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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23
  • 내면소통 (10만 부 기념 내면소통 워크북)
    김주환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2월 "<회복탄력성> 김주환 신작"

    2시간짜리 스트리밍 강의들 조회수가 5만을 훌쩍 넘고, "인생을 변화시켜 주셔서 감사하다"는 장문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 대중에게 각인시킨 김주환 교수의 유튜브 얘기다. 내면의 나와 소통하여 마음근력을 키우는 방법을 10여 년간 연구해온 그가 연구 내용을 총망라하여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출간만을 기다려온 팬들의 초기 공세가 매섭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커뮤니케이션학 연구자로서 인간 소통을 연구해온 김주환 교수는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소통을 나와 나 사이의 소통, 내면소통이라고 말한다. 내 안에 있는 여러 자아 중 참 나(I)를 제대로 인지하고 단련해야 튼튼한 마음의 근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뇌과학, 심리학, 물리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간학문적 연구를 통해 내면소통의 방법을 설파하고 과학적 증명으로 뒷받침한다. 덕분에 책의 크기와 두께가 상당하지만 저자의 유튜브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니, 의지만 있다면 독서에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권오현, 김미경, 김봉진, 최재천, 김대식, 채정호, 최재붕, 장동선 등 묵직한 이름들이 추천했다.

  • 고요한 우연
    김수빈 (지은이) | 문학동네 | 2023년 2월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주인공 수현의 시선 끝에 언제나 동경과 선망의 대상인 같은 반 친구 '고요'와 '정후'. 같은 공간이지만 맞닿을 일은 없는 이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뜻밖에도 희미한 존재감으로 관심조차 없던 '우연'이라는 아이 때문이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친구에 대한 궁금증을 SNS라는 통로를 빌어 현실과는 다른 그들의 행동과 속마음을 알게 되고 동경의 대상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라는 것과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자신 또한 누군가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고요한 우연>은 동화 <여름이 반짝>에 이어 청소년 소설까지 2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진 김수빈 작가의 신작으로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 지닌 작고도 반짝이는 힘을 그린 소설이다. SNS를 통해 익명의 상대와 그들만의 관계를 형성해 가는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존중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독고솜에게 반하면>, <훌훌>의 감동을 잇는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의 2023년 대상 수상작.

  • 열세 살 우리는
    문경민 (지은이), 이소영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2월 "흔들리는 건 이미 해 봤으므로"

    <훌훌>, <우투리 하나린>의 작가 문경민이 어린이 동화로 돌아왔다. 살얼음판 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해서든 꿋꿋이 버티고자 노력하는 열세 살의 이야기로. 보리의 아빠는 희망퇴직 대상자이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은 집안의 평화를 앗아갔다. 간간이 무너지는 엄마를 보며 보리의 마음 한구석도 무너져내렸다. 그 틈을 파고든 건 가장 친한 친구 루리의 관심이 아니라 보리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엇나간 세희였다.

    마음이 당구공 마냥 자꾸 엇나가는 열세 살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 이야기는 가장 비슷한 형태로 대부분의 가정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는 보리가 됐다가 루리가 됐다가 세희가 된다.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은 마치 내 친구인 양 곁에서 숨쉰다. 책을 덮으면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지금처럼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고 싶"어 가슴이 쿵쾅거린다. "흔들리는 건 이미 해 봤으므로, 단단한 지렛대"로 힘든 일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 조셉 머피 잠재의식의 힘
    조셉 머피 (지은이), 조율리 (옮긴이) | 다산북스 | 2023년 2월 "드디어 복간된 조셉 머피의 대표작"

    조셉 머피는 1898년 5월 20일 아일랜드 카운티코크에 있는 작은 마을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우수한 학생이었던 조셉 머피는 예수회 교육기관인 아일랜드 국립학교의 부재이자 교사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사제가 되기 위해 예수회 신학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며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한때 약학을 공부하여 약국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2차대전 참전 기간 종교에 다시 관심을 두고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으며 여러 종교의 교리를 공부했다. 제대 후에는 미국 전역과 해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대학에서 수많은 강의를 들었고, 아시아의 여러 종교에 매료되어 인도로 건너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폭넓게 연구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신사고 운동(New Thought Movement)을 지지하며 저술과 강연 활동에 집중했다.

    조셉 머피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문제 안에 있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을 바꿔야 하며, 자신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운명의 주인으로 자각하고 잠재의식의 힘을 사용하여 더 나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데일 카네기, 나폴레온 힐 등의 정신적 계승자이자 토니 로빈스, 지그 지글러, 얼 나이팅게일 등 동시대 자기계발서 작가들의 선구자로서 강연과 저술, 설교, 라디오 방송, 카세트테이프와 레코드, CD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가운데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잠재의식의 힘>은 전 세계 17개국에 번역되었으며, 수백만 부가 팔리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잠재의식의 힘>을 포함하여 이번에 발간된 조셉 머피 시리즈(총 5권)은 머피 트러스트에서 인정받은 유일한 공식 저서로, 펭귄랜덤하우스에서 출간한 10권을 각각 주제별로 묶어 5권으로 새롭게 재편집하였다.

3.72023
  •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은이), 강동혁 (옮긴이) | 문학동네 | 2023년 2월 "2022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20세기 초, 월 스트리트를 지배했던 한 사람이 있다. 당시 미국의 경제 호황은 뉴욕 시민 모두에게 성공의 열차에 올라탔다는 환희와 무한한 낙관주의를 선사했다. 이 열기가 흥청거리며 공기를 떠도는 막연한 감정이었다면, 앤드루 베벨은 부의 축복 세례를 정면으로 받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된 돈을 모시며 그 신전에서 거주하는 사람이었다. 풍요의 시대가 그 탄생만큼이나 빠르게 저물며 대공황을 맞을 때에도 베벨의 재산은 계속해서 증식했다. 그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기 베벨에 대한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이 있다. "그는 돈의 뒤틀림에 매료됐다. 돈을 뒤틀면, 돈이 자기 꼬리를 억지로 먹도록 만들 수 있었다."라고 베벨을 묘사한 소설 <채권>. 이 소설이 공상에 의거한 악의적인 비방이라며 명예훼손 소송을 건 베벨이 자신의 얘기를 풀어낸 자서전 <나의 인생>. 이 자서전을 대필한 아이다 파르텐자가 쓴 진솔한 후기 <회고록을 기억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앤드루 베벨의 배우자 밀드레드 베벨이 쓴 일기 <선물>이다.

