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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022
  • 멕시칸 고딕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은이), 공보경 (옮긴이) | 황금가지 | 2022년 5월 "식민주의, 가부장제의 망령과 고딕 호러의 조우"

    멕시코시티에서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노에미에게 기묘한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은 광산을 소유한 영국인과 결혼해 대저택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 카탈리나의 편지에는 남편의 독살 시도와 밤마다 나타나는 유령에 관한 내용이 두서없이 휘갈겨져 있다. 언니를 구하기 위해 낯선 마을로 향한 노에미는 과거의 다른 시대에 도착한 느낌에 휩싸인다.

    건축자재부터 가구까지 모든 것을 영국에서 공수했다는 고풍스런 저택, 영어만 사용하면서 뭔가를 숨기는 듯한 사람들, 먼지 쌓인 빛바랜 은식기, 서재에 꽂힌 <우생학: 인종 개량 저널> 따위의 책들. 초점 없는 눈으로 "그게 벽 안에 있어."라고 중얼거리는 카탈리나에게 가문의 주치의는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내릴 뿐이다. 저택의 분위기에 적응하려 애쓰던 노에미는 마침내 숨겨져 있던 거대한 어둠을 목격하고 만다. 2021년 로커스상, 영국환상문학협회 공포소설상을 수상하며, 훌루(Hulu) 드라마화가 예정된 <멕시칸 고딕>. 역사의 일그러진 망령들과 멕시코 민담, 고딕 호러가 만나 탄생한 기이하고도 강렬한 세계가 독자를 매혹한다.

  • 엄청나게 커다란 소원
    앤서니 브라운 (지은이), 김여진 (옮긴이) | 웅진주니어 | 2022년 6월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특유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컬러풀한 색채로 매번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앤서니 브라운! 이번엔 그림형제의 '세 가지 소원'을 앤서니 브라운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세상에 내놓았다.

    주인공은 소원을 허무하게 써 버리고 얻은 건 커다란 바나나 하나뿐이지만 '이 바나나라도 먹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야'라고 위안을 하는가 하면 오히려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바나나보다 맛있는 엄청난 바나나'라고 말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긍정의 힘을 이야기하고자 함이었을까? '소원'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 작품은 당신이 지금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가장 큰 소원은 아마 '행복'일 것이며 그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책을 읽는 중간에는 가볍게 웃을 수 있고, 덮은 뒤에는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인류본사
    이희수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중양(中洋)’의 눈으로 되찾은 인류문명사"

    제목의 '본사'는 인류역사의 본류를 의미한다. 저자 이희수 교수는 인류문명의 모태가 오리엔트-중동에서 발원되었다고 말한다. 신화, 문자, 정치, 기술 등 인간사의 필수 문물이 창조된 곳이자 동서양의 교류 발전을 주도한 허브. 이 책은 1만 2천 년의 인류사를 오리엔트-중동의 관점으로 다시 쓴다. 세계사라는 이름을 독점한 서양사도, 그에 반발하며 육성된 동양사도 아닌 오리엔트-중동 관점의 인류본사다.

    중동-이슬람 권위자 이희수 교수가 40여 년간 연구한 내용을 집약한 책이다. 아나톨리아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이 일대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복원해 문명의 흐름을 밝혀냈다. 그간 단절되고 왜곡되었던 인류문명의 뿌리를 다시 파내는 대대적 작업. 새로운 시각의 인류 역사를 심층적으로 살핀다.

  •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
    권남희 (지은이), 홍승연 (그림) | 이봄 | 2022년 6월 ""나무 덕분에 세상이 아름다워졌다""

    반려인에게 반려동물은 동물이 아닌 가족이다. 작고 소중한 가족인 반려동물에게 애틋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보다 훨씬 더 짧은 생을 보내고 떠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점차 쌓일수록 애틋함의 크기만큼 어떤 이름 모를 슬픔과 불안감도 동반된다. 늘 내 곁을 졸졸 따르던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 그리고 내 곁에 없는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몰려오는 깊은 슬픔 같은 것들.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집필한 에세이스트 권남희에게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있는데, 바로 딸 '정하'와 강아지 '나무'다. 그의 에세이에도 자주 등장했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친근한 이름들이다. 이번 책은 동물을 무서워했던 작가가 어린 강아지를 입양한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나무'와의 첫 만남부터 함께 울고 웃었던 소중한 일상, 초보 반려인이 '나무'를 통해 변해가는 모습, 14년을 채우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무'의 마지막 모습, '나무'가 떠난 후 가족의 마음까지. 작가 특유의 유쾌함을 잘 살려 슬픔보다는 함께했던 행복의 시간을 추억하며 생의 선물과도 같았던 '나무' 이야기와 마음을 나눈다. 모든 반려인에게, 특히, 이별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다정한 토닥임이 되어줄 책이다.

7.52022
  • 비터스위트
    수전 케인 (지은이), 정미나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김경일 추천! 달콤씁쓸한 감정의 힘"

    슬픔과 우울은 사회적으로 등한시되는 감정이지만 창의성과 공감력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정신의학교수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의 연구에 따르면,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분 장애를 겪는 확률이 8~10배 높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고 우울해하는 모습을 꼴사납다고만 여긴다면 그 감정에서 뽑아 올릴 수 있는 어떤 힘들을 모른 채로 지나가게 될 것이다.

    <콰이어트>를 통해 내향적인 성격의 강점을 설파했던 수전 케인이 이번 책에서는 우울과 슬픔의 강점을 찾아낸다. 긍정과 낙관의 생산성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신화로 가득 찬 사회에서 우울은 곧 도태로 연결되는 감정인 양 치부되지만 이 책은 부정적 감정의 쓸모가 결코 적지 않음을 증명한다. 심리학자 김경일이 강력 추천했다.

