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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원샨 (文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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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카구야 프로젝트>

사장을 죽이고 싶나

이 책 《사장을 죽이고 싶나》를 집필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도전이었다. 2013년, 나는 《역향유괴(逆向誘拐)》로 제3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수상했다. 시마다 소지 선생께서 이 상을 주는 목적은 중화권에서 본격 추리소설이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본격 추리소설의 애호가이자, 시마다 소지 선생의 팬으로서 이 상을 받았을 때 나는 무한한 영광을 느꼈음은 물론이고 본격 추리소설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추리소설이 대세가 된 오늘날, 외부와 단절된 곳에 갇힌 사람들, 범인의 정체를 숨긴 채 이어지는 살해, 철저한 감시와 밀실이란 환경 속에 마음먹은 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 등이 등장하는 본격 추리소설은 좋은 시절이 다 지난, 이해하기 어렵고 비현실적이며 고루한 장르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밀을 밝혀나가는 즐거움과 진상이 드러날 때의 놀라움은 결코 어떤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보라에 갇힌 산장’ 부류의 소설에 도전하는 것은 많은 추리소설가의 꿈이다. 나는 이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물론이고, 지금 이 시대에만 일어날 수 있는 ‘눈보라에 갇힌 산장’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욕심이 컸다. 이를 위해 나는 세상과 단절된 산장을 도시화된 최신식 빌딩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 외에도 나는 소설 속에 곧 다가올 미래에 관해 과학기술이 과거 사람들의 공상에 불과했던 바람들을 이뤄냄과 더불어 점차 인력을 대체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리란 예상을 풀어놓았다. 이런 시대에 벌어지는 ‘눈보라에 갇힌 산장 살인사건’은 백 년 전 고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현대판 눈보라에 갇힌 산장인 최신 빌딩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소설의 세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독자들이 감상해주길 바란다. 과학기술로 불가능한 일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추리소설의 어떤 트릭이나 속임수도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어쩌면 황당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트릭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일지 모른다. 언젠가 이 작품의 편집자가 뒷이야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보노라면 나도 남자 주인공이 이후에 어떤 불가사의한 사건을 만나게 됐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비밀을 밝혀나가는 즐거움과 진상이 드러날 때의 놀라움을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어차피 장미는 장미라 부르지 않아도 여전히 향기로울 테니까.

카구야 프로젝트

아이를 안으면 유리천장 안팎이 모두 똑같은 풍경이다 “××가 회사 그만뒀대. 하루 종일 애랑 같이 있고 싶다나. 아깝지 않아?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하고 전문 자격증까지 땄는데.” “걔는 남편이 돈 잘 버는데 뭐가 문제야?” “문제지. 걔가 다닌 대학은 국민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대학이야. 제대로 한다면 걔는 높은 연봉 받은 직장에 들어가 예순 살까지 세금을 내야 하는 거고. 그런데 걔는 지금 겨우 서른 살 조금 넘었잖아. 정부 입장에서는 20년 넘게 세금을 못 받게 된 거 아냐?” “꼭 그렇게 말할 순 없지. 걔가 낳은 애들이 결국 나중에 세금 낼 사람들 아닌가? 걔는 이 사회의 미래 인재를 키우고 있는 거잖아.” “만약 걔가 딸을 낳으면? 매일 집에만 있는 엄마를 보면서 걔들도 커서 자기 엄마랑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설마 걔가 딸한테 “엄마는 정상이 아니니까 엄마를 배우지 마.”라고 가르치겠어? 아니면 “딸은 열심히 공부할 필요 없어. 엄마처럼 전업주부 될 거면 대학 안 가도 돼.”라고 가르치겠냐고. 그러니까 이건 그냥 계속 순환되는 거야. 만약 아이를 중앙 정부에서 키워준다면 이런 시스템적인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며 농담처럼 내놓았던 아이디어가 점차 평행세계의 이야기가 됐고, 독자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소설이 됐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이는 여성이 직장에서 그냥 보기에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러기에는 여전히 장애가 존재함을 가리키는 단어다. 마치 천장이 유리로 만들어져 있으면 하늘을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내 주변에는 유리 천장을 한번 뚫어보겠다는 욕심을 가진 여자 친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사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와 ‘탄력적 근로 시간제(flexible work)’ 같은 것이다. 적지 않은 기업들도 이를 조건으로 인재들을 잡아두려 한다. 하지만 대개 이 카드는 아이와 관련된 일에 쓰일 때가 많다. 실제로 우리는 여직원이 학교가 끝나는 아이를 데리러 간다며 오후 5시에 퇴근한다던지, 회사가 바쁜 12월 평일에 휴가를 내는 직원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이의 학교에서 보통 회사의 근무시간인 평일에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연은 어째서 저녁이나 주말에 할 수 없는 걸까? 세상에,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선생님들도 그 시간에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할 게 아닌가. 아이를 갖기 전에는 야근을 하는 게 업무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직원도 아이가 생기고 나면 야근을 불합리한 착취라고 여기게 마련이다. 물론 균형감과 탄력성을 고려해 주당 50시간 근무해야 하는 일이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더 오래 근무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여자 동료들과 친구들이 아이가 생기고 나면 종종 일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방해가 된다는 둥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식의 말을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이를 돌보기 위해 연봉은 많지만 업무 시간이 긴 직장을 포기하거나 아예 가정부주로 눌러 앉기도 한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한다면 한 시라도 떨어지지 않고 아이의 성장을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혹 일에 매진하느라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많이 맡기는 여자를 보면 사람들은 뒤에서 이렇게 수군거린다. “제대로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낳았어?” 오늘날 유리 천장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의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내 부모님은 베이비붐 1세대로 처음으로 고등교육을 받게 됐으며, 맞벌이 가정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물질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했기에 최선을 다해 일하셨으며 가장 좋은 걸 우리에게 주셨다.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게 하고 교육을 시켜주신 것은 바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우리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 자라게 하셨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부모가 된 지금은 자식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됐다. 친구들의 모임은 아이의 낮잠이나 저녁에 목욕하고 잠자는 시간을 피해야 하며, 외식을 하러 나가도 그 식당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위해 주문을 하고 난 뒤에도 엄마, 아빠는 다정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아이가 삶의 전부가 아니면 좋은 부모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살면서 많은 일을 아이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쓴 소설의 줄거리를 들은 한 친구는 이 소설이 ‘디스토피아(dystopia,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단화한 암울한 미래상-역주)’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펜 끝에서 그려진 매리언이 떨어진 평행세계가 정말 ‘디스토피아’인지 지금 우리가 있는 ‘아이’로 가득 찬, 아이가 모든 걸 좌우하는 이곳이야말로 판타지 속의 세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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