    이 책의 커다란 매력은 글에 따라 문체와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채권>은 상류사회와 사교계를 그린 이디스 워튼의 소설을 닮았고, <나의 인생>은 타인이 언제나 자신의 말을 경청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위대한 미국 남자" 프랭클린이나 카네기의 자서전을 닮았다. <회고록을 기억하며>는 일상 속의 작은 어긋남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유명 에세이스트의 글을 연상케하고, <선물>은 한 곡의 재즈처럼 순간의 단상들이 휘갈겨져 있다. 독자는 네 개의 목소리를 넘나들며 숨어있는 진실의 조각을 찾아야 한다. 유례없는 번영의 시대에 대한 생생한 묘사, 돈의 속성에 대한 통찰도 깊이를 더한다. 독서의 묘미를 한껏 맛보며 탐독할 수밖에 없는 수작이다.

  •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지은이), 박경선 (옮긴이) | 글항아리 | 2023년 1월 "비비언 고닉이 몸으로 살아낸 도시, 뉴욕"

    여자이고, 뉴요커이며,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 비비언 고닉은 <사나운 애착> &;, lt;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두 권의 에세이를 통해 뉴욕에서 이민 가정의 여성으로 나고 자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드러내며, 날카로우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자전적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사나운 애착>에 이어 비비언 고닉 선집 두 번째 책인 이번 신작은 여성을 다루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작가 스스로 평가한, 조지 기싱의 소설 <짝 없는 여자들>에서 영감을 받았고, 작가는 자신을 ‘짝 없는’ 여자라고 명명한다.

    ‘짝 없는’ 작가는 홀로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곳곳을 거닐며 관계를 맺고, 사유하고, 기록한다. 열렬히 사랑했으나 사랑의 종말을 맞이한 연인, 친구들, 어머니와 이웃들, 예술가와 지식인들, 거리의 사람들 등 다양한 존재와 나눈 대화를 작가만의 지적인 언어로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대화 속 군중의 면면과 목소리들, 그리고, 작가가 온몸으로 감각해온 삶의 방식을 자유로이 교차시키면서 뉴욕을 사랑, 우정, 관계, 상실, 갈등, 실패, 불안정 등의 총체인 도시로 그려낸다. 뉴욕을 무대로 작가의 걸음걸음마다 펼쳐지는 지성의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한승혜, 박정훈, 김용언, 심진경, 이라영, 조이한, 정희진, 장은수 (지은이) | 문예출판사 | 2023년 2월 "폄훼된 여성들을 위한 문학적 진혼굿"

    학창 시절 추천도서, 필독도서를 두루 섭렵하던 여자아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 이런 깨달음에 배신감을 얻게 되는 순간이 한 번은 온다. "빅토르 위고나 폐기처럼 교과 과정에 있는 작가를 공부해 볼까. 구역질이 난다. 그 안에는 나를 위한 것, 내 상황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묘사하거나 이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게끔 도와주는 대목은 한 구절도 없다." (아니 에르노, <빈 옷장>) 고전 소설의 작가는 대부분 남성, 화자도 남성이다. 나의 성별에 무심한 채 소설의 관점에 내 시선을 맞추며 성장기를 지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내가 읽어온 작품들에서 입체적으로 고뇌하는 주인공의 성별은 나의 것이 아님을. 큰 관심 없이 흘려보냈던 맞거나, 강간 당하거나, 무시당하거나, 속물적으로 유혹하거나, 수발을 드는 그 역할의 성별이야말로 대체로 나의 것이었음을.

    깨달음 후에 다시 읽는 책들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왜 이 여자는 고작 이렇게 소비되는가. 이 여자는 이 상황에서 정말로 이렇게 생각했을까. 이해되지 않는 장면과 모욕 당한 기분. 마음속에서 버려지는 책들이 어느덧 산처럼 쌓이는 와중에 등장한 이 책은 걸작이라 칭송받는 고전들을 모아 고발한다. 여덟 명의 저자는 각각 고전 한 권씩을 불러내어 여성 혐오에 대한 죄명을 묻고, 심문하고, 폭로하고, 훼손당한 여성 캐릭터의 억울함을 달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달과 6펜스>, <안녕 내 사랑>, <그리스인 조르바>... 면면이 화려한 이 제목들을 다시 읽고 확장적으로 재해석한다.

    책은 소설의 시대적 한계를 무시하면서까지 현재의 발전적 관점을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시대와 엮어, 작가가 어떤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 의도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인지까지 추측해 보길 권한다. 이는 작품에 대한 훼손이 아니라 차라리 작품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여러모로 살폈을 때 일부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 작품이라면 이제는 칭찬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선언을 해도 되지 않을까.

  • 조선 미술관
    탁현규 (지은이) | 블랙피쉬 | 2023년 2월 "궁궐 담장을 사뿐히 넘으면"

    화창한 하늘 아래 산천초목이 우리를 부르는 봄이다. 만개한 조선의 봄을 그림 속에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일한 고미술계 스타 해설자 탁현규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조선 미술관'을 소개한다. 특별히 그가 주목한 것은 조선 후기의 풍경들이다. '조선의 산천과 의식주를 사실대로 담았던 17-18세기 그림을 통해(관습적으로 그리던 중국의 물소가 사실적인 우리의 황소로 제 얼굴을 찾은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9쪽)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부 궁궐 밖의 사사로운 날들, 2부 궁궐에서 열린 성대한 잔치로 나누어 1부에선 조선 여염의 풍류와 흥취를, 2부에선 숙종과 영조가 '기로소'(왕은 60세가 되면 '기로소'에 들어가는 경사를 누렸다.)에 들어가는 잔칫날의 풍경을 들여다 본다.