  • 윙페더 사가 1
    앤드루 피터슨 (지은이), 김선영 (옮긴이) | 다산책방 | 2022년 6월 "새로운 세대를 위한 판타지 소설"

    최초로 읽은 판타지 소설은 역시나 <해리 포터>였다. 전 세계 모든 독자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마법학교에 입학하라는 편지가 날아오길 학수고대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해리 포터>는 어느새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머글이 무엇인지 래번클로가 무엇인지 아는 어린이 독자들은 줄어들고 있다.

    유년 시절 판타지 소설을 재밌게 읽은 작가 앤드루 피터슨은 본인의 자녀들에게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주면서, 직접 판타지 소설을 쓰고자 마음먹는다. 이 책은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가난하게 살아가던 세 남매가 주인공이다. 악마가 지배한 '에어위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며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판타지 소설처럼 주인공에게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용기와 모험심, 재치와 끈기, 사랑과 우정 등 우리 삶에 꼭 필요하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능력으로 위기를 차근차근 극복한다. 주인공과 동화되고 싶은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은 '이기비' 남매처럼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든 영웅이 될 수 있다. 판타지 소설처럼.

  •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
    이명희 (지은이) | 에트르 | 2022년 7월 "“너의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예정일보다 3개월 일찍 태어났다. 1.03킬로그램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는 오른손을 거의 못 쓰고, 오른 다리를 까치발로 들고 걷는, 뇌성마비 증세를 보였다.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원인불명의 뇌 손상으로 사지마비 진단을 받고 시력을 잃게 되었다. 아이의 엄마이자 이 책의 저자 이명희는 자신 앞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해 '내 세계가 깨지는 경험'이고, '내가 살아본 적 없는 방식의 삶'이었음을 토로한다.

    이 책은 '누워 있는 아이'의 엄마로서 버텨온 날과,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시도한 여러 방법에 관해 가감 없이 써 내려간 글을 담고 있다. '이게 내 아이라고?' 현실을 부정했다가, 아이와 함께 죽으려 했다가, 아이를 두고 도망치려고도 했다. 죽어야 끝나거나 다 놓아버리거나 단 두 가지의 해결책뿐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을 단념하고, 아이의 사랑스러운 웃음과 절망 사이에서 매일 매 순간 갈등하고 고뇌한 시간과 날것의 감정을 그림과 글로 낱낱이 기록했다. 앞으로도 아이 앞에서 낙담하고 흔들릴 테지만,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과 다짐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마지막 고백까지, 오래도록 마음에 기억될 책이다.

  • 마고
    한정현 (지은이) | 현대문학 | 2022년 6월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게“"

    <줄리아나 도쿄>로 오늘의 작가상을, 2021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한정현의 신작. 이동기의 작품 '모던 보이'를 사용한 표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광복 이후 단독정부 수립 전 까지의 미군정기(1945~1948년). 윤박 교수 살인사건과 세 명의 여성 용의자의 사연에서 시작한다. 혼란한 시대였다. 미군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언론과 경찰은 이 여성 용의자들에게서 혐의를 찾아낸다.

    "세상을 천지창조한 신 중에 유일한 여성신"인 마고는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고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41쪽)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성 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문자의 시대가 도래한 순간, '마고'는 쫓겨나 마녀의 이름이 된다. 한정현의 세계관을 사랑한 독자라면 이 이야기에서 익숙한 이야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셜록과 왓슨을 연상시키는 여성 탐정의 활약, 간호사 안나 서의 연인이자, 남성의 옷을 입고 '윤경준'이라는 이름을 쓰며 연애소설을 쓰는 윤경아... '누군가를 파괴하지 않고도 사랑이라는 걸 하는' 이들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쓰며, 한정현은 그 찢어진 세계를 바느질로 기워내고 싶은 듯하다. 한정현의 인물들은 혼란한 서울을 걷고 뛰며, 그렇게 세계를 기워나간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11쪽)

7.82022
  • 눈물 한 방울
    이어령 (지은이) | 김영사 | 2022년 6월 "생명과 죽음을 성찰한 인간 이어령의 마지막 말"

    2022년 2월 26일 영면에 든 이어령 선생이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남긴 마지막 육필 원고를 모은 책이다. 삶과 죽음 사이를 줄타기 하며 그가 남긴 기록은 끝까지 정갈하다.

    평생 동안 창조적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가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는 '눈물 한 방울'. 타인을 위해 흘리는 관용의 눈물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이라는 유일한 증명이라고 말한다. 혐오와 대립, 분열의 시대를 뚫고 나갈 희망을 타인을 위한 눈물 한 방울로부터 찾는 그의 따뜻한 통찰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 표범이 말했다
    제레미 모로 (지은이), 이나무 (옮긴이) | 웅진주니어 | 2022년 6월 "누구에게나 이 세상에 자기 자리가 있다."

    철학적인 사유와 환상적인 그림으로 가득 찬 6개의 이야기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연결되어 있다. 섬을 구할 임무를 수행하는 물소, 타인에 말에 휘둘려 숨기만 했던 타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찌르레기, 세상의 역사를 알고 싶은 아기 코끼리, 알맞은 집을 찾길 포기한 소라게, 엄마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원숭이까지. 위대한 숲의 현자로 칭송받는 검은 표범 소피아는 "세상에서 가장 인내심 많고 가장 현명한 존재"로 "자기가 하려는 말에 대한 확신이 서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물소의 무덤을 둘러싼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연설을 시작한다. "친애하는 산 자들이여."

    '인생은 어떠어떠하다.'라는 자기만의 정의를 찾기까지 인간은 꽤 오랜 시간을 방황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고와 실수, 슬픔과 무모함을 마주한다. 질타와 비방, 평가 절하는 물론이고 꽤 빈번하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멈출 텐가?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온화하고 이토록 관대하"다. 어떤 일이든 이 큰 세상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순수한 사건"이다. 그들을 위한 찬가는 늘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다. 2021년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스 영어덜트 부문 대상 수상작.

  • 유리탑의 살인
    치넨 미키토 (지은이), 김은모 (옮긴이) | 리드비 | 2022년 7월 "2021년 일본 추리소설계를 뒤흔든 본격 미스터리!"

