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에 본 뽀득뽀득 눈사람이 마음에 남은 아이는 학교가 파한 뒤 눈사람을 찾아간다. 손발을 붙여주고 눈과 입을 그려주자 '우아' 눈아이가 인사한다. 우아, 안녕. 눈빵을 나누어 먹고 눈썰매를 타면서 아이와 눈아이는 금방 친구가 된다. 눈을 만진 아이는 손이 시렵고 아이의 손을 잡은 눈아이는 손이 녹지만, 장갑을 나눠 끼면 괜찮다. 그리고 겨우내 점점 자라던 눈아이는 봄이 오자 따스한 햇볕 아래서 점점 작아지고 더러워졌다. "내가 더러운 물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야?" 눈아이가 묻는다.
<수박 수영장>과 <할머니의 여름 휴가>로 시원하고 다정한 여름을 선물했던 안녕달 작가가 따스하고 포근한 겨울 그림책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서툴고 어리고 다르지만, 다정한 인사와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눈의 계절 끝에서 아이는 한 뼘 더 자라고, 작아지고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마음을 배운다.
'워라밸'이 큰 화두로 떠오른 시대. 막상 일과 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균형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직업인이자 생활인 '멋언니' 황선우 작가가 나섰다.
잡지 에디터로서 조직생활과 프리랜서의 경험을 모두 갖춘 그는 이 책에서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유연하게 들려준다. 20년 이상 회사 안팎으로 겪은 일의 기쁨과 슬픔, 보람과 회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은 밝은 불빛이 되어주고, 소중히 가꿔온 삶의 이야기들은 단단한 힘이 되어준다. 곁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든든히 끌어주고 밀어주는 이런 '언니'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워런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유명한 벤저민 그레이엄은 주식 시장을 미스터 마켓이라 불렀다. 장기적인 시장 예측은 가능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얽힌 주식 시장에서 내일의 주가를 맞힌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이 아무리 우량주고 대장주여도 말이다. 그레이엄은 결국, 주식은 장기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그러한 말을 수없이 들어 잘 알고 있음에도 일희일비를 멈출 수 없다. 요즘 같은 시장 분위기라면 그게 더 인간적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오히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1년을 전망하는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유례없는 상승 회복장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 큰 기회만을 바라봤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주식 시장에서 이제 우리는 현실 앞에 놓인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그 안에서 꽃피울 또 다른 기회를 살펴보아야 한다. 1등 애널리스트 이한영을 위시하여 한데 모인 이 쟁쟁한 다섯 명의 냉철한 분석과 전망은 지난 투자를 반성하고 새로이 공부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다잡아 준다. 계좌는 차가울지언정 마음만은 한결 든든하고 따뜻하다.
<천 개의 아침>,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의 전미도서상 수상 시선집. 김연수 소설에 인용되기도 했던 시 <기러기>의 문장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163쪽)를 읽으며 맑고 차가운 초겨울 아침을 맞는다. 온종일 늪지대와 폭포, 들판과 호수를 들여다보고 위대한 자연의 말을 옮겨적은 시. 메리올리버의 시는 작약에서, 쇠고둥에서, 물뱀에서, 웃음물총새에서 시작된다. 민승남이 번역한 섬세한 한국어에 이한구의 사진을 더해 생의 기쁨을 전한다.
알라딘 상품페이지에 연결된 김연수, 요조, 김소연의 시 낭송 영상도 함께 보면서 메리 올리버를 경험하길 권한다. 눈으로만 읽기 아쉬워 천성적으로 명랑한 나의 엄마에게 메리 올리버의 <아침의 시>를 읽어 주었다. "당신이 천성적으로 / 행복한 사람이라면 / 그 부드러운 물길을 따라 몇 시간씩 // 헤엄칠 거고, 당신의 상상력은/어디에나 내려 앉겠지."(158~159쪽)를 읽는 동안 시간은 정직하게 1초, 1초 흘렀다. 메리 올리버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할 때처럼, 1초씩, 종일. 지금은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메리 올리버 되기'를 경험하기 좋은 맑은 계절.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봄>, 107쪽)에 대한 답이 그의 시 안에 있다.
코로나는 세계가 운명 공동체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켰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에도 수록된 '빛과 어둠'(200쪽)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지구의 밤을 저속 촬영한 이 사진에는 낮처럼 환한 북미, 유럽, 한중일과 어두컴컴한 남미, 아프리카, 북한 등 오늘날 지구촌이 마주한 격차와 불평등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방대한 지도를 통해 우리는 세계 곳곳의 속사정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책의 원서 제목처럼 우리에게 세계는 아직 미지의 땅 '테라 인코그니타'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으로 100년이라니,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의 일처럼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내년의 경제가 어떻게 될지, 어떤 먹거리에 투자해야 할지 막막한 우리 기업과 개인들에게는 말이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지구촌에 대한 다양한 사진과 그래픽을 보는 즐거움을 넘어, 우리는 그 속에서 다가올 세상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구를 테라 인코그니타가 아닌 테라 코그니타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도 속에 그 답이 있다.
