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나라 '화국'은 벚꽃을 국화로 삼은 '라잔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라잔의 언어와 문화를 강요당한 채 총독부의 지배를 받고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화국인 화가 '제비'는 민속화를 그리며 입에 풀칠을 해왔지만 호랑이 그림이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당하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지원한 라잔 예술 관청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불합격한다.
낙담한 제비에게 고미술 컬렉터이자 구미호 요괴 일족인 '학'이 라잔 방위성에서 화가를 구한다며 지원해 보라고 설득한다. 절대 라잔의 군대와 제국을 선전하는 일만은 하고 싶지 않았던 제비이지만, 그 자리의 파격적으로 높은 급여를 알게 되자 생각이 멈춘다. 결국 방위성을 찾아가 옛 왕조의 궁궐 지하에서 맡게 될 임무를 목격한 제비는 비로소 알게 된다. 자신이 거대한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것을.
<나인폭스 갬빗>으로 한국계 작가 최초로 휴고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이윤하 작가가 일제강점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로 돌아왔다. 김칫독이 묻힌 마당과 옛집, 궁궐이 남아있는 사대문의 풍경과 가스등이 켜진 거리에서 마법 문양으로 생명을 부여받고 돌아다니는 야경꾼, 하늘을 나는 기계 용이 혼재하는 이야기. 그 속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들이 자아내는 이채롭고도 환상적인 분위기가 인상깊다. 신비로운 표지화가 소설의 독특한 분위기를 오롯이 담고 있다.
'밥 배' 불러도 '빵 배' 따로 있다는 말은 이제 유구한 우스개다. 배가 아무리 불러도 달달한 후식은 꼭 챙겨야 완전한 식사를 했다고 느끼는 이라면 이 책이 꼭 필요할 것 같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모스가 중독의 관점으로 현대인의 식습관과 식문화를 분석했다. 한국에서 한번 먹으면 계속 손이 가는 별미에 농담 반 칭찬 반으로 '마약 같다'고 하는 말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 책은 갈망과 쾌락의 반복으로 뇌를 길들이는 진짜 중독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뇌는 진화상 더 많은 음식을 갈망하도록 설계됐다. 과식이 반복되고 절식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인간이 원래 더 많은 음식을 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식품 대기업들은 이런 인간의 근본적 욕구를 이용하고 조종한다.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은 뇌의 갈망-보상 회로를 강력하고 빠르게 자극하는데, 기업들은 단맛과 짠맛의 강도를 점점 높여 우리의 뇌를 중독 상태에 머물게 한다.
우리의 미각은, 건강은, 식습관의 주도권은 기업의 손에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과학적 근거와 데이터들을 읽다 보면 섬뜩하다. 배가 불러도 음식이 생각나는 이유, 갈수록 음식이 달아지는 경향, 과식 비만, 그리고 건강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지금 당장 우리가 먹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우리는 대체 누구의 욕망을 먹고 있는 것인가?
구병모의 '미니픽션' 열세 편을 만난다. 로렘 입숨(Lorem Ipsum)이라는 의미 덩어리로 묶인 이 소설집을 상상하면 양피지 열세 장을 묶은 기다란 띠의 모양새가 상상된다. '1500년대부터 인쇄와 조판 산업에서 레이아웃을 편집하는 데 쓰인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로렘 입숨'이라는 개념은 라틴어, '고통 그 자체dolorem ipsum'에서 이름을 빌렸다. 의미-고통 이 두 개념 사이를 횡단하는 말로 이루어진 소설들. 무의미하게 한글타자연습 게임에 입력하는 '별 헤는 밤'의 문장(이 시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처럼, 어떤 형식은 의미를 운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로렘 입숨' 덩어리로 만들어진 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어 붙였을 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오래도록 간절히 쓰고 싶었다'(75쪽)는 소설가의 바람은 <동사를 가질 권리>라는 소설에서 비로소 시도된다.
13곡으로 이루어진, 한 음악가의 정규 앨범을 듣는 것처럼 이 소설집을 읽었다. 200자 원고지 50매 내외라는 날렵한 형식의 소설에, 각 소설마다 작가가 붙인 코멘터리가 함께해 앨범 부클릿과 함께 소설을 감상하는 것 같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상아의 문으로>까지, 구병모는 의문을 제기하고, 당연함을 경계하며 작품 세계를 이어왔다. 왜 문장이 짧고 간결해야 하는지, 왜 의미 단위가 선명해야 하는지, 왜 소설이 잘 읽혀야 하는지 되묻는 지점에서 구병모의 세계가 시작한다. 죽은 자를 묻은 자리에서 그의 성품을 반영한 모양의 꽃이 피어나는 도시를 상상한 첫 작품 〈화장花粧의 도시〉의 화려함을 상상해본다. 모든 인간의 품성이 선할 리 없고, 모든 꽃이 아름다울리 없다. 화원과도 꽃동산과도 다른 탐미적인 세계와 그 세계의 이면을 상상하는 재미, 구병모의 팬이라면 이 세계의 꽃의 개성적인 빛깔에 매혹되고 말 것이다.
