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10.42023
  • 트렌드 코리아 2024
    김난도, 전미영, 최지혜, 이수진, 권정윤, 한다혜, 이준영, 이향은, 이혜원, 추예린, 전다현 (지은이) | 미래의창 | 2023년 10월 "용의 눈에 마지막 점을 찍어라."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은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 양(梁)나라의 화가 장승요의 고사에서 비롯하였다. 장승요가 금릉에 있는 안락사라는 절에 네 마리의 용을 그리면서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묻자, 화가는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자 장승요는 네 마리 용 가운데 두 마리의 눈에 점을 찍어 눈동자를 완성하였고, 이내 두 마리 용이 승천하여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두 마리만 남았다고 한다. 이후 ‘어떤 일을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온 세상이 챗GPT와 AI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우리 삶의 변화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자연어로 소통 가능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트렌드 코리아 2024>에 들어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확정한 날 저녁, ‘트렌드코리아 팀’은 챗GPT에게 2024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를 물었다. AI가 뽑은 8가지 키워드를 본 저자 김난도 교수의 개인적인 소감은 ‘안도’였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채울 수 없는 창의의 영역이 아직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내놓은 비슷비슷한 결과물 속에서 어떤 ‘휴먼 터치’가 마지막에 더해졌느냐에 따라서 그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로, ‘화룡점정’이다. 2024년 청룡의 해, 용의 승천을 완성할 마지막 점정(點睛)을 준비하고 있다면 올해도 <트렌드 코리아>를 읽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 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은이), 정혜용 (옮긴이) | 열린책들 | 2023년 9월 "2022 노벨문학상 아니 에르노의 사회 탐구 기록"

    파리 근교의 신도시 세르지퐁투아즈로 이주한 아니 에르노는 충격을 느낀다. 과거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한 고도에서의 삶에 익숙했던 작가에게 무(無)에서 솟아나 그 어떤 기억도 갖고 있지 않은 신도시의 콘크리트 단지는 무언가 이질감과 소외감을 자아낸다. 그 쓸쓸한 기분이 긍정적인 자극으로 다가오게 된 것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곳으로 이주해온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부터였다. 새로운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작가는 이들이 일상을 보내는 구체적인 장소와 방식에 이끌린다.

    전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말들, 슈퍼마켓에서 저마다의 쇼핑카트에 담긴 것들, 레스토랑에서 모처럼 비싼 음식을 주문하거나, 일터에서 굴욕을 삼키는 경험. 그 안에서 작가는 사회의 욕망과 욕구 불만, 폭력과 수치, 계급과 불평등이 은밀하고도 적나라하게 녹아 있는 것을 본다. "너무 익숙하거나 흔해서, 하찮고 의미가 결여된 듯 보이는 그 모든 것" 안에 한 시대의 순수한 인간적 진실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에르노는 "집단의 일상을 포착한 수많은 스냅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현실에 가닿으려는 시도"로서 주변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채집하여 '외면 일기'의 형식으로 기록하는 사회 탐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 일환으로 1985년부터 1992년까지의 기록 <바깥 일기>와, 1993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록 <밖의 삶>이 탄생했다. 한 사회를 꿰뚫는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

  •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요시타케 신스케 (지은이), 이소담 (옮긴이) | 김영사 | 2023년 9월 "엉뚱하면 좀 어때서. 요시타케 신스케의 유쾌한 딴생각"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사로잡는 그림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작품은 매번 웃음과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작품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새롭게 출간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상의 세계를 유영하는 작가의 '엉뚱한 생각 기록장'이라고 볼 수 있다.

    길을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쇼핑을 하다가, 화장실에서, 식당에서, 심지어 잠들기 전까지. 작가는 시시때때로 엉뚱한 생각에 빠져든다. 그리고, 다양한 상황 속 엉뚱하고 유쾌한 스토리를 귀여운 그림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재치 넘치는 글로 보여준다. 무려 90가지나 되는 에피소드는 대부분 한 페이지에 담겨 있어 읽기에 부담 없고, 단시간 내 생각의 환기가 필요할 때 제격이다.

  •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지은이) | 문학동네 | 2023년 9월 "<최선의 삶>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고"

    <최선의 삶> 이후 8년 만에 만나는 임솔아의 장편소설. 삶은 최선의 순간 이후에도 이어진다. 가장 빛나던 시절이 가고 사랑과 투쟁의 목소리가 흐려진 자리,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한 전시장에서 만난 네 여성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화영은 장애 등급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의 '장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자인 친구들을 흉내내며 정체성 사이에서 겉돌던 우주는 오래 함께 한 여자친구 선미와 자주 싸우고 있다. 사이가 나쁜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빠른 취업을 택한 보라는 스테이크와 담배를 팔았고, 이제 다른 사람의 몸에 알밤을 타투로 새긴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선 정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정수는 본연의 희미함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 언저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빛나는 사람들과 빛나는 장소에서 빛나는 것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삶을 계속할 수 있다.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사회에게 받아야 할 것을 정의롭게 요구하던 석현의 얼굴이 남자친구로 나의 옆에 설 때는 다른 모습일 수 있고, 나를 학대하던 상사도 다른 포지션에선 너그러운 말을 할 수 있으며, 서로의 취약함을 돌보기 위해 함께 대열을 이뤄 싸우던 사람들도 상대방을 소진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임솔아의 소설은 기만을 고발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그저 곁에 서는, 더 좁고 어렵고 윤리적인 길을 택한다. "얼결에 우주도 그 곁에 섰다. 곁에 계속 서 있는 것. 그것이 보라가 말한 싸움이었다."(145쪽) 깊은 결심 없이, 큰 희생 없이, 뭉근하게 데운 와인 한 잔 정도의 온기로도 혁명이 계속될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삶 속에서 종종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10.102023
  •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지은이)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9월 "세상 모든 각자가 맞이할 미래"