    신윤복의 <이부탐춘>에서 봄빛을 즐기는 과부를, 김희겸의 <야주취월>에서 저녁 뱃일을 마치고 취기가 적당히 올라 달빛을 감상하는 어부를 본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신선의 경지에 오른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 조선의 진면목은 이 평온한 얼굴 속에 있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같은 화가들의 담백한 그림과 함께 태평성대 조선을 만날 수 있는 '조선 미술관'으로 입장해 본다.

3.102023
  •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지은이), 민경욱 (옮긴이)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3년 1월 "소설로 만나는 신카이 마코토 최신작"

    규슈의 오랜 항구 마을, 햇살에 반짝이는 파란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은 스즈메의 등교길이다.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언덕을 내려가던 스즈메는 한 이방인과 마주친다. 근방에 폐허가 있냐는 그의 물음에 스즈메는 의아해하면서도 산속을 가리킨다. 거품 경제 시절에는 이름난 온천 명소로 커다란 리조트가 있었지만 지금은 쇠락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다. 고맙다며 성큼성큼 산 쪽으로 걸어가던 뒷모습과 그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 스즈메. "문을 찾고 있어." 그렇게 산을 향하며 스즈메의 첫 번째 문단속이 시작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영화 제작과 동시에 쓴 소설. 영화관에서는 화면 가득 펼쳐지는 아름다운 작화에 이끌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디테일과 영화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 재난을 다룬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감독은 30대에 겪은 동일본 대지진이 40대를 관통하면서 "일상을 지배하는 선율"이 되었다고 말한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왜 그 사람이. 왜 내가 아니라."라고 계속되는 마음의 메아리가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결연한 각오로 변했다. 그렇게 "<너의 이름은.>이 대히트하며 얻은 책임을 완수하는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소회와 함께 <스즈메의 문단속>이 탄생했다.

  •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츨라프 스밀 (지은이), 강주헌 (옮긴이) | 김영사 | 2023년 3월 "빌 게이츠, 장하준 강력 추천"

    에너지, 기후, 환경 이슈는 현대 사회의 의제 중 가장 중요하게 손꼽힌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물어온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를 슬쩍 피해버릴 것이다.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이에 대한 지식을 접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바츨라프 스밀이 현대 문명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 대중서를 냈다. 식량과 환경, 에너지, 바이러스, 기후 변화에 관한 필수 지식을 간명하게 정리한 책이다.

    전작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에서 데이터와 통계로 세상의 진실을 기록한 그는 이번 책에서 역시 객관적 통계와 수학적 자료를 통해 현대 문명사회를 설명한다. 탄소중립은 실현 가능할까? 지구의 기후는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나? 우리의 물과 식량은 충분한가? 스밀이 50여 년간 연구해온 결과를 집약한 이 책은 친절하고도 정확하게 현실을 알려준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젯거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라는 말과 함께 빌 게이츠가 추천했다.

  • 거인의 노트
    김익한 (지은이) | 다산북스 | 2023년 3월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1980년대, 학문을 통해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과 거리에서의 실천 사이에서 방황하던 한 역사학도는 “이론(역사)을 추구해야 실천(기록)에 도달할 수 있고, 실천(기록)을 통해야 이론(역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록학자가 되었다. 그는 2000년도부터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드는 데 매진하였고, 청와대에서 기록 및 업무 혁신 TF의 자문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또 기록학회를 만들어 학술 활동도 쉬지 않았으며, 기록연구사로 키워 낸 제자만 300명이 넘는 등, 대학과 정부, 사회에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국내 최초이자 1호 기록학자인 김익한 교수의 이야기이다.

    그는 오랜 기간 기록하고 가르치고 퍼뜨리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기록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활용하지 못해 여러 면에서 불편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록만 잘할 수 있다면 생활과 학업, 일, 관계가 좀 더 분명해지고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기록‘학’에서 학문의 난도를 낮추고 구체적인 방법과 기술부터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까지 열었다. 그리고 개개인의 사연을 가까이에서 듣게 되면서 그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고 성장을 가로막는 벽을 뛰어넘는 방법,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방법, 그리고 공부부터 대화, 생각, 일상, 일까지 삶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주요 영역에서 능률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를 소개한다. 스스로 남긴 기록을 디딤돌 삼아 가장 높은 곳에 서기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거인보다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기를,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말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나를, 가정을, 나라를 들여다보기를, 그리하여 우리 삶의 민주주의가 조금씩 성장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서울대생의 비밀과외
    소린TV(안소린) (지은이) | 다산에듀 | 2023년 3월 "공부가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끝까지 내가 함께 할게!"

    이 책의 저자 안소린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바깥세상을 마주하면서 가난의 실체를 깨닫고 다짐한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

    그는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는데 '공부'가 튼튼한 사다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교 1등의 껌딱지가 되어 그들의 공부법을 따라 하며 전교 8등, 인터넷의 각종 합격수기와 정보를 흡수하여 전교 4등, 나아가 그동안 쌓아온 공부 방식을 나만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심화 발전시켜 마침내 전교 1등까지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서울대, 연대, 고대는 물론 포스텍까지 동시 합격을 하기에 이른다.

    공부는 흔히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수험생들이 이 싸움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입시 전략이 부족해 포기하려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멘토가 되기를 자처한다. 모든 시험에 통하는 6가지 공부 기술, 공부에 지치지 않는 마음가짐을 키우는 비법 등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3.142023
  • 제주탐묘생활
    이신아 (지은이) | 야옹서가 | 2023년 2월 "히끄네 집, 두 번째 이야기"

    길고양이에서 인스타그램 20만 팔로워를 보유한 스타 고양이로 거듭난 히끄와 반려인 히끄 아부지가, 첫 책 <히끄네 집> 출간 5년 만에 후속작 <제주탐묘생활>로 돌아왔다. 161장의 사진을 빼곡하게 담아, 더 애틋해지고 각별해진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5년이란 세월이 흘렀어도 히끄는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다. 시골 마을 오조리에서 민박집을 운영해오던 히끄 아부지는 농사 일도 병행하며 한 생명을 더 살리는 일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존재 자체로 빛나는 히끄와 아부지의 행복한 제주 일상 이야기, 작은 고양이에서 시작된 놀라운 변화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풍성한 사진과 글로 만나볼 수 있다.

