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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023
  • 또 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지은이) | 난다 | 2023년 8월 "은희경 12년 만의 신작 산문집"

    소설가 은희경이 <생각의 일요일들> 이후 1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산문집은 28년 차 소설가 은희경의 물건들이란 주제로 집필한 스물네 편의 산문을 담고 있다. 물건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것과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후자의 경우라면 단단한 취향, 오랜 추억과 시간이 모두 깃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 쓸모를 다했을지라도, 그런 물건은 기필코 버리고야 말겠다는 다짐 앞에서 매번 보란 듯이 존재감을 내뿜는다.

    작가는 효율과는 상관없는, 함께한 시간과 삶의 궤적이 스며 있어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의 목록, 그리고 물건은 아니지만 고양이 오드리와 같은 소중한 존재에 대해 편안하게 써 내려갔다. 음주에 진심인 애주가답게 각종 술잔을 보유하고 있는 그가 점점 작고 가벼운 술잔을 사용하면서 더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술을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완주 기념 메달들은 달리기의 시절로 작가를 데려가 주었고, 엄마의 유품 반지는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었다. 작가는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변해 자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스물네 편의 생활 산문을 통해 물건 앞에서 울고 웃었던 작가의 시간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

  • 오펜하이머 각본집
    크리스토퍼 놀란 (지은이), 김은주 (옮긴이) | 허블 | 2023년 8월 "크리스토퍼 놀란 오리지널 각본집"

    첫 손가락에 대표작을 정하기가 어려운 감독,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터스텔라>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리지널 각본집. 아이맥스(IMAX) 영사기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인 180분(3시간 9초)의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스크린에 구현하지 못한 오리지널 각본을 한국어로 만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과 <과학이 필요한 시간>의 저자 유튜버 궤도가 추천했고, 이론물리학자인 고등과학원(KIAS) 박권 교수가 과학자의 입장에서 본 영화 해설집이 한국판에만 동봉되었다.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핵이라는 불가역적인 그 무엇을 인류의 세기에 출현시켰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평전을 원작으로 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오펜하이머라는 문제적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영화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많은 영웅이 모욕당하고 단죄받는 시대다. 삶의 모든 장면을 심판받는, 오펜하이머가 마주한 보안청문회의 압박감은 2023년의 우리에게 새로운 맥락으로 다시 읽힌다. 깊이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영화, 스크린으로 구현된 영상 그 이상의 것을 찾아서 <오펜하이머>를 만나본다.

  • 백년 동안의 증언
    김응교 (지은이)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9월 1일, 간토대학살 100주기"

    100년 전 일본에서 조선인 대학살이 있었다. 당시 살해된 조선인 피해자는 6,661명 추산. 일본 사회 내부의 불안을 혐오로 해결하려 했던 광기의 처형이었다. 이후 100년, 일본은 학살의 흔적을 부정하고 삭제하려 애썼다. 이 책은 그에 맞서 한, 일 양국에서 학살을 기억해온 기록들을 모으고 정리했다.

    책은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증언하는 드라마와 문학을 살펴보고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일본의 개인과 모임을 소개한다. 서술 방식은 간결하지만 저자 김응교 시인이 20년 동안의 답사와 인터뷰로 연구한 내용이 응축되어 있다. 국가가 앞장서 혐오를 조장하고 제노사이드를 실행한 사건에 대해, 시인은 진실을 똑똑히 기억하되 이 기억이 일본에 대한 분노가 아닌 집단 혐오에 대한 날선 경계로 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아픔의 역사, 피해자의 치유, 가해자의 반성, 시민의 연대에 대해 두루 정확히 살핀 책이다.