    눈보라 치는 설원을 반사하며 찬란히 빛나는 유리탑. 저명한 의학자이자 대부호인 코즈시마 타로가 지은 대저택이다. 유명 미스터리 애호가이기도 한 그가 깜짝 소식을 공표하겠다며 연회를 열었다. 탐정, 형사, 미스터리 작가와 잡지 편집자, 영능력자를 비롯한 추리소설계 유명 인사들로 북적이는 자리. 좋아하는 미스터리 작가와 작품에 대한 환담으로 만찬이 열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깜짝 소식을 알리는 식순을 앞두고 주최자가 주검으로 발견된다.

    폭설로 산속에 고립된 저택, 비밀투성이 저택 주인, 내로라하는 추리 전문가 손님들과 계속되는 살인. 고전 명작 미스터리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담뿍 느껴지면서도 클리셰를 비트는 독창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유리탑의 살인>은 현직 의사이자 추리 작가인 치넨 미키토가 집필에 10년이 걸려 도전한 정통 본격 미스터리다. 시마다 소지의 "앞으로 미스터리계에서 이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찬사를 비롯해, '관 시리즈'의 아야츠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 노리즈키 린타로, 아비코 다케마루 등의 일본 미스터리 거장들이 일제히 추천하며 함께 읽은 소설.

  •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레나 (지은이) | 낮은산 | 2022년 7월 "사진작가 레나의 첫 책, 나를 일으킨 작지만 분명한 호의들"

    늦은 나이에 사진 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아시안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소수자에 대한 시선을 테마로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사진작가 레나. 이 책은 그의 첫 책으로, 뉴욕, 런던, 파리, 루앙, 부탄, 비에이 그리고 서울의 이야기가 차분한 어조로 담겨 있다.

    2013년 한여름 뉴욕 서부의 작은 레스토랑 테라스에서의 일화로 시작되는 이 책을 처음에는 한 사진작가의 여행 에세이로 여길 수도 있겠다. 조금만 더 읽어내려가면 여행기가 아닌, 여러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지금, 여기에 서게 되기까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그들과의 소중한 시간이 기록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세 살 이후로 외할머니 집, 외삼촌 집, 이모 집으로 계속 떠도는 생활을 했고,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빚을 떠안으며 이른 나이에 경제적 책임을 혹독히 져야 했던 과거와, 여러 타국에서 아시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했던 모욕의 시간과, 불안, 우울, 좌절감으로 점철되었던 날과,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실패하는 현재... 그렇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릎이 꺾이고, 마음이 깎이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을 내고, 세상을 배울 수 있었던 건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베풀어준 호의 덕분이었다. 사람 때문에 마음과 몸이 망가지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구원받기도 한다. 이 책은 후자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다른 누군가의 마음까지도 일으켜주는 힘을 품고 있다.

7.122022
  •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루스 리스터 (지은이), 장상미 (옮긴이) | 갈라파고스 | 2022년 7월 "당신이 생각하는 가난은 무엇인가?"

    벼락 거지, 카푸어, 상대적 빈곤... 가난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럿이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빈곤의 정의는 의외로 빈칸으로 남아 있다. 세끼 밥을 먹을 수 없어야만 가난한 것일까. 식사는 해결할 수 있지만 코로나 시국 , 온라인 수업에 꼭 필요한 PC나 스마트폰이 없는 경우는 어떤가. 식사도 수업도 문제없지만 장애를 가진 채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돌봄 비용, 보조 기구 비용이 부족한 경우도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난에 대한 합리적 정의는 국가, 지역, 시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고, 해결에 대한 의지의 범위가 필연적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이다.

    이 책은 빈곤에 대한 면밀하고 적극적인 탐구의 결과물이다. 반빈곤 활동가이자 빈곤 연구자인 저자 루스 리스터는 빈곤에 대한 여러 논의를 통해 빈곤을 정의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들을 살피고, 합리적 정의에 따른 정교한 측정 방법들을 소개한다. 빈곤을 둘러싼 혐오적 담론들과 빈민 재현의 윤리 등을 다루며 책은 사회가 가난을 어떻게 다루고 해결할 것인지, 실질적 대안까지 제시한다. '거지', '가난' 같은 단어들을 쉽고도 얄팍하게 사용하는 사회가 간과하는 입체적 현실의 구석구석을 파보는 책이다.

  • 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은이), 홍한별 (옮긴이) | 창비 | 2022년 6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림원의 성추문으로 노벨문학상 시상이 취소됐던 2018년.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 "소문과 정치적 충성이 개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는 심사평과 함께 부커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고, 한국에서도 김영란 전 대법관과 정세랑, 최은영 작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번스의 빛나는 데뷔작 <노 본스>는 <밀크맨>과 같은 70년대 북아일랜드를 무대로 한 소녀와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북아일랜드 무장 독립 투쟁기'라 불리는 30년의 시간은 이들의 일상을 산산조각낸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는 소녀의 독백. 신념의 얼굴을 한 폭력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서서히 파괴해 나갔고, 아이나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가장 잔혹한 혐오를 맞닥뜨려야 했다. 작가는 자전적 체험을 담아 전쟁에서 철저히 가려진 약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 모든 고통이 잊혀지고 없었던 것이 되어 반복되지 않도록. "살과 피와 뼈를 지닌 언어가 멱살을 잡고 흔든다."고 말하며 구병모 작가가 함께 읽고 추천했다.