관계란 단어와 단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여자들의 관계는 오랜 역사 동안 한두 개의 단어로 손쉽게 정의되어 왔다. 적이나 편 같은 것. 그리고 많은 다른 여자들처럼 나도 이것이 거짓말인 줄은 진즉에 깨달았다. 여중, 여고, 여대 사회는 관계의 거미줄로 빽빽했고 그중 어느 것도 단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숨 막힐 정도로 벅찬 관계들 속에서 멋짐, 슬픔, 우울, 억울, 충만, 기쁨,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매일매일 마주하며 인생을 채워왔다. 이 생생한 삶의 체험 앞에서 다른 이가 굳이 정의하려 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진실은 무력했다.
여자들의 관계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야 적극적으로 조명 받기 시작하지만. 권김현영은 이번 책에서 대중문화에서 다룬 여자들의 사회를 탐구한다. 영화, 소설, 드라마,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거나 더 사랑받았어야 마땅했던 작품들을 '여자들의 사회'라는 분석틀로 흥미롭게 재해석한다. '윤희에게', '청춘시대', '고양이를 부탁해',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의 작품들에 등장한 인물들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행간마다 내가 겪어온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가 함께 피어난다. 캐릭터들의 얼굴과 내 삶에 발을 들였던 인물들을 나란히 떠올리면 왜 자꾸 뭉클해질까. 즐거운 예측 하나 하자면, 이 책을 읽고 모인 여자들의 북클럽에서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가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와해될 위기에 처한 엉성한 독서모임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건넨 말. "그만두지 않고 엉성하게 같이했으면 좋겠어요."(<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주세요>, 175쪽)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이 문장을 잘못 읽었다. '같이 했으면'이라고 '하다'에 중점을 두고 읽었는데, 다시 보니 '같이'했으면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하다'라는 구체적인 동작보다 '같이'라는 상태에 더 집중하는 소설이 도착했다. 임솔아의 두번째 소설집이 하는 이야기를 이 오독과 함께 말하고 싶다.
소설 <최선의 삶>과 시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건너는 사이, 임솔아 작가는 적극적으로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이들의 곁에 섰고, <눈과 사람과 눈사람>이라는 첫 소설집을 통해 싸움 이후를 견디는 이들에게 "이곳에 녹아들지 않아도 돼." 하고 다정한 말을 건넸다. 2016년의 고발 이후에도 삶과 문학과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속된다. 평생 처음 자신의 책상을 가진 <초파리 돌보기> 속 원영에게 "이원영은 다 나았고, 오래오래 행복하다."(69쪽)는 문장을 선사하는 일처럼, <중요한 요소> 속, 촬영을 앞둔 이들이 "잠깐만 그럴듯하게 보이면 돼요."(81쪽)라고 서로 다독이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작은 당분을 허락하며 계속 해나갈 순 없을까. 임솔아의 소설은 '작고 오랜 시도'를 계속하며 묻는다. 단호함과 온기가 동시에 가능할 수도 있다. 임솔아의 소설이 그렇다.
소아 난치병 환자로 병동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투병 중인 성동혁 시인은 스스로 '많은 불가능' 속에서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한 번 기운을 내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쉬어야 하는 그이기에 오랜 기간 동안 긴 호흡으로 산문을 다듬고 다듬어 드디어 독자들에게 이 책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홀로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신의 존재를 감각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 몰래 흘린 눈물을 타인을 통해 전해 듣고 그들의 슬픔을 가늠한다. 마스크 쓰고 긴장 속에 다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팬데믹 시대를 가까스로 견디고 있을 수많은 이들의 건강을 기원한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떠난 아이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가만히 시로 옮겨 적는다. 시인은 그의 첫 산문집 <뉘앙스>에 감각하고 마주하고 경험해온 그 모든 것들을 시 같은 산문으로 단정히 담아낸다. 아픔과 불안과 슬픔 가운데서도 삶의 작고 희귀한 것들을 살피는 다정함이 모든 문장에 아름답게 배어 있다.
맑고 평온한 바다 위, 폭신한 머랭 쿠키를 닮은 섬. 시즈쿠는 아름다운 섬에 자리한 호스피스 '라이온의 집'을 향한다. 갑작스런 말기 암 판정과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 버거웠던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저 "따듯한 곳에서 매일 바다를 보며 남은 날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곳에 왔다.
