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설악산·점봉산에 살다가, 1999년 당종해 선생님의 《본초문답》을 처음 접하고, 충격이 상당히 컸다. 본초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 아니 자연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사물을 관찰하고 그 약성을 궁리해서 병든 환자의 병증에 맞추어 약을 쓰는 것, 이것이 한의학과 본초학이라는 것을 느꼈다.
인삼은 우연히 사포닌(saponin)을 함유하게 되어서 보기(補氣)하는 것인가? 부자는 우연히 아코니틴(aconitine)을 함유하게 되어서 보양(補陽)하는 것인가? 옻나무는 우연히 우루시올(urushiol)을 품어서 옻독을 오르게 하는 것인가? 사포닌이 인삼을 대표할 수 있을까? 아코니틴이 부자를 대표할 수 있을까? 우루시올이 옻나무를 대표할 수 있을까? 저 식물, 저 동물은 왜 이런 성분을 만들게 되었고, 이런 약성을 왜 가지게 되었을까?
생명체는 환경에 반응한다. 사람도 추운 곳에 살면 덩치가 커지고 피부가 두꺼워진다. 열대에 살면 덩치가 작아지고 피부가 얇아진다. 화를 내면 혈압이 올라가고, 찬 기운에 상해서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난다. 동식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환경을 이겨나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약성으로 나타나고, 그중 일부가 성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당종해 선생님이 《본초문답》에서 상세히 설명하신 형(形), 색(色), 기(氣), 미(味), 성(性), 시(時), 산(産), 용(用)의 틀은 사물을 관찰하고 약성을 유추해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선생님이 사셨던 시대는 동서양 융합의 격동기였는데, 동서 학문을 모두 접한 선생님은 한의학적으로든, 서양 자연과학적으로든 관찰력이 참으로 탁월했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본초문답》의 특징인 동식물의 형태와 생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그림(圖)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기에, 《본초문답》을 가장 그림(圖)에 가깝게 번역하고 싶었다. 따라서 동식물의 모양을 그냥 담은 사진이 아니라 해당 약초에 대한 당종해 선생님의 시각이 담긴 사진을 넣었다. 그리고 《본초문답》에 처음 나오는 약재나 중요한 약재는 《중화본초》의 기미·귀경·효능주치를 다 적어두었고, 요점만 알면 되는 약재는 기미·귀경·효능을 표로 정리하여, 당종해 선생님이 관찰한 포인트가 실제 그러한 약성으로 나타나는지를 알기 쉽게 하였다. 그리고 약초의 생태를 적어 당종해 선생님의 설명을 돕고자 했고, 생태를 통해 약성이 나타나는 과정도 보충해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