    집을 나서기 전,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겉옷을 한 벌 더 껴입어야 할지, 새로 산 구두를 신고 나가도 괜찮을지, 커다란 장우산을 들고 나가야 할지, 휴대하기 편한 접이식 우산을 가방에 넣어 나가야 할지를 판단한다. 출국을 앞둔 여행객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데 문제는 없을지를 근심한다. 바다에 나가는 어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 파도의 높이를 살피고, 밭을 가는 농부는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가늠하며 물길을 정비한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와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도 날씨를 예측하기 힘든 기후변화의 시대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인다. 오히려 정확한 일기예보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더 커진 것처럼 보인다.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이 한 철의 기상을 알려주는 일기예보가 아닌, 삶을 대비하기 위한 더 큰 호흡의 ‘시대예보’를 시작한다. ‘지능화’와 ‘고령화’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대의 변화 방향을 탐색한 저자는 우리가 쪼개지고, 흩어져, 홀로 서게 되는 ‘핵개인의 시대’를 전망한다. 디지털 도구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기존에 힘을 발휘하던 권위가 쪼개지며, 100세 이상의 생애주기에서 조직의 테두리와 가족의 울타리가 무너져 흩어지고, 종국에는 각자의 역량과 생존을 고민하며 홀로 서는 개인의 시대다. 이미 너무도 익숙해진 ‘핵가족’을 넘어선, 집단주의적 사고와 기성 문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가진 존재인 ‘핵개인’의 출현과 그로 인해 다가올 미래를 다섯 장으로 나누어 차분하게 예견한다.

  • 파브르 식물기
    장 앙리 파브르 (지은이), 조은영 (옮긴이) | 휴머니스트 | 2023년 9월 "파브르 탄생 200주년 기념 국내 최초 완역본"

    <파브르 곤충기>의 집필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가 그 3년 전인 1876년에 <파브르 식물기>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파브르가 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극한 관심으로 식물을 깊이 관찰하고 연구했다는 사실도. 찰스 다윈이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찬사를 보낸 파브르의 시선은 식물과 동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이치로 향한다. 그에게 인간의 속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식물의 세상은 생명의 조화를 담은 작은 우주와 같았다. 사려 깊은 시선과 유려한 문장으로 자연이라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식물과 곤충, 동물이 맺는 관계로부터 시작해 조금씩 깊은 곳으로 향하는 파브르의 글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의 나열이나 인위적인 분류법과는 달리 마치 식물의 삶 속에 들어가 함께 시간이라도 보낸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파브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국내 최초 완역본 <파브르 식물기>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한 수많은 독자분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서 드디어 출간되었다. 초판 속의 본문 일러스트를 그대로 살렸고, 식물학을 전공한 조은영 번역가가 현대의 과학적 사실과 다른 서술에 꼼꼼히 주석을 다는 등 한층 정확하게 원고를 보완했다.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이 "내가 읽은 가장 모범적인 식물기이자 파브르가 지구 환경 위기 시대의 인류에게 보내는 한 권의 조언"이라 추천했으며, 역자 조은영이 "많은 고전이 그러하듯 파브르의 책도 우리에게 "그래, 원조란 이런 것이지!"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작업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현대 생물학 도서를 읽고 옮기면서 감탄했던 내용과 표현을 이 오래된 책의 문장에서 수없이 발견하는 실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 유행하는 최신 장르영화의 1960년대 원조 작품을 보았을 때 기분이랄까."라고 번역 후기를 전했다.

  • 페어리 테일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황금가지 | 2023년 9월 "스티븐 킹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동화"

    '사이코 하우스'라 불리는 낡은 집에서 사나운 대형견과 단둘이 사는 괴짜 노인 보디치. 성질이 고약하기로 유명한 그와 잠시라도 엮였다가는 불쾌한 경험을 하기 십상이라며 동네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 이웃에 사는 고등학생 찰리가 보디치와 비밀스러운 우정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로 인해서였다. 도와달라는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 집안에 쓰러져 있는 노인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다. 보디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고, 자택을 포함한 그의 어마어마한 유산은 모두 찰리에게로 상속된다. 어안이 벙벙한 찰리는 이내 그의 집 뒷마당에 동화 속 세계로 연결되는 특별한 우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겪으며 스티븐 킹은 "쓰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상상력은 거대한, 버려진 도시를 보여 주었다."라고 답하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아주 오랫동안 앉아서 스티븐 킹의 멋진 이야기, <페어리 테일>을 읽었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경이와 공포가 한 쌍을 이루는, 마법이 가득하면서도 공포스러운 도시를 향한 여행이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영화화를 확정했다.

  •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이희영 (지은이) | 창비 | 2023년 9월 "서로 다른 기억, 모두 같은 마음에 대하여"

    <페인트>, <나나>의 작가 이희영이 뜨겁게 써 내려간 이야기. 십이 년 전 세상을 떠난 형과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선우혁, 형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 가던 그는 학교 곳곳에서 자연스레 형의 모습을 떠올리고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메타버스 게임 '가우디'를 알게 된 선우혁은 형의 계정이 남아있음을 발견하고 겨우 비밀번호를 찾아 형의 아바타 JIN으로 입장하게 된다. 무려 4,140일 만에. 가우디 속 가상 현실과 형이 만든 정원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 놀람과 동시에 그곳에서 정원을 지키고 있던 공유 친구 '곰슬'과 마주치게 된다. 형이 공유 친구로 등록한 곰슬은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형과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에서 작가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를 넓혀 가는 성장의 과정을 깊이 있게 조망한다. 작가의 말을 전한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혹은 친근하게 여기는 프레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가 된다. 지금의 나와 십 년 후 나는 또 달라질 것이다. 모든 이들은 평생에 걸쳐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줄 수밖에 없다."

