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자라 흙에 뿌리를 내리고 나면 나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다 맞고 살아가야 하지요.
때로는 따뜻한 실바람이 불기도 하고, 때로는 세찬 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저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은행나무는 바람을 맞아 꽃가루를 잘 퍼뜨릴 수 있도록 윗가지에 꽃을 피우고,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잎에 강한 독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나무와 달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무언가를 피하거나 취할 수도 있습니다.
나무와 비교해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는 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일,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살다 보면 이런 수많은 일들이 피할 수 없는 바람처럼 우리에게 불어옵니다.
한 나무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그 나무는 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은행나무가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특별하다는 건, 그 나무가 내 삶과 닮았다는 거겠지요.
언젠가부터 나는 은행나무가 되어, 지금 나를 흔드는 바람이 멈추길 바랍니다.
하지만 은행나무처럼 기다리는 법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