바우트 중앙여고점에서
현택훈
이별을 슬퍼하며 청춘을 다 보내니 후회가 남는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밥맛을 잃지 않아서 내 사랑을 의심했다. 세상 앞에서 좀 더 의젓해야 하는데 울 궁리만 하는 난 참 어리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으려 시를 썼더니 그 사람이 떠나지 않고 옆에 있다. 그 사람이 잘 떨어지지 않아 난처하다. 제발 이제, 그만 잊어야 하는데 당신은 내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귀를 막아도 다 들린다. 바람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버스 차창에 흐르는 노랫소리, 테니스장 롤러 구르는 소리, 시집 책장 넘기는…….
2018년 10월
서귀포에서
작년 여름에 사귄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또 놀러 가야지
어렸을 때 밭에 가는데, 어디선가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 소리는 어떤 새가 우는 소리야?”
“응, 저 소리는 새알이 비에 젖을까 봐 엄마 새가 우는 소리야.”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몇 해 뒤 산 너머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새 소리는 멧비둘기 소리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구구구구구. 장마 무렵에 더 많이 들린다.
늦잠을 자는 내게 엄마가 굼벵이 같다고 말했다. 그런 날엔 매미를 꿈꿨다. 흙바닥에서 놀고 있는데 할머니가 내게 땅강아지 같다고 말했다. 그런 날엔 흙 속에서도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산길을 걷다가 나비를 발견하면 나비 따라 산속을 돌아다녔다. 지네를 잡겠다고 친구들과 들춰본 돌 밑에서 잠든 뱀을 보고 비명을 질렀을 때가 행복했다.
중고생 시절, 과목 중에 물리는 어려웠지만 생물은 재미있었다. 나이가 들어 다시 펼쳐본 도감을 통해 내가 여겼던 것보다 훨씬 넓은 우주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시를 쓰면서 제주의 생태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어렸을 때 놀았던 풀숲에 있는 식물이나 곤충은 모두 이름이 있다. 그 이름부터 먼저 불러준 다음에야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나랑 놀아주면 좋겠다. 길을 걷는데 제비가 낮게 날며 곧 비가 온다고 말해준다. 작년 여름에 사귄 두점박이사슴벌레 집에 또 놀러 가야지. 할 말은 많지만, 노루가 곶자왈에 함께 가자며 창문을 두드려서 이제 그만 써야겠다.
나는 제주도 부루기에서 태어났습니다. 감귤밭에 딸린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할머니가 말하는 제주어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제주어는 내 마음속에서 감귤처럼 노랗게 익어갔습니다.
학교가 끝나 집에 가면 엄마는 제주어로 내게 소도리를 했습니다. 엄마는 마치 만담가처럼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줬습니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도 엄마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주어는 내 마음에 들어와 집을 지었습니다. 나는 그 집에서 시를 써왔습니다.
시를 쓰면서 제주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나를 자라게 한 이 제주어를 어떻게 시어로 드러낼 것인가. 백석은 평안도말로 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평안도말을 몰라도 그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어로 시를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단 나의 제주어 사전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했습니다. 이 단계는 소멸 직전의 단계라고 합니다. 언어는 그 지역의 문화, 역사, 정신 등이 총망라되어 나타납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는 나는 결국 시에서 제주어를 품어야 하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주어 사전을 들여다보며, 시의 언어를 생각합니다.
오는 일요일에는 오름에 올라 제주의 바람을 맞을 겁니다. 제주의 바람에는 제주어가 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운이 좋으면 그 바람에서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요. 어떤 바람은 자울락자울락 붑니다. 눈물이 스며 있는 바람, 그 바람의 언어를 맞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겠습니다.
『제주어 마음사전1』이 나온 지 7년 만에 두 번째로 마음사전을 다시 묶는다. 솔직히 많이 망설였다. 큰 인기를 끈 책도 아닌데, 후속편이 나와도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1을 읽지 않은 사람이 2를 읽을까. 차라리 마음사전이라는 제목 대신 다른 책 제목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1에 실은 제주어 낱말이 예순 개 남짓이다. 제주어는 아주 많으니까 이왕에 사전 형식을 취했으니 많은 독자가 없더라도 2, 3, 4, 5……. 꾸준히 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책 덕분에 나는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제주대학교에서 제주어 사전 관련 전시회를 한 적 있는데, 이 책이 목록에 있었다. 어느 도서관에는 이 책이 문학이 아니라 사전류 코너에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제주어 동시 교실 강사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가 고향이면서 제주어를 잘 모르는 게 부치로와(부끄러워) 시작한 창작 노트였는데, 여기까지 왔다.
제주어 사전을 펼쳐 낱말을 보다 보면 기억이 떠오른다. 또 아주 생소한 낱말을 만나면 그 낱말이 담긴 의미를 종그는(좇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시인은 언어 탐구자이기에 내 몸, 내 마음 어느 한 부분에 전해 오는 제주의 옛이야기를 할 때야 말로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의 아내 김신숙 시인은 귀신보다 글자가 무서운 것이라며, 글자의 효험을 강조했다. 여덟 살 새록은 내게 언어의 신비로움을 선사해 준다. 이 책을 준비하는 막바지에 봉아름작은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제주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제주어 선생님 김세홍 시인과 나의 문장 선생님 김지희 소설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이 책 이곳저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 부족한 글을 묶어 책으로 빚어 준 걷는사람은 복 받을 것이다. 못난 글을 그림으로 윤색해 준 박들 화가와 삼달 센트럴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 신숙아, 고치 글라(같이 가자). 새록아, 몽케지 말앙(뭉그적거리지 말고) 재기 가게(얼른 가자).
앞으로도 먼물질을 나가는 마음으로 제주 바당에서 제주어를 캘 작정이다.
2025년 제주시 에이바우트 중앙여고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