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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026
  • 카프네
    아베 아키코 (지은이), 이소담 (옮긴이) | 은행나무 | 2026년 3월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합시다.

    돌연히 사망한 남동생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가오루코는 동생의 전 연인 세쓰나를 찾아간다. 그러나 세쓰나는 약속 시간에 20분이나 늦은 것은 물론, 동생이 유언장에 남긴 그녀 몫의 유산도 거부하며 매정한 태도를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세쓰나의 태도에 분노하던 가오루코는 순간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줄곧 냉랭한 태도를 보이던 세쓰나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무뚝뚝한 태도로 주방으로 들어가 가오루코를 위한 요리를 만들어 내오는 세쓰나. 가오루코는 점차 세쓰나와, 세쓰나가 일하는 가사 대행 회사인 ‘카프네’에 관심이 생긴다.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드는 동안, 타인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을 마주한 두 사람의 세계는 서서히 변화해 간다.

    2025년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힐링 서사의 온기에 미스터리적 긴장감을 엮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돌봄’이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펼쳐냈다. 가사 대행 회사 ‘카프네’에서 각각 청소와 요리를 맡아 파트너로 일하며 ‘생활이라는 싸움’을 견뎌온 현대인의 피로와 고독이 여실히 묻어나는 생활공간을 정리하고,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내며 온기를 전한다.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면서 남동생 하루히코 갑작스러운 죽음과 유언의 의미가 드러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가족과 타인,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며 독자를 예상 밖의 결말로 이끈다. 다정한 접촉과 사소한 돌봄이 오늘을 살아내는 가장 강력한 실천임을 보여주는 다정한 소설.

  • 남성 판타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 (지은이), 김정은 (옮긴이) | 글항아리 | 2026년 3월 파시스트 남성성을 분석한 역작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활동하던 우익 민병대 조직 자유군단의 젊은 남성들을 분석한다. 독일 파시즘과 나치당의 급부상에 큰 힘을 보탠 이들에겐 어떤 "증상"이 있었는가. 저자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의 남성들이 쓴 자서전과 당시 유행했던 소설들, 일기, 만화, 잡지, 선전선동물, 편지, 포스터 등 광범위한 텍스트들을 들여다보고 이들의 관계, 정서, 공통된 방어기제 등을 파헤친다.

    테벨라이트가 이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발견해낸 것은 '여자 탓'이다. 연대하고 확장하는 원형적 여성성은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거세 위협이다. 하여, 이들은 모든 것을 여자 탓으로 돌린다. 여성적인 모든 것을 몰아내려 한다.

    반복되는 역사, 과거에 겹치는 현재의 모습. 50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공포와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1400 페이지가 넘는 대작, 물리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묵직한 충격을 선사하는 책이다.

  • 판데모니움
    유상아 (지은이) | 소원나무 | 2026년 3월 올해 청소년 소설의 문제작

    청소년 문학에서 성장담은 여전히 중요한 축이다. 한 사람의 내면이 흔들리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지금도 유효하고, 반드시 읽혀야 할 이야기다. 다만 그 과정이 '안전한 서사'에 머무를 때, 우리가 외면하게 되는 현실 또한 분명 존재한다. 지금의 청소년은 이미 복잡하고 거친 세계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가.

    <판데모니움>은 그 질문을 한 걸음 더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친구의 죽음 이후 시작된 의문의 메시지,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작품은 도박과 마약,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지는 범죄의 구조를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체계로 맞물려 작동한다. 청소년을 노린 범죄는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시작되면 톱니바퀴처럼 다음 범죄로 이어진다. 작품은 이러한 연결 고리를 따라가며 그 작동 방식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과 누아르적 긴장감, 그리고 예측을 뒤집는 반전까지,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문제작'이라 불릴 만하다.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다루지 않았던 질문을 정면으로 꺼내기 때문이다. <판데모니움>은 성장소설의 자리를 부정하는 대신 그 경계를 확장하며, 지금의 청소년 문학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1회 소원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 저 같은 아이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
    김주현 (지은이), 최미란 (그림) | 만만한책방 | 2026년 3월 삶을 바꾼 단 한 번의 질문과 대답

    짧은 문장 하나에 이끌려 책장을 단숨에 넘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과 제자 산석의 특별한 만남을 담은 <저 같은 아이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가 바로 그런 힘을 지닌 책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공부의 의미와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에 관해 진중하게 되짚는다.