흥미로운 주제와 탄탄한 이야기로 한 권 한 권을 채우며 수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아무튼 시리즈'. 55번째 책은 장강명 작가가 집필한 '현수동' 이야기다. 현수동은 작가가 살고 싶은 동네, 사랑하는 동네지만, 실존하지 않는다. 작가는 오랫동안 현수동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해왔다. 그리고, 여러 작품에 현수동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작가는 이번 책에서 자신이 만든 세계로 초대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어떤 동네에서 살고 싶나요?"
현수동은 상상의 동네지만, 위치가 구체적이다.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일대로, 이곳 사람들은 서로 갈등도 하고, 법을 어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이 아름다우며, 선량하고 양심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다. 그리고, 현수동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기리는 동네다. 작가는 광흥창역 일대에서 실제로 6년간 살았다. 실거주의 경험 및, 각종 조사와 문헌 자료를 토대로, 광흥창역 일대 실존하는 동네들의 역사, 설화, 인물, 교통, 상권, 도서관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각 실제의 이야기에, 현수동에 관한 그림 퍼즐을 하나씩 구체화해 나가며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동네의 모습을 완성해 낸다.
어떤 동네를 오래 상상하고, 궁리하는 작업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그렇다고 답한다. 상상 속의 동네를 현실에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 책에서 현수동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새 작품 <시간의 언덕, 현수동>을 예고한다. 새로운 현수동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이게 될지 무척 기대된다.
<지구 끝의 온실> 등을 출간한 자이언트북스에서 '자이언트픽'으로 믿고 읽을 만한 작가를 소개한다. 첫 작품집에 이름을 올린 작가는 이유리, 김서해, 김초엽, 설재인, 천선란.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초엽부터 2023년 이 작품집의 '폴터가이스트'라는 작품을 통해 독자를 처음 만나는 김서해까지 2020년대를 함께 호흡하는 작가들이 도래할 이야기를 향해 손을 내민다.
이유리의 소설 속에서 '사랑'은 팔 수 있는, 내뱉으면 진분홍색 기체로 화하는 물질로 표현된다. 이 내뱉은 숨처럼 김서해의 소설 속에서 수영선수인 소년 정현수는 소외된 소녀 세인에게 팔을 뻗고, 김초엽의 소설 속 '인물' 수브다니는 기꺼이 물에 잠겨 녹슬 것을 택한다. 설재인의 소설처럼 공간을 열고, 천선란의 소설처럼 몸을 열고 상대방의 세계를 환대하는 이야기들. 이 앤솔러지의 발문을 쓴 북튜버 김겨울의 말처럼 '우정과 환대와 헤아림이라는 손 내밀기'로 매해의 시작 출간될 '자이언트픽'을 기대해 본다.
2022년 한 해를 강타했던 유행어를 하나 꼽는다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을 꼽고 싶다. 리그 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한 프로게임단 DRX 소속 프로게이머 ‘데프트’ 김혁규 선수의 인터뷰 기사 제목에서 유래하여, 최하위 시드부터 쟁쟁한 경쟁팀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DRX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어우러져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후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한 국가대표 축구팀이 포르투갈에 2:1로 역전승하며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후 이 글귀가 적힌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퍼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꺾이지 않는 마음’에 열광했다.
지금 실패했다고,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고 거기가 반드시 끝은 아니다. 소위 ‘일타강사’로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왔던 저자는, 그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수험 정보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희망과 용기의 언어’임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남들보다 뒤늦은 시기에 다시 도전해야 하는 막막함 앞에 섰을 때, 마음이 꺾여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때는 반드시 온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문 분야인 역사책이 아니라, 꿈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세상에 내놓았다. “모든 꽃이 봄에 피지는 않습니다. 자기만의 꽃이 피는 때는 옵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라고 하지 않던가. 초조함과 불안감에 꺾이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낸시 프레이저는 책을 이렇게 연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굳이 지금이 혼란기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자들은 난마처럼 서로 얽힌 미래의 위협과 현재의 참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실은 이로 인해 이미 요동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서로 발 묶여 붕괴되는 듯 보이는 현재에 굳이 낸시 프레이저의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지금 이 결과적 사태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고도 새로운 언어로 듣고 싶어서일 것이다.
지금의 혼돈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그는 확장된 자본주의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에 한정 짓지 않고) 사회의 한 유형으로 인식하며 자본주의가 먹어치우는 것들을 살핀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기능하도록 하는 조건적 토대조차 집어삼키는데,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낸시 프레이저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식인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식인 자본주의의 비정상적 파괴 본능, 자본주의가 도살하는 체제와 환경 등을 살피며 책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까지 나아간다.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라 불리는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답게 도발적인 워딩과 새로운 관점으로 가득하다. 힘 있는 문장들은 암울한 시대의 복잡한 진실을 명료하게 풀어 놓는다. 현 시대의 연쇄적 위기는 그의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으로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며 추천했다.