  •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이꽃님 (지은이) | 우리학교 | 2023년 3월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해."

    "이건 사랑 이야기예요." 저수지에서 해록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이 찾아온 그날, 해주는 지난날을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교실의 보통 소녀와 소년의 만남.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은 외롭고 집요한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평범한 교실, 해록의 시선의 끝에는 항상 해주가 있다. 해주는 자기의 마음을 너무 쉽게 가져가버린 해록이 너무나 좋지만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났다. 더는 해록이 자길 바라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해주의 혼자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외로움을 낳고, 이 외로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록에 대한 소유욕을 넘어 정서적 폭력으로 변해가는데...

    <죽이고 싶은 아이>를 통해 십 대들의 곁에 서서 진실이 멋대로 편집되고 소비되는 세상에 서늘한 경고를 했던 이꽃님 작가가 이번에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예리하게 파고든 또 하나의 문제작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십 대의 관계 맺기 방식에 던지는 작가의 솔직하고도 파격적인 메시지는 작가가 설계한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독자에게 더 강력하게 전달된다. 끝으로 작가의 말을 전한다. "좋아하는 마음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써야 했다. 그 이면의 이야기를."

  • 서평가의 독서법
    미치코 가쿠타니 (지은이), 김영선 (옮긴이) | 돌베개 | 2023년 3월 "미치코 가쿠타니의 읽기"

    책 읽기만큼 재밌는 일은 다른 사람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듣는 것이다. 독서 전후로 추천사를 꼭 챙겨읽는 독자에게 '서평가의 서평집'만큼 설레는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이 보석함을 열자.

    '영미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불리는 미치코 가쿠타니가 쓴 아흔아홉 편의 글을 모았다. 각 글은 한 권 이상씩의 책에 대해 말한다. 짧은 분량의 글은 그가 파악한 책의 핵심이나 결정적인 부분을 곧장 찌른다. 예리하고도 깔끔한 서평들. 읽고 싶거나 다시 읽고 싶은 책들 위에 표시한 동그라미가 점점 늘어간다.

    가쿠타니 자신이 "여기서 나는 비평가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소개하려 한다."고 한 만큼 독설보단 애정의 자리가 크다. 서평가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꼽은 이 책들의 목록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껏 즐기시길.

  •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야마모토 다카미쓰 (지은이), 지비원 (옮긴이), 이지선 (북디자이너) | 메멘토 | 2023년 2월 "서양 학술용어, 이렇게 시작되었다"

    학술, 과학, 기술, 예술과 같은 단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서양의 학문을 처음 들여올 때, 낯선 용어들의 번역을 한 이와 번역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시작을 좇는다.

    저자 야마모토 다카미쓰는 독립 연구자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를 연구하던 중 <백학연환>이라는 문서를 발견했다. <백학연환>은 니시 아마네라는 이가 서구의 학술을 쉽게 소개한 강의를, 그 문하생이 필기한 강의록이다. 이 문서엔 학술과 관련한 각종 용어의 번역, 그리고 학술간 차이들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마치 흥미로운 탐정 소설의 도입부 같은 이 이야기가 책의 탄생 배경이다. 다카미쓰는 <백학연환>을 한 문장 씩 읽으며 서구의 지식 체계가 일본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추적한다. 학은, 술은, 귀납법과 연역법은, 문학은, 이 단어들은 어째서 이렇게 번역되었는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뻔한 소재를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책으로 살려낸 데는 저자의 서술 방식 덕이 크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부터 독자 여러분과 어떤 문서를 같이 읽어보려 합니다." 이 책은 <백학연환>을 함께 읽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그래서 독자가 저자와 함께 상황 속에 흠뻑 빠져 함께 추적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도록 만든다. 오래도록 파묻혀있던 진실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것 같은 희열감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는 이라면 누구든 눈 반짝이며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3.172023
  • 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특별판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은이), 김보원, 김번, 이미애 (옮긴이)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톨킨이 그린 일러스트 국내 최초 수록"

    20세기 판타지 문학의 걸작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한 권으로 집대성한 특별한 판본이 알라딘 독자 북펀드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출간되었다. J.R.R. 톨킨이 직접 그린 30여 컷의 컬러 일러스트, 지도, 스케치와 톨킨이 만든 <마자르불의 책> 책장 페이지 등이 수록되었고, 패브릭 소재의 표지에 금적박으로 새긴 제목과 요정어를 특수 프린팅한 책배, 인조가죽으로 책등을 감싼 양장본으로 소장 가치를 높였다.

    크리스토퍼 톨킨이 그린 가운데땅 지도와 로한/곤도르/모르도르 지도, 1954년 초판 당시 톨킨이 디자인한 표지가 각 파트마다 별도 이미지로 수록되었으며, 소설 속에 나오는 시와 노래, 인명, 지명, 사물 등을 정리한 색인도 특별 수록했다. 버건디색의 도서 케이스에 더해 알라딘 단독으로 로한 지도가 그려진 박스 케이스를 추가로 포함하여 매력적인 판본이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다. 많이 기다려주신 독자분들을 위해 '책의 시작, 모험의 시작 <반지의 제왕 일러스트 특별판>' 코너로 도서 제작 과정을 촬영하여 공개 중에 있으니 함께 시청해주시길 권한다.

  • 파쇄
    구병모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그냥 당하고만 있진 않겠다는 의지"

    구병모 소설. '60대 여성 킬러'라는 문제적 주인공, <파과>의 시작점을 만난다. “저 인간을 죽이기 전에는 여기를 살아서 나갈 수 없”고, “마주한 사람을 제거하기 전에는 그 방에서 나오면 안 되”는 냉혹한 세계에 발을 들인 10대 소녀 조각의 한 시절을 통해 조각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타인과 스스로를 부수어 낸, 조각되기를 선택한 조각의 의지를 만난다.