    책을 덮고 문득 떠오른 동요 하나가 있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10.132023
  • 멜랑콜리아 I-II
    욘 포세 (지은이), 손화수 (옮긴이) | 민음사 | 2023년 10월 "2023 노벨문학상 욘 포세 대표작, 한 화가의 일생"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고향 노르웨이의 험준한 산악과 암석, 호수와 피오르를 비롯한 대자연의 장엄한 풍광을 그려내어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칭호를 얻은 실존 화가다. 그러나 그의 이름에 명성이라는 눈부신 빛이 내리기까지는 그가 생을 마치고도 수십 년이 흘러야 했다. 빛을 추구했지만 우울과 불안으로 점철된 생을 살아야 했던 헤르테르비그. 소설은 그의 인생 한가운데를 향한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미술이라는 꿈을 잃지 않고, 그림을 업으로 삼기 위해 동향 출신의 유명 화가이자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교수 한스 구데를 찾아간 젊은 헤르테르비그를.

    멋진 양복까지 차려 입고 뒤셀도르프에 당도했지만 앞으로 닥칠 최악의 결과만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청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만약 한스 구데가 나더러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 말한다면 나는 그림을 더 그릴 수 없다."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마음. 망상으로 고통받던 그에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운명의 서광이 비쳐오고, 그의 앞날은 혼돈에 휩싸인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심사평과 함께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대표작. 살아생전 누군가에게 주목받지 못한 한 인간의 비극적인 생을 되살려 그리며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 소외된 삶일지라도 그 속에는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여선, 최진영, 서유미, 최은미, 구병모, 손보미, 백수린 (지은이)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가을엔 김승옥, 가을엔 권여선"

    10년 이상의 활동 이력을 지닌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김승옥문학상이 올해도 가을을 알린다. 2023 김승옥문학상의 수상 작가는 권여선, 최진영, 서유미, 최은미, 구병모, 손보미, 백수린이다. <각각의 계절>(권여선), <단 한 사람>(최진영), <눈부신 안부>(백수린) 등 2023년 커리어의 분기점이 될 만한 작품집을 엮은 작가들의 지금을 함께할 수 있어 흡족하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살점을 정확하게 가격한다. 관계를 '손절'하는 캐주얼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살점을 베어야 끝나는 절연을 겪은 권여선의 사람들은 삼십년 전의 강촌 여행에 아직 머물러 있다. '그들 위에 의미심장하게 드리우는 요망한 슬픔'(42쪽)이 우리 각자의 의미심장한 추억을 가격하는 순간 소설은 삶의 일부가 되고, 소설에게 얻어맞은 나 역시 영원히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구의 미래, 인류의 미래, 서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다. 최은미처럼 정확하게, 구병모처럼 터프하게 우리가 선 자리를 묘파하는 소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가을의 행운이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 윌북 | 2023년 10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있게 한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룰루 밀러가 이 책과의 만남을 '세계관을 뒤흔든 사건'이라 언급하며 "이보다 나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없다."고 추천한 <자연에 이름 붙이기>가 드디어 한국 독자를 만난다. 저자 캐럴 계숙 윤은 숲속에서 다채로운 동식물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끝에, 종과 종 사이 관계를 밝히고 생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류학'의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생물의 이름을 익히며 즐거워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만난 분류학은 충격에 가까웠다. 생명을 정확한 질서에 맞춰 분류하는 과학의 방법은 "명백한 진실로 보이는 것"과 매번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과학이 옳다는 신뢰로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결국 경악하게 된 것은 "어류라는 분류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였다.

    "과학자들은 대체 어떻게 물고기라는 현실을 부인할 수 있는 걸까?" 물고기에 이어 얼룩말도, 나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저자가 유년기의 숲속에서부터 생명에 대해 길러온 감각과는 너무도 어긋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괴상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분류학이 발전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생물이 사라져 가고, 인간과 자연이 단절되는 듯 보였다. 자연의 혼돈에 체계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정녕 헛된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진 저자가 빛을 발견한 것은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에서였다. 이는 '주변 세계'라는 뜻의 단어지만 생물학에서는 "한 동물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 즉 "지각된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공통으로 가진 움벨트가 철저히 감각적이며 극도로 주관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알게 된다. 움벨트는 그동안 과학의 가장 힘겨운 적수였으며, 200년에 걸친 분류학의 역사는 바로 과학이 인간의 움벨트와 싸워온 역사라는 것을. 그렇게 저자는 이 긴 이야기를 서문에서 단숨에 풀어놓고는, 마침내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라는 선언과 함께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 이상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놓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도"도 잊지 않고 마련해놓았다는 말과 함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경이로운 세계가 어느새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 끝말잇기
    김영진 (지은이) | 길벗어린이 | 2023년 10월 "순댓국에서 순댓국으로"

    생활 그림책의 일인자 김영진 그림책 열일곱 번째. 대한민국 대표 아빠 작가 김영진이 따뜻한 가족 이야기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감동과 즐거움을 담은 <끝말잇기>로 돌아왔다.

    볼록 나온 배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아빠는 그린이에게 등산을 가자고 권한다. 힘들고 지루한 등산이 싫은 그린이, 그때 문득 한 가지 묘안이 떠오른다. 바로 '끝말잇기'. "등산!" "산사태!" "태도!" 끝말잇기를 하다 보니 그린이는 산에 오르는 게 덜 힘들게 느껴진다. 계속 이어지는 단어에 둘의 수다는 끊이지 않고, 서로 간의 유대감 또한 점차 깊어져 간다. 끝말잇기에서 진 벌칙으로 아빠는 그린이에게 순댓국을 사주는데, 아빠의 표정은 왠지 흐뭇해 보인다. 그린이의 아빠 역시 부모님이 처음 순댓국을 사 주셨던 추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안 사줬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린이와 어린 시절 아빠가 순댓국을 먹는 모습이 나란히 펼쳐진다.

    <끝말잇기>는 일상 속에서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가족의 유대감을 상상력 넘치는 판타지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끊이지 않는 끝말잇기처럼 시간을 이겨 내고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우리네 가족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선사한다. 오늘은 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아이와 왠지 끝말잇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빠 먼저, 쿵쿵따 쿵쿵따 ~ ♪♩♬ 금요일!"

