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 내내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한 가지 아픔과 함께 지낸다. 그것이 이 땅의 분단에서 비롯된 것이든, 세상의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든, 가까운 사람들의 위선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 아픔을 두고 짧게는 한 달씩 끙끙 앓으며 지내야 한다. 내가 앓는 아픔이 독자에게 진한 재미로 가 닿게 하려고, 그렇게 내 몫의 아픔을 묵묵히 참아 내야 하는 것이다. 끝내는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를 빌면서.
이번 창작집은 내게 녹이 슬어가는 과정에서 쓴 소설들을 꾸린 것이다. 중편은 매우 어렵게 썼다. 다른 소설들은 초고를 쓴 다음에 곧장 퇴고해서 송고했었는데, 중편은 그러지 못했다. 다섯 번은 고쳐 썼다. 머리와 가슴에 녹이 슬면 그 후유증이 어떻다는 것을 뻐저리게 느꼈다. 그래도 그 몇 차례의 고쳐 쓰기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도 알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