커피에서 시작해 음악까지 이어질 끝말잇기를 아름다운 책꼴에 실어 안정적으로 이어온,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출판사 시간의흐름이 시인선 시리즈를 시작한다. 시인, 소설가, 미술가, 사진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해온 작가가 참여할 예정인 이 시리즈의 첫 권으로 <시와 산책>으로 '말들의 흐름' 끝말잇기에 참여한 한정원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총 스물여덟 개의 막(幕)으로 이루어진 시극이 펼쳐진다. 거친 바람소리, 암전, 다시 밝아지는 무대. 소년과 소녀는 말을 쌓으며 서로를 부른다. 그 이름은 오늘은 영이고. 내일은 일이고. 모레는 이고. 글피는 삼이겠지만 언젠가 백이 되고. 흑이 되고. 흙이 될 것이다. 노파가 되고 귀신이 되고 꿈이 되는 말이 펼쳐지는 얼음 극장을 상상해 본다. 몇 차례의 암전이 이어진다. 얼음 위를 걷거나 얼음 밑에 살거나, 그 꿈은 기어코 아름다울 것이다.
어쩐지 이제는 뜨뜻미지근한 ‘지구온난화’를 지나 오늘날은 ‘기후변화’, 한 걸음 더 나가 ‘기후위기’의 시대다.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는 갖가지 기상 이변과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은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렸고, 호주는 대한민국 국토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 불에 탔다. 파키스탄에서는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며 1,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팬데믹도 지구 온도 상승이 야생동물의 생존율을 높이고 이동 반경을 확대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이 확산한 데에서 원인을 찾는다. 새삼스럽지만 기후위기는 북극곰의 생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류와 문명의 생존에 직결된 문제다.
위기에 발맞추어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기후경영’으로의 전환에 가속을 붙이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중이다. 오랜 기간 ‘환경보전’과 ‘경제발전’을 양립 불가능한 제로섬 관계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기후정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발전의 원천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EU는 2030년까지 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5%까지 높일 계획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대유럽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위협이 커지면서 계획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애플이나 구글,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도 향후 7년 이내에 재생에너지로의 전면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속도 OECD 1위이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OECD 최하위인 대한민국은 절대 쉽지 않을 ‘탈탄소 국가’로의 전환해내야만 하는 문턱 앞에 서 있다. 기후경제학 전문가 홍종호 교수가 30년간 연구해 온 ‘지속 가능한 한국 경제’를 위한 따뜻하고 날카로운 해법이 필요한 때다.
22년 전, 한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살해당했다. 그에게 이혼소송을 의뢰했지만 거액의 위자료와 함께 패소한 퀸시 밀러가 즉시 용의자로 지목된다. 퀸시는 결백을 외쳤고 알리바이도 증명했지만 상황은 '백인 변호사에게 원한을 품고 살해한 흑인 의뢰인'이라는 누군가의 각본에 따라 물 흐르듯 진행된다. DNA 수사가 존재하기 전의 열악한 수사 환경이 각본의 효과적인 연출을 도왔고, 현장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쇄도한다. 배심원 10명 중 유일한 흑인 배심원이 퀸시가 사형만은 면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결국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퀸시의 무죄를 맹렬하게 주장했던 젊은 변호사 타일러는 "정신이 망가졌다"는 말만을 남긴 채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자취를 감춘다.
22년 후, 여전히 복역 중이고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는 퀸시에게 면회 신청이 들어온다. 사제복을 입었지만 전혀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 변호사 컬런 포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무고한 장기수들의 결백을 증명하고 감옥에서 빼내오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제복을 입고 교도소에 온 이유도 "이런 옷을 입으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기 때문". 포스트는 당시 퀸시를 목격했다는 증언을 한 사람들과 타일러를 찾아가지만 그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당장 이 일에서 손을 떼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포스트는 과거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작품의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모두 실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힌 존 그리샴 신작 스릴러.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출간 후 알라딘 독자가 선정한 한국문학의 얼굴들(2021년)에 선정되기도 한 정현우의 두 번째 시집. 41편의 소멸의 시와 이 이미지의 시작점에 대해 적은 한 편의 에세이를 더해 핀 시리즈로 독자를 만난다.
고양이 묘묘의 가벼운 몸을 안고 "죽음이 이리 가벼울 수 있구나. 이미 할머니의 몸에서 마음이 떠나갔음을 엄마와 나는 알았다." (137쪽)라고 적던 그 날의 무게를 다시 떠올린다. 나의 할머니와 반려동물들이 하나같이 들어간 상자 속. 밤처럼 어두울 그 상자 속을 상상해본다. 소멸하는 밤 같을.
죽은 몸을 껴안고 묻힌 자리
위로 눈을 내리는 겨울의 마음을
귀 기울이다 마는 것뿐임을
<겨울의 기도> 부분
소멸한 자리에 아직 남은 마음이 있고, 그 마음에 귀 기울이려는 시도가 있다. 겨울이 가고 있다. "이 꿈을 지키려 자꾸 눈 감는 겨울"(140쪽)을 보내며 사라지는 소리에 귀를 맞대 본다.
어린이의 시야를 넓혀 주고 단단한 힘과 따뜻한 위로가 될 작품을 소개하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의 제23회 대상 작품이 공개됐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3년 이상의 시간 동안 타인과 교류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관계망 속 연결감에 대한 중요성을 다룬 <리보와 앤>이 동시대성을 담아 대상 수상작이 되었다.