  •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
    데이비드 맥레이니 (지은이), 이수경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3월 "권석천 추천. 설득은 가능하다."

    절연도 한두 번일 때나 마음 단정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들을 참아내다가 어느 순간 절연하는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거대한 물음표가 정신을 덮쳐온다.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동성애를 죄악이라 말하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함치는, 시위하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이들 옆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내가 우정을 기망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이 바뀔 수 없다고 믿으면 절연과 기망,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는다. 좌절스러운 일이다.

    이 책은 희망이다. 서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진영별로 공고해지는 탈진실의 시대, '심리학광'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인간의 신념을 바꿀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가짜뉴스, 혐오, 사이비 종교에 절여진 이들의 믿음이 바뀐 사례들을 보여주고 그 설득의 기제를 설명한다. 그가 공략하는 지점은 이성이 아닌 감정, 관념보다 경험이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참신한 사례들이 톡톡 나온다. 뇌과학과 신경과학, 최신 심리 연구를 총망라하여 그는 인간의 확신이 흔들리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붙든다.

    포기는 쉽지만 무기력을 남긴다. 무기력이 쌓이면 삶의 의미가 희미해진다. 희망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기대보다 더 반가울 것이다. 파편화된 채 흔들리는 시대,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함께 진실에 도달할 방법을 찾아야 할 뿐이다. 애정만 있다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 책은 확언한다.

  • 김대식 교수의 어린이를 위한 인공지능
    김대식, 이현서 (지은이), 이강훈 (그림) | 동아시아사이언스 | 2023년 3월 "알파 세대를 위한 내일의 자세"

    내가 어렸을 적 상상한 미래는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가고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이 산업 전반에 퍼져있는 모습이었다. 신소재로 제작된 은색의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통근하는 고정된 이미지는 아마도 많은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미래의 모습일 터다. 하지만 미래는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당도했다. 생활 필수품이 돼버린 스마트폰, 제페토와 본디로 대표되는 메타버스, 심리 상담까지 친절하게 해주는 챗GPT까지. 잘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항상 그렇듯 기술을 사용하는 데에는 요령과 경계심이 필요하다.

    스마트폰과 AI가 없던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가장 어린 연령대를 알파 세대라고 일컫는다. 미처 인지하기 전부터 스마트폰을 다루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메타버스 속 아바타에 옷을 입혀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체들. 이 책은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표되는 '미래'사회에 주체인 어린이들에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해준다. 이들이 주체가 된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3.212023
  •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마이클 샌델 (지은이), 이경식 (옮긴이),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마이클 샌델의 민주주의 진단"

    특권층은 정의를 입맛대로 이용하고 사람들은 각자 믿고 싶은 뉴스만 골라본다. 불평등은 심각해지기만 하고 모두의 분노는 깊어진다. 민주주의, 괜찮을까? 마이클 샌델이 덜컹대는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을 제안해왔다.

    샌델이 집중하는 부분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편한 공존이다. 우리는 왜 시민으로서의 권리보다 소비자로서의 불만을 먼저 인식하게 되었나? 그는 미국 정치경제사를 파헤치며 경제 발전 과정에서 시민의식과 경제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살핀다. 소비자 의식이 시민의식에 앞선다면 민주주의의 작동에는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는 시민들의 시민적 자아 각성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경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능력주의는 해소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가 다시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사회가 앓고 있는 문제에 샌델은 결정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도록 독려한다.

  • 사랑의 꿈
    손보미 (지은이) | 문학동네 | 2023년 3월 "모든 것이 가능한 여자아이의 나날"

    내게도 기억에 남는 여자아이의 나날이 있다. 허름한 아파트 단지를 넘어서면 동네 어른들이 고구마 농사를 짓곤 하는 밭이 있었는데, 그 밭을 가르며 난 좁다란 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면 녹이 슨 새빨간 다리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저 다리를 끝까지 건너면 죽는다는(우리는 '토요 미스테리'를 주말마다 챙겨보고 '오싹오싹 괴담' 같은 책을 통해 홍콩할매 괴담을 공유하던 어린이들이었다.) 소문을 만들었고, 우리는 꼭 위태롭게 선 빨간 다리 앞까지만 행진을 했다. 한 번도 건너지 못한 그 다리를 앞에 두고 우리는 손보미의 소설처럼, "흉곽이 조이는 느낌, 토할 것 같은 기분, 수치심과 굴욕감"(127쪽, <불장난>)을 느꼈다. 공통의 비밀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입을 닫은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아이들은 어떤 것이 가능한지를 알 수 없기에 상상 속에서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따라 걸으며, 작가의 변모를 경험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폭우>로 2012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소설 읽는 독자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작가 손보미는 그간 네 번이나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고, 2022년 <불장난>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0년 출간한 장편소설 <작은 동네> 이후 이제 손보미의 세계는 일인칭 여자아이의 머릿속을 번역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 울려오는 '오싹오싹'한 경고음. 동네의 유명한 미친 여자, 불법 시술을 하는 고모, 불륜을 저질러 엄마를 버린 아빠, 친구들이 중학생 오빠와 뽀뽀를 하는 장소라는 소문이 도는 숙직실, 납치를 당한 후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도는 어린 아이...

    책만 보는 여자아이의 머릿속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다. 손보미의 소설집을 읽으면 그때의 와글거림이 들려오는 듯하다. '함께 고무줄놀이를 하고, 다투고, 질투하고, 눈물을 흘리고, 억지를 부리는'(54쪽, <밤이 지나면>) 친구들을 낮추어 보면서도 그 세계에 속하고 싶은 욕망이 내는 소리. 그 수치스러움, 난처함, 배앓이. 기꺼이 '진짜 배신자'(246쪽, <해변의 피크닉>)가 된 우리가 뒤를 돌아보면, 그 여자아이 역시 우리를 보고 있다.

  •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
    닐 게이먼 (지은이), 정지현 (옮긴이) | 하빌리스 | 2023년 3월 "독자 선정 최고의 작품 52편 수록"

    H. 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하나의 세계에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은 '백설공주'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만난다면? 독창적인 상상력이 빛나는 작가, 닐 게이먼이 1984년부터 2018년까지 발표한 소설 중에서 독자들이 선정한 최고의 작품 52편이 한 권에 담겼다.