10.172023
  • 이해인의 햇빛 일기
    이해인 (지은이) | 열림원 | 2023년 10월 "작은 위로가 필요한 아픈 당신께"

    수도자의 삶과 시인의 삶을 함께 살며 아픈 마음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삶을 사는 이해인 수녀가 8년 만에 전하는 신작 시집. 하루만큼 해가 짧아지는 이 계절, 햇빛 한줄기의 희망으로 전하고 싶은 아픈 이들에게 시를 올린다. 2008년 투병을 시작하며 마음과 몸이 상한 이를 만날 일이 잦았던 시인이 위로의 마음을 담아 전하던 선물용 소책자에 실은 시를 중심으로 1,2부는 새로운 시를, 3,4부는 기존의 것들에서 가려뽑은 시를 담았다.

    "햇빛이야말로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며 특히 아픈 이들에겐 햇빛 한줄기가 주는 기쁨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9쪽)라는 말로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을 정한 소회를 푼다. '자비를 베푸소서dona nobis pacem'라는 낮은 자리의 기도를 더해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작은 희망의 햇빛 한줄기로 나아갈 길을 비춘다. 햇빛으로 / 얼굴을 씻고 / 손을 씻고 / 마음을 씻고 (81쪽, <햇빛 일기 2>) 다시 나아갈 당신께 드리는 시편.

  • 멀리 오래 보기
    비비언 고닉 (지은이), 이주혜 (옮긴이) | 에트르 | 2023년 9월 "비비언 고닉 비평집"

    <상황과 이야기>를 읽은 독자라면 비비언 고닉의 '페르소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있을 것이다. 그의 페르소나 개념은 쓸 때뿐 아니라 읽을 때도 주요하게 작동한다. 고닉의 쓰기와 읽기를 관통하는 이 관점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가 오랫동안 써온 비평 모음에서 또한 원했던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을 읽을 때, 그는 작품과 작가의 삶을 오가며 지금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목소리가 어떤 모습인지를 살핀다. 고닉에겐 이것이 읽기의 기본이자 코어다. 그리고 자신의 비평적 글쓰기용 페르소나를 불러내어 일인칭 '개인 비평'을 써나간다. 허먼 멜빌, 메리 매카시, 제임스 설터, 시몬 드 보부아르, 에리히 프롬, 한나 아렌트 등의 작가들과 그들의 글을 들여다보며 발견해낸 것들에 그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부딪혀서 고유한 읽기를 완성한다.

    그렇기에 비비언 고닉의 비평에서는 계속해서 고닉을 발견하게 된다. 명징한 문장, 시니컬한 찬사와 서늘한 비판, 이 진한 예리함. 장르를 넘어서 고닉의 글엔 고유의 인장이 있다.

  •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 에이도스 | 2023년 9월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신작"

    가로수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 소리,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바닷속을 울리는 갑각류와 바다 포유류의 합창 소리. 자연은 경이로운 소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초창기 지구는 고요 속에 있었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직접 소리를 내는 생물이 처음 출현한 것은 3억 년 전으로, 침묵에 가까웠던 육상 세계를 깨워 생물종의 소통을 시작한 것은 고대 귀뚜라미였다. 저자는 이 사건이 인간의 언어나 음악의 탄생과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는 "생물 진화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 말하며, 우리 지구가 다채로운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게 된 굵직한 진화적 사건들과 생물의 생존과 진화에서 소리가 가지는 의미를 탐구해 나간다.

    지구 역사상 오늘만큼 생명의 소리가 풍요로웠던 적이 없으며, 그 다양성이 이토록 위협받은 적도 없었다. 불과 1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이라는 단일종이 만들어낸 거대한 소음이 수억 년의 진화를 거듭해온 동물의 감각과 소리를 위협하고 다시금 침묵시키고 있는 것이다. 선박의 모터 소리에 바다 생물은 비명을 지르고, 사라지는 숲에서 동물은 거처를 잃고, 도시의 소음은 땅속 1km까지 침투해 야생의 소리를 부서뜨린다. 지구의 소리 다양성은 무수한 진화의 결과이자 창조 행위 그 자체이며, 우리 곁에 사는 생물종의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가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우치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저자는 야생의 소리를 탐구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 고립되고 끊어진 관계를 복원하고 치유하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구를 울리는 경이롭고도 연약한 생명의 음성을 되찾기 위하여. 자연에서 마음의 깊은 위안을 얻어본 적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브레인포그
    질 P. 웨버 (지은이), 진정성 (옮긴이)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9월 "내 삶의 몰입과 집중을 되찾는 방법"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간다. 현대인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해야 할 일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채 시시각각 급변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간다. 전쟁의 위협과 안보 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시끄럽기만 한 국내외 정치 갈등,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최신 기술에 대한 적응 요구 같은 이슈 등은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이다. 이런 와중에 매일매일 온갖 크고 작은 일에 치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삶에 대한 아무 의욕도, 의지도 생기지 않을 때가 있다. 할 일을 눈앞에 두고도 집중하지 못하고 감각이 무뎌지며 마음이 멍하며 붕 뜬 것 같은, 마치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이러한 현상을 스트레스성 ‘브레인포그’라고 한다.

    임상심리사로 활동하는 저자는 현대인을 브레인포그에 빠지게 만드는 대내외의 환경과 문제들을 없애는 것은 어렵지만,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관점을 바꾸어 브레인포그의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브레인포그가 알츠하이머나 ADHD 등의 의학적, 신경학적 의식혼탁 현상과는 달리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의 반응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풍부한 상담 경력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브레인포그의 구체적인 증상과 원인을 사회적, 심리적,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차근차근 제시한다. 깜빡거리는 기억력과 낮아진 집중력 등 안개 속에 빠진 것처럼 생각의 길을 잃은 현대인을 위한 멘탈 관리 트레이닝과도 같은 책이다.