    정약용 앞에 선 열다섯 살 산석은 스스로를 "둔하고, 앞뒤가 꽉 막힌 답답한 사람"이라 말하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 같은 아이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정약용은 망설임 없이 답한다. "너 같은 아이라야 공부할 수 있다." 짧은 대화지만, 그 안에는 배움의 본질을 꿰뚫는 굳은 믿음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공부에 관한 기술적인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가르침과 배움에 진심을 다하는 스승과 제자의 대화를 통해 진짜 공부의 의미, 마음과 태도를 자분자분 들려준다.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모퉁이를 접고 싶은 구절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공부 이야기를 넘어,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삶을 단단하게 세워주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로 남는다.

4.72026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은이), 양병찬 (옮긴이) | 문학동네 | 2026년 3월 당신의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행동>으로 인간 본성을 집요하게 파헤쳐 많은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던 로버트 새폴스키가 이번 책에선 자유의지에 대해 말한다. 과학계와 철학계에서 오랫동안 의견이 양분되어 온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해 새폴스키는 자유의지란 없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그가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뇌과학과 생물학적 이론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라고 믿는 특정 행동을 하기 이전에, 인간 뇌의 보조운동영역은 이미 활성화되어 움직임을 지시하는 신경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여기엔 최근 우리가 본 것, 몇 시간 전 느낀 허기, 통증, 피로 등의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새폴스키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만일 그의 말이 맞는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곧바로 윤리에 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새폴스키는 예상되는 우려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하며 낙관적 전망을 내어 놓는다.

    자유의지 논쟁이라는 주제와 묵직한 책의 디자인에 지레 위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책은 평이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막힘없이 잘 읽힌다. 우리 선택과 행동의 메커니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뇌에 기분 좋은 자극을 받으며 독파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을 고르는 것 또한 당신의 자유의지는 아니겠지만.

  • 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다산책방 | 2026년 3월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신작

    부활절을 앞둔 어느 날, 루이사는 고가의 미술품 경매가 열리는 어느 교회를 찾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몰래 잠입했다. 배낭에는 스프레이 페인트와 몇몇 잡동사니, 그리고 그림엽서가 한 장 들어있었는데, “조만간 만나자, 엄마가.”라고 적혀있는 엽서의 앞면에는 바다를 향해 뻗어있는 잔교,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다의 초상>. 엽서에 그려진 그림의 제목이자 오늘 경매에 출품된 그림 중 가장 비싼 그림. 처음에는 그저 그 그림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비싼 투자 대상 정도로만 보는 ‘돈 많은 어른들’에 질려버린 탓일까, 루이사는 <바다의 초상> 옆에 자신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다 들통나 경비원에게 쫓기며 달아난다. 그리고 도망치던 어느 골목길에서 <바다의 초상>을 그린 화가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바다의 초상> 원본 그림을 건네받으며 그림에 얽힌 사연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 시작한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오베라는 남자>의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불안한 사람들> 이후 국내에 5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스웨덴의 국민 작가’를 넘어 출간과 동시에 영미권 주요 매체의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하고, 2025년 굿리즈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 및 NPR과 USA투데이 등 8개 주요 매체가 선정한 ‘올해 가장 기대되는 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가정폭력, 학대, 따돌림 등 잔인한 현실을 견디며 서로에게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유와 꿈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사랑이 되어준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

  • 비밀의 종이 울리면
    이하람 (지은이), 양양 (그림) | 창비 | 2026년 3월 80년간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두 소년의 이야기

    솔개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던 외증조할머니의 49재가 시작된 날, 우찬과 태성은 접근 금지 구역으로 묶인 솔개산 비밀 들판, '솔비들' 위로 드론을 띄운다. 그러나 드론은 예기치 않게 추락하고, 두 소년은 그것을 찾기 위해 금지된 경계를 넘어선다. 그때, 종소리와 함께 낡은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한 소년과 마주친다. 그 일 이후 소년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용기를 낸 우찬과 태성은 80년간 숨겨진 비밀에 점차 다가가는데···