    알라딘 북펀드를 통한 많은 독자분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서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하늘 위의 신들과 지하의 미로, 공포와 유머, 악몽과 환상 사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 유년의 추억 속 동화와 온갖 신들이 등장하는 신화는 물론, 호러와 SF를 비롯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르가 이 책에 있다. 닐 게이먼의 35년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묵직한 소설집을 만나보자.

  • 오늘도 너를 사랑해
    이누이 사에코 (지은이), 고향옥 (옮긴이) | 비룡소 | 2023년 3월 "얘야, 많이 많이 사랑한다."

    "사랑해요. 엄마, 아빠." 한때 아이였던 나는 이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나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학창 시절을 지나오면서 지식은 늘어 갔지만 사랑을 전하는 말의 횟수는 줄어만 갔다. 그리고 이내 그 말을 잃어버린 듯했다. 신기하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잃어버린 듯했던 그 말들을 다시 꺼내 놓는 데는 별다른 노력이 들지 않았다. 내 안에 담아두었을 뿐. 여기 마음속에 담아 두어 늘 해 주고 싶은 말들이지만 결코 쉽게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담백하고도 따스하게 담아낸 <오늘도 너를 사랑해>를 소개해 본다.

    작고 보송보송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작은 숲. 힘들고 지쳐 보이는 아이에게 다가가 슬며시 말을 건네는 동물들이 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오늘도 너를 사랑해>는 우리 모두가 언제든 꺼내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힐링 그림책이다. 동물들이 서로 서로에게 전하는 격려와 응원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세밀하게 그려진 작고 보송보송한 동물들의 그림은 이야기에 따스함을 더한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며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누기에 아주 좋은 그림책으로 추천한다. 2022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그림책.

3.242023
  • 에이징 솔로
    김희경 (지은이) | 동아시아 | 2023년 3월 "비혼 여성 선배들의 이야기"

    "재미있다"는 아마 이 사회과학 책이 기대한 반응은 아닐 테지만 독서 중에 느낀 주된 감정은 확실히 재미였다. 19인 비혼 여성들이 직접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왜 낯설까. 왜 낯선데 깊이 이해될까. 어떻게 이리 현실적이면서도 건설적일까. 나이 든 비혼 여성의 삶은 세상에서 지워지거나 왜곡되고 폄하되어 온전히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저자 김희경이 작정하고 모아 들려주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편견과 (당연히) 멀찍이 떨어져 있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구석구석 아우른다. 1인분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이야기, 전형적이지 않아서 재밌고 세월만큼 쌓인 철학들이 단단해서 더 재밌다.

    책은 인터뷰들을 모아 차별, 걱정, 현실, 희망 등 갖가지 주제로 나누고 묶어서 비혼 여성의 실제 삶을 보여준다. 필요한 데이터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깔끔한 이해를 돕는다. 불필요한 평가나 폭력적 관점을 싹 걷어내고 합리적 시선으로 현실을 마주하니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나 사회적 합의들도 선명히 보인다. 4050 비혼 여성들의 이야기라 비혼을 지향하는 2030 여성들에겐 큰 격려를 주겠지만, 꼭 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다른 삶의 모습을 알면 그 자체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삶이 제 나름대로 멋스럽다는 깨달음이 퍼지면 여러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은 아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했던 1인 가구 지침서 중 하나다.

  • 테르미도르 1~5 세트 - 전5권
    김혜린 (지은이) | 거북이북스(북소울) | 2023년 3월 "화제의 북펀드 도서, 드디어 출간"

    16,375,500원을 돌파하며 성공적인 북펀드를 마친 김혜린 작가의 역작 <테르미도르>가 드디어 정식 출간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유제니와 알뤼느, 줄르 세 사람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데뷔작인 <북해의 별>과 마찬가지로 <테르미도르> 또한 '혁명'을 주제로 하지만 이 작품은 혁명의 물결 아래 민중들의 분노와 정치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여 혁명을 더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순정만화잡지 '르네상스'에 첫 연재를 시작한 <테르미도르>가 3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20대의 빛나는 열정으로 빚어낸 명작을 이제 60대가 된 작가가 섬세한 손길로 다시 정돈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감동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 한국형 가치투자
    최준철, 김민국 (지은이) | 이콘 | 2023년 3월 “주식을 갖는 순간 그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주식 투자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은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워런 버핏은 ‘가치투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가치투자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가치주’ 위주로 투자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가치주’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다. 대체로 특정한 방법론에 따라서 산출한 기업가치에 비해 현재 주가가 낮은 경우, 펀더멘털에 비해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가치주라고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저런 분석을 통해 그 가치가 만 원이라고 생각되는 물건이 시장에서 그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면, 그 물건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대상이 되는 물건, 기업의 내재 가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기본이다.

    저자 최준철, 김민국은 대학생 투자자로 시작하여 현재 3조 원대 자산운용사 VIP 자산운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식을 갖는 순간 그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가치투자를 통해 생산수단(기업)을 소유하여 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첫 주식 투자를 시작하였다는 저자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가치투자에 입각한 투자 방법론으로 자산운용사를 운영하면서 어느새 한국 가치투자의 전도사가 되었다. 이 책은 가치투자의 개념부터 실제 주식 투자를 위한 기초 개념인 좋은 기업과 경영자, 가격을 판단하는 방법, 그리고 종목 발굴과 포트폴리오 구축, 심리적인 부분까지 한국에서 가치투자자로 살기 위한 저자들의 실전적인 노하우를 담았다. “한국에서 가치투자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20여 년 동안 실천으로 답하고 있는 저자들은 말한다. “해보고 좋았으니 여전히 추천하는 겁니다.”

