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던 중학생이 울타리를 폴짝 넘었다. 나도 덩달아 뛰어넘다가 콰당! 넘어진 무릎을 꾹꾹 주무른다. 내 나이 딱 오십.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경계에 서 있다.
“우리 나이에 큰 모험은 안 하는 게 좋아.”
그 말에 기대앉을 뻔하다가, 우연히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인 고선아 실장님에게 두툼한 옛 산문 뭉치를 건네받았다. 더듬더듬 읽다 홍우원의 「노마설」 앞에서 멈춰 섰다. 늙은 말이 주인을 떠나며 늘어놓는 신세 담에,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내 얼굴이 비쳤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을 건넜다. 여러 번 놓으려 했지만, 끝내 놓을 수 없었다. 나를 놓아 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 빛을 잃었다고 길까지 잃은 건 아니지. 무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 그게 내 안의 루돌프J였다.
누구도 시간을 비켜 갈 수 없다. 꿈과 상상만은 늙지 않기를 바랄 뿐. 올겨울엔 눈사람을 제대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아주 멋들어지게. 빨간 모자, 바둑알 눈, 나뭇가지 팔……. 그 몇 가지만으로도 다시 살아나는 표정, 반짝이는 그 순간을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