지켜야 할 규칙을 묻는 시즈쿠에게 돌아온 유일한 대답은 "자유롭게 시간 보내기". 꿈꿔왔던 풍경과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시즈쿠는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게다가 '라이온의 집'엔 아주 특별한 간식 시간이 있다. 생이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더 먹고 싶은 간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는 시간. '간식'에 어린 저마다의 반짝이는 추억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서로의 하루하루를 비춰준다. 정세랑 작가가 "우리가 잃은, 사랑했던 사람들이 빛이 된다는 것을 언제나 믿고 싶다."라고 추천하며 함께 읽은 책.
호남 차별의 문제는 낡았는가. 자주 언급되었지만 적극적으로 해결된 적 없는 문제는 낡은 것이 아니라 굳은 것이다. 호남 차별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굳었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기에 오히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 책은 호남이 안고 있는 다층 다면적 문제를 "새삼스럽게" 하나하나 짚어 살핀다.
'전라디언', '홍어' 등 호남 지역인에 대한 멸칭은 호남인을 향한 인종주의적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 차별의 구조는 정치, 경제적 문제가 꼬여 있기에 설명하기가 간단치 않다. 조귀동 저자는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그가 성공적으로 해낸 작업, 실증적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번에도 한 겹 한 겹의 진실을 풀어낸다. 저발전, 불평등, 지역 거버넌스, 정치적 사건 등 그가 분석한 호남 차별의 문제는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혔다.
이 입체적 차별의 구조를 밝혀내며 책이 향하는 결론은 호남 내부에서 스스로 끌어올린 담론을 통한 '진짜 지역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문에서 저자가 지금 호남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결국 '한국에서 지방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논점을 다루기 위함"이라 밝힌 문장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호남 문제의 해결이 없이는 점점 커지는 지방 문제에 대한 접근도 요원할 것이다.
영화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은 조너선 프라이스는 자신이 침묵했던 어떤 시기에 대해 회상하며 눈을 감는다. "시체들을 실은 비행기는 바다로 갔지요 / 군인들은 시체를 철로 된 레일 토막에 묶은 뒤 / 천으로 싸서 바다에 던졌어요" (<묻다> 중) 나희덕의 시를 읽는 동안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을 묘사한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렸나. 체르노빌에, 제주에, 바다 깊은 곳에. 폭력을 기록하는 3부의 제목은 이러하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2020년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나희덕의 시는 절멸을 상상한다.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 봄부터 소쩍새가 아니라 / 7에서 13리터의 물이 필요하단다"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중) 시의 숫자를 통해 장미가 남긴 기나긴 탄소 발자국을 가늠하게 하는 시. 왜 우리는 지금 나희덕의 시를 읽을까. 표제작 <가능주의자>에 실마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4부는 '달리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려면'이라는 제목과 함께 묶여 있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긴 질문이 남을 것이다. 그 질문의 실마리가 될, 이 시를 엮은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
그러니까, 서울의 어딘가에 원하는 책을 찾아주고 그 대가로 책에 얽힌 사연을 받는 헌책방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모은 사연들이 바로 이 책에 들어있고. 이건 반칙이다. 이 책을 열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책을 연 독자들은 책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목과 배경만을 듣고 느꼈던 묘한 분위기, 그것이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책장 사이사이에 숨어있다. 자취를 감춘 책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의 사연은 역시나 예삿일이 아니어서 읽는 순간순간 "이게 실화라니" 읊조리게 만든다. 역시 현실엔 소설보다 더한 판타지가 있다.
나는 보이는 현상 너머의 세계를 믿는 편이다. 특히 묵은 이야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힘이 깃든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책이 삶의 특정한 시기에 자꾸 따라붙는 이상한 경험을 해본 이라면, 어떤 책이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나를 선택한 것 같다는 의심을 해본 이라면 이 책은 올겨울의 하룻밤을 즐겁게 채워줄 것이다.
'버블인가 아닌가'는 올 한 해 가장 큰 화두임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상승장 속에서 투자자들은 언젠간 이 버블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이번엔 다르다'며 희망을 이어간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위기 상황들을 토대로 버블이 붕괴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도 이번엔 다르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고수한다. 물론 반대 편의 목소리도 거세다. 그들 역시 이번엔 그 붕괴의 규모가 다를 거라며 연일 경고에 나서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든 양쪽 모두 이번엔 다르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시중에 풀린 엄청난 유동성이다.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돈의 홍수를 겪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엔 6년 동안 4조 달러가 뿌려졌는데 팬데믹 이후 단 3개월 동안 3조 달러가 뿌려졌다. 전 세계 통화량은 86조 달러로 금융 위기 때보다 두 배나 늘어났다. 어마어마하게 풀린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 돈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될지 우리는 궁금하다. KBS 다큐팀의 명쾌한 정리, 오건영, 박종훈, 제러미 리프킨 등 국내외 최고의 전문가 14인의 진단을 통해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는 자산 시장의 앞날을 전망하고 그 대응책을 고민해 보자. 이번엔 정말 다를 것인가?