도서관 보조 로봇인 리보와 앤은 도서관에 확산된 바이러스 때문에 방치된다. 배터리 충전이 안 되어 위기를 겪기도 하며 오지 않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누가 알았으랴, 감정도 생명도 없는 로봇들마저도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걸. 외로운 소년 도현은 리보와 앤을 구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태도까지 흔들어버린 코로나19는 한창 많은 경험을 흡수해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힘겨운 시간을 지나 간신히 터널의 끝에 다다른 지금,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열두 나라로 이루어진 세계를 무대로 한 '십이국기' 시리즈는 1991년 처음 독자를 만난 이후 2023년 현재 누적 판매 부수 1천만 부를 돌파하며 일본 최고의 판타지 소설로 꼽히고 있다. 고대 중국 사상을 기반으로 한 치밀한 세계관, 심지가 굳고 당찬 주인공들을 비롯한 매력적인 등장인물, 시대와 권력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십이국기 세계에 오게 된 평범한 고등학생이 십이국 가운데 하나인 경국의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1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에서 대서사의 막이 열렸고, 8권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이후 일본 현지에서 18년 만에 출간된 9권 <백은의 언덕 검은 달>이 드디어 국내에 상륙했다. 일본 판타지 문학의 정상에 우뚝 선 시리즈가 펼쳐 보이는 경이로운 세계로 떠나보자.
맨부커 수상 작가 조지 손더스는 시러큐스 대학에서 25년간 창작 강의를 해왔다. 그의 수업에선 톨스토이, 고골, 체호프 같은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을 읽고 이들에게서 무엇을 훔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여기서, 배 아픈 소식과 기쁜 소식이 있다. 먼저 배 아픈 소식은 이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이가 오직 1년에 6명 선발되는 젊은 작가들 뿐이라는 것이다. 소수 정예의 작가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러시아 문학을 맛보고 즐긴다... 솔직히 있는 줄도 몰랐던 수업이지만 설명을 들은 이상 부러워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영미문학계의 천재"라는 찬사를 듣는 조지 손더스가 여러 작품들을 어떻게 해부하여 취할지 궁금한 건 당연하다. 반전의 기쁜 소식은 이 수업의 내용이 25년 만에 갈무리되어 우리에게도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아마도 그가 실제로 강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수업에서 우리는 러시아 단편 7편의 전문을 함께 읽는다. 손더스는 우리에게 이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읽도록 하기도 하고 한 장, 두 장씩 끊으며 그때 그때 필요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고골의 <코>, 체호프의 <구스베리>,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 등을 그와 함께 읽으며 우리는 러시아 거장들이 쓰는 방식에 대해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오직 작가만을 위한 수업은 아니다. 책의 부제에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이라 표현했듯 쓰기 뿐 아니라 더 잘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을 내용이다. 대문호들에게서 훔칠 것을 찾기 위해선 날카로운 해부가 우선이니, 당연한 일이다. 총 600 페이지가 넘어가는 두툼한 책이지만 미리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명강의들이 가진 미덕, 매끈한 흐름과 촘촘한 재미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 허인회는 젊고 잘생긴 남성 수영 강사에게 "남편이 바람을 피워요."라고 고백한다.
- 대학에서 제적을 당한 엄지민은 불치병에 걸린 후 실종된 엄마 염보라의 행방에 의구심을 품는다.
- 염지민은 엄마 염보라를 찾기 위해 등록한 수영장에서 엄마의 불륜남인 오진홍의 아내, 허인회와 마주친다.
- 허인회는 수영강사에게 줄 '떡값'을 강제로 받아내기 위해 찾아간 염지민의 집에서 자신이 납치했던 소녀인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370쪽 이상의 두툼한 소설의 1/6지점, 60쪽까지 전개되는 사건이 이 정도 분량이다. 어지간한 소설이면 한 권을 마무리하는데 충분할 갈등이 연속으로 질주하며 '대단히 괴이하고 소름끼치는'(이경미 감독) 사랑 이야기가 곁가지로 뻗어 나간다. 수상한 과거를 지닌 젊은 수영강사가 낙후된 수영장을 붙박이로 다니는 신경질적인 나이 든 여자들에게 수영 강습을 하는데, 이 정체 모를 여자들을 태운 승합차가 교회의 문을 열면, 이야기는 다른 장면으로 접어든다.
사랑하지 않으면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나를 위해서 죽어준다면 그를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그악스러움을 보면 "미쳤구나. 사랑에 완전히 돌아버렸어."(273쪽) 탄식이 나온다. '호떡처럼 불타는 얼굴'로 묘사되는 사랑, 이 뛰는 심장이 사랑 때문인지, 정신병 재발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을 이두온은 쓴다. 끼익끼익, 덜컹대며 열리는 녹슨 수영장 문처럼 문장 곳곳에서 파열음이 난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멈추기는 쉽지 않다. "내가 이 여자들과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건가."(325쪽) 탄식하며 이 수영장에 몸을 던질 밖에. <시스터>로 미야베 미유키의 주목을, <타오르는 마음>으로 정유정의 주목을 받은 작가 이두온의 장편소설.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카페, 지하철 역사 등에서 성범죄 가해자 변호 광고를 심심찮게 마주친다. 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은 성범죄 가해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 반성문, 탄원서, 무고죄와 명예훼손으로 피해자 역고소... 성범죄 사건 기사들만 봐도 이 단어들은 단계별로 착실하게 나타난다. 이런 구조는 어떻게 생겼으며 어째서 생겨나게 되었을까. 젠더폭력연구소 소장 김보화는 피해자와 활동가, 변호사의 인터뷰를 통해 성범죄 가해자 지원 산업의 실태를 책에 담았다.
