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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오선민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6년

최근작
2024년 2월 <[큰글자책]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큰글자책]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동화 속에서는 어떤 일도 무의미하지 않지만 어떤 일도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왕자와 공주는 그저 주어진 미션을 치르고만 있다. 왜일까? 공주가 난쟁이들 집에서 밥하고 빨래를 하는 까닭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렇게라도 해서 ‘오늘’ 먹을 것을 구한 자에게 ‘내일’ 낯선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는 것을 본다. 숲은 거듭 묻는다. ‘이런 혼돈에서도 살 수 있겠니?’, ‘저런 곤란에서도 살 수 있겠니?’ 그런 질문 앞에서 왕자와 공주는 어떤 미션도 덤덤하게 통과한다. 근심도 걱정도 자책도 원망도 없는 세계, 그것이 동화였다. 나는 숲의 카오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주인공들이 부럽기 시작했다.” “동화는 푸구이의 경우처럼 콩이 어떻게 운명애를 깨우치는지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저 콩 한 알이 크게 웃었다고만 한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콩 하나가 생사의 모순과 필연을 통찰하는 장면을 단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다니! 나는 지켜야 할 그 어떤 최후의 도덕률도 없기에, 만물의 운명이 갖는 온갖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동화가 좋다. 동화는 인간이 돌아다닐 수 있는 세계가 한없이 넓다는 것을, 그 안에서 잘 살아 보기 위한 삶의 길이 참으로 다채롭다는 것을 깊이 이해한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매일매일 읽고 싶다. 나는 수술실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육아법을 익히며 엄마로서 첫발을 내딛었지만,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옛이야기 속에 있음을 강력하게 느낀다.”

[큰글자책] 카프카와 가족, 아버지의 집에서 낯선 자 되기

실제 개인사에 있어서나 작품을 통해서나 카프카가 가족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것이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피를 나눈 화목한 사이, 세상의 온갖 풍파로부터 나를 지켜 줄 안락한 울타리 같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프카가 ‘아버지’를 어떤 존재로 정의하는지, 또 우리 각자를 출현시키는 이 근원적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강의는 카프카가 생각한 ‘가족’에 대한 저의 짧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

“나와 관계 맺는 대상 모두는 정체성을 따로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조건에 따라 계속 모습을 바꾸면서 내 삶에 개입합니다. 인류는 자신의 ‘타자’를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그린 것일까요? 또 무엇 때문에 이런 타자들과 관계 맺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을까요? 저는 인류가 ‘타자’를 어떻게 규정했으며, 그것과의 관계 맺음에서 어떤 위험과 가능성을 탐색했는지를 본격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책이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입니다.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2009)는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여러 원시 부족들을 탐방했는데, 다른 인류학자들과 달리 각 부족의 특징에 집중하지 않고 인간 의식 활동의 공통적 특질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저는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을 쓰면서 인류학 자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 학문에 좀 더 들어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정신적 본질 같은 것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레비-스트로스의 초기 저작인 『슬픈 열대』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동화 속에서는 어떤 일도 무의미하지 않지만 어떤 일도 결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왕자와 공주는 그저 주어진 미션을 치르고만 있다. 왜일까? 공주가 난쟁이들 집에서 밥하고 빨래를 하는 까닭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렇게라도 해서 ‘오늘’ 먹을 것을 구한 자에게 ‘내일’ 낯선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는 것을 본다. 숲은 거듭 묻는다. ‘이런 혼돈에서도 살 수 있겠니?’, ‘저런 곤란에서도 살 수 있겠니?’ 그런 질문 앞에서 왕자와 공주는 어떤 미션도 덤덤하게 통과한다. 근심도 걱정도 자책도 원망도 없는 세계, 그것이 동화였다. 나는 숲의 카오스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주인공들이 부럽기 시작했다.” “동화는 푸구이의 경우처럼 콩이 어떻게 운명애를 깨우치는지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그저 콩 한 알이 크게 웃었다고만 한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콩 하나가 생사의 모순과 필연을 통찰하는 장면을 단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다니! 나는 지켜야 할 그 어떤 최후의 도덕률도 없기에, 만물의 운명이 갖는 온갖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동화가 좋다. 동화는 인간이 돌아다닐 수 있는 세계가 한없이 넓다는 것을, 그 안에서 잘 살아 보기 위한 삶의 길이 참으로 다채롭다는 것을 깊이 이해한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매일매일 읽고 싶다. 나는 수술실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육아법을 익히며 엄마로서 첫발을 내딛었지만,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옛이야기 속에 있음을 강력하게 느낀다.”