2022년이 바짝 다가왔다. 2022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소개한다. 소설 부문은 2021년 가을 방송된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의 원작자이기도 한 정소현이 수상했다. 자신이 절실히 바라던 안정된 삶을 기어이 성취한 후, 불현듯 내 삶을 침입한 '너'를 향한, 배우 고현정의 신경증적인 연기를 상상하며 수상작인 <그때 그 마음>속 두 여성과 자선작인 <어제의 일들>속 두 여성의 관계를 본다. 가족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학대당한 두 여성, 순정과 혜성은 23년 만에 재회하지만 서로의 처지가 달라진 것처럼 서로의 마음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가족에게 빼앗기는 대신 '아름답고 쓸모 없는' 것을 사기 위해 돈을 써버리려는 순정과 더는 가족을 포함한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고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려는 혜성이 '그때 그 마음'을 더이상 외면하지 못하는 순간. 정소현의 소설을 차마 눈감지 못하게, 그 순간을 목격하게 한다.
김멜라, 손보미, 안보윤, 위수정, 이장욱, 임솔아, 정지돈, 조해진, 한정현의 소설이 수상후보작으로 선정되어 함께 실렸다. 젠더와 역사를 넘나드는 이들의 신작과 함께 2021년 우리 문학을 쓰는 소설가들이 어떤 시도를 해왔는지를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시문학상을 수상한 이제니의 ‘시적’으로 ‘시답게’ 빛나는 시 <발견되는 춤으로부터>도 함께 출간되었다.
2021년에 듣는 열사라는 단어에서는 이질감이 든다. 온도가 다른 세계에서 온 말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요철이 많다 해도 현재의 세계는 어느 정도 매끄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야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 변방은 아직도 열사의 등장이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이 일상이다. 이 책은 장애해방열사들의 치열했던 삶과 투쟁을 낱낱이 복기하여,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외친다.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 책은 여덟 명의 열사가 삶에서 마주하고 맞섰던 차별과 모순, 그리고 이들이 쌓은 투쟁이 남긴 의미를 고스란히 담았다. 여타의 해방운동과 다를 바 없이 이들의 저항은 조금씩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왔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지만 열사들이 남긴 의미는 적지 않다. 삶도 죽음도 묵음 처리되어 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조각조각 모아 눌러 쓴 이 책은 한국 장애해방운동의 역사에 중요한 기록물로 남을 것이다.
역대 최초로 일본서점대상과 나오키상을 동시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꿀벌과 천둥>은 '피아노 콩쿠르'라는 특별한 세계를 그렸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들의 뜨거운 열정과, 경연이라는 냉정한 승부의 형식이 맞닥뜨려 빚어진 강렬한 순간들. 그 세계를 그리워했던 이들을 위해 전작의 결말 이후 이야기, 그리고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되어 <축제와 예감>으로 돌아왔다.
무대에서의 치열했던 경쟁을 뒤로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참가자들을 그린 '축제와 성묘'부터, 압도적 실력과 스타성으로 콩쿠르를 달구었던 마사루와 그의 스승의 인연을 그린 '하프와 팬플루트', 콩쿠르 과제곡의 탄생 비화를 그린 '가사와 그네', 전설적인 음악가와 천재 소년의 강렬한 첫 만남을 그린 '전설과 예감'까지.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인정받기 위해 충돌하고, 또 영감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프로 음악가’로 성장한 청년들과 그들을 둘러싼 음악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는 이들은 언제나 아름답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한 시인, 잡균 섞인 절망보다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산 시인, 삶을 수시로 떠났다가 수시로 되돌아온 시인, 최승자. 32년 만에 다시 돌아보게 된 자신의 글을 두고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자문하는 시인은 이내 "그만 쓰자 끝"이라고 말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시인의 말을 더하고 고이 매만져 사유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 산문집을 다시 내놓는다.
시인은 '불안'과 '고독', 특히, '죽음'을 자주 언급한다. 죽음의 관념을 산산이 깨뜨려준 어머니의 죽음, 슬픔 가운데서도 작은 위안이 되었던 외할머니의 죽음, 하숙집 주인아저씨의 거짓말 같은 죽음, 외할머니댁의 머슴 일중이 아저씨의 죽음. 죽음의 경험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딛고 서서 삶을 똑바로 직시한다.
