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30만 부, 해외 30만 부 이상 판매되며 30여 개국에 소개된 <82년생 김지영>(2016) 출간 후 10년이 흘렀다. 평범하게 운이 좋은 한 사람의 삶을 가급적 건조하게 서술해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던 작가가 야심작을 출간했다. 서울 '달동네'에서 출발해 '한강 뷰' 아파트에 도달한 계급횡단자 '재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는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 스펙이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의 시기를 지나 적절한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현명한 선택으로 투자에 성공한 운 좋은 사람이다. 아르바이트생으로, 과외 교사로, 은행 직원으로, 빈곤 문제를 다루는 논픽션 작가로 뛰어오른 재이는 삶을 만끽하지 못하고 사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며 질문한다.
내 안은 텅 비었다. 아무런 개성도 매력도 존재감도 없이. (45쪽)
재이는 사회과학서에서 일종의 '힐링'을 섭취한다. 그는 디디에 에리봉을, 아니 에르노를, 샹탈 자케를 읽으며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된 이유를 찾아내려 한다. 안온의 <일인칭 가난>, 강지나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 같은 책을 읽으며 충격이 아닌(세상에 이런 삶이 있다니) 위로를 얻었던(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독자라면, 빚쟁이가 쫓아오던 집, 벌레가 나오는 집, 악취가 나는 집에 나의 일부를 두고 온 것 같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경유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억울하고 지겹고 구차하고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지만 자꾸만 말하고 싶은 이야기'(226쪽)를 향해 말을 거는 소설. 그 이야기가 개인의 것만은 아니라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소설. 이 이야기에서 파생될 대화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