  • 최민준의 아들코칭 백과
    최민준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아들코칭의 기본기, 공감육아보다 행동육아"

    "엄마, 화났어요?"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은 엄마에게 묻는다. 난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화났는지 아닌지 왜 물어보는 거야? 화났다고 하면 말 잘 들으려고?" 아이의 답은 간단했고,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니요, 화났는지 아닌지 궁금해서요." 그렇다, 아들은 엄마가 화가 났는지 아닌지가 궁금했던 것뿐이다. 난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들TV' 채널을 통해 명확한 인사이트와 독보적인 노하우로 뜨거운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는 최민준 소장이 아들코칭 비법을 집대성한 책 <최민준의 아들코칭 백과>로 돌아왔다. 아들코칭의 기본기는 '공감육아'보다 '행동육아'라고 강조하며, 행동육아의 기본 원칙 4가지 기질, 소통, 사회성, 자기효능감을 통해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아들을 변화시키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아들TV'에서 화제가 되었던 콘텐츠들을 선별해서 담았고, 텍스트로 못다 전한 내용을 일러스트를 통해 단번에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저자는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공감육아'도 중요하지만, 아들을 키울 때는 적절한 수용과 단호함으로 아이를 바로잡는 '행동육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아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아들은 '공감의 뇌'보다 '이성의 뇌'가 먼저 발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유아기 아들부터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 부모 모두를 위한 필독서로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엄마의 화를 측정할 수 있는 분노 게이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9.52023
  • 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은이) | 다산책방 | 2023년 8월 "<저주토끼> 정보라 장편소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여기 고통에 대한 두 개의 관점이 있다.

    1)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었다. (29쪽)
    2)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 (30쪽)

    중독성이 없고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진통제 NSTRA-14의 등장 이후 이 세계에서 고통은 신체적 통증의 일부로 축소되었다. (우리 세계에서 '펜타닐'의 시작이 진통제였음 기억해보자.) 막대한 이익을 누리던 제약회사의 신성모독은 고통의 철학적 의미에 집착하는 신흥종교 '교단'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방식으로 응징을 당한다. 12년 후 과거의 테러사건과 연관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테러의 범인, 제약회사의 상속인, 교단의 추종자 등의 시점을 오가며 이야기는 각자의 고통에 관하여(On Suffering) 쓴다. 해마체에 아로새긴 '기억'에서 출발해 체성감각 영역-변연계-전두엽-시상하부-온몸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감각.

    <오징어 게임> 같은 넷플릭스 창작물이 한국인만을 주 시청자로 상상하지 않듯, 정보라의 소설도 경계 바깥에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관념적인 한글자 이름을 두른 인물들은 국적과 성별이 아닌 날렵하거나, 날카로운 각자의 개성으로 불린다. 고통이 사라진 곳에서 고통을 갈망하는 이들을 둘러싼, 고통과 구원에 관한 정보라의 SF 스릴러를 소개한다.

  • 삶은 예술로 빛난다
    조원재 (지은이)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신작"

    40만 부 판매 기록을 세운 베스트셀러 <방구석 미술관>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알게 된 독자들에겐 반가울 소식, 조원재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방구석 미술관>이 미술 작품과 작가 들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소개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예술을 매개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복되는 삶, 나태함, 주변을 새롭게 보는 눈, 자아 등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픈 이라면 누구나 고민해 본 적 있거나 고민 중인 주제 들에 대해 저자는 예술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삶에 시달려 소진되었을 때, 그는 예술이 방향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친 이들을 위해 도란도란 따뜻한 이야기를 건네는 예술 교양서.

  • 집착의 법칙
    그랜트 카돈 (지은이), 최은아 (옮긴이) | 부키 | 2023년 8월 "집착은 재능이다."

    사람들은 성공에 집착하는 그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를 일 중독자라고 부르면서 강박적이고 집착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억압적이고 함께 일하기 불가능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까다롭게 굴면서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그 스스로나 다른 사람에게 비합리적인 기대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에게 ADHD가 있다고 진단 내렸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에게 열 좀 식히고 진정하라고, 긴장을 풀고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가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 수는 없느냐고, 그래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지지 않았느냐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더 크게 성공하고 싶었다. “전혀 힘들지 않아. 집착은 내 재능이야.”