성범죄 전담 로펌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 배경부터 헌혈, 정신과 치료, 봉사활동, 여성운동단체 후원금 납부 등 납득할 수 없는 감형 사유와 피해자 역고소 전략까지, 책은 성범죄 재판의 총체적인 비합리를 진단한다. 법시장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합리적 소비자가 되는 동안 피해자는 2,3차 가해를 버텨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망가진 구조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가 져야 하는 꼴이다. 시장 논리가 잠식한 법에서 공공성과 윤리를 살려내야 한다. 책은 일본과 독일 등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 등을 예시로 들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 설정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걸려 넘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짚고 있는 책이다. 미투 운동 등의 힘을 빌려 겨우 짜낸 피해자들의 용기가 법 앞에서 좌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제도의 변화가 절실하다. 피해자 입장의 절절한 법정 싸움을 기록한 책,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와 함께 읽으면 성범죄 재판의 어그러진 현실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혹(不惑).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마흔이 되어 세상일에 미혹되지 아니하였다고 한 데서 비롯하여, 40대를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야 할, 정신적으로는 원숙해지고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며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와 안정이 찾아와야 할 시기. 하지만 정작 40대인 내 삶은 그렇지 못하다. 마흔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 흔들리고 있다. 마흔이 되도록 뭔가 이루어낸 것 하나 없다는 불안함, 초조함에 잘못 살아온 것 아닌가 하는 마음마저 든다.
12년 전 <언니의 독설>에서 서른의 불안과 두려움을 다독였던 김미경이 다시 마흔에게 말한다. 당신의 마흔은 잘못이 없다고, 당신의 마흔은 매일 나아지는 중이라고, 100세 시대에 마흔은 아직 인생의 전반기라고. 세상이 달라졌고, 마흔도 이제 다시 정의 내려야 할 때다. 이 책은 뭔가를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마흔이 되도록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4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발 앞서 치열한 40대를 살아낸 김미경이 제안하는 성장 매뉴얼이다.
<종의 기원>으로 대장정의 막을 올린 '드디어 다윈' 시리즈가 우리 시대 다윈의 후학들을 향한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이 '다윈의 사도'를 자처하는 세계 12인의 석학들을 만나 나눈 대담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왜 다윈이 중요한가?"라는 공통 질문에 대한 각양각색의 대답이 특히 흥미롭다.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인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했기 때문이라 답하고,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은 "다윈은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 첫 번째 사람"이라고 답한다.
생물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이제껏 사람이 생각해 낸 모든 아이디어 중 최고"이며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 하나의 과학적 아이디어"라고 대답한다. <개미와 공작>의 저자 헬레나 크로닌은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어떤 지점에서는 이론을 수정해야 하지만 다윈은 근본 이론을 창조했기 때문"이라 말하고,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다윈에 의해 무생물의 세계와 생물의 세계가 하나로 연결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왜 다윈이 중요한가?"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과 상통한다.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2023년의 우리가 여전히 다윈을 읽어야 할 이유다. 각 잡힌 자세를 풀고 소파에 편히 등을 기대고 앉아 다윈 독서를 시작해보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장편소설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그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다. 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읽히는 스토리 중간중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짧은 산문이 수록되어 있어, 한 권으로 다른 결의 두 종류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층간 소음에 민감한 ‘나’는 어쩔 수 없이 15층짜리 아파트의 14층으로 이사한다. 어느 날, 위층에 누가 새로 이사오면서 ‘나’의 고통은 시작된다. 콩콩콩콩. 쿵. 소음이 한 달 넘어도 계속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위층으로 뛰쳐 올라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절대.’
황당한 안내문을 써 붙여 놓은 위층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겨보고 싶어진 ‘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너무 그리워 간절하게 찾아 헤매던 추억의 냉면을 위층 사람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음식점에서 알게 된 키 큰 여성, 용한 점집 보살 등, 개성 강한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미스터리 가득하면서 담백한 유머가 더해져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든다.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소심하지만, 소심하기 때문에 사람, 관계, 삶의 행복에 대해 진중하게 파고들 수 있는 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책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최근 살고 싶은 동네 ‘현수동’에 관한 흥미로운 에세이를 펴낸 장강명 작가가 이번에는 본업에 관한 에세이로 다시 독자 앞에 섰다. 작가는 글만 쓰고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이 쉽지 않지만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신할수록 더 좋아지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가라는 직업, 소설가가 속한 업계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의 세계가 펼쳐진다. 소설가의 루틴, 창작과 돈벌이의 기쁨과 슬픔 같은 이야기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쓰여 있다. 특히, 소설가가 직업임을 강조하며, 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좀 더 깊고 세세하게 다룬다. 계약, 인세, 강연료 등등, 다년간의 숱한 경험에서 나온 날 것의 이야기는 물론, 출판계의 현실까지. 한 권의 소설이 탄생해 독자들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작업과 오랜 고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많은 손이 보태지는지, 작가이자 직업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듣는다. 소설가의 생활과 작품의 탄생 배경이 궁금한 독자와,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 모두에게 유의미한 책이 될 것이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천재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자라온 피비. 서울에서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피비의 어머니는 낯선 땅에서 삶을 빼앗겼다고 느낀다. "박탈당한 위대한 삶을 대신 살게 될 딸을 위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어머니의 죽음은 피비에게 거대한 죄책감을 안기고,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자각까지 더해지자 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피비는 그저 충동적인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때 전도자였으나 어떤 계기로 신앙을 상실한 윌 켄달은 자신의 것과 닮은 피비의 상처를 알아본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보듬으려는 윌에게 피비는 냉소를 돌려줄 뿐이다. "이민자들은 심리 상담을 믿지 않아. 내가 그런 걸 한다고 하면 주위 한국인들이 의지박약이라고 볼 거야." 한국을 모르고 "백인 같은 동양 여자"라는 말을 듣지만 미국 문화에 뿌리내릴 수 없고, 고통 속에서도 상담 센터를 찾아갈 수 없는 피비. 그런 그에게 존 릴이 창시한 수상한 신흥종교가 그림자를 드리운다.
