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서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라는 책이 있다.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에게 주는 ‘뉴베리상’을 수상한 루이스 새커가 쓴 성장소설인데, 주인공인 어린 데이비드가 겪는 성장통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데이비드는 인기 있는 아이들 무리에 끼고 싶어 내키지 않는 못된 장난에 가담한다. 동네 할머니에게 골탕을 먹이고 지팡이를 훔치는 일이었다.
데이비드는 도둑질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저지른다. 그 상황에서 혼자 빠져나간다면 놀림감이 될 게 뻔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불행하게도 데이비드는 지팡이 훔치는 일을 함께했지만 결국 그 무리에 끼지 못했다.
이 어린아이가 겪는 갈등을 보면서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겪는 갈등의 축소판’이란 생각을 했다.
이런 내면의 갈등은 성경의 인물에게도 나타나는데, 모세가 바로 그랬다. 어릴 때부터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 왕궁에서 자랐지만 그는 ‘정체성’과 관련한 갈등을 겪는다. 비록 몸은 이집트 왕궁을 거닐고 있지만 자신은 이집트 사람이 아님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모세는 정체성과 관련한 갈등을 이겨내는데, 그 부분을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히 11:24,25, 새번역)
갈등 끝에 정확한 자기 정체성을 깨닫고 올바른 길을 선택했던 모세가 훗날 자기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큰 역할을 감당했는지는 다 알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혼미하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럽다. 믿는 자로서 이런 혼미한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현실이다.
믿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그만큼 그동안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정체성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가슴 아픈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이라도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배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고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다’는 성경적인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한 번 깨닫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깨우쳐주기 원하시는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갈구하며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이 혼미한 세상에서도 흔들림 없는 ‘중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에베소서 1장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에베소서는 누구보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했던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얼마나 놀라운 특권과 축복을 부어주셨는지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하여 쓴 편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그 정체성이 잘 정립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늘 그렇지만 새 책이 나오는 시점에서 고마운 분들이 많이 떠오른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여러 학자들의 주석과 책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이번에도 고려신학대학원의 길성남 교수가 쓴 《에베소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비롯한 여러 책들을 참고하며 도움을 받았다. 부족한 설교를 경청하는 수많은 성도들의 응원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93세의 연세에도 새벽마다 아들의 목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도 감사제목에서 빠뜨릴 수 없다.
책이 나올 때마다 열정적으로 수고하는 규장의 여러 식구들과 여진구 대표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프롤로그
참 좋은, 사랑하는 공동체
최근에 나온 신문기사 하나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종교 인구 표본 집계’를 다룬 기사였는데, 머리기사가 이랬다.
“대한민국 ‘제1의 종교’ 된 개신교… 10년간 120만 명 이상 증가.”
이해가 안됐다. 내가 만나는 목사님들 대부분이 교회 출석 성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고민하고 있는데…, 그리고 장로교를 비롯하여 각 교단의 자체 조사에서도 신자 숫자가 뚜렷하게 줄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는데, 그중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스스로 개신교 신자라 생각하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성도,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이 통계치에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그것이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간혹 교회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말이 떠올랐다.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아요.”
참 가슴 아픈 말 아닌가? 왜 종교는 기독교라고 하면서 교회는 나가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도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회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지식’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이런 이유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 책의 1장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교회는 좋은 곳이다. 나는 내 생애를 통틀어 교회만큼 좋은 공동체를 만나보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교회에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 힘들 때 내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해준 곳도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이었고, 평생 품고 기도해야 할 가슴 벅찬 비전도 교회에서 만난 친구와 선후배들과 함께 나누고 다듬었다.
그런가 하면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또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많이 이루어주셨던가?
분당우리교회를 개척한 직후에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당시 17살 청소년이 있었다. 병원으로부터 너무나 가슴 아픈 선고를 통보 받은 이후로 모든 성도들이 내 자식처럼 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누군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름 불러가며 울면서 기도했다.
수술 당일에는 전혀 모르는 청년 한 명이 병원에 찾아와 이른 아침부터 수술이 끝나는 저녁까지 기도해주었다. 16시간 30분의 대수술, 생존율 10퍼센트라고 했던 의료진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하나님은 이 아이를 살려주셨다. 당시 17세 청소년이었던 그는 멋진 청년으로 자랐다. 수술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에도 사회복지를 전공해 장애인들을 섬기며 선교사의 꿈을 꾸고 있다.
교회는 바로 이런 곳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서로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기며 기도해주는 곳,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어주셔서 기적 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곳, 이 좋은 공동체가 교회이다.
물론 연약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까닭에 교회 안에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일들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교회는 좋은 곳이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부르셔서 세우셨고, 자녀 삼아주셨으며, 사랑을 나누게 하셨다. 이 좋은 교회가 여러 상황과 이유로 오해 받고 또 외면 받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2015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506만 가구로 전체의 27.1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젊은 미혼들과 사별 등의 이유로 홀로 된 고령층이 증가했기 때문인데, 이들을 가리키는 ‘혼족’이란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외식, 유통 등 다양한 업종에서 이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개발, 제공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편의점에서는 양질의 도시락, 택배 보관 서비스로 전년 대비 21.8퍼센트 매출이 올랐다고 한다.
‘혼자 있어서 외롭겠다’는 생각이 어느덧 ‘홀로의 삶을 즐겨보자’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당당히 혼밥(혼자 밥 먹는 것)을 하고, 혼영(혼자 영화 보는 것)과 혼쇼(혼자 쇼핑하는 것)를 즐기고, 혼놀(혼자 노는 것)이 편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혼족처럼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로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나누고, 누리고, 흘려보내도록 하셨다.
이 책을 통해 교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오해가 풀려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종교는 기독교입니다만 교회는 나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올 뿐 아니라, 나처럼 ‘교회만큼 좋은 공동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꼭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