    연간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5개 비상장 회사의 소유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 톱 10, 5권의 책을 낸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강연가. 이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 그랜트 카돈은 한 때 마약중독자의 삶을 살았다. 당시 담당 상담사는 그에게 ‘중독 성향’이 있으며, 그저 평생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의 인생 최대의 성공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상담사가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주장한 ‘중독 성향’을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활용하겠다고 결심했고, 끔찍한 습관에 집착하는 대신 성공에 집착했다. 그는 이 책에서 집착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구했는지, 집착이 왜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 경험과 커리어를 통해 설명한다. 또 집착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어떻게 제거하는지, 집착을 어떻게 돌보고 기르고 유지할 수 있는지 효과적인 툴과 훈련법, 필수적인 기술과 원칙을 밝힌다. 성공하는 데 자본, 학벌, 유산, IQ 따위는 필요 없다고, 오직 용기와 끈기, 집착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 세계 그 자체
    울프 다니엘손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 동아시아 | 2023년 8월 "현대 과학의 철학적 의미를 파헤친 문제작"

    대니얼 데닛은 "철학적 가정이 포함되지 않은 과학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에는 어떤 철학적 가정이 스며 있을까? 노벨상을 선정하는 왕립스웨덴과학한림원 회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저자 울프 다니엘손에 따르면 우주가 실재하는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 우리의 주관적 경험이 일종의 착각이라는 것 등이 그 예시에 속한다. 저자는 그 자신이 우주의 궁극적 비밀을 고도의 수학으로 파헤치는 끈이론가이면서도 이 모든 철학적 명제에 반대한다고 선언한다. 우주 바깥에서 우주의 모습을 결정하는 수학적 법칙은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가 모든 것을 계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믿음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이데아 같은 플라톤 철학의 유물이라고까지 지적한다.

    데카르트와는 반대로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주장과, 인간은 특별하지 않으며 자유의지는 없다는 선언을 비롯해 이 책에는 현대 과학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전반적인 믿음과 합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도발적인 주장이 가득하다. 저자는 자신의 독특한 과학철학을 마르셀 프루스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살만 루슈디의 문학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스탠리 큐브릭의 예술을 동원하여 생생히 풀어낸다. 브라이언 그린이 "수학, 물리학, 그리고 실재의 본성에 대한 대담한 관점을 보여주며, 우주의 가장 깊은 미스터리를 향해 우리를 집요하게 끌고 간다."라고 말하며 추천한 책으로, 데카르트의 의식부터 메를로퐁티의 몸까지 현대 과학의 철학적 의미를 파헤친 문제작이다.

9.82023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홍은주 (옮긴이) | 문학동네 | 2023년 9월 "무라카미 하루키 최신작"

    어느 여름 석양빛 아래 선명히 남은 기억이 소년에게 있다.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이야." 소녀는 말했다. 소년과 함께 이곳에 있는 자신은 실제 자신이 아니며 대역이나 흘러가는 그림자와 같은 거라고. 소녀가 사는 도시에는 시간이 없고 시계에도 시곗바늘이 달려 있지 않으며, 진짜 자신은 그곳에서 밤의 도서관에 머문다고 했다.

    그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년에게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할 수도 있고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도시에 도착한다면 소년을 위한 자리가 딱 한자리 마련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매일 밤 도서관에 보관된 무수히 많은 오래된 꿈을 읽는 사람. '꿈 읽는 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돌연 소녀가 사라진 후, 소년은 몇 번이고 기억을 재생하며 그 도시에 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곳에서 진짜 소녀를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그는 결국 견고하고 높은 돌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를 찾아낸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30대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문예지에 중편소설로 발표한 후 43년이 흐른 끝에 3부 구성의 장편소설로 완성해낸 작품이다. 작가 후기에서 "이 작품에는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느껴왔다. 다만 당시의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무언가를 충분히 써낼 만큼의 필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였으므로 이 작품을 완성한 지금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고 직접 고백할 정도로 하루키의 작품세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소설이다.

  • 향수가 된 식물들
    장 클로드 엘레나 (지은이), 카린 도어링 프로저 (그림), 이주영 (옮긴이) | 아멜리에북스 | 2023년 8월 “마스터 조향사가 안내하는 향수 식물의 세계”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마스터 조향사 장 클로드 엘레나. 14년 동안 에르메스 전속 조향사로서 에르메르 향의 세계를 구축한 그는, 2018년부터 독립 조향사로 전향하여 70대인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전작 에세이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에서 조향사로서 향수와 삶에 관한 생각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향수들의 탄생 비화와 더불어 향수와 식물의 흥미로운 세계를 들려준다.