  • 그 여자는 화가 난다
    마야 리 랑그바드 (지은이), 손화수 (옮긴이) | 난다 | 2022년 7월 "김혜순 추천, 마땅한 분노가 마침내 도착했다"

    마야 리 랑그바드는 덴마크 국적을 지닌, 레즈비언인 한국계 시인이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서울에 거주하며 친가족을 만나고 입양인 집단에서 활동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게 부끄러워'(63쪽) 자신들의 일터를 보이지 않는 친부모. 형부에게 여자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여자의 언니들. (94쪽) "친모는 언니가 네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니들보다 여자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83쪽)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수출품이었기에 여자는 화가 난다. (18쪽)

    그리핀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한 시인에게 김혜순은 '그 여자는 화가 난다'라는 한국어 제목을 권했다. (원제는 그녀는 화난다 정도로 번역된다고 한다.) 짙은 붉은색 박으로 새겨진 덴마크어 VRED(영어로는 angry라고 한다.)를 검색해 발음을 들어보았다. '브르드'에 가까울 낯선 발음이 흘러간다. 이 낯선 발음을 먼 땅에서 반복했을 한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녀는 한 권의 책에서 1554번이나 화가 난다는 문장을 사용한다. 한번 입양을 결정한 어머니에게는 입양철회권이 없다는 사실, 해외입양을 취소하려면 2백만 원을 지불해야 (79쪽)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화가 난다. 그는 이렇게 아이를 수출하고 돈을 버는, 산업으로서의 국가 간 입양에 대해 고발한다.

    한 인간은 무수한 것의 총체. 레즈비언인 그녀는 '입양권을 달라고 정부에 호소하는 동성애자 연합에 화가 난다. (25쪽) 한편 그녀는 자신의 연인 아스트리가 그린란드에서 아이를 입양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이는 미국 원주민 문화 말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화가 난다. (92쪽) 피해와 가해가 교차하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낱낱이 까발리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가부장제와 젠더와 국가의 구조를 교차하며 이어지는 분노, 재가 남은 이 자리에서 '바로 지금'(322쪽)이 시작된다.

  • 어떤 은수를
    히로시마 레이코 (지은이), 이소담 (옮긴이)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세 가지 기묘한 이야기"

    누적 170만 부를 넘긴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히로시마 레이코의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이번 소설집은 어린이 판타지 문학에서 나아가 청소년, 성인 독자까지 아우르는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 여러 시리즈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어 한 시리즈를 다 읽을 때쯤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히로시마 레이코. 이번 소설집은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세 가지 이야기를 선보인다.

    세 가지 이야기 중 하나인 '어떤 은수를'을 표제작으로 삼았다. 막대한 재산을 모은 세이잔은 어느 날 다섯 명의 남녀 후유쓰구, 후미코, 데루히사, 지아키, 데루코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들인다. '은빛 짐승'이라는 뜻을 지닌 은수, 돌의 알에서 태어나 '돌의 정령'이라고도 불리는 은수를 가장 잘 키운 사람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선택받은 다섯 명은 한 번씩은 은수를 손에 넣지만, 이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인해 우스꽝스러운 결말을 맞이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두 가지 이야기 '히나와 히나', '마녀의 딸들' 역시 작가 특유의 기이하고 치밀한 설정을 통해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을 흡입력 있게 그려 낸다. 위즈덤하우스 청소년 문학 '텍스트 T'의 세 번째 책!

7.152022
  • 인내상자
    미야베 미유키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 북스피어 | 2022년 7월 "미야베 미유키, 비밀을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

    에도의 전통 과자점에서 대대손손 가보로 내려오는 비밀 상자가 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이것은 커다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절대로 열어선 안 되는 상자이기 때문이다. 이 '인내상자'의 뚜껑을 열면 가게에 거대한 불행이 닥친다고 한다. 전 당주는 화재로 집이 타오르는 가운데 인내상자를 지키기 위해 불길로 몸을 던져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 상자는 과연 보물일까, 저주일까.

    누구에게도 결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마음 속에 꼭꼭 담아둔 채로 남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인내상자> 속 여덟 편의 소설에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불쑥 찾아와 자신을 유괴해 달라고 말하는 소년,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우산에 종이를 바르는 일로 연명하는 전직 사무라이, 변소에서 만난 하얀 손, 갑작스런 타인의 방문 또는 죽음. 기이한 사건에 등골이 오싹해지는가 하면 기구하고 애잔한 사연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언제나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 소설집.

  • 김용균, 김용균들
    권미정, 림보, 희음 (지은이),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7월 "산재, 그리고 산재 이후의 남겨진 이야기"

    어느 밤, 입사한 지 3개월 된 비정규직 사원이 예견된 위험 속에서 처참히 목숨을 잃었다. 김용균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산재 사고 피해자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이름으로 남았다. 이름이 남았다면 현실도 변해야 하는데, 이름만 짙은 채로 사회는 견고하다.

    사고는 순간인데 사건은 길게 이어진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여러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다. 동료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이인구 씨, 자식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 씨, 발전 비정규직 노조 동료 이태성 씨는 그날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 삶의 배경 위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달라진 일상까지 합쳐서, 산재다.

    책은 이들의 이야기를 또박또박 담고 있다. 인간보다 효율을 우선하는 노동구조, 비용만을 고려하는 노동환경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 우선순위를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얼마나 여린지, 그들이 함께 얼마나 굳세게 버티는지, 김용균 재단의 첫 책인 <김용균, 김용균들>이 증언한다.

  • 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은이) | 은행나무 | 2022년 7월 "이렇게 여름은 시가 된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산문집 <쓰는 기분> 등을 통해 시인으로, 에세이스트로, 쓰는 사람으로 활동한 박연준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된다. 삶의 ‘찢어진 페이지’를 소설이란 장르로 복원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출발한 필연적인 이야기, 일곱 살 여름이 시작된다.

    소녀의 이름은 여름. 그는 울거나 소리치지 않는다. 주 양육자는 고모, 아버지는 새 여자를 만나 철없이 산다. 이 철없음을 알아채는 일곱 살이라니. "일곱 살 때 나는 이미 지쳤다." (11쪽)라고 선언하는 이 소녀에게 "누가 널 꼬집는데 왜 가만히 있어?"(42쪽)라고 묻는 '루비'가 등장한다. 그 순간 여름의 귀에 '사랑이 움직이는 소리'(43쪽)가 들린다. 지구의 판과 판이 이동하듯, 꿈틀대며 움직이는 감정. 여름은 이제 그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붉게 박살난 과육이 내 영혼이었다."(56쪽) 이렇게 붕괴됨으로서 비로소 알아채는 첫 순간들이 떠오른다. 박연준은 감각적인 말로 '첫 순간'이 유성우처럼 쏟아지던 (박연준처럼 시와 소설을 함께 쓰는 임솔아가 남긴 추천글에 실린 비유) 유년의 날을 기록한다. '글쓰기가 바람처럼 일어나는' (188쪽) 순간들, 일곱 살 여름이 시가 되기까지, 그 모든 처음을 향해 바치는 헌사.