"권오경의 소설은 곧고 천천히 타오르는 도화선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폭발할 대상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침없는 불꽃을 따라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비엣 타인 응우옌이 추천했고, "문학계는 몇 달 동안 <인센디어리스>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이 얇고 강렬한 소설은 출간 전 과대광고에 부응하는 희귀한 책이다."라고 LA타임스가 상찬한 작품. 드라마 '파친코' 의 코고나다 감독 연출로 드라마화가 확정되었고, BBC와 NPR을 비롯한 영미권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 뉴욕타임스가 '주목받는 작가'로 선정한 권오경의 데뷔작.
2006년 봄,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폭등했다. 누구나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주택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구매자들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도 주택 가격이 오르면 상쇄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고, 시장은 그런 구매자들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튀르키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성장했고, 미국에서 활동하던 한 경제학자가 부동산 거품 이면의 거대한 금융 위기에 대해 경고했다. 하지만 카산드라 이래로, 불길한 예언은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그를 ‘닥터 둠’이라 부르며 조롱했고, 시간이 지나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맞이하고 나서야 그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기억은 쉽게 희미해진다. 2008년 금융 위기를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이제 향후 20년을 뒤흔들 ‘초거대 위협’에 대해 다시 경고한다. 루비니 교수는 장기간 누적되어온 부채 축적, 저금리 정책과 금융 위기, AI와 업무 자동화, 탈세계화, 강대국 간의 지정학적 충돌, 인플레이션과 스테그플레이션, 통화 붕괴, 소득 불평등과 포퓰리즘, 세계적 유행병과 기후 위기, 인구통계학적 시한폭탄 등 동시에 발생하는 10개의 초거대 위협은 개개의 문제들이 서로를 해결하는 데 방해로 작용하며 위기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엄청난 행운과 전례 없는 경제 성장 그리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 세계적 협력이 없다면 행복한 결말은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또다시 받아 든 불길한 예언 앞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면 ‘초거대 위협’의 실체를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때다.
힘든 일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직업이 간호사다. 힘듦이 공인된 직업의 억울한 점은 사람들이 이들의 개별적 고통을 더 이상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당신의 직업이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는 것과 당신이 날마다 겪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많이 다르다. 전자는 멀찍이 선 구경꾼에 그치지만 후자는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낼 동료로서의 가능성을 품는다.
저자 김수련은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서 7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책은 그가 간호사로 살아낸 시간의 이야기와 그 시절 본 풍경을 담고 있다. '힘든 직업'이라는 가뿐한 단어가 담지 못하는 결결이 날카롭고 낯선 고통이 생생하다. 문장들이 선명한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왠지 어지럽고 머릿속이 흐릿하다. 저자의 고통이 전염되는 탓이다.
그가 살아낸 삶을 지나, 병원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들을 지나,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썼다는 3장으로 향한다. 한국의 간호사가 객관적으로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그 환경이 어떤 파멸적인 상황을 만드는지,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숙성된 분노가 묻은 단단한 문장들이 절절히 이어진다. 1,2장을 거쳐 3장의 목소리까지 들은 우리는 이제 우리가 이 고통을 왜 들여다봐야만 하는지를 안다.
초월 시리즈로 독자를 만나는 김희선의 소설집. 사회파 SF라고 부를 법한 이 이야기들은 이런 방식으로 시공을 초월한다.
- 시계방 '천금당'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실종된 후, 아들의 의뢰를 받은 사설탐정은 시간을 초월한 그를 찾기 위해 지금은 서점이 된 그곳을 다시 찾는다. (<공간서점>)
- 스웨덴인 군나르 순드베리는 자신이 전생에 신라의 승려였음을 깨닫고, '미타찰'(제망매가의 그 미타찰彌陀刹이다)로 가기 위해 마인드 업로딩을 했다. 그리고 그를 따라 마인드 업로딩을 하는 초월자들. (<달을 멈추다>)
- 시립도서관 자서전 쓰기 강좌에서 만난 '노인' 진수 김 베르너는 자신이 1700년대에 실존했던 스위스 시계 명장에게 자동 인형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설 전반에 태엽소리가 흐르는데. (<가깝게 우리는>)
초월을 상상하는 이유는 월담하듯 넘어서고 싶은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루탄에 위협을 당하는 학생, 진실을 불태우는 종교 재판소, 도래한 핵 전쟁의 위협, 도시락을 먹을 땐 앉아서 먹고 싶다고 감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 싼 임금을 받고도 독일의 광산 깊은 곳에서 숨이 차도록 일하는 한국인들.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소설적 장치가 필요하다. 김희선은 SF, 판타지, 괴담 등의 요소를 능숙하게 버무려 질문한다. 모든 버전이 각각의 진실을 품은 이야기, 여기에 있을 수도 있고 저기에 있을 수도 있는(43쪽) 가능성을 상상하는 이야기와 함께 나 역시 내 등 뒤의 태엽을 의심해보았다. 진실은 '미타찰'에 있다.