10.202023
  •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강정, 강지혜, 고선경, 고영민, 권누리, 김근, 김선오, 김연덕, 김이듬, 류휘석, 박연준, 박철, 박형준, 변윤제, 성동혁, 손미, 신미나(싱고), 신이인, 안도현, 안태운, 안희연, 오은경, 유진목, 유형진, 이기리, 이선욱, 이설야, 이승희, 이영광, 이영은, 이영주, 이예진, 이은규, 이진우, 이혜미, 이훤, 임솔아, 임승유, 임유영, 장승리, 전동균, 전욱진, 정다연, 정한아, 조온윤, 조해주, 조혜은, 최지은, 한여진, 한정원 (지은이)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시란 무엇인가, 200번의 대답"

    2011년 최승호, 허수경, 송재학의 시집을 시작으로 200개의 빛깔로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200번의 대답을 더한 문학동네시인선이 티저 시집으로 200번을 꾸린다. 앞으로 이 시인선을 새로운 빛깔로 채울 시인 50명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각자의 대답과 신작시를 함께 배치했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의 박형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의 안희연처럼 시 읽는 독자가 기다렸을 시인부터 <샤워젤과 소다수>를 막 출간한 고선경과 다음 주 <오믈렛>을 출간할 임유영까지 경력과 관점이 각기 다른 시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시에 응답한다.

    문학동네시인선의 기획위원인 신형철은 시인의 고충과 독자의 고충에 관한 펴내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나는 시를 위해 세상과 대결하고 있는 듯한 비장한 억울함'(5쪽)이라면 시가 나를 밀어낸다고 느낀, 시 읽고 싶은 독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일 것이다. 적어도 내게 어떤 시는 시집이 도착하고 한참 지나 도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와 나의 상황이 만나 비로소 시가 내게 온 순간의 희열은 계속 시 읽고 싶은 독자로 남아있게 했다.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의 시인 손미는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오고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답했다. 시라는 신발, 언젠가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인도할 무엇이 내게 오는 길을 예지하는 미래의 시가 이곳에 왔다.

  • 로마 이야기
    줌파 라히리 (지은이), 이승수 (옮긴이) | 마음산책 | 2023년 10월 "줌파 라히리 신작, 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집"

    이탈리아라는 낯선 땅에 매료되어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뽑아 고국이라는 하나의 경계를 떠나왔지만 그 대가는 예상보다 크다. 로마의 여러 풍경을 담은 아홉 편의 소설에는 그렇게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로마를 사랑하지만 현지인이 건넨 말 한마디 속 숨은 의미와 그가 제멋대로 내린 판단을 감지하며 순식간에 바닥으로 치닫는 마음, 처음 로마를 방문한 관광객의 찬탄에 이곳에서 느낀 어둠이 더욱 크게 다가와 저도 모르게 짓게 되는 냉소, 어렵게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구했지만 이웃의 적대감을 견디지 못해 떠나는 슬픔, 본토 친구들과 같은 일상을 만끽하고 싶지만 부모 나라의 관습을 강요받으며 겉도는 아픔.

    "참 엿같은 도시야.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들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하나의 영토에 완전히 속하지 못했기에 예민하게 느끼는 괴리감와 불안,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게 느끼는 자극과 자유. 우리는 이름과 국적, 나이와 성별이라는 일종의 족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오로지 '나'로만 존재할 수는 없을까. 처음 이탈리아를 방문한 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사랑에 빠져 20년간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끝에 로마로 이주해 오랜기간 거주한 줌파 라히리. 그가 이탈리아어로 세 번째 작품을 썼다. 스스로 선택한 국가의 언어와 문화는 작가에게 또 다른 정신적 공간을 열어, 타고난 정체성을 버리는 탈주를 허락하고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경계를 넘어 로마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낸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 기적의 자세요정
    자세요정 (지은이) | 다산라이프 | 2023년 10월 "오늘도 어깨가 무거운 당신에게"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한 손으로는 마우스를 연신 움직인다. 출근한지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깨가 단단하게 뭉치는 느낌과 함께 피로가 몰려온다. 스트레칭이라도 제대로 하면 컨디션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사실 방법을 잘 모르겠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면 몸을 더 움직이기 싫어진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일상인 이 통증과 무력함의 원인은 바로 자세 때문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130만 구독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자세요정'은 물리 치료사이자 필라테스 강사로, 현대인들이 스스로 몸을 이해하고 통증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이 책에서 상세히 안내한다. 큼지막한 운동 사진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그린 인체 해부학 일러스트가 실려있어 어느 곳에 자극을 주며 운동을 해야 할지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하루 딱 10분, 지친 나를 위한 에너지 충전을 해보자. 어쩌면 내일 아침은 조금 가벼워질지도.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조금 너그러워질지도.

  • 어머니를 돌보다
    린 틸먼 (지은이), 방진이 (옮긴이) | 돌베개 | 2023년 10월 "정희진 강력 추천"

    어머니의 발병, 그리고 11년간의 돌봄. 작가 린 틸먼은 이 짧은 문장에 담긴 실제 삶의 모습을 펼쳐 보여준다. 이성과 비이성을 오가는 어머니의 정신은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고 간병인은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거나 가족과 잘 맞지 않는다. 여러 의사들은 어머니의 병에 관해 명쾌한 진단과 신속한 치료를 해주지 않으며, 이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박탈당한 자유와 가혹한 의무를 껴안고 괴로워한다.

    책은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에 수반되는 좌절, 분노, 짜증, 고통, 죄책감, 불안의 면면을 생생히 담고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아직 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겪지 않은 자녀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상황을 마주할 일이 없을 자녀들은 "행운아"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소수이며, 이에 해당 사항 없는 나머지들은 저자와 거의 비슷한 경험을 되풀이하듯 겪을 수밖에 없으리라. 경험이 겹치는 독자에겐 삶의 독소를 일부 해방시킨 것 같은 위로를, 훗날 닮은 경험을 마주할 독자에겐 삶이 품은 필연적 아픔에 대한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책이다.