  • 링컨 하이웨이
    에이모 토울스 (지은이), 서창렬 (옮긴이) | 현대문학 | 2022년 7월 "<모스크바의 신사> 작가 신작, 미국 대륙 횡단의 여정!"

    소년원을 퇴소하고 집으로 돌아온 열여덟 살의 에밋.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은 빚으로 압류당했고, 어머니는 수년 전에 집을 떠났다. 책과 모험을 사랑하는 어린 동생 빌리만이 에밋을 반긴다. 더는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소망을 현실로 꺼내어보는 것일까. 남은 유일한 재산, 자동차에 짐을 실은 형제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이어지는 대륙 횡단 고속도로 '링컨 하이웨이'를 따라 어머니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캘리포니아로 향하기로 한다.

    어떤 여행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에밋의 여정이 바로 그렇다. <모스크바의 신사>로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에이모 토울스가 1950년대 미국을 조명하는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당대 사회상과 길 위로 나서는 이들의 사연을 치밀하게 그려내어, 여러 매체에서 잭 케루악과 존 스타인벡, 토머스 울프를 잇는 고전이 될 것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다른 영토로의 이동이 어려운 시절, <링컨 하이웨이>에 몸을 맡기고 여행의 기분을 만끽해 보시기를 권한다. 이 여정 또한 독자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

7.192022
  • 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지은이) | 문학동네 | 2022년 7월 "2022 부커상 후보 작가, 박상영 연작소설"

    2022년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오른 박상영이 '사랑 3부작'의 최종장을 엮었다. 파업 이후 유일하게 정규직으로 채용된 앵커 김남준, 갓 대리로 승진한 회사원 고찬호, 디지털마케팅팀 동료 유한영과 황은채,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던 임철우로 이어지는 네 편의 이야기. 대도시의 사회초년생, D시의 입시생들은 이제 삼십대가 되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리고 싶어하는 요즘 애들'(49쪽)취급 받기는 싫으면서, 어떤 순간엔 "요즘 애들은 도대체......"라는 말이 나와 '스스로도 놀라 손으로 입을 막는'(142쪽) 나이.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한 명은 집을 사고, 다른 한 명은 그 집 전세 계약을 맺는 '영끌' 방법을 동원할 정도로 충분히 삶의 편법에 익숙해진 나이. 그렇지만 아직 삶에 놀랄 것이 잔뜩 남아있다.

    이 소설은 2021년과 2022을 거쳐 자라났다. 격리 해제 이후의 연인 관계를 바라보는 <보름 이후의 사랑> 같은 작품은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의 풍경을 서늘하게 기록한다. '다른 남자와 교미하러 가는 게 아니다'라는 박상영식 유머는 여전하지만, 그들은 이태원발 집단 감염을 '춤천지'라고 조롱하는 시대의 혐오를 어른의 눈으로 바라볼 줄도 안다. 소란스럽게 흥분하고 항의하는 대신, '피로에 지쳐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한숨을 쉬며.'(104쪽) 일과 사랑, 퀴어가 아니었다면 손에 쥘 수 있었을 안정감을 꿈꾸며 이제 그들은 믿음을 말한다. 지금의 쓸쓸함 너머, 보름 이후에도 이어질 삶을 바라보며.

  • 매일을 헤엄치는 법
    이연 (지은이) | 푸른숲 | 2022년 7월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신작"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의 저자이자 미술 크리에이터 이연이 신작 만화 에세이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미술 크리에이터로서 그림을 대하는 마음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책은 지금의 이연을 만들어준 2018년에 관해 만화와 에세이로 기록한 것이다. 2018년은 작가에게 가장 어두운 시기였지만, 가장 소중하고 오래 기억될 해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기억까지 소환하여 그때 그 시절 ‘스물일곱 이연’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입사한 지 3년,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던 직장 내 괴롭힘이 나날이 심해져 정신적 고통에 허덕이다 퇴사를 결심한다. 퇴사한 후 모든 소속을 벗어던지고 오직 ‘이연’이라는 이름만으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보낸 1년이 만화와 에세이로 그려진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수영을 배우며 성장한 이야기를 푸른색의 만화로 담았다.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스물일곱 시절을 거쳐 마침내 ‘이연’으로 우뚝 선 과정을 통해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전한다.

  • 서평의 언어
    메리케이 윌머스 (지은이), 송섬별 (옮긴이) | 돌베개 | 2022년 6월 "이다혜 추천! 베테랑 편집장의 통찰들"

    서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전설적인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에세이와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조앤 디디온, 진 리스, 비타 색빌웨스트 등여성 작가들의 삶과 글, 《타임스》의 부고 기사 분석, 엄마로 사는 일 등 여러 주제에 대한 글이 한데 엮였지만 주로 언어와 책의 세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인상 깊은 글은 '서평의 언어'인데, 역시 사정 다 아는 내부인이 고백 반, 조롱 반으로 채운 비판만큼 깊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유머가 또 없다. 이를테면 "혼란에 빠진 작가는 비평가보다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단점을 서평에서 지적받기 전에 자기가 선수 쳐서 말할 수 있으니까." 라거나 "'즐겁게 읽었다'는 말은 때로 '미천한 나로서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는 의미로 통한다."와 같은 문장에서 성대를 긁으며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기는 힘들다.

    때로 통쾌하고 주로 통렬한 이 글들을 따라가다보면 풍성하고 뾰족한 메리케이 세계의 매력을 충만하게 발견할 것이다. 이다혜 작가가 "<서평의 언어>를 읽으며 나는 든든한 선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말로 추천했다.