    향수는 천연 재료와 화학물질이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것이다. 모든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향수도 같은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재현해낸다. 저자는 일랑일랑, 파촐리, 투베로즈, 베르가못, 벤조인, 아이리스, 장미, 수선화, 레몬, 참나무 이끼, 카다멈 등 40여 가지의 식물들이 어떤 향으로 변주되는지, 어떤 향수를 만들어내는지 입문자들이 보기에도 편한 언어로 소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향에 얽힌 추억, 식물의 원산지, 향이 추출된 식물의 다양한 부위 등 개인적, 역사적, 지리적, 식물학적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곁들인다. 아름다운 식물과 향수 일러스트를 곳곳에 배치하여 시각적인 즐거움도 선사한다. 우리가 몰랐던 향, 향수, 식물의 세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 k-펑크 1
    마크 피셔 (지은이), 대런 앰브로즈 (엮은이), 박진철, 임경수 (옮긴이) | 리시올 | 2023년 9월 "마크 피셔 블로그 선집"

    이 책의 출간 소식에 잔뜩 흥분한 이들이 많다. 영문 모르는 이들을 위한 간략 소개를 하자면, 저자 마크 피셔는 영국의 비평가로, 그의 이름 뒤엔 '독창적인', '흥미로운', '발군의' 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문화와 정치, 철학을 넘나드는 폭넓고 신랄한 그의 비평은 오랫동안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했다. 특이한 점은 그가 활동한 주 무대가 블로그였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그 시절의 블로그는 단지 글을 발행하는 창구 정도가 아니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여러 주제들에 대해 저마다의 글을 쏟아냈고, 온라인 글쓰기의 형식적 캐주얼함, 즉각성, 상호작용적 특성을 기반으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는 공론장으로서 기능했다. 바야흐로 블로그의 시대에서 넓고 깊은 관심사, 논쟁적인 문체, 좋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섬세한 태도를 갖춘 마크 피셔의 블로그는 글마다 화제를 모으며 블로그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섰다.

    그리고 이 책은 마크 피셔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원서로는 단권 벽돌책으로 나온 이 책을 리시올 출판사에서는 주제별로 나누어 총 4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1권에서는 책, 영화, 텔레비전에 관한 비평들을 모았다. J. G. 밸러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에 대한 이야기, 데니스 포터의 작품 분석,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에 대한 날선 비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책과 책을 향한 팬들의 열띈 반응에는 경계 없는 지적 비평을 펼쳤던 그 때의 마크 피셔에 대한 경의와 더이상 마주할 수 없는 그의 정신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의 "시간은 바닥나 버리고 말았"으나 그가 남긴 글들이 남아 우리에게 당도했다.

  • 멘탈을 회복하는 연습
    데이먼 자하리아데스 (지은이), 안솔비 (옮긴이) | 서삼독 | 2023년 9월 “후회와 미련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베스트셀러 <멘탈이 강해지는 연습>에서 강인한 멘탈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트레이닝 방법을 제시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데이먼 자하리아데스의 신간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전작 출간 이후 독자 리뷰나 편지로 강한 멘탈을 만들고 싶어도 너무 큰 상처를 받아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자신이 다리를 다쳐 걷기조차 힘든 사람들에게 빠르게 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멘탈이 강해지기 전에 회복이 먼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저자는, 그들 사이의 공통점으로 그들 모두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실을 발견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저마다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멘탈 회복을 향한 첫 번째 단계는 마음의 짐이 되는 좌절감, 후회, 고통스러운 기억과의 결별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이미 지나간 일은 그냥 좀 내려놔.’ 라던가 ‘이제 그만 괴로워하고 놓아줘.’라는 이야기를 충고랍시고 듣는다고 쉽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런 이야기는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저자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번잡한 이론 설명과 성공 사례 자랑이 아닌, 오늘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트레이닝 방법을 제시한다. 멘탈 회복을 위한 ‘놓아버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저자도 여러 차례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발목을 잡는 정신적·감정적 방해물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몸을 무겁게 만드는 짐들을 놓아버리는 것이야 말로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행복하게 달려 나가기 위한 시작임이 분명하다.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다. 알다시피 인생은 원래도 힘드니까.