떠남과 되돌아옴,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현실과 신비의 세계. 최승자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그의 삶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관한 단단한 기록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펄떡펄떡 뛰는 강한 생명력을 발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 추천글의 제목에 '법치주의'를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학창 시절 지루했던 교육의 폐해인지 모르겠으나 법치주의, 헌법, 민주주의, 자유, 평등, 시민사회의 합의 이런 단어들 앞에서 슬쩍 뒤돌게 되는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지우지 않고 눌러 써버린 이유는 1. 문유석이라는 이름이 주는 재미에 대한 신뢰가 그 뒤에 올 단어를 이길 수(?) 있을 것이란 믿음 2. 법치주의라는 단어에서 도망치는 사회는 법치주의 그 자체로부터도 도망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사회가 기반하고 있는 원칙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익숙해지고 토론하고 숙고해야 비로소 더 나은 방향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박아두고 소개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최소한의 선의>는 문유석 작가가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쓴 책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같은 '헌법의 근본 가치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풀어쓴 책이다.
재미있다. 조금 다급하게 말해본다. 23년간 법조계에 몸담았던 문유석이라는 이야기꾼이 쓴,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에 관한 이 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그는 헌법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뻗어서 헌법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노력하는지, 그럼에도 아직 다하지 못한 역할은 무엇인지,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이며 자유는 무엇인지, 세계적으로 뜨거운 화두인 정의, 공정과 같은 가치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의 질문의 핵심을 찌르며 유려한 논리를 펼친다. 자칫 추상적 담론으로 흐를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의 이야기는 먼 세계에서만 휘돌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이슈 된 사건들, 문제 되고 있는 발언들 등을 이리저리 꿰어가며 의심과 반박, 의견과 제안을 내놓는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헌법을 영업"하겠다고 썼다. 전문성 있는 이야기꾼은 귀하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통해 아는 즐거움을 전달해온 작가 채사장의 첫 소설을 소개한다. 이야기는 하나의 화살에서 시작한다. 아버지가 쏘아올린 화살을 찾아오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소년 소마는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세계.
고대 - 중세 - 근대를 상징하는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주인공 소마는 정해진 영웅의 여정을 차례대로 밟는다. 화살을 따라 떠난 소년이 “다시 한 번의 삶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기까지의 여정. 얻었던 모든 것을 차례차례 잃고 나면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야말로 '문사철'적인 소설. 역사와 철학과 종교를 넘나드는 화두와 함께 소마의 길을 따라 걸으며 인간인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에 다다른다. "인문학을 쓰며 나는 인간을 알게 되었고, 소마의 인생을 따라가며 나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소설가 채사장의 시작.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손뜨개 분야 인플루언서이자 22만 구독자 유튜브 채널 '바늘이야기 김대리'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 '김대리'가 <쉽게 뜨는 탑다운 니트>에 이은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평범한 옷장에 멋을 더하는 심플하지만 세련된 손뜨개 니트 20점과 그 도안을 수록했다.
첫 책이 탑다운이라는 기법에 집중하여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바텀업, 브리오쉬 등 여러 기법을 접목해 훨씬 다양해진 니트 스타일을 선보인다. 또한 작품별로 제작 가능한 사이즈의 단위를 넓혀 누구나 체형에 맞게 입을 수 있게 했으며 복잡한 설명은 QR코드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부쩍 싸늘해진 요즘 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따뜻한 마음과 함께 포근한 니트 선물은 어떨까.
박준 시인의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출간된 지 4년 만에 그의 두 번째 산문집을 만난다. '계절 산문'이란 산뜻한 제목의 이번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러모은 시인의 마음이자 바람과 같은 것들이다. 시인이 세심하게 살피고 헤아린 순간순간을 때로는 고백으로, 때로는 시로, 때로는 편지글로 담았다.
한적한 버스를 타는 일, 불을 밝힌 상점들을 구경하거나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마냥 좋고, 가을 하늘처럼 밝게 만나서 맑게 취해보고도 싶고, 따뜻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았던 시간 같은 것으로 이 겨울날이 기억되기를 희망하는, 시인의 그런 소박하고 다정한 마음들이 글마다 배어 있다. 글 한 편 한 편이 그리 긴 호흡이 아니기도 하고, 순서에 얽매일 필요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펼쳐 읽으면 된다. 같은 계절, 같은 시기를 통과하는 모든 이에게 시인이 건네는 살뜰한 안부 인사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폭력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무지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세상이 왜 이 지경으로 흘러가는지 이유를 찾아내려 신경질적인 집착을 하지만 이곳은 늪, 명쾌한 해답은 없고 발버둥 칠수록 집단적 절망으로 가라앉는다. 필요한 것은 흐름을 반전시킬 희망의 에너지다. 환대와 포용, 확장과 개방의 세계로 향할 에너지를 얻기 위해 올리비아 랭은 저항과 희망의 예술을 펼친 예술가들의 세계를 더듬는다.