  • 섣달그믐의 쫄깃한 밤
    김원아 (지은이), 국민지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2년 6월 어린이 베스트셀러 작가 김원아의 판타지 동화

    전래동화 중에 '도깨비와 범벅 장수'란 이야기가 있다. 고구마 범벅, 호박 범벅 등을 팔던 범벅 장수는 도깨비에게 맛있는 범벅을 빼앗기는 대신 항아리 가득 금을 채워준다. 신이 난 범벅 장수는 많은 범벅을 만들어 도깨비에게 준다. 도깨비들은 먹은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금을 준다. 당연히 부자가 된 범벅 장수는 더 이상 범벅을 만들지 않는다. 도깨비들은 "'아, 재물은 막 주면 안 되는 거구나...! 이 빚은 어떻게든 돌려받아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2XXX,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그 범벅 장수의 후손이 도깨비에게 빚을 갚기 위해 떡을 만든다. 그믐밤에 찾아온 수상하지만 착한 도깨비 이도, 일도와 조상의 업보를 짊어진 온유의 험난하지만 유쾌한 빚 청산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3학년 3반 7번 애벌레>, <예의 없는 친구들을 대하는 슬기로운 말하기 사전>으로 어린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김원아 작가의 한국적인 판타지 동화.

7.222022
  • 튜브
    손원평 (지은이) | 창비 | 2022년 7월 "<아몬드> 손원평의 응원"

    <아몬드> 손원평 장편소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성공하는 이야기를 추천해달라는'(270쪽) 포털 질문글을 보고 작가는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서,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손원평은 자신의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의 추락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확히 2년하고도 5일 전에도 김성곤 안드레아는 자살자들의 성지인 다리에서 몸을 던지려다 '매섭도록 차가운 칼바람'(18쪽)에 굴복해 실패한 적이 있다. 2년을 더 살아보기로 한 그의 결정은 실수였을까, 혹은 운명이었을까?

    김성곤 안드레아의 삶은 평범하게 불운했다. '김성곤의 삶에 노력하지 않은 순간은 별로 없었'(50쪽)는데도, 그는 운명처럼 이런 결말을 맞았다. 지루한 직장생활이 성에 차지 않았고, 사업 아이템이 자꾸 떠올랐고,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할 집념까지 있었다. 그는 '사소한 일에 핀잔을 주고 성이 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 제일 먼저 감정을 드러내는'(35쪽) 평범한 아버지로 살다 딸과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ㅡ 생각만 바꿔선 안 돼, 아빠.
    ㅡ 행동까지 바꿔야지. (65쪽)

    딸 아영의 말처럼, 등을 쭉 편 채로 김성곤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자세는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간다. "이미 나빠져버린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대단하고 힘든"(9쪽) 일이라는 믿음으로 손원평이 이 시대에 던지는 응원.

  • 오래된 기억들의 방
    베로니카 오킨 (지은이), 김병화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져 '나'를 구성하는가."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가 뒤흔든 망각의 늪, 잊힌 세월의 기억이 모습을 드러내어 드넓게 펼쳐진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문 번역판 제목이 '지나간 것들의 기억(Remembrance of Things Past)'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로 개정된 것은 '기억'에 대한 신경과학 연구의 커다란 진전을 보여준다. "두 번역 사이의 시간 동안 신경학은 프루스트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말하며, 신경학자이자 정신의학자 베로니카 오킨이 책을 연다.

    우리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우리를 구성하는가. 이 책은 기억을 고정적이고 수동적인 것으로 보는 과거의 시선에서 벗어나, 감각이 기억이 되기까지 뇌와 신경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인류가 알아낸 것들의 기록이다. 프루스트를 필두로 장 폴 사르트르, 존 버거, 사뮈엘 베케트, 버지니아 울프, 샬럿 퍼킨스 길먼, 찰스 디킨스 등 기억을 다룬 친숙한 문학 작품과 저자의 임상 사례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기억과 뇌과학의 황홀한 세계를 펼쳐보인다. 부커상 수상 작가 존 밴빌, 하지현 교수 추천작.

  •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한인정 (지은이) | 포도밭출판사 | 2022년 7월 "다섯 로컬 출판사가 2년 간 만든 새로운 시리즈"

    서울이 아닌, 대도시가 아닌 어딘가에서 묵묵하고 단단하게 자기 삶과 주변을 일구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시리즈는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그리고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다섯 로컬 출판사가 함께 선보이는 이야기다. 중심부의 목소리로 가득 메워진 한국의 이야기 생태계에서 의미 있고 흥미 있는 지방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2년 간의 모의 끝에 나온 결과물. 앞으로 각 출판사에서 매년 한 권씩의 멋진 발견이 출간될 예정이다.

    일단 올해의 출발부터 면면이 흥미롭다. 레터프레스 작업을 하는 장인 부부, 차별과 혐오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이주여성들, 순천에서 마을 정원을 만드는 청년, 시대의 뒤안길이 된 거리에서 여전히 쇳물을 붓는 철공소 장인의 삶과 원조 충무김밥을 찾아 나서는 여정까지, 예상 밖으로 달음박질 해나가는 이 자유로운 주제들은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만족감도 모두 한껏 높인다. 어딘가에서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의 형태를 상상해 보게 되는, 설레는 시작이다.

  • 카지노 베이비
    강성봉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2022년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첫 책을 낸 소설가 강성봉은 영월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자랐다. 산골 사람들의 일상을 오래 취재했고,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어릴 적 작가가 잠시 살았던,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머물렀던 어떤 공간을 원형으로 작가는 '지음'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한때는 탄광이 있던 도시는 이제 내국인 카지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도서관과 시장이 있는 이스트지저스와 카지노와 스키장이 있는 웨스트부다스, 그리고 그 사이의 슬립시티로 이루어진 지음. 슬립시티의 전당포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이'가 산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않는 '그림자 아이'는 숨는 것이 익숙하다. 아이의 아빠는 이 아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 (고 아이는 알고 있다.)