10.242023
  • 책으로 가는 문
    미야자키 하야오 (지은이), 서혜영 (옮긴이) | 다우출판사 | 2023년 10월 "소중한 책 한 권이면 됩니다"

    <미래소년 코난>,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리고 최근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올린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독서 에세이 <책으로 가는 문>은 2013년에 국내 초역본으로 출간된 바 있다. 독자들의 요청과 지브리의 제안으로, 오랜 절판 기간을 깨고, 새로운 번역본으로 복간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세계 명작 중 50권을 엄선하여 소개하는 이 책은, 50권의 명작과 각 권에 관한 소회를 함께 수록한 1부와, 책을 만난 시절, 애니메이션의 현장 등의 이야기를 담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다정하고 위트 넘치는 저자의 코멘트에 지금은 접하기 힘든 원서 표지와 일러스트도 함께하여 읽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어린이문학을 "태어나길 잘했구나."라고 말하는 문학이자,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문학임을 규정하는 부분에서 어린이와 책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독보적인 그의 작품 세계에 어린이문학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책 한 권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꿈의 분자 RNA
    김우재 (지은이) | 김영사 | 2023년 10월 "2023 노벨생리의학상 커털린 커리코의 연구 소개"

    코로나19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mRNA 백신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커털린 커리코. 그가 걸어온 고단한 길은 주류 엘리트 과학자들의 화려한 경력과는 거리가 멀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 대학과 학계의 차가운 홀대, 그리고 계속되는 연구 실패와 특허 강탈까지. 1985년 미국에 도착하여 RNA 연구를 계속하던 커리코는 2005년 현재의 mRNA 백신 기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RNA 변형 방법을 개발하여 면역 반응을 피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들 수 있음을 논문으로 입증해낸다. 그러나 계속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한 커리코는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했다.

    2012년 커리코는 항바이러스성 치료에 mRNA를 사용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받았지만, 이에 대한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펜실베이니아대학교는 특허를 헐값에 팔아치운다. 1978년부터 2013년까지, 장장 35년 동안 커리코는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계속 논문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며 실험실을 떠나지 않고 연구에 집중했다. 커리코의 삶은 학계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연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온 ‘보통 과학자’의 삶을 보여준다. 저자는 "커털린 커리코의 mRNA 백신 개발 이야기 속에는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과학 생태계의 현실이 숨어 있다."고 말하며 그 과정을 생생히 풀어낸 후, RNA의 발견과 응용,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물학에서 20세기는 "DNA 독재의 시대"에 가까웠다. 1953년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논문이 발표된 후 과학자들은 복잡한 생명 현상을 DNA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왔고, 그 명성에 가려 RNA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생물학의 최신 연구가 RNA가 생명 현상의 거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중요한 분자라는 점을 입증하며 최근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RNA가 최초의 지구 생명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인간과 침팬지 두뇌의 결정적 차이도 RNA 때문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도 발견되었으며, mRNA 백신으로 암을 정복하려는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생물학자들에게 ‘혁명의 분자’라 불리는 RNA에 관한 모든 것을 풀어내는 책.

  • 불타는 작품
    윤고은 (지은이)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일단 유명해져라, 작품을 태워서라도"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을 수상한 윤고은의 장편소설. 물리학자 김상욱의 추천대로 '한마디로 기상천외하고 흥미진진'하다.

    12년 전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는 미술작가 안이지는 잊혀지던 작가였다. 생계를 위해 '빨리' 어플의 라이더로 쉐이크쉑 버거 배달을 하던 안이지는 로버트 재단의 창작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불타는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제안은 이러하다.

    로버트 재단 인근 도시(Q)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한다.
    항공권, 체류비, 활동비, 전시 등을 지원하되 전시회 마지막 날에 작품 중 하나를 소각한다.

    NFT화를 위해 원본을 불태운 데미안 허스트가 연상되는 제안이다. 작가들의 이력의 가장 화려한 한 줄이 될 만한 기회. 로버트가 개라는 것, 로버트가 안이지의 작품에 좋아요를 누른 게 그가 선택된 이유의 전부라는 것은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랜드 캐니언의 프로포즈 사진의 촬영자로 널리 알려진 개, 파피용, 로버트의 심미안을 의심하는 이는 이 세계에 없다. 안이지는 작품을 불태울 것이고, 존재하지 않을 작품이 그를 유명하게 해줄 것이다.

    앤디 워홀이 했다는 창작에 관한 명언,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똥을 싸도 박수쳐 줄 것이다."는 실제로 그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복제와 복제를 거치면서 예술과 진실 사이엔 거리가 생겼다. 배달 어플의 한 점이 된 라이더가 걸어오는 경로가 효율적인지 휴대폰 액정으로 지켜보는 일, 화재로 실제로 타오르는 캘리포니아의 거리를, 그 공간에 살던 사람들에 아랑곳없이 아름다운 색채로 인식하는 일, 유리 온실 안에서 창 밖의 새의 아름다움을 조망하되 유리에 부딪친 실제 새의 온기엔 신경을 끄는 일. 이 똥같은 사회에 갇힌 우리의 처지에 대해 윤고은의 소설은 덧칠해 나간다. 무엇이 진실일까? 소설의 질문에 사로잡힌 채 독자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윤고은은 진짜다.

  • 올웨더 투자법
    판교불패 (지은이), 경제냥이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비가 오면 우산을, 날이 맑으면 나막신을 팔아라.”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맑은 날에는 우산을 파는 아들을 걱정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나막신을 파는 아들을 걱정하던 어머니가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바꾸어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파는 아들의 장사가 잘되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파는 아들의 장사가 잘되리라 생각하며 기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쓸데없는 걱정과 의심을 거두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주는 동시에, 투자자에게는 '날씨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미리 알고, 무엇을 팔지 미리 준비할 수 있으면 날씨가 언제 어떻게 바뀌어도 계속 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는 깨우침을 준다. 그렇다면, 날씨가 바뀌기 전에 미리 알 방법은 무엇일까? 언제 우산을 팔고, 언제 나막신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을까? 우산과 나막신 말고 또 뭘 팔 수 있을까?