장 미셸 바스키아, 데릭 저먼, 조지아 오키프 등의 예술가들의 삶을 훑으며 그는 그들의 예술적 동기와 동력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들의 예술이 우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 '쓸모'라는 단어엔 어쩐지 이윤에 대한 자본주의적 집념이 들어있는 것 같아 사용하기 조심스럽지만, 위기의 시대에 올리비아 랭이 예술에서 찾아내는 것은 저항적 쓸모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일관된 관심이 "예술이 저항과 회복에 관련을 맺는 방식에 쏠려 있다"고 말한다. 이 고통에 발담고 희망을 응시하는 글들은 회복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우버 운전자 브렌던은 병원으로 가는 손님을 태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에 도착해 손님을 내려주고 출발하려는 찰나,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병원으로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순식간에 거대한 불길이 병원을 덮치고 브렌던은 손님을 구하기 위해 병원으로 뛰어들어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브렌던은 임신 중절을 둘러싼 LA의 첨예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묻는다. 인간은 어떠한 경험을 통해 맹목적인 신념을 갖게 되는가. 그리고 그 신념은 어떻게 광기로 변하고,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이 되는가. 이러한 폭력은 2021년의 우리에게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의 묵직한 질문이 돋보이는 소설.
신흥 종교 집단 '구아이회'에서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을 행하던 중 간부 하나가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구아이회의 교주는 자신이 염력을 사용하여 그를 추락시켰다며 자수하고, 이 발언이 보도되면서 구아이회는 유명세를 타며 신도 수가 급증한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사건에 당황한 관할 경찰서에서는 경시청에 도움을 요청하고, 사건 수사를 지시받은 형사 구사나기는 자신의 친구이자 그동안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 일명 ‘탐정 갈릴레오’를 찾아간다. '염력'이란 실제로 존재했을까. <용의자 X의 헌신> 개정판 이후 오랫동안 갈릴레오 시리즈의 신작을 기다린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 "이만큼 공들여 썼으니 반드시 독자 여러분이 만족하실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습니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집필 후기를 덧붙인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시대. 선택적으로 듣는 시대. 독점되어 왔던 이야기의 주체가 조금씩 변화하는 시대. 뺏기지 않으려 거세게 혐오하는 시대. 한쪽으로 향하던 귀가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는 시대. 더 많은 귀를 차지하기 위한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 오래되고 진부한 이야기들은 이제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 리베카 솔닛은 세계가 고정적인 듯 보이지만 돌아보면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하며 미래에 또렷한 희망을 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책은 솔닛이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에 발표한 글들을 엮은 것으로 미투 운동, 미국의 대선, 우익화, 반지성주의, 기후 위기 등의 이슈에 대해 날 선 문장으로 힘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관념의 변화를 바라보며 이전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동'하여 만들어낸 귀한 선물임을 잊지 않는다. 또한 그 위에서 우리가 쌓아가고 있는 변화에 다른 이들을 초청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통시적, 공시적 연대 위에서 쓰는 새로운 주체의 이야기. 솔닛의 목소리와 더불어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김세실 작가는 아동임상을 전공하고 아동심리치료사로 일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그림책 작가이자 번역가, 기획자로 활동해왔다. 아이의 발달과정과 그에 맞는 그림책을 소개하는데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그림책 속 아이들'로 아이들을 더 이해하고, 그림책을 만나며 자신이 함께 성장해온 과정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문장이 되고, 한 장을 이루더니, 어느새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저자는 영유아의 단계별 발달과정을 쉽게 설명하고, 단계별로 도움이 되는 좋은 그림책을 소개한다. 추천하는 각각의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아동심리 전문가로서 설명하고, 글이나 일러스트의 특징을 그림책 전문가로서 이야기한다. 지붕 위에 둥실 떠 있는, 사람 얼굴의 이상한 달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이야기 <달님 안녕>이 왜 십 수년간 베스트셀러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팬톤이 2022 올해의 컬러로 '가장 따뜻한 블루' 베리 페리(Very Peri)를 발표했다. 2022년 나의 삶은 어떤 빛깔로 칠해질까. <컬러의 말>, <컬러의 힘> 등의 전작과 함께 '색채가 있는' 삶을 삶을 권해온 시리즈가 색과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색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적용 가능한 통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러시아 왕실의 화려함을 짐작할 수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 방 The Amber Room'을 가득 채운 빛은 앰버. 앰버의 색상값은 #c47114이며 아름다움, 활력, 보호와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웨스 앤더슨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팩토리 옐로 #f9dd00며 페일 핑크 #efded4 와 같은 색은 어떨까. 충실한 색채 사전이(이 책의 원제는 The Colour Bible이다) 소개하는 레퍼런스를 따라 회화와 건축을 넘나들면 2022년을 색채로 채울 영감이 샘솟을 것이다.
대한민국 음악팬의 가슴에 불을 지핀 레전드 록음악 만화, <Paint it Rock>의 작가 완전판. 2019년 절판 후 중고시장에서 2-3배 이상의 판매가가 형성되었던 그 책이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재현한 남무성판으로 제작되어 유통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위트있고 진정성 있게 소개하는 일에 능한 작가가 2020년대에 록을 듣는 의미를 묻는다.