    우찬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 책은, 솔비들 소년의 정체를 좇으며 한 편의 영화처럼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12시 정각 종이 울리면 나타나는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 이름과 사연이 밝혀지고, 흩어져 있던 단서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진다. 외증조할머니의 삶, 솔개마을이 품은 비밀, 그리고 오래도록 봉인되어 있던 시간의 흔적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이어지는 서사는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결국 더 큰 역사로 확장된다. 잊힌 이름들, 그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 한 개인의 이야기와 역사 이야기가 촘촘하게 엮인 이 작품은 마지막 장까지 몰입시키고, 동시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 형태 없는 불안
    서맨사 하비 (지은이), 송예슬 (옮긴이) | 서해문집 | 2026년 4월 불안의 파도를 건너 나를 마주하는 여정

    2024년 <궤도>로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서맨사 하비의 유일무이한 에세이가 출간됐다. 작가가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간절히 들여다보며 불면증의 심연으로 계속 빠져든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그의 문체는 여기가 꿈속인지 아닌지 독자들을 혼동하게 만들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서사는 매번 새로운 형태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 책은 단순히 불면증을 겪는 한 사람의 기록을 넘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불안’의 실체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채 마음 한 켠에 머무는 감정, 그리고 밤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생각들을 작가는 집요하게 언어로 붙잡는다. 그래서 이 책은 불면을 겪어 본 사람에게는 깊은 공감을,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쉽게 지나쳐 온 감정의 결을 또렷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읽는 동안 막연했던 불안은 점차 언어를 얻고, 끝내는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감각으로 자리 잡는다. 불면증뿐 아니라 다양한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매혹적인 찬사다.

4.102026
  • 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채원, 길란, 남의현, 서장원, 위수정, 이미상, 함윤이 (지은이) | 문학동네 | 2026년 3월 미리 도착한 한국문학의 봄

    2026년의 봄은 선을 넘어 올듯 말듯 좀처럼 오지 않는다. 활동 10년 이내의 작가가 한 해 동안 발표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젊은작가상과 함께하는 열일곱번째 봄을 맞아 수상자 김채원, 길란, 남의현, 서장원, 위수정, 이미상, 함윤이의 소설을 차곡차곡 따라 읽으며 이 소설들의 변화무쌍함이 올 봄의 정조와 유독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상 수상작인 김채원의 소설을 별개로, 2025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길란과 남의현의 소설을 한 갈래로, 문지문학상을 수상한 서장원,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위수정,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이미상,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함윤이를 한 갈래로 읽는 방식으로 차차 읽어나가길 제안하고 싶다. 사람과 귀신 사이, 여성과 남성 사이, 부자와 빈자 사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 이 소설들은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막간의 틈을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그곳에 있을 무언가가 그리는 독자적인 궤도를 따라 돈다. 남의현의 <나는 야구를 사랑해>의 서술자가 '하지만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일도 있어. 그걸 모르는 구나.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말을 더듬을까봐 두려워'(106쪽) 말을 삼킬 때, 위수정 <귀신이 없는 집>의 서술자가 '사회가 우리한테 적응을 왜 하냐?'(201쪽)라는 말을 던질 때 독자 역시 소설가가 멈춘 자리에서 서서 여기에 누군가 머무르고 있지 않을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김채원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는 모과가 떨어지는 장면에서 시작해 별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전쟁과 피난을 겪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증조할아버지를 목격했을 때 어린이였던 나의 '할아버지'는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 됐다. 사람이 죽다 살아날 수도 있다고, 홑껍데기 몸으로도 삶이 계속될 수 있다고 할아버지의 손녀인 '나'는 할아버지를 보며 생각한다. 지금 이 땅의 흙을 만지는 것으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그냥 편을 들어주는 게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 김채원의 소설 속에서 움직이낟. '나'의 생각의 속도로 이어지는 이 소설의 리듬을 따라 마무리에 이르며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어 올 봄도 참 아름답구나, 했다.