    국내 대기업에서 원자재 트레이더로 일하며 글로벌 시장의 움직임을 주도적으로 분석해 온 저자는 '판교불패'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거시경제 지표 분석을 기반으로 한 종목 추천을 해왔다. 저자는 경제는 언제나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며, '침체 → 회복 → 호황 → 하락'이 네 가지 시점에 따라 돈이 흘러가는 자산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한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으로 부족하고 불안한 현실 때문에 'N잡'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저자는 투자에서도 반복되는 경기의 네 가지 국면이 전환하는 시점을 포착하여 외환과 금, 채권, 원자재, 부동산, ETF 등에 대한 'N베스트먼트(N + Investment)'로 시장 기후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블로그에서 대가 없이 추천한 종목에 실제 투자하여 높은 수익을 낸 사람들의 자발적인 수익률 인증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10.272023
  •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정세랑 (지은이)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정세랑, 역사 미스터리로 돌아오다"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정세랑이 3년 만에 역사소설, 추리소설, 설자은 시리즈로 돌아왔다. 때는 통일신라 신문왕 시대. 죽은 오빠 자은의 신분으로 유학생활을 한, 한때 미은이었던 '설자은'이 당나라에서 금성으로 돌아온다. 집안을 일으켜야 할 의무를 짊어지고 귀향하는 길 배 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설자은은 망국인 백제 출신 목인곤과 패를 이루어 이 사건을 해결하며 점차 가장 깊은 금성, 왕궁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데.

    호수에 비친 황금빛 궁궐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드넓은 소설적 공간을 누비는 활달한 이야기는 마음을 실어 좋아하고 싶은 인물들의 활약과 함께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간다. '잘 보관한 멥쌀처럼 습기가 없는', '데면데면한' 설자은의 캐릭터와 '바다에서 미끄러운 것을 주웠구나' 설자은을 탄식케 하는 식객 목인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개성적인 인물들이 활보하며 미혹을 걷어내고 사건을 바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 아름답고 서러운 길쌈 대회를 하는 여인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이야기와 함께 계속될 금성 여행을 기대하며 첫 권을 권한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와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가 독자를 만날 예정이다.

  •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한동일 (지은이)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마음이 힘든 당신에게"

    한국 최초의 로타 로마나 변호사. 어려움 없이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 탄탄대로를 살아왔을 것 같은 이력이지만 번쩍이는 성취와 별개로 어떤 삶에든 아픔, 수치, 고통, 창피는 있다. 이 책은 한동일이 사제직을 그만둔 뒤, 고민과 방황을 거듭하는 흔들리는 나날을 보내며 쓴 글들의 모음이다.

    고통의 날 동안 그는 라틴어 문장들을 입에 굴리고 머리에 새기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에게 라틴어는 "공부의 대상만이 아니라, 생을 받치는 머릿돌 같은 기도와 초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Qui quae vul dicit, quae non vult audiet.'(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내키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Vexatio stora fiat.'(아픔이 스토리가 되게.) 등, 그는 자신에게 등불이 되어준 문장들을 아낌없이 책에 풀어 두었다. 정신이 단단할 땐 무심결에 지나칠 문장들도 마음이 고통에 잠겨 있을 땐 사무치는 법.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문장들로 잊고 있던 신념과 태도를 재단장 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
    아네테 멜레세 (지은이), 용희진 (옮긴이)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3년 10월 "누가 스텔라의 단잠을 훔쳐 갔을까"

    누군가 '언제 아이가 가장 예쁘세요?'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을 할까? 정답은 없지만, 이상적인 대답으로는 아마 '존재 자체로 예쁘고, 존재 자체로 행복이다.'정도 아닐까? 하지만 육아는 현실이고, 생각보다 힘들다. 만약 어떤 누군가가 '아이가 잘 때요'라고 답한다면, 난 넌지시 공감을 표할 것 같다. 그만큼 아이를 재우는 일은 엄마, 아빠에게 피할 수 없는 매일 일과이자 하루의 마지막 일과이다.

    오늘 스텔라를 재우는 일은 아빠의 몫이다. 오늘 밤 엄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빠는 스텔라에게 책을 아홉 권이나 읽어 줬는데도 스텔라의 눈은 말똥말똥하다. 아빠는 '단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언제 배송이 되냐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배송 완료', 과연 스텔라의 단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누가 훔쳐 갔다고 확신한 아빠와 스텔라는 장난감 하마와 플라밍고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단잠을 찾기 위한 한밤중 대소동이 시작된다.

    <키오스크> 아네테 멜레세 신작. 아이와 부모 간의 잠자리 소동을 유쾌하게 드린 그림책이다.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은 두 아이의 엄마인 작가가 실제 딸아이 스텔라를 토닥이며 재우던 중 유난히 잠들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든 생각을 그림책으로 옮겼다고 한다. 2023 dPICTUS 뛰어난 그림책 100 선정작. 2023 볼로냐 라가치상 브로 어메이징 북셸프 선정작.

  • 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은이), 이동윤 (옮긴이) | 푸른숲 | 2023년 10월 "악을 이기는 악에 대한 탐구"

    당신에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 모두에게 '죽여 마땅한 사람'이라 불리며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누군가가 실제로 죽여주겠다고 한다면,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죽어도 싼' 사람은 죽음으로 심판받아도 용납되어야 하지 않을까. 피터 스완슨의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우리가 믿고 있던 선과 악에 대한 경계를 파고드는 위험한 소설이었다. 집필에만 8년이 걸린 그 후속작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또다시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어온 질문들을 태연히 건넨다.

    심증은 확실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아 경찰도 수사를 포기한 연쇄살인범. 그를 잡기 위해서는 오직 그의 방식대로만 게임에 참가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거대한 악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면 그것보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악을 저질러도 될까.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악을 이기는 악"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피터 스완슨은 독자들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로 그는 자신의 높은 기준을 다시 한번 뛰어넘었다."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추천한 소설.