책이 잠시 독자의 곁을 떠난 2019년과 곧 다가올 2022년 사이의 시차. U2 보노가 내한공연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고, 퀸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한국에서 연주했으며, 콜드플레이는 BTS와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로큰론의 탄생부터 비틀즈와 데이비드 보위의 시대, 너바나와 라디오헤드의 시대를 아우르는 입담 좋은 이야기는 여전하다. 이전 판에 100여 페이지를 더하고, 전편에 빠진 뮤지션을 추가하고, 추천 음반을 소개하는 등 가장 현재적인 록 개론서가 되기 위해 고심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제 막 록을 들으려는 초심자도 오랜 기간 록음악을 즐겼던 마니아 모두 흡족하게 즐길 수 있는 쉽고 뜨거운 록 이야기. 추천인 배철수의 말대로 다시 Rock의 세례를 받을 시간이다.
강도 범죄를 계획하는 이에게 가장 필수적인 재능은 무엇일까. 뭐니 뭐니 해도 능수능란한 운전 실력일 것이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갖고 냉철하게 도주 경로를 파악해 빠르게 내달리는 능력. 보러가드는 은행 강도 업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지닌 드라이버였다. 어두운 과거를 잊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가 정비소를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런 보러가드에게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과거의 동료들이 찾아와 보석가게를 털자는 솔깃한 제안을 하고, 보러가드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2021년 세계 주요 미스터리/스릴러 문학상인 앤서니, 배리, 매커비티, ITW(국제스릴러작가협회) 상을 휩쓸고, CWA(영국추리소설가협회) 골드 대거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며 영미권에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소설. 스티븐 킹, 마이클 코넬리, 데니스 루헤인, 리 차일드 등 스릴러 거장들이 '올해의 책'으로 꼽으며 강력히 추천하면서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미국의 소도시와 시골마을의 황량한 전원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우렁찬 엔진소리, '미국 전원 누아르'라는 매혹적인 세계로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바야흐로 시간 관리의 계절이다. 우리는 일 년 중 낮시간이 가장 짧은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깨어 있는 시간의 사용법을 고민한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며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다가도 이루지 못한 것들 때문에 무슨 조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초조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시간 관리에 관한 책을 찾는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특히 업무 자체가 분초를 다투는, 시간과의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노하우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 저자 이재은 아나운서의 이야기다.
저자는 새벽 라디오 방송 때문에 시작했던 새벽 기상을 저녁 뉴스를 진행하는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고 한다. 이후의 일정은 하루가 마치 48시간인 것처럼 30분 단위로 쪼개어 관리한다. 그 빼곡한 일정 속에서도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공부는 물론 유튜브로 팬들과 소통까지 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관리가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새 다이어리를 펼치기 전, 1년 혹은 그 이상의 목표와 계획부터 수립해 보면 어떨까. 시간은 아마 저절로 관리되기 시작할 것이다.
정신 질환에도 유행과 종식이 있는 걸까? 19세기 말의 유럽에서만 반짝 나타났던 정신 질환이 있다. 평범한 이들이 갑작스레 엄청난 속도로 걸어 다니며 여행을 하고, 정신을 차린 뒤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 잇달아 발생한 것이다. 이 으스스하고 기이한 정신질환은 1909년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돌연 사라졌다.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둔주'라 이름 붙여진 이 미지의 정신 질환을 중심에 놓고 '시대적 정신질환'을 탐구한다. 그는 정신 질환을 정신 질환으로 규정짓는 조건은 무엇인지, 둔주는 실재한 정신질환인지, 둔주를 통해 알 수 있는 오늘날의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는 무엇인지 등을 꼼꼼히 분석하며 시대적 정신질환이 태어나고 번성하는 배경을 살핀다.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밀도 높은 성찰이다.
빅토르는 사냥꾼이다. 사냥꾼으로서 가장 잡고 싶은 동물은 치타였고 마침내 치타를 잡았다. 이로써 사냥꾼이라는 꿈이 완성된다. 빅토르는 사냥꾼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러다 꿈속에서 동료를 잃은 슬픔에 눈물 흘리는 치타 무리를 보며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꿈을 이뤄 온전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된 빅토르는 모순적이게도 그 순간에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새롭고 낯선 경험을 하며 타자에 관한 마음의 문을 연다. 문자 그대로 타인이 되어봄으로써 말이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책 듀오 자크 마에스, 리서 브라에커르스가 과감한 색조로 그려낸 이 책은 행간을 읽으며 질문을 읽어야 하는 그림책 읽기의 매력을 배로 보여준다. 2021 플랑드르문학기금 선정작.