  • 그래, 파도!
    임화선 (지은이), 김진화 (그림) | 길벗어린이 | 2026년 3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 끝에 만난 '진짜 나'

    맨 처음에는 서핑을 즐기는 아이의 표지를 보고, 단순히 ‘서핑’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다. "파도가 좋아서, 나도 따라 웃었다." 책장을 넘기자 펼쳐지는 바다 풍경 속 이 한 문장을 마주한 순간, 마음을 빼앗겨 버렸고, 이내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주인공 '그래'는 아빠의 사업 실패로 은파 시로 이사를 한다. 꿈을 접은 채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엄마는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 홀로 서울로 떠난다. 엄마와의 이별 이후, 그래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몰래 엄마를 찾아가지만, 끝내 다가서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하다 돌아선다. 앞집 쌍둥이 친구들, 서핑 마니아인 또래 소녀 수아, 그리고 따뜻한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새로운 삶에 스며든다. 바다와 파도, 서핑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그래는 아빠와 엄마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과 마음 상태를 하나씩 배워 간다.

    이 책은 변화무쌍한 바다처럼 때로는 잔잔하다가, 때로는 일렁이기를 반복한다. 낯선 마을, 서툰 관계, 아빠와의 어색한 침묵, 엄마와의 이별. 차분한 성격의 그래가 마주한 파도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래 못지않게 엄마와 아빠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넘어야 할 파도를 안고 있다. 세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흔들리며, 다시 중심을 잡는 법을 터득해 간다. 그 과정이 지나침 없이 섬세하게 그려져 더 진솔하게 다가온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우리네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깊은 공감과 조용한 응원을 보내게 되는 작품이다.

  • 운동하면 좋은 걸 누가 모르냐고요
    하주원 (지은이) | 반비 | 2026년 3월 정신과 의사의 실전 운동 가이드

    정신과 의사가 쓴 운동 가이드라니, 일단 신선하다. 책은 운동이 우리의 몸과 정신에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지 짚어주며 시작한다. 근육이 많은 사람은 병에 걸려도 회복이 빠르고, 운동을 해서 척추를 곧바로 세워야 기분 조절도 잘 되고 집중력도 향상된다. 마음은 몸 안에 있다. 마음이 고민과 불안에 몰입해 있을 때, 몸을 잠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여도, 굳이 따지자면 몸의 건강이 먼저다."

    그렇지만 모든 걸 뚫는 창과 모든 걸 막는 방패의 대결처럼 운동의 좋은 점에 대한 설파 후엔 늘 따라붙는 반응이 있다. "운동하면 좋은 걸 누가 모르냐고요."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현실적으로, 상황적으로 운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세세한 맞춤형 가이드를 내놓는다. 우울증, ADHD, 공황장애, 트라우마, 사회불안장애,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운동, MBTI, TCI 별 성향에 따른 운동 등을 추천하며 각 사정과 성향에 따라 주의할 점과 유념하면 좋은 점을 설명한다.

    그 자신 역시 운동 신경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이지만 열심히 운동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따뜻하고 세심한 동시에 아주 끈질기게 독자를 설득한다. 잘 쓴 심리서의 덕목은 역시 살면서 왠지 이해 안 가던 내 자신에 대한 의문을 해소 시켜 주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남들은 좋다고 하는 운동이 왜 나에겐 안 맞았는지, 왜 어떤 운동은 하러 가기도 전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속 시원하게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 놀라움으로 읽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맞는 운동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책에 멱살을 잡히면 결국 운동의 세계로 끌려가게 될 것이니, 준비된 자라면 몸을 맡겨보시길.

  • 피니토
    빅터 D. O. 산토스 (지은이),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긴이) | 창비 | 2026년 3월 유한한 시간의 의미를 탐구하는 그림책

    아이는 긴 방학의 시작을 아쉬워한다. 빨리 시간이 흘러 방학이 끝나기만을 바라던 아이는 <피니토>라는 이름의 책을 만난다. "여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한 장씩 넘기면서 네 삶을 상상해 봐." 책을 건넨 이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아이는 호기심에 책장을 펼친다. 그 안에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온 무수한 순간들이 있다.

    다정한 손에 안기던 감촉, 처음 반려동물을 맞이했을 때의 마음, 한여름 햇살 아래 녹아내리던 아이스크림의 맛. "어린 시절, 그 시절이 건네는 모든 마법 같은 순간들"에 이어 유년의 끝이 모습을 드러낼 때, 아이는 비로소 알아간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우리가 삶이라는 버스를 탈 때, 어떤 노선을 선택하든 한 가지는 분명해. 모두 마지막 정거장에 다다른다는 거지." 사라지기에 더욱 빛나는 순간들. 무심히 흘려보내던 하루를 가만히 되짚어 보게 하는 그림책.

