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의 가장자리를 따라 정어리가 통째로 들어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스타게이지 파이나 삶은 장어를 식힐 때 나오는 젤라틴 덩어리와 함께 먹는 장어 젤리의 악명은 영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나의 큰 걱정거리였다. 이런 나의 걱정을 짐작이라도 한 듯, 현지에서 유학 중이던 지인은 철저하게 ‘비영국식’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덕분에 휴가기간 동안 태국,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멕시코, 레바논 등 한국에서도 자주 먹지 않던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고, 종국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영국까지 가서 영국 음식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는 마음에 블랙푸딩과 해기스에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의 걱정과는 달리 영국 여행은 다양한 음식 문화를 맛보며 나의 미식 경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식도락 여행으로 기억되었다.
영국에서 오랜 기간 연구 활동을 이어온 장하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영국 식문화의 다양화와 1980년대 이후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획일화된 경제학계의 모습을 대비하며 학계의 지적 ‘단일 경작’에 우려를 표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비전과 연구 방법을 자랑하는 다양한 학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활동하던 경제학계는, 1980년대 이후 학계 내외의 다양한 요인에 따라 신고전학파가 경제학계 전체를 장악한 주류경제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 가지 학문적 전통이 메뉴의 전부가 되어버린 획일화된 식탁은 지적인 영양결핍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저자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경제학을 ‘섭취’할 때 골고루 먹을 것,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열린 마음을 유지할 것, 재료의 출처와 기원을 확인할 것,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할 것을 제안한다.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18가지 재료와 음식으로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공정과 불평등 등 우리에게 밀접한 경제 현안을 요리하여 더 공정하고 다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경제학 한상차림을 선사한다.
- 경제경영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경제학의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은 다양한 요리법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학 섭취를 더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더 균형 잡히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순간이 오기 직전,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햇빛 가득한 봄날의 풀밭에서 연인과 피크닉을 즐기고 있던 조 로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그의 소풍과 평온한 삶에 작별을 예고했지만 조는 알지 못했다. 이윽고 헬륨이 가득 든 거대한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 안에 소년이 혼자 타고 있다는 것을 본 조는 열기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열기구에 달린 밧줄에 매달리지만, 거센 바람이 기구를 공중으로 끌어올리자 모두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비극이 벌어지고야 만다. "제일 먼저 밧줄을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처절한 물음과 "나는 아니다."라는 안도감, "이타심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라는 변명, 모두가 체중을 실어 밧줄을 계속 잡고 있었다면 열기구가 땅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끝없이 반복되며 조의 일상을 잠식하고, 이성으로 무장한 과학 저술가로 일하며 평생을 믿어온 가치들마저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을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파헤치는 소설. 김영하 작가가 "이언 매큐언의 작가적 역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숨은 걸작"이라고 말하며 추천한 작품이다.
- 소설 MD 권벼리
이 책의 첫 문장
시작은 표시하기 쉽다.
추천의 글
첫 페이지에서부터 완전히 빨려드는 플롯. 이토록 흡입력 넘치고 잘 쓰여진 소설을 얼마 만에 읽는지 모르겠다. - 빌 브라이슨
오늘밤 잠을 잘 계획이라면 저녁에 이 책을 집어들지 말 것. 끝내주는 플롯에다 최상의 문학 소설만이 지니는 심리적 풍성함도 갖췄다. - A. S. 바이엇 (맨부커상 수상 작가)
완벽하게 쓰여진 소설. 이언 매큐언은 가장 말이 없으면서 명쾌한 스타일리스트로, 한 단어도 낭비하거나 더듬대는 법이 없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한 편은 아쉽다. 단독 작품집인 소설집 <타워>를 출간하며 SF 읽는 독자와 만나기 시작한 소설가 배명훈이 7년 만에 소설집을 엮었다. 재주 많은 소설가의 세계관을 다채롭게 즐기고 싶은 독자를 위해 아홉 편을 가득 실었다. 오직 돈 쓰는 재주만 있는 로봇, 침이 튀지 않도록 파열음을 봉인해버린 '차카타파' 없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미래과거시제' 속 연인들, 흡사 수궁가를 부르는 듯한 흐름으로 전개되는 판소리 로봇 전투까지. 언어학과 3차원을 넘나들며 쌓아 올린 이야기가 만족스러운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최지수 작가가 그린 표지 만다라의 다양한 장면은 각 소설의 장면을 그린 것.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처럼, 전체도 아름답지만 해석하면 또 재미있다. 곽재식, 권희철, 김겨울, 김초엽, 이다혜, 정보라, 정세랑, 정소연이 추천하는 글을 실어 만개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배명훈이 뛰어난 소설을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점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소설집이 웃겨서 좋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종이 접기로 몸을 접어 3차원을 초월하겠다는 귀여운 발상. '아 , 돈 쓰고 싶다.'(52쪽)라고 혼잣말 하는 로봇.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발표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에서 파열음을 내지 못하는 '나'는 "세상에, 누군가가 짐을 뱉었던 것이다! 그것도 선수가! 경기 중에!"(71쪽) 라고 말하며, '불결한' 2008년의 야구장을 보고 경악하고, 뮤지컬 공연을 하며 침을 쏟아내는 배우를 보고서는 '뭐지, 이 사람? 드래곤인가?'(79쪽)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다르게 보는 눈이 만든 다른 세계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피식 웃는 경험, 때론 소설은 딱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첫 문장
유희는 문득 희열을 느꼈다.
이 책의 한 문장
자기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까. 누군가가 찾아내 맥박을 타진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홀로 고독했을까. 먼지에 파묻힌 자신의 디자인을 찾아내 하나하나 고이 접어 3차원 공간에 되살려줄 그 귀한 손을 만나게 될 때까지.
'러시아는 왜?' 러시아를 향해 띄우고 있던 물음표들은 전쟁 발발 이후 더 크고 무거워졌다. 이 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 향하는 방향, 이제까지의 선택과 앞으로의 선택을 알고 싶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물음표를 방치해두었던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출간됐다.
신뢰의 이름 《르몽드》의 전문가들과 세계적인 인포그래픽 팀이 함께 제작한 이 지정학 지도 책은 150개의 지도와 인포그래픽을 통해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러시아가 품고 있는 천연 자원, 나토와 러시아의 대치, 푸틴의 전쟁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포괄적이고도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현재 어지럽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살피는 눈을 갖고싶은 교양 독자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추천의 글
《르몽드》가 만든 이 책은 지정학적으로 러시아가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와 위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최고 전문가들의 해설과 지도, 인포그래픽을 통해 우리가 놓쳤던 국제질서의 냉혹함과 변화무쌍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 전, 통일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