    이 '그림자 아이'는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간다. 아마도 오랜 습작시기를 거쳤을 작가는, 쉽게 잘 읽히는 방식으로 한 아이의 영혼이 무르익는 과정을 그려낸다. 사전에서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며 '어른과 아이의 팔 길이가 다르듯이 그 아름다움도 사람마다 다르다'(34쪽)는 것을 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이라든지, '엄마가 다른 곳을 볼 때마다 난 조금씩 투명해졌다.'(145쪽)고 서술하는 아이의 머뭇거림에 마음을 뺏기고 만다. 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은 외로워졌고, 전 세계 자산시장은 버블을 만들어냈다. 지음이라는 땅은 언제나 그곳에 머무르며, 이 버블 이후르 살아갈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소설가 윤성희의 추천처럼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온 힘을 다해 박수를 쳐주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2022년 제27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7.262022
  • 다섯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지은이), 오진영 (옮긴이) | 문학동네 | 2022년 7월 "파울로 코엘료 문학 세계의 정수"

    젊은 시절의 파울로 코엘료는 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채 한 음반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서른의 나이에 브라질 지사장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삶은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것이었고, 브라질에서 문학으로 먹고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더욱 높은 곳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미국 본사 최고경영진들과의 면담을 앞둔 어느 밤, 그는 문학의 꿈은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전화가 걸려온 것은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납득가능한 이유는 없었다. 그후 수년간 다시 음악 업계에서 일을 구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가장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닥쳐와 모든 것을 쓸어가는 시련과, 폐허가 된 내면을 끝내 재건하고 언제나 품어온 꿈을 향해 한걸음 내딛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용기. 예언자 엘리야의 사연을 그린 <다섯번째 산>에는 작가가 직접 겪은 삶의 경험에서 길어올린 소중한 것들이 녹아있다.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신유진 (지은이) | 시간의흐름 | 2022년 7월 “<몽 카페> 신유진 신작, 기억과 빛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몽 카페>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을 집필한 에세이스트 신유진의 신작 에세이. 작가는 ‘기억을 볼 수 있는 창’과 ‘내게 흔적을 남기는 빛이 들어오는 창’이 있는 창가에 편안한 의자를 가져다 놓고 독자들을 초대하여 창문 너머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중앙시장 골목 빨간 벽돌 이층집에서 보낸 유년 시절, 열세 살부터 함께 살다가 열아홉 살 어느 추운 겨울밤에 떠난 미자, 리스본의 어느 언덕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여자들, 반려인 마르땅과 반려견 이안이와 함께 맞이한 눈 덮인 세상,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세르지의 마지막 공연. ‘기억’의 창과 ‘빛’의 창으로 바라본 애틋한 세계는 작가 자신에서 시작하여 타인으로 확장된다. 조금 어둡고, 조금 슬프고, 그러면서도 조금 밝고, 조금 웃기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울음을 참게 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맞닥뜨리기도 하며, 읽는 눈과 마음과 감각이 모두 열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 영원한 우정으로 1
    넬레 노이하우스 (지은이), 전은경 (옮긴이) | 북로드 | 2022년 7월 "출판 편집자 살인 사건과 미완의 소설 원고"

    유명 출판 편집자 하이케 베르시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된다. 살해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이케는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고 각종 방송에 출연해 이름이 잘 알려진 편집자였지만, 막강한 출판 권력을 휘두르며 구미에 맞지 않는 작품은 오만한 태도와 무자비한 독설로 비난해 많은 작가들은 물론 동료들에게도 미움을 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30년 넘게 일한 출판사에서 해고된 직후였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 가운데, 하이케와 ‘영원한 우정’을 맹세한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제목의 완성되지 못한 소설 원고도 함께. 경찰은 이 사건이 35년 전 여름, 휴양지의 한 섬에서 '영원한 친구들' 간에 벌어졌던 일과 긴밀히 얽혀 있음을 깨닫고 이들의 20대 시절 꿈과 욕망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우정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져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넬레 노이하우스 '타우누스 시리즈' 신작.

  •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이소영 (지은이) | 창비 | 2022년 7월 "혼자가 되는 미술관에서, 아웃사이더 아트"

    그랜마 모지스와 칼 라르손의 이야기를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 작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록’ 등에 출연하며 책과 방송 등 매체를 가리지 않는 활동으로 관람객과 미술 사이의 거리를 좁혀온 '아트 메신저' 이소영의 신작이 출간됐다. 그를 매혹시킨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의 이야기.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용어는 전통적 문화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예술,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1945년 장 뒤뷔페가 만든 '아르 브뤼'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7쪽)) 흑인, 유대인, 광인, 영매, 도살장 잡부, 가정부. 바깥에 머무르며 바깥에서 일을 하던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서랍 속에 오래 보관했다. 앙리 루소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아웃사이더'부터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화가 리처드 대드까지, 이소영이 서랍 깊숙이 두었던 소중한 작가의 이야기를 꺼내 들려준다.

    '로봇'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소설가 카렐 차페크는 화가이자 작가였다. 그의 형인 요세프 차페크는 '로봇' 같은 인물의 초상화를 여럿 그렸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카렐 차페크의 소설 <평범한 인생> 표지화로 요세프 차페크의 '장난감 판매상'이 활용되기도 했다.) 카렐은 "퇴근하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로봇의 아이디어를 얻"(175쪽)었다고 한다. 요세프의 인물화는 '진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179쪽)에 관해 질문한다. 테레진 수용소에서 아이들과 그림을 그린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가 강조한 "예술은 어린이들의 가장 위대한 자유"(33쪽)라는 말을 새겨본다. 배제된 세계에 자유가 있다.