4.142026
  • 캐릭터 심리 사전
    린다 N. 에델스타인 (지은이), 지여울 (옮긴이) | 부키 | 2026년 4월 작가를 위한 단기 집중 심리학 수업

    창작자라면 완전한 허구의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 성격과 특성을 직접 빚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캐릭터 설정과 서사의 큰 줄기를 짜내는 데는,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가 과도하게 들어간다. 러프하지만 기본적인 설득력을 갖춘 프리셋 목록이 있다면 어떨까? 그 목록에서 마음이 가는 인물을 골라 다듬기만 해도 된다면 창작을 훨씬 가볍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뭉툭하게 틀 잡힌 찰흙에 장식을 더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또렷한 인간으로 만드는 일은 창작자의 몫이지만, 기본 틀이 눈앞에 늘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캐릭터와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엔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목록을 제공한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자신이 상담해온 내담자와 허구의 인간상을 엮어 400여 개에 이르는 인간 성격의 지도를 구축했다. 인간의 성격 유형,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 단계의 특징, 범죄자의 유형, 성적 행동 양식, 인생의 주요 사건이 일으키는 역학, 가정환경의 작용, 정신적 충격과 재해에 대한 반응 등 캐릭터 구상에 필요한 요소들을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두었다. 창작을 시작할 때도, 막혀 멈춰 섰을 때도, 책장을 드르륵 넘기다 보면 뜻밖의 단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대건 작가는 벌써 "지금 퇴고 중인 소설 캐릭터의 돌파구를 이 책에서 찾았"고, 수많은 눈 밝은 창작자들은 출간 전 펀딩을 통해 이미 이 책을 책상 한 편에 구비해두었다. 알라딘 북펀드 목표액을 무려 2600% 달성한 화제의 작법서.

  •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진은영 (지은이), 이수지 (그림) | 초록귤(우리학교) | 2026년 4월 세상 모든 아이의 삶을 축원하며

    진은영의 시와 이수지의 그림이 나란히 놓인 이 책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억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그해 가을. 열일곱 번째 생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아이를 대신해 쓰인 진은영의 시 '그날 이후'는 아이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생일 모임에서 읽혔고, 그 목소리는 함께 슬퍼하고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에 깊게 남았다.

    이수지 작가는 떠나간 아이들과 그날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고등학생 아이의 뒷모습에서 시작해 막 태어난 아기의 얼굴로 닿는 흐름의 그림을 오랜 시간 홀로 다듬어 왔다. 시와 그림이 만나게 된 것은,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라는 시의 마지막 문장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인 갓난아기의 앞모습과 서로 기다려 온 듯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쌓여온 시와 그림이 만나 이 책이 탄생했다. 어김없이 돌아온 열두 번째 봄, 세상 모든 아이의 삶을 축원하며.

  •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 2
    에밀리 오브리, 프랭크 테타르, 토마 앙사르 (지은이), 이수진 (옮긴이) | 사이 | 2026년 4월 해협과 바닷길로 보는 지정학적 격전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 후티 반군에 의해 인질로 잡혀있는 홍해의 관문 바브엘만데브해협, 해상 정복을 위한 러시아의 첫 단추인 아조프해, 무력 동원을 통해서라도 중국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는 남중국해, 미국과 중국 두 패권국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만해협, 아직은 열리지 않은 미지의 가능성인 북극해. 하나같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이며 복수의 이해 관계국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격전지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으로, 이곳들 모두 ‘바닷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전작인 <지도로 보아야 보인다>에서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등 5대륙 28개국의 지정학적 현황을 120개의 생생하고 스펙터클한 지도와 함께 설명했던 저자들이, 이번에는 호르무즈해협, 남중국해, 흑해, 대만해협, 홍해, 발트해 등 경쟁과 대립, 갈등의 공간으로 ‘사실상 전쟁터’가 되어버린, 즉 21세기 ‘최고의 지정학적 격전지’로 떠오른 전 세계 21곳의 해협과 바닷길을 다룬다. 세계 교역량의 90퍼센트가 바다를 통해 운송되고 인터넷 데이터의 98퍼센트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오가는 오늘날의 세계와 다가올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시각, 바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틔워줄 마중물 같은 책.