신화의 식탁 위로

동화의 뿌리가 되는 옛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먹기의 문제와 다시 만났습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신화학』에서 소개하는 무문자(無文字) 사회의 기원담들은 예외 없이 먹고 먹히는 일, 그리고 누가 요리할 것인가의 주제를 고민하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그러자 ‘빨간 모자의 간식 바구니’라든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이라든가, ‘호랑이에게 떡을 준 할머니’라든가, 여전히 음미되는 옛이야기 대부분이 ‘먹는다’라는 문제를 핵심 테마로 안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무의식을 형성해 온 신화가 ‘먹기’를 줄기차게 탐구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인류는 먹는 이야기로 현실의 어떤 문제를 돌파했던 것일까요? (…)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무문자 사회의 신화입니다. 문자를 거절하는 사회는 인간이 먹어야 한다면 ‘관계’를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소개하는 무문자 사회의 신화 몇 편을 분석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가 몇십 년에 걸쳐 연구한 『신화학』은 인류가 부단히 공생의 지혜를 발휘했음을 논증하는 책입니다. 최고의 공생법은 함께하는 식사에 있으며, 신화란 그 태도를 가르친다는 것이 책 전체의 주제입니다. 제가 시도한 것은 『신화학』 자체에 대한 해석은 아닙니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먹어야 하는가’라는 인류의 오랜 관심을 추적하면서 좋은 삶에 대한 신화적 지혜를 해석해 보려 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

“프루스트가 이 시대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바야흐로 시간을 되찾을 때라고 했을 것이다. 전염병을 낳은 인간의 먹음과 입음, 우리가 방치했던 자연과 쓰레기에 대해. 또 사소하다고 치부했던 일상의 많은 노동에 대해 질문할 시간인 것이다. 프루스트는 소설을 쓰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질문들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려고 했다. 동시에 끝도 없이 매번 달라지는 답들에 기뻐했다. 프루스트는 어떤 경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숨죽이고 앉아 있는 생각의 씨앗들이다. 시간을 되찾으려는 질문들과 함께 그때마다 다른 의미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 프루스트는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시간을 되찾았는가? 코로나와 함께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카프카의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다. 그의 세계는 도처에 구멍이 숭숭 뚫린 열린 전체이고 장면 장면이 블록처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서 작품을 읽는 독자와 함께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생성시키기 때문이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런 카프카에게 자유란 무엇이었을까? 매 순간 사건들의 문턱을 넘어가는 중일 뿐인데 어떻게 자유가 되는 것일까?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카프카의 자유는 어떤 상식에도 어떤 믿음에도 자신을 다 내던지지 않는 걸음걸음의 자유이다. 카프카는 어떤 숭고한 대의, 어떤 초월적인 진리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식과 자기 감각마저도 의심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나이기만 할까? 원숭이나 갑충이고 싶다, 양이고도 싶지만 개이고도 싶다, 나는 내 피부가 비좁다!

카프카와 가족, 아버지의 집에서 낯선 자 되기

실제 개인사에 있어서나 작품을 통해서나 카프카가 가족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것이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피를 나눈 화목한 사이, 세상의 온갖 풍파로부터 나를 지켜 줄 안락한 울타리 같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프카가 ‘아버지’를 어떤 존재로 정의하는지, 또 우리 각자를 출현시키는 이 근원적 인간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강의는 카프카가 생각한 ‘가족’에 대한 저의 짧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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