9.122023
  •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한석준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말하기에 자신이 생기면 인생이 바뀐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중요한 면접부터 회사에서 본인의 성과를 드러내야 할 때, 팀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할 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남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말하기를 잘한다는 것은 인생의 관문들을 남들보다 좀 더 막힘없이 통과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혹은 만능 프리패스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는 묻는다. 하고 싶은 말을 매력적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 수 있었겠냐고. 하다못해 말문이 막혀 그냥 참아야 했던 순간에 적절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했겠냐고.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을 잘하면 도대체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저자는 “말하기에 자신이 생기면 인생이 바뀝니다.”라고 단언한다. 타고난 목소리가 좋지 않거나 말주변이 부족하더라도, 매일 꾸준히 10분씩만 훈련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말 잘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발성과 발음 훈련으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을 수 있으며, 평소 잘못된 말버릇이나 어투만 교정해도 세련되고 지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는 법, 혀 짧은 소리를 고치는 법, 말맛을 살리면서 힘 있게 말하는 법은 물론이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법이나 상대방의 잘못을 효과적으로 지적하는 법, 나를 지키면서 거절하는 법 등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원포인트 솔루션을 제공한다. “처음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일상에서 말을 잘하고 싶은 일반 대중을 위한 스피치 노하우를 전하고 있는 24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의 말하기 수업을 들어보자.

  • 감염 동물
    김시경 (지은이), 장선환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어린이부문 대상 수상작"

    MTV(미스터리 토킹 바이러스)는 어느 날 갑자기 퍼졌다. 정부는 신종 조류 독감이라며?진실을 숨겼고 감염된 동물과 사람을 격리하기 시작했다. 격리된 동물들은 살처분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마을은 폐쇄됐다. 초록이는 반려견 초코 감염된 것을 알고 살처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짧은 모험을 떠나게 되고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바이러스에 걸린 동물들과 선택에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과연 초록이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 변할 수 있을까?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며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될까? 고개만 갸웃거리게 되는 요즘이다. 희망은 작아지고 마음의 문을 닫기 급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 속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 위안이 된다. 내가 아닌 존재를 염려한다는 것, 작은 것에서 시작될 큰 변화의 물꼬를 터줄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어린이 부문 대상 수상작.

  • 루나의 전세역전
    홍인혜 (지은이), 정민경 (감수) | 세미콜론 | 2023년 9월 "전세 사기 피해자 루나의 피땀눈물의 기록"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그리고 시인 루나 홍인혜에게 큰 환난이 닥쳤다. 그것은 바로 '전세 사기'. 작가는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에겐 정보가 되길 바라고,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세 사기 피해 사실을 만화로 그려 공개했다. '루나파크'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한 만화를 재구성하여 편집하고, 미공개 에세이와 에필로그 카툰, 전문 변호사의 감수를 더해 탄탄한 단행본으로 선보인다.

    부푼 꿈을 안고 새 집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압류 통지서를 받고, 새 집주인의 복잡한 채무 관계, 누군가와의 법적 분쟁, 세금 체납과 같은 진실을 알게 된다. 그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유찰과 낙찰, 경매 중단 과정 끝에 공매가 결정된다. 이사부터 압류, 경매, 공매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피땀눈물을 흘려가며 버틴 장장 3년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한 편의 드라마 같기도 한 기록을 읽으며 가장 뭉클하게 다가온 부분은 극한의 절망과 불안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다. 누군가의 뻔뻔함과 부도덕함과 악함으로 극도의 고통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본질이 훼손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지옥문을 스스로 닫았다는 것. 작가만의 방식으로 삶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큰 위안과 의미 있는 일이 되어줄 것이다.

  • 베테랑의 몸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일하는 몸의 자부심"

    이 책을 추리고 추려서 소개하면 딱 이 문장이 남는다. "사람을 무슨 다 쓴 건전지처럼 갈아 끼우는 학교(와 교직원들)의 행태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들조차, 급식실에서 밥을 짓고 채소를 다듬는 일이 어떤 대단한 기술과 숙련을 갖췄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다. 없던 것은 생각이 아니라 언어였다."(72쪽) 언제든 한 편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조차 이들의 숙련도와 자부심에 대해선 무지하다. 어떤 직업에 대해선 그렇게 특정한 방향의 생각만 흐른다.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안마사... 기록노동자 희정이 이 직업인들의 자부심을 듣고 관찰하고 썼다. 같은 자세로, 같은 태도로 10년, 20년, 30년 오래 일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이, 노력이, 내 일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확실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자부심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반찬 가게의 반찬과 손주의 식단표를 눈여겨보며 공부하는 조리사의 기획력이, 공중에 매달려 자유로움을 느끼며 건물 외벽의 실리콘 작업을 하는 로프공의 숙련된 기술이 이제야 언어가 되어 머리에 들어온다. 이 책엔 단단한 직업관이, 노련한 기술자들의 진심이 들어있다.