  • 코뿔소 모자 씌우기
    임수현 (지은이), 오윤화 (그림) | 창비 | 2023년 3월 "가끔 쓸쓸하거나 외로운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엔 거울을 바닥에 내려두고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면 천장을 비추는 거울이 어느순간 일렁이며 다른 세계로 연결해 주는 입구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 입구가 언제 열릴지 모르니 계속해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자주 어딘가를 응시한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임수현 시인은 다정한 시구들로 "가끔 쓸쓸하거나 외로울 때"를 보내는 어린이들과 함께 한다. 가만히 내가 원하는 세계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한나절 잘 놀다"오라 해준다. "물고기는 날아다니고/새들은 물속을 헤엄쳐/사람들은 새처럼 날고/새들은 사람처럼 웃는 곳이야/모두가 엄마고 아빠야/누구나 친구가 되는 곳이야" (<어둑어둑 그림자 나라>,p.12) 현실에서 이런 나라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린이들 마음 속에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쓸쓸하지만 다정한 시구를 음미하며 혼자만의 공상에 빠지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분명 그 시간은 모이고 모여서 단단한 마음을 만들어 줄 것이다.

3.282023
  •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장하준 (지은이), 김희정 (옮긴이) | 부키 | 2023년 3월 "경제학을 더 잘 먹는 법"

    파이의 가장자리를 따라 정어리가 통째로 들어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스타게이지 파이나 삶은 장어를 식힐 때 나오는 젤라틴 덩어리와 함께 먹는 장어 젤리의 악명은 영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나의 큰 걱정거리였다. 이런 나의 걱정을 짐작이라도 한 듯, 현지에서 유학 중이던 지인은 철저하게 ‘비영국식’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덕분에 휴가기간 동안 태국,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멕시코, 레바논 등 한국에서도 자주 먹지 않던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고, 종국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영국까지 가서 영국 음식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는 마음에 블랙푸딩과 해기스에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의 걱정과는 달리 영국 여행은 다양한 음식 문화를 맛보며 나의 미식 경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식도락 여행으로 기억되었다.

    영국에서 오랜 기간 연구 활동을 이어온 장하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영국 식문화의 다양화와 1980년대 이후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획일화된 경제학계의 모습을 대비하며 학계의 지적 ‘단일 경작’에 우려를 표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비전과 연구 방법을 자랑하는 다양한 학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활동하던 경제학계는, 1980년대 이후 학계 내외의 다양한 요인에 따라 신고전학파가 경제학계 전체를 장악한 주류경제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 가지 학문적 전통이 메뉴의 전부가 되어버린 획일화된 식탁은 지적인 영양결핍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저자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경제학을 ‘섭취’할 때 골고루 먹을 것,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열린 마음을 유지할 것, 재료의 출처와 기원을 확인할 것,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할 것을 제안한다.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18가지 재료와 음식으로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공정과 불평등 등 우리에게 밀접한 경제 현안을 요리하여 더 공정하고 다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경제학 한상차림을 선사한다.

  • 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은이), 한정아 (옮긴이) | 복복서가 | 2023년 3월 "김영하 추천 '이언 매큐언의 숨은 걸작'"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순간이 오기 직전,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햇빛 가득한 봄날의 풀밭에서 연인과 피크닉을 즐기고 있던 조 로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그의 소풍과 평온한 삶에 작별을 예고했지만 조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헬륨이 가득 든 거대한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안에 소년이 혼자 타고 있다는 것을 본 조는 열기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열기구에 달린 밧줄에 매달리지만, 거센 바람이 기구를 공중으로 끌어올리자 모두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극이 벌어지고야 만다. "제일 먼저 밧줄을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처절한 물음과 "나는 아니다."라는 안도감, "이타심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라는 변명, 모두가 체중을 실어 밧줄을 계속 잡고 있었다면 열기구가 땅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끝없이 반복되며 조의 일상을 잠식하고,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 저술가로 일하며 평생을 믿어온 가치들마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을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파헤치는 소설. 김영하 작가가 "이언 매큐언의 작가적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숨은 걸작"이라고 말하며 추천한 작품이다.

  • 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은이) | 북하우스 | 2023년 3월 "배명훈이라는 장르의 만개"

    한 편은 아쉽다. 단독 작품집인 소설집 <타워>를 출간하며 SF 읽는 독자와 만나기 시작한 소설가 배명훈이 7년 만에 소설집을 엮었다. 재주 많은 소설가의 세계관을 다채롭게 즐기고 싶은 독자를 위해 아홉 편을 가득 실었다. 오직 돈 쓰는 재주만 있는 로봇, 침이 튀지 않도록 파열음을 봉인해버린 '차카타파' 없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미래과거시제' 속 연인들, 흡사 수궁가를 부르는 듯한 흐름으로 전개되는 판소리 로봇 전투까지. 언어학과 3차원을 넘나들며 쌓아 올린 이야기가 만족스러운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최지수 작가가 그린 표지 만다라의 다양한 장면은 각 소설의 장면을 그린 것.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처럼, 전체도 아름답지만 해석하면 또 재미있다. 곽재식, 권희철, 김겨울, 김초엽, 이다혜, 정보라, 정세랑, 정소연이 추천하는 글을 실어 만개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배명훈이 뛰어난 소설을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점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소설집이 웃겨서 좋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종이 접기로 몸을 접어 3차원을 초월하겠다는 귀여운 발상. '아 , 돈 쓰고 싶다.'(52쪽)라고 혼잣말 하는 로봇.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발표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 파열음을 내지 못하는 '나'는 "세상에, 누군가가 짐을 뱉었던 것이다! 그것도 선수가! 경기 중에!"(71쪽) 라고 말하며, '불결한' 2008년의 야구장을 보고 경악하고, 뮤지컬 공연을 하며 침을 쏟아내는 배우를 보고서는 '뭐지, 이 사람? 드래곤인가?'(79쪽)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다르게 보는 눈이 만든 다른 세계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피식 웃는 경험, 때론 소설은 딱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델핀 파팽 (지은이), 권지현 (옮긴이) | 서해문집 | 2023년 3월 "가장 포괄적인 러시아 지정학 지도"

    '러시아는 왜?' 러시아를 향해 띄우고 있던 물음표들은 전쟁 발발 이후 더 크고 무거워졌다. 이 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 향하는 방향, 이제까지의 선택과 앞으로의 선택을 알고 싶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물음표를 방치해두었던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출간됐다.