성선설과 성악설 가운데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성선설을 택할 것이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그렇게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못하다.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온갖 정치적이고 계산적인 상황들 앞에 그러한 믿음은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린다. 상처를 입는 건 그들이 아니라 착해 빠진 우리 자신이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이 단련되지 않은 채 냉혹한 직업의 세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저자 로버트 그린은 진단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무방비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25년간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어 얻은 깨달음을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소개했던 그가 이번엔 앞선 책들과 미발표 원고, 각종 인터뷰와 에세이에서 핵심적인 성찰들을 직접 가려 뽑아 소개한다. 1월 1일, 자신만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해 12월 31일, 궁극적 자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윤일을 포함하여 총 366개의 법칙으로 정리했다. 단지 숫자를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매달마다 핵심 주제를 설정하고 매일 한 장씩 읽어 가며 성장해 나가게끔 세심히 배려했다. 새해를 맞는 첫 번째 책으로 이보다 더 알찬 구성이 또 있을까. 위험하고 해로운 모든 것에 맞서,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나갈 시간이다.
소설가 김초엽의 팬에게 2021년은 축복으로 기억될 것이다. 장편소설, 소설집, 짧은 소설을 (논픽션도 한 권 출간되었다.) 발표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작가가 SF호러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유독성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외부와 차단된 이르슐의 도시 므레모사. 좀비와 유령의 땅으로 불리던 이 도시가 첫 관광객으로 여섯을 초대했다. 한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 관광학 연구자, 다크 투어리스트, 여행매거진 기자, 여행 유튜버, 그리고 목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까지. 엄청난 경쟁을 뚫고 우회경로를 이용해 이 도시의 첫 목격자가 되려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김초엽과 <사이보그가 되다>를 함께 쓴 김원영의 저작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는 1970년대에 일본에서 활동한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단체 '푸른잔디회'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들의 '독창적인 행동강령'의 일부를 옮겨본다.
1. 우리는 우리가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
4.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므레모사의 귀환자들의 결의에 대해 김초엽의 소설은 이렇게 쓴다. '우리는 여기서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겠다. 방해하지 말라.'(100쪽) 금속 의족을 착용하고 시도하는 무용수 유안의 춤은 틀림없이 아름답겠지만, 유안이 더이상 아름답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유안의 의지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2022년을 열며 김초엽의 소설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말을 고른다. '아,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했었지' (200쪽)라는 작가의 말. '이런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아했었지' 생각하며 2021년을 보내고, 2022년을 맞이한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저자 룰루 밀러에게 늘 "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지구의 관점에서 인간의 탄생은 혼돈일 뿐, 우리의 삶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러니 무의미에 발을 딛고 오히려 작은 것 안에 있는 장엄함을 발견하며 행복을 향해 마음대로 걸어나가라고. 안타깝게도 밀러에게 이 말은 삶의 동력이 되지 않았고 무의미의 블랙홀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음에 가까운 삶을 살던 그는 평생을 바쳐 물고기들에 이름을 붙이고 또 붙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를 발견한다. 우주의 혼돈이 아무리 방해공작을 펼쳐도 끊임없이 질서를 부여해가는 그의 삶에서 밀러는 어쩌면 삶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엔 밀러가 추적한 데이비드의 삶의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펼쳐진다. 작고 쓸모없는 생명체에 관심을 기울이던 그가 어쩌다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에 푹 빠지게 되었는지, 30년 평생을 바친 이 표본들이 강한 지진 한 번으로 모두 엉망이 되었을 때 그가 좌절 없이 바로 재작업에 착수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밀러는 데이비드의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서 여러 심리학적 연구들까지 분석하며 그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책의 중반 이후부터 데이비드의 삶은 충격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밀러는 충격과 혼돈 속에서 결국 아버지의 말을 반박할 자신의 진리를 찾아낸다.
짧은 말로 설명이 어려운 책이다.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긴 호흡으로 파고드는 이 이야기는 소설처럼 이어지며 매 장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를 이어간다. 전달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저자의 흡인력 있는 글솜씨 덕에 한달음에 매끄럽게 읽힌다. 삶의 혼돈과 질서에 대한 고민은 늘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연말연시엔 그 존재감이 슬쩍 더 커져버리곤 한다. 새해의 시작 앞에서 삶의 무의미로 버거운 마음이 드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2021년의 마지막이자 2022년의 첫 추천을 이 책으로 할 수 있어 기쁘다.
10년 동안 배운 영어, 말 한 마디 못한다? 역대 수능 영어 듣기 평가 지문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60개 패턴이면 영어회화의 99%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작인 <강성태 66일 공부법>에 근거하여 66일의 반복적인 습관을 통해 영어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1파트는 영어회화 공부법, 2파트는 66일 동안 영어 습관을 들이는 실천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중요한 표현의 반복패턴을 통해 66일 후 달라진 영어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