    서로의 묵묵한 진심을 알아봐 주는 순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무심함이 전제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별 볼 일 없게 느껴진다. 상품, 음식, 서비스, 프로젝트 안에서 이것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응축된 시간과 노력, 마음을 자꾸자꾸 목격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책은 무심해 보이던 세상이 사실은 얼마나 정밀한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직업인을 직업인으로서 조명하는 당연한 일을 드디어 해냄으로써.

9.152023
  • 촉진하는 밤
    김소연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범람하는 밤에게 굴하지 않기"

    이번에는 나에 대해서 시를 쓰지 마
    i는 팔짱을 끼며 눈을 찡긋거렸다
    (<머리말> 부분)

    <i에게> 이후 5년 만에, 데뷔 30주년을 맞아 김소연이 시집을 펴냈다. 'i 몰래 i 없는 시를 쓰러 갔다'(<머리말> 부분) 감각한 지금은 밤이다. 이 밤은 어떤 밤인가. '나를 숨겨주는 밤 더 많은 나를 더 깊이 은닉해주는 밤...' (<푸른얼음> 부분)

    징검다리처럼 놓인 이미지를 건넌다. 다음 이미지를 지나면 다가오는 다음 밤. '미쳐 날뛰는 바람이 커튼을 밀어내고 / 펼쳐둔 책을 휘뜩휘뜩 넘기고'(<촉진하는 밤> 부분) 이 막막하고, 위태로운 밤을 지나는 김소연의 시엔 이런 사람, 나, i가 있다. '언제나 잠이 오지 않던 사람'(<이 느린 물> 부분), '생각을 너무 많이 하다가 / 내가 생각이 되어간다.'(<2층 관객 라운지> 부분)고 말하거나 '무엇을 위해 견디고 있는지를 더 이상 모르므로'(<2층 관객 라운지 같은 일인칭시점> 부분) 두리번대는 사람...

    내가 이 세계의 버그인가? 한번쯤 고민해봤을, 도무지 이 세계가 익숙해지지 않는 i들과 김소연의 아름답고 강인한 시를 소리내어 읽고 싶다. 험난한 맵을 가로질러 푸른밤을 건너는 이들은 '시스템은 버그를 잡기 위해 사냥꾼을 투입할 것입니다.'(<디버깅> 부분) 라는, 도래할 밤의 경고음을 듣는다. 좀처럼 웃지 않는, 어깃장을 놓는, 부릅뜬, '나'와 '나'가 나누는 우정. 그 우정 같은 김소연의 시로 도래할 밤을 직면하고 싶다.

  • 6시 20분의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은이), 허형은 (옮긴이) | 북로드 | 2023년 9월 "데이비드 발다치 신작,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매일 아침 맨해튼으로 향하는 6시 20분 기차에 헐레벌떡 올라타며 고단한 출근길에 나서는 트래비스 디바인. 월 스트리트의 말단 애널리스트로 투자회사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며 매일 종합격투기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치르고 있다. 업계에서 경쟁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는 패배라는 운명이 예정되어 있음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삶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최악의 형벌을 내리고 있는 중이다.

    한때 미국 육군 특수부대의 유능한 장교이자 촉망받는 정예요원으로서 빛나는 미래만이 펼쳐져 있던 디바인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제대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된 것은 뜻밖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자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이 가장 경멸하던 부류의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벌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날아온 발신자 불명의 이메일 한 통이 그를 혼돈으로 몰고 간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메일에 이어 그에게 군 시절의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는 이가 나타나며, 디바인은 세상에 숨기고 있던 압도적인 체력과 명석한 두뇌를 이용하여 업계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와 진실을 추적해나가기로 한다. 스릴러 거장 데이비드 발다치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 이어 선보이는 강렬한 신작.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은이)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술과 사람, 인생. 정지아의 내밀한 이야기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가 첫 에세이로 선보이는 이번 책은 진정한 애주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34편의 도수 높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스키, 소주, 사케, 막걸리 각종 술과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고, 구례, 몽골, 오사카, 키르기스스탄, 블라디보스토크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술이 있는 곳엔 반드시 사람이, 사람이 있는 곳엔 늘 술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사연이 있다.