  • 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은이) | 창비 | 2026년 4월 아름답지도, 근사하지도 않게 다다른 삶의 자리

    그러나 그건 그가 혼자 힘으로 얻은 세계였다. 단 한번도 그려본 적 없고, 상상한 적 없지만 어쨌든 지금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이었다. 아름답지도, 근사하지도 않지만 그가 어렵게 다다른 어떤 곳이었다.
    <푸른색 루비콘> 102쪽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소설집. 김혜진의 소설은 열기도 냉기도 아닌 온기로 삶을 바라본다. 김혜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려본 적 없고, 상상한 적 없는' 삶에 놓여 제가 놓인 자리를 두리번댄다. 그 삶은 작은 호의, 혹은 오지랖을 부리는 삶의 방식을 두고 '정해야, 다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면 좋아?'(<관종들>, 33쪽)하는 지친 조언을 듣는 삶. 성경 수업에서조차 '묘하게 불청객이 되어가는 느낌'(<푸른색 루비콘> 83쪽)을 받는 삶, '사는 동안 수없이 오답을 적어냈던 문제의 해답'(<하루치의 말>, 134쪽)을 손에 쥐고도 여전히 어렴풋해하는 삶이다. 이 삶은 자전거 가게에서 갑자기 고춧가루를 팔게 되는 삶, 아픈 엄마의 이불가게를 떠맡게 되는 삶, 피해자 단톡방에서 혼자 일기 쓰듯 메시지를 보내는 삶이다. 몇 억 단위의 부채가 아닌 700만원 정도를 빌려주고 떼이는 삶. 그러한 삶이 놓인 자리에서 김혜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생계를 유지하며 산다. 소설은 생선을 조리듯 이 삶이 품었을 미움이며 원망을 적절한 온도로 오래 데운다. 인물이 사건과 감정 바깥으로 움직이면 '과묵한 선의'(조해진의 추천사 중)로 비로소 인물의 손을 잡는다.

    이 노란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바깥의 열기와는 무관한, 내부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온기'(<달걀의 온기> 233쪽)가 내 마음 역시 덥혔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에 삶을 포갠 연약한 읽는 이가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도 온기를 감지할 때, 그렇게 소설 밖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4.172026
  • 경전의 탄생
    카렌 암스트롱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교양인 | 2026년 4월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신작

    이미 21세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축의 시대>에서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경이로운 시기에 대해 다루었던 저자 카렌 암스트롱이 이번엔 세계 종교 경전들에 대한 역사서로 돌아왔다. 성경, 쿠란, 탈무드를 넘어 주역, 논어, 법화경 등 동서양 문명을 넘나들며 인류에게 경전이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경전에 대해서는 여러 궁금증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경전은 인생을 내거는 절대적 진리인 반면 누군가에겐 과거의 신화 혹은 허무맹랑한 허구에 불과하기에 이 차이에서 발생하는 부딪힘으로부터 근본적인 질문들이 피어난다. 암스트롱은 세계의 경전들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추적하며 이 질문들에 답한다. 놀라운 공통점은, 서로 다른 종교 문화권 내에서도 경전은 늘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수행 지침이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에고를 넘어서 타인을 향하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 모든 경전의 근원적 메세지다.

    결국 이 책이 보여주는 경전의 본질이란 고통스러운 필멸의 삶에서 초월을 추구했던 사람들, 자아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자신을 넘어 타인과 공존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남긴 성찰의 기록이다. 경전을 근거로 오만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활개치는 세상에 카렌 암스트롱은 이 치열하고 고고한 작업물을 내놓았다. 경전이 믿었던 인간의 성스러운 잠재력을 되살려내고자 하는 역작이다.

