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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예술

이름:박용구

성별:남성

출생:1914년 (게자리)

최근작
2017년 4월 <메신저 2045>

박용구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 박용구”
문화 예술 평론가이자 예술인. 최초의 근대적 음악 평론가.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입사(笠史). 1932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1936년에 니혼 대학교 예술과를 중퇴했다. 1937년에 니혼 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음악 잡지 『음악평론』 기자를 지냈다. 이 시기에 당대 서구 예술가들의 수많은 공연 실황을 접하는 한편, 주요섭·정지용·김순남·설정식 등과 가깝게 지내며 향토 가극 운동에 가담했다. 1940년부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8·15 해방 직후에 최초의 중등 음악 교과서인 『임시중등음악교본』을 펴냈고, 최초의 음악 평론집 『음악과 평론』을 발표했다. 좌우익의 갈등과 매카시즘의 폭력을 피해 1950년에 일본으로 밀항했다. 일본에서 고마키 발레단 문예 부장을 지내며 일본 최초의 창작 발레 <니치링>의 대본을 집필하는 한편, 배우좌에서 연출 수업을 했다. 1960년 4·19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귀국했으나 5·16 군사 정변 이후에는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구금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67년부터 예그린 악단의 단장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뮤지컬로 평가받는 <살짜기 옵서예>를 기획하고, 발레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을 초연하는 등 종합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행사와 공연을 기획했다. 또 건축가 김수근이 운영하던 잡지 『공간』의 주간으로 소극장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1980년 이후에는 희곡, 무용, 오페라의 극본을 여러 편 집필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막식 시나리오를 썼다. 한국 음악펜클럽 대표, 한국 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서울특별시 정책 자문 위원, 한국문예진흥원 운영 심사 위원, 한국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발레 <심청>, <바리>나 <심포카 바리> 등은 지금도 계속 사랑받는 대표작이 되었고, 2016년 103세로 작고할 때까지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예술 양식을 끊임없이 구상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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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20세기 예술의 세계> - 2001년 8월  더보기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담력도 추진력도 모자라는 나는, 눈이나마 옳게 뜨고 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세기를 넘기고 보니, 그런대로 동공(瞳孔) 바닥에 쌓인 것이 누룩처럼 곰삭아서 쥐어짜면 간장으로 스여질 곳이 있음직도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 끝에 대담집(對談集)을 내보기로 한 것인데, 한반도의 20세기는 워낙 격랑의 시대여서 내 생애의 역정(歷程)도 평탄치는 않았지만, 견문기(見聞記)요, 교우록(交友錄)이요, 자전(自傳)의 일부가 되기도 한 이 대담집은, 6.25의 비극으로 아깝게 유명(幽明)을 달리한 선배와 친구들의 레퀴엠[鎭魂曲]이 되기도 한 것 같아 가슴이 아리고도 후련한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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