10.312023
  • 파견자들
    김초엽 (지은이)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장편소설"

    그 작고 푸른 점이 지금의 인간에게는 광증으로 뒤덮인 미지의 세계. 인간은 고향 행성을 빼앗기고 지하로 내려왔다. (46쪽)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중국 성운상, 은하상 등을 수상하고,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로 15만 독자와 만난 김초엽이 두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식물과 함께 세계의 끝으로 향하던 상상력이 지하 세계로, 균의 서식지로 향한다. 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한 푸른점'은 이제 타자의 것. 지구 바깥이 아닌 지구 아래에서, 범람하는 균이 유혹적인 빛깔로 문명이 남겨둔 건축물을 잠식한 세계를 상상하며 SF가 시작된다.

    광증을 퍼트리는 아포(芽胞), 포자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인간은 어둑한 지하세계에 살고 있다. 하늘의 노을과 별빛, 지상의 황홀한 색채를 그리워하는 태린은 지상을 갈망한다. 지상을 오갈 수 있는 존재인 '파견자'가 되기 위해 태린은 자격시험에 응시한다. 지하세계의 질서의 부적응자였던 태린은 그 부적응 덕분에 머릿속 '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쏠'의 도움으로 높은 점수로 태린이 시험을 통과하는 순간 발생한 사건으로 세계는 위험에 처한다. 이제 이어지는 질문, 이제 우리는 위험에 처한 이 세계가 과연 우리의 세계인지, 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의지가 나의 의지인지 그 경계에 대해 답해야 한다.

    단행본 430쪽 가량의 분량의, 장편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게감 있는 소설이 속도감 있게 이어진다. 서바이벌 게임의 한 챕터를 넘어서는 감각으로 인물과 함께 상승하며 마주하는 경계에 관한 질문. 이제 게임이 시작된다.

  • 붉은 궁
    허주은 (지은이), 유혜인 (옮긴이) | 시공사 | 2023년 10월 "2023 에드거상 수상작, 뉴욕공립도서관 선정 최고의 책"

    "따라오거라. 질문은 일절 하지 말고." 한밤중의 창덕궁, 의녀 현은 불안한 마음으로 의원의 뒤를 따라간다. 한참을 걸어 그가 당도한 곳은 커다란 전각. 현판에 "저승전"이라고 쓰인 그곳은 사도세자의 처소였다. 세자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여러 겹의 문을 통과해 다다른 궁의 깊은 곳엔 한 남자가 이부자리에 누워 있다. "말해보게. 저하의 문제가 무엇인가? 종일 힘을 못 쓰고 피곤해하신다네." 세자빈의 음성에 왕족을 치료한다는 두려움으로 질끈 감았던 눈을 뜬 현은 충격에 휩싸인 채 얼어붙는다.

    의원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태연하게 그를 진맥하고 증상을 읊지만 탕약을 든 현의 손은 부들부들 떨린다. 세자빈은 그런 현에게 계속해서 세자를 치료하고 "전하께서 저하를 부르실 경우 몸져누워 계신다 고하라."고 명한다. 공포에 질린 현에게는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 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딘가 괴이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 세자의 방에 꽂혀 있는 책들도 주술서와 귀신을 다루는 법에 대한 서책이었다. 소문대로 세자는 무언가에 홀린 것인가. 그렇게 흐르던 칠흑 같은 밤은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내관의 고함에 산산조각난다. "도성에 큰 화가 닥쳤습니다. 마마. 사, 사, 살인,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궁에 들어가는 이들 앞에는 피로 얼룩진 길이 놓여 있다. 피바람이 불 것이야. 너희가 피를 흘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에게 의술을 가르친 스승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자신이 의술을 연마한 혜민서에서 벌어진 미궁의 살인 사건을 마주한 현은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겠다는 각오로 그 피바람의 중심으로 향한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에 이어 또다시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로 돌아온 허주은 작가의 신작으로 2023년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수상, '뉴욕공립도서관 선정 최고의 책' 등 미국에서 먼저 큰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에서 "감탄할 만한 정치 스릴러, 치밀한 배경 구축,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은 독자를 완전히 사로잡는다."고 추천했다.

  •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이용한 (지은이)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길에서 살아남아 성묘가 된 기적의 40냥이들"

    아기 고양이가 살아남아 성묘가 될 확률은 3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요소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 어렵게 살아남더라도 그 수명조차 3년 안팎으로 매우 짧다.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길 위의 고양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혹독한 일이고, 무사히 살아남아 성묘가 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2009년 첫 번째 고양이 책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시작으로 다양한 고양이 책을 집필한 '고양이 작가'이자, '고양이 식당' 운영자 이용한 시인이 새롭게 펴낸 이번 책은 기적의 40마리 고양이에 관한 특별한 기록이다.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코너로 어린 시절의 모습과 성묘가 된 이후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오랜 기간 깊은 사랑으로 살뜰하게 보살펴온 고양이 각각의 사연과 성장 과정을 들려주며 울고 웃게 만든다.

  • 당신의 방에 아무나 들이지 마라
    스튜어트 에머리, 아이반 마이즈너, 더그 하디 (지은이), 신봉아 (옮긴이) | 쌤앤파커스 | 2023년 10월 지금, 당신의 방에는 누가 있습니까?

    당신이 하나의 방 안에서 평생을 산다고 상상해 보자. 그 안에는 당신과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이 모여 있고, 그 방은 무한히 넓으며,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 방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방에는 문이 하나뿐이며, 입구는 될 수 있지만 출구는 될 수 없다. 즉, 모두 들어오기만 할 뿐 아무도 나가지 못한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방에 들어오려고 할 때 까다롭게 따져보고 입장을 허락할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방 안으로 들이고 누구를 들이지 않아야 하는가? 방 안에 이미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때문에 우리는 종종 내키지 않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인연을 맺은 뒤 고통스러워한다. 혹은 가족처럼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지쳐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인간관계를 나가는 사람이 없는 하나의 방에 비유한 것은 어떤 면에서 진실과 맞닿아 있는데, 뇌과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알고 지낸 수많은 사람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누구를 방에 들어오게 할지, 일단 들어온 사람들은 어디에 머물게 할지 신중히 결정해야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갈 수 있으며, 이 책은 ‘문지기’와 ‘관리인’의 개념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그 방의 주인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