  • 부의 사다리에 올라타라
    닉 매기울리 (지은이), 박슬라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4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태어나서 누구나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다. '목 가누기-몸 뒤집기-앉기-기기-서기-걷기' 물론 아이마다 속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앞선 단계가 충분히 다져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존재이다. 아직 앉을 수 없는 몸으로 걷기를 시도하지 않으며, 수없이 반복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학습은 또 어떤가? 더하기와 빼기를 지나 곱셈과 나눗셈을 익히고, 그 과정을 충분히 거친 뒤에야 미적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부'를 대하는 태도만은 이 질서를 벗어나 있다. 현재의 자산 상태를 점검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쌓아가기보다, 단번에 결과를 기대하고 동일한 방식만을 반복하다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 역시 성장과 동일한 구조를 지닌 과정이며, 단계에 대한 이해 없이 결과만을 좇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역할이 시작된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는데도 자산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 재테크 책을 몇 권씩 읽었지만 정작 나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 혹은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하는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특히 반가울 것이다. 출발점이 어디든 상관없다.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를 먼저 냉정하게 확인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음 칸으로 올라서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길을 찾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우리는 자꾸 건너뛰려 한다.
    하지만 모든 단계는 건너뛸 수 없다.
    결국, 한 칸씩이다.

  • 돈 주운 자의 최후
    이여민 (지은이), 유영근 (그림) | 비룡소 | 2026년 3월 주운 돈의 주인 찾아 주기 프로젝트

    길을 걷다 동전이나 지폐, 열쇠고리 인형, 신용카드 같은 물건을 주워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지하철역 앞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발견한 적이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운 뒤, 약 5초 정도 망설이다가 역무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건넸다. 그 만 원이 무사히 주인에게 돌아갔을까.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문득 궁금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 열두 살 두민이는 유난히 돈을 잘 줍는다. 주운 돈으로 뭐라도 사 먹자는 아빠의 말은 뒤로한 채, 엄마와 함께 지구대에 가서 돈을 맡긴다. 표창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칭찬 한마디쯤은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심한 반응뿐. 시무룩해진 두민이는 그날 이후 동네 야시장에서 주운 돈의 주인을 직접 찾아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 두민이 뒤를 따라붙으며, 뜻밖의 ‘주인 찾아 주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두민이와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단서를 모으고, 주인을 추리하고, 엉뚱한 작전을 세워 가는 과정은 무척 밝고 순수해서 절로 웃음 짓게 된다. 그러다 주운 돈을 가로채려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한층 쫄깃해진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 적절한 긴장감을 절묘하게 섞어, 마지막 장까지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동화다.

  • 러브 온 더 락
    고선경 (지은이) | 창비 | 2026년 4월 "소다수, 토마토, 월세"

    하나의 현상이 된 두 권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로 10만 독자를 만난 고선경이 새까만 여름 밤 같은 시집으로 새로운 문을 연다. 예쁘게 차려 입고 과일 케이크도 먹고 셀카도 많이 찍은 낮이 지나면 얼음 위로 쏟아낸 위스키 같은 밤이 찾아온다. '부드럽고 끈적이는 마시멜로를 질겅'(19쪽)거리며 '마이멜로디'를 뽑을 수 있는 인형뽑기 '갓챠GOTCHA'를 하면서 화자는 순간 생각한다.
    '덜렁거리는 집게로 신의 내부를 헤집고 싶다'(20쪽)
    귀여운 전자 음악이 흐르는 인형뽑기방, 표정을 숨길 수 없는 환한 조명 아래에서 이제 고선경의 귀엽고 폭력적인 시 속 화자는 출근 시간을 생각한다.

    이제부터 꽃길만 걷자는 사람에게 흰 국화밭 보여주고 싶었던 거 (<순수하고 뒤숭숭하며 존경스러운>, 14쪽)
    꽃길 걸으라는 한 마디조차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고선경의 시는 그런 순간을 포착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젊은 여성이, 더구나 '소녀'적인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 도시에 사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난지한강공원에서 '내가 넘어지면 깜짝 놀란 눈으로 잠시 내려다보지만 끝내 손 내밀지 않는 사람들'(<남자 친구가 정신과 약 먹는 여자를 싫어해요>, 39쪽)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을 볼 때 '멀어진 친구가 업로드한 인스타 스토리'(<물거품과 면도날>, 84쪽)를 굳이 열어볼 때.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을 때 고선경 풍의 센티멘탈은 위스키의 맛과 향처럼 코를 자극한다. 읽고 나면 조금 취하고 싶어지는 시. 어둑어둑 감각적인 여름 밤으로 친구가 될 독자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