    신뢰의 이름 《르몽드》의 전문가들과 세계적인 인포그래픽 팀이 함께 제작한 이 지정학 지도 책은 150개의 지도와 인포그래픽을 통해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러시아가 품고 있는 천연 자원, 나토와 러시아의 대치, 푸틴의 전쟁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포괄적이고도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재 어지럽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살피는 눈을 갖고싶은 교양 독자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3.312023
  • 사장학개론
    김승호 (지은이)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4월 "과거, 현재, 미래의 사장을 위한 실무 지침서"

    1987년 23세의 나이로 대학 중퇴 후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은 17년 동안 식품점, 신문사, 편의점 등 7개 사업에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마흔이 되던 2004년 당시 전 재산이었던 2,300달러를 주고 나머지는 매달 5만 달러씩 갚는 조건으로 80만 달러짜리 식품업체를 인수한 이후, 인수 기업을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외식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현재는 외식 사업 외에도 출판업, 화훼 유통업, 금융업, 부동산업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후배 사업가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며 ‘사장을 가르치는 사장’으로 불리고 있다. 바로 스노우폭스 그룹의 김승호 회장이다.

    저자는 2015년부터 7년여 동안 3,000여 명 남짓의 사업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사업의 규모나 영역과 관계없이 비슷한 고민과 질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운영하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연간 등록자가 한정되어 있고,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국내 상황을 고려하여 실제 수업에 사용했던 자료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였다. 20대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사장으로 살아온 저자의 경영철학이 누군가의 실패를 막아내고, 방향을 제시하거나, 격려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4·3, 19470301-19540921
    허호준 (지은이) | 혜화1117 | 2023년 4월 "4.3의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잔인한 봄. 역사를 흔드는 목소리가 부끄러움 없이 거리에 나뒹구는 봄. 제75주년 4.3 추념식을 앞두고 또다시 소란이 반복되고 있다. 혼란한 와중의 희망이라면, 왜곡과 폄훼의 커지는 그림자 앞에서는 늘 진실의 구체적인 모습을 더 명확히 알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가장 길게 이어져온 희망이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4.3을 취재해 온 허호준 기자가 기록한 진실이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2,762일 동안 제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국가의 시민 학살, 4.3 일어난 시대적 배경, 세계사 안에서 4.3의 위치, 사건을 겪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현대 한국사에서 4.3의 의미 등 4.3에 초점 맞춘 눈을 줌인, 아웃하며 책은 총체적인 진실을 드러낸다.

    저자가 4.3에 대해 오랜 시간 폭넓고 집요하게 취재한 내공이 깊이 느껴진다. 건조한 문체는 이 비극을 더 날카롭게 진술하고, 핵심을 놓치지 않는 문장들은 독서의 몰입을 돕는다. 진 빠지는 독서가 아님에도 어느새 4.3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가 자리 잡힌다. 이제 이 빼곡하게 준비된 진실을 각자의 마음에 붙잡는 일만 남았다. 희망 편에 선 이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 할머니의 뜰에서
    조던 스콧 (지은이),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긴이) | 책읽는곰 | 2023년 3월 "조던 스콧과 시드니 스미스의 두 번째 만남"

    아이는 주말이면 종종 할머니 집에 가자고 말을 한다. '우리 강아지 왔구나.' 반갑게 맞아주는 할머니, 아이의 입술 위에 작은 미소 한 겹이 덧 입혀진다. 할머니는 손주를 위해 냉장고 한편에 아껴두었던 고기반찬을 내어놓으신다. 손주가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문득 나의 할머니가 떠올랐다. '아, 나도 할머니가 있었지.' 아이가 태어나고 세상의 중심을 아이에게 양보한 후, 나의 기억은 이렇게 가끔씩 내 아이를 통해 소환되곤 한다.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할머니의 뜰에서>를 펼쳐본다.

    주인공 아이는 아침마다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함께 학교에 간다. 할머니가 오두막 뒤편에 있는 텃밭을 가꿀 때면 곁에서 거들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이면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주위를 살피며 지렁이를 함께 주워 모아 텃밭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할머니가 오두막을 떠나 아이와 함께 살게 되기 전까지 이 일은 계속되지만, 할머니는 이제 오두막이 아닌 아이의 집 복도 끝방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할머니에게 텃밭의 생명력을 돌려주고 싶은 아이는 비가 오자 빗속으로 뛰어드는데...

    <할머니의 뜰에서>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과 빼어난 그림으로 각종 그림책상을 거머쥔 시드니 스미스가 다시 뭉쳐 내놓은 작품이다. 조던 스콧의 시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글은 우리의 마음에 스미고, 시드니 스미스의 아름다운 그림은 우리 모두를 어린 조던이 뛰놀던 할머니의 뜰로 데려다준다.

  • 해저도시 타코야키
    김청귤 (지은이) | 래빗홀 | 2023년 3월 "물에 잠긴 지구에서 춤추고 사랑하며"

    2100년 경 한반도를 둘러싼 해수면이 최대 82cm 상승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멀게는 베네치아부터 가깝게는 해운대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김청귤의 소설 속에서 인류는 여전하다. '전세계가 한마음으로 해저도시를 만들었으면서도 나중엔 누가 들어갈지 선별하느라 싸웠고, 탈락한 이들은 배를 타고 떠돌며 천천히 죽어'(184쪽)가는 사람이 가득한 세계. 생존을 위해 심해로 떠난 인류의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엮었다. <재와 물거품>으로 바다처럼 넘실대는 사랑의 물결을 선보인 작가 김청귤의 연작소설이 '래빗홀' 브랜드의 첫 권으로 독자를 만난다.

    도망쳐 다다른 바다에서도 다시 해수 온난화를 걱정해야 하는 게 이들의 형편이다. 바다생물의 유전자를 얻어 심해에서 생존하고, 해저도시를 건설해 또 다른 신분제를 만드는 인류의 모습에 기시감이 든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180쪽) 절망과 싸우는 이들의 용기에 더욱 시선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