시작은 전기차가 먼저였다. 1864년 독일의 니콜라우스 오토가 최초의 내연기관을 발명하기 30년 전,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로버트 앤더슨은 원유로 발전하는 1차 전지를 활용한 ‘원유전기마차’를 발명하였다. 상용화가 먼저 시작된 것도 전기차 였는데, 1881년 파리 국제전기박람회에서 구스타프 트루베가 삼륜 전기자동차를 내놓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의 한계로 전기차는 가격, 충전 시간, 무게, 주행거리 등의 문제를 빠르게 개선하지 못했고, 그 사이 1908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대량 생산 방식의 도입, 1920년대 텍사스 유전 개발 등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내연기관차와의 경쟁에서 패하고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었다.
전기차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전기차가 역사에서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21세기에 들어서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차량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배터리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전도사, ‘밧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은 단언한다. 혁신의 시대를 연 것은 전기차 기업이 전기차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배터리 업체들이 배터리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덕분이라고. 그리고 바로 그 배터리 기술의 최첨단에 K 배터리 기업들, 한국 기업들이 있다고. IR 전문가로 산업계와 시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한국 배터리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던 저자는, 이 책에서 K 배터리의 성장에 동업자로 참여하여 그 성장의 열매를 같이 누릴 것을 제안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더라도, 세계는 탈탄소 사회를 향해 가려고 하고 있고 그 중심에 이차 전지, 배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시작으로, 여러 권의 에세이, 인터뷰집, 서평집, 그리고 소설 <가녀장의 시대>로 글쓰기의 세계를 확장한 이슬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안하고 담백한 문장과 감각적인 글쓰기를 통해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받아온 그가 첫 칼럼집을 냈다. 이번에는 독자의 삶에 유연히 스며드는 그만의 필치는 유지하면서 기후.환경.사회.정치를 향한 또렷한 목소리를 더했다.
작가는 얼굴을 가진 우리는 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모두 운명공동체라고 말한다. '날씨의 지배를 받는 지구 생명체' 중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해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얼굴은 노동자가 되었다가 장애인이 되었다가 이주민이 되었다가 소와 돼지와 닭이 된다. 소외되고 착취당하고 차별받는 얼굴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세심하게 고른 언어를 쌓아 한 권에 담아낸다. 그리고, 타인의 얼굴이 나의 얼굴이 될 수도 있음을, 모두 연결된 존재임을 힘주어 말한다. 이 작은 한 권의 책을 채우는 "생을 더 자세히 사랑하겠다는 다짐"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어진다.
미술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아트 메신저' 이소영의 신작. 이전에 출간한 <출근길 명화 한점> 등 세 권의 책에서 다룬 작품들을 1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다시 들여다보며 지금의 눈으로 그림과 인생 사이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
이소영은 자신의 '인생 화가'를 이런 기준으로 선정한다고 한다.
1. 늘 봐도 시선이 오래 머무는 그림
2. 시간이 흘러도 꾸준히 인정하게 되는 화가
3. 살아가면서 더 이해하고 싶고 궁금한 화가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우선 그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림과 나 사이의 거리도 함께 보낸 시간 덕분에 다정해진다. 아침을 밝히는 그림을 엮은 첫 장과, 숨을 고르는 해질녘에 함께 볼 그림을 엮은 두번째 장과 함께 한 계절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큰 판형으로 선명하게 가득 실린 그림이 우리 모두의 인생 그림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비 오는 파리의 서늘함을 그림으로 옮긴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152쪽)과 함께 보내는 산책. 북유럽 사람들처럼 '피카'(커피)를 즐기는 여유를 그린 화가, 화니 브레이트의 <여름날의 목가>(367쪽)와 함께 바다를 보는 일. 고흐의 '카페테라스'의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그 순간 인생이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다.
"10년간 많은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번역해 왔지만 마지막에 이렇게까지 소름이 돋는 작품은 없었다." 김은모 번역가의 묵직한 추천사를 비롯해, 노리즈키 린타로가 "본격 미스터리가 살아남기 위한 '단 한 가지 멋진 방법'이 여기 있다."라고 선언하며,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이 충격은 평생 간다."고 얼얼한 찬사를 남기며 함께 읽은 작품. 2022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23년 '본격미스터리 10' 2위에 선정되며 일본 추리소설계를 뒤흔든 <방주>가 국내에 상륙했다.
