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불세출의 기교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처음에 만돌린을 배웠다. 그러다가 바이올리니스트로 출세하면서 마치 개선장군처럼 유럽 어느 곳에서든지 열광적인 절찬을 받게 되었다. 그는 비에냐프스키, 요아함, 사라사테 등 바이올린계의 4걸로서 낭만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교주의자(Virtuoso)들의 선봉자였다.
신동이었던 그는 8세에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으며, 11세 때는 대중 앞에 나섰고, 16세 때는 독보적인 존재로서 이탈리아 각지를 순방하였다. 그가 46세였던 1828년 이후로 베를린, 비인, 런던, 파리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각지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바이올린 음역을 확대시켰고, 매혹적인 화성과 음의 광채를 내는 작품을 만들었다. 주법적으로는 높은 음에서의 더블 스토핑을 만들기도 했다. 배음의 연주, G선만의 연주, 왼손으로 줄을 튕겨 오른손의 활의 음과 결합시키는 등 놀라운 주법을 선보였고 이런 기교는 근대 바이올린 주법의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