7.292022
  • 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 정서경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상영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박찬욱과 정서경이 각본을 쓴 영화 <헤어질 결심>의 흥행 추이는 은은한 반전을 이루어냈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식을 알린 5월 말의 기대와, 개봉 후 국내 흥행이 저조하다는 7월 초의 기사 이후 한 달이 지났다. 흥행 역주행으로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7월 말의 기사까지. 개봉 4주차로 이어지며 영화 관람객이 늘고 있고, N차 관람객 수가 올 한국영화 중 1위라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각본 출간 소식과 함께 알라딘 베스트셀러 목록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영화의 대사를 변형한 130여 개의 백자평이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반기고 있다. 박찬욱 감독 역시 "'N차 관람러들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고 이렇게 좀 전해주세요."라는 말로 이 영화의 팬에게 화답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열렬히 지지하고 마는,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고급 시계와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는, 등산을 하며 말러 교향곡을 즐기는 한 남자가 산에서 추락사했다. 그의 젊고 아름다운 중국인 아내 서래는 유력한 용의자로 형사 해준의 조사를 받는다. 진실은 너머에 있고, 서래와 해준 사이로 긴장이 오간다. 여자는 남자의 품위에 대해, 남자는 여자의 꼿꼿함에 대해 말한다. 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의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박해일이 고백한 "나는요, 붕괴됐어요"라는 한 마디 말이, '무너지고 깨어진' 상태에 다다른 (꼭 나 같은) 어떤 이들에겐 해방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일 수는 있을 듯하다.

    각본집 표지 <산해경>엔 '이 산의 봉우리는 깊이 감추어져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배우 탕웨이가 쓴 것이라고 한다.) 중국어가 병기된 배우 탕웨이의 대사를 종이에 인쇄된 글자로 하나하나 읽으며 그 봉우리 너머를 힐끗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영화의 깊은 곳으로 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책이 도착했다.

  •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은이), 배지혜 (옮긴이) | 황금가지 | 2022년 7월 "봉준호 감독 차기 SF 영화 원작"

    척박한 얼음행성을 인류가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개척단이 파견된다. '미키7'은 여기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만 골라 담당한다. 우주 방사선에 피폭되고 외계 동식물에 노출되고 의약품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각종 사고를 당한다. 그에게는 절대 좋은 장비가 주어지지 않는다. 미키가 죽으면 바로 새로운 미키가 태어나, 전임자의 모든 기억이 복제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키7은 여섯 번 죽고, 일곱 번째 생을 사는 중이다.

    주변인들은 미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몇번째 미키인지 관심이 없다. 그저 무한히 대체되는 소모품이라 여길 뿐이다. 그러나 미키7에게 자신은 미키6과도 미키1과도 엄연히 다른 개별 인격체다. 임무 중 깊은 구덩이에 빠져 상처를 입은 미키7이 보낸 구조 요청에, 친구라고 믿었던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며 그냥 죽고 환생하면 안 되냐고 묻는다. 결국 두려움에 떨던 미키7은 혼자 힘으로 겨우 기지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방에서 이미 미키8이 태어난 것을 목격하고 만다.

    가뜩이나 식량 부족으로 긴축 정책이 펼쳐지고 있는데다 상류층과 엘리트로 구성된 개척단에서 하층민 출신 미키를 경시하는 사령관에게 이 사태가 알려지면 미키7과 미키8 모두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둘 중 하나가 죽든가 모두를 속이고 둘 다 살아남아야 한다. 개인의 기쁨과 슬픔, 꿈과 두려움과 기억까지 모두 복제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존재론적 물음부터 자본주의의 깊은 어둠을 들추는 질문까지. 강한 흡인력으로 내달리는 줄거리 속에 지금-여기의 사회를 관통하는 질문들이 녹아있다. 로버트 패틴슨,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가 출연을 확정해 화제를 모은 봉준호 감독 차기작 영화 원작 소설.

  • 오너러블 스쿨보이 1
    존 르 카레 (지은이), 허진 (옮긴이) | 열린책들 | 2022년 7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그 이후"

    영국 정보부 최고위직에 모스크바에서 심어놓은 스파이가 있다는 제보. 지난한 여정 끝에 그를 색출해낸 조지 스마일리는 공을 인정받아 영국 정보부의 수장이 되었다. 배후에 있을 카를라의 흔적을 찾던 스마일리는 홍콩에서 벌어지는 돈세탁을 주목한다. 러시아 자금이 홍콩의 유력 인사에게 모여드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임시 공작원이자 아시아 전문 기자 제리 웨스터비를 홍콩으로 파견하고, 그의 임무는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으로 이어진다.

    소설 출간 10년 뒤에 쓰여진 작가의 서문이 마음을 깊게 울린다. "내가 10년 후에 이 책을 집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내 기억 속의 슬픈 미소와 같다."라는 문장에서 시작하여, "바로 지금도 대처 정권의 외무부 장관은 식민지 홍콩에 가서 영국이 왜 150년 동안 먹어 치운 민족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용감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간을 초월하는 것은 배신밖에 없는 듯하다."로 끝맺는 소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스마일리의 사람들> 사이, 아주 오랜 기다림의 끝에 <오너러블 스쿨보이>를 만날 수 있어 더없이 기쁘고 영광스럽다. 절대 잊혀져서는 안 될 시대의 증언.

  • 박성우 시인의 이상한 낱말 사전
    박성우 (지은이), 서현 (그림) | 비룡소 | 2022년 7월 "박성우 시인이 권하는 낱말들의 시선으로 세상 보기"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은 박성우 시인은 어린이들을 위한 시를 많이 써왔다. 전작 <마음 사전>시리즈를 통해 어린이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마음에 이름 붙여주는 글을 썼다면 이번에는 주변 가까이에 있는 사물과 동물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썼다.

    "너는 앉고 나는 안고!" - 「의자」(62쪽) 사람인 나는 의자에 앉지만, 의자의 시각으로는 사람을 안는다. 두 문장만으로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들고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저자의 힘은 어린 시절부터 말맛을 곱씹을 수 있는 시의 매력을 알려준다.

    시를 통해 소금쟁이가 되어본 작가는 "다만 잠시 물 위에 떠 있는 소금쟁이가 되어 봤을 뿐인데 (...) 와, 뭔가 산뜻하고 통쾌한 멋진 일이 마구마구 생길게 틀림없어!"라 말한다. 그러니 모두 함께 놀라운 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고 흔쾌히 제안할 수 있다. 이제는 기쁘게 화답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