소설은 대학 시절 등산 동아리 친구들이 나가사키의 산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산속을 걷던 이들은 맨홀 같은 입구로 연결된 거대한 지하 건축물을 발견한다. 화물선을 연상시키는 3층 구조에 '방주'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모든 방에 번호가 매겨진 수상한 장소다. 모처럼의 폐허 탐험이라며 잔뜩 신난 친구들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지하 3층에 이미 물이 가득 들어차있던 것은 불길한 복선이었을까. 모두 잠든 새벽, 산사태로 물이 유입되면서 전원이 수몰 위기에 처한 가운데 의문의 살인이 발생한다. 이들은 죄어오는 공포를 딛고 죽음의 방주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까. 그 결말은 상상 너머에 있을 것이다.
고도의 과학기술이 인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추악함을 거울처럼 반사하며 내보일 때. 작가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질문을 던진다. 사망한 자사 수석 엔지니어의 뇌를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계속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려던 회사, 전쟁에 투입되는 조종사의 트라우마를 없애고 더욱 '문명화'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코딩된 로봇이 저지른 일, 미래의 범죄를 미리 예측하는 능력이 가져온 것들.
우리는 무엇을 향하는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꿈을 그려왔다.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부터 근미래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11편의 소설. 모두가 컴퓨터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혈안이 된 시대 속에서 작가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시간과 공간, 언어, 문화를 넘어 쓰는 이와 읽는 이가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인간다워진다고, 저는 느낍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짓는 종(種)이니까요."
2022년 말 출시되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챗GPT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구글 CEO가 ‘적색경보’를 언급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했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기존의 검색엔진을 대화형 AI가 대체할 것이며, 반복적인 작업이 필요한 대부분의 인간 업무를 AI가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등 혁신적인 인공지능 기술이 야기할 미래의 다양한 변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러한 가운데 KAIST 교수이자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가 기계와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
저자가 챗GPT와 나눈 열두 개의 대화는 챗GPT의 작동 원리로부터 시작하여 사랑이나 정의, 죽음, 신 등 사람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이었다. 엄격한 윤리 기준 아래에서 두루뭉술하고 애매하게 이야기하도록 제한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챗GPT를 상대로, 저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부족한 부분을 찌르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그 결과 챗GPT는 온갖 자료를 바탕으로 폭넓은 답변을 이어 나간다. 대화를 마친 저자는 챗GPT를 “인류의 생각과 문장을 반사하는 존재적 메아리이자 거울”이라고 말한다. 챗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3,000억 개가 넘는 문장 토큰과 그들 간의 확률적 상호관계를 학습한 대화형 인공지능으로, 질문에 포함된 단어들과 확률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을 생성해 낼 뿐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우리는 이제 약간의 노력만으로 인류가 지금껏 인터넷에 모아온 온갖 문장과 생각의 보물창고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다 파악하고 있으면서, 원하는 것을 꺼내다 주는 기계 비서를 대동한 채 말이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발전한 미래에 인간의 핵심적인 능력은 ‘질문하는 능력’에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미치오 슈스케가 일명 '독자 체험형 소설'로 돌아왔다. 독자가 6개의 장을 어느 순서로 읽을지 직접 선택하도록 하여 총 720가지 '경우의 수'의 줄거리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이런 구성을 고안해 내기까지는 작가의 결연한 각오가 있었다. "소설을 읽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평범한 소설로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넷플릭스 같은 라이벌과 싸우려면 소설이 더 재미있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작가는 무심코 1장부터 순서대로 읽는 독자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여, 장과 장의 물리적 연결을 끊기 위해 장마다 위아래를 거꾸로 인쇄하도록 했다. 제목 <N>에도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N이라는 의미와 함께 N의 수만큼의 인생과 그에 대응하는 이야기가 있음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에 작가의 당부를 꼭 한번 들여다보시길 바란다. “한 번 읽고, 잊어버렸을 무렵에 다른 순서로 읽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읽을 때마다 틀림없이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어떤 식으로 읽든지 책값은 변하지 않는데 같은 금액으로 몇 번이나 즐길 수 있다면, 저자로서는 그보다 기쁜 일이 없을 듯합니다.”
정지음 작가의 첫 책 <젊은 ADHD의 슬픔>을 접한 독자라면, 위트 넘치게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찬란한 실패의 목록들에 관한 에세이를 담은 이번 신작에서 다시 착착 붙는 글맛을 발산할 뿐 아니라, 몇 번을 실패해도 뚝딱여도 절망하거나 넘어지는 법 없이 오똑 일어서는 작가다움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작가에게 실패란 것은 어둡고 축축한 기운을 품은 잿빛이 아니라, 모두 다른 빛을 가진 형형색색의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빨개졌다가 까매졌다가 노래졌다가 하얗게도 변하는, 일상과 일터에서의 여러 실수 혹은 실패의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준다. ‘결혼할 바엔 도토리를 줍겠습니다’ ‘계단에서 구르며 괜찮음을 배웠다’ ‘동물농장에서의 혼술’ 등 심상치 않은 목차의 글들이 요절복통하게 만드는데, 웃다가도 마음을 뭉근하게 잡아 끄는 묵직한 문장이 곳곳에 들어 차 있어 밑줄을 긋고, 모서리를 접게 만든다. 실패를 떳떳하게 기록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실패하지 않는 법이 아닌, 실패해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기분 좋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