    실패한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신 맥켈란 1926, 가난과 슬픔과 좌절로 점철된 지난 시간과 작별하며 마신 시바스리갈, 청춘의 어느 밤, 친구의 오두막에서 트윈 폴리오의 ‘축제의 밤’연주를 들으며 마신 매실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은사님과 나눈 보드카, 어린 시절 큰아버지가 만들어준 소주를 넣은 계란밥. 작가는 술과 함께, 사람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술 이야기이자, 마음의 도수를 올리는 사람 이야기, 그리고, 정지아 작가의 내밀한 삶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술처럼, 서서히, 기분 좋게 취하게 만든다.

  •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김현아 (지은이) | 창비 | 2023년 9월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사는 일"

    의대 교수 부모, 화목한 가정, 성적에 대한 강한 압박도 없는 집안에서 밝고 명랑하게 자라는 줄로만 알았던 둘째 딸이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한 날이었다. 딸은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다.

    타인의 질병 진단은 마치 그 삶의 서사가 파악된 듯 착각하게 한다. 알게 된 것은 이름밖에 없음에도 우리는 그 병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딸이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7년째 딸의 병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기록이다. 자해, 발작, 의지, 무기력, 회복, 악화... 짧은 병명이 결코 설명해주지 못하는 고통의 구체성이 낱낱이 담겼다.

    고통은 또한 엄마를 공부하게 했다. 내과 의사인 저자는 정신의학을 파고들었다. 정신질환에 관한 책, 예술가의 이야기, 뇌의 작동 방식, 자해의 이해, 약에 관한 정보, 정신 의학이 지나온 역사 등 딸의 병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딸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그 내용들을 썼다.

    꺼내기 힘들었을 얘기를 숨김없이 담담하게 써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의학 전문가이자 환자의 가족으로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저자의 용기가 같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9.192023
  • 상황과 이야기
    비비언 고닉 (지은이), 이영아 (옮긴이) | 마농지 | 2023년 9월 "비비언 고닉이 말하는 자전적 글쓰기"

    비비언 고닉의 산문들엔 쨍하게 선명한 그 자신이 존재한다. 스스로를 긴 말로 소개하지 않아도 고닉의 문장엔 늘 그의 강렬한 자아가 들러붙어 있다.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진 않지만 글로는 영원히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나는 그것이 타고나는 것이거나 평균보다 과잉된 자아의 산물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것이 고닉이 만들어낸 자전적 글쓰기용 페르소나, 진실한 서술자임을 알게 됐다.

    고닉의 자전적 산문마다 나타나는 화자가 그 자신이 아니라 그가 발견해낸 서술자라는 사실, 이 자백은 우리에겐 환희의 시작이다. 매력적인 글쓰기의 진실이자 다르게 읽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닉 자신도 이 열쇠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흥분감과 황홀경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진실한 서술자에 초점을 맞추어 대가들의 글을 하나하나 살피며 읽기와 쓰기에 관한 문답을 해나간다.

    고닉은 변죽을 울리는 법이 없다. 핵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그의 글쓰기는, 글쓰기에 관한 글에서도 여실히 빛을 발한다. 빛나는 참고 자료들과 거침없이 나아가는 설명. 자전적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진실을 막힘없이 흘려내는 그의 글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아 양손으로 떠받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자전적 글쓰기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은이), 유소영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2022 부커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작"

    사진작가 말리는 기억을 잃은 채 낯선 장소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죽은 자의 대기실이었다. 앞으로 달이 일곱 번 뜨고 지기 전까지 여생을 정리하고 망각의 빛으로 들어가면 다음 생을 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지만, 말리는 자신이 어째서 죽게 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유령의 몸으로 이승을 향한다. 그가 살던 1990년의 스리랑카 콜롬보로. 그곳에선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한창이었으며, 부패한 독재 정권은 납치와 고문을 자행하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매일 행방불명되고 있었다.

    죽기 전 어떤 사진을 찍었음을 겨우 기억해 낸 말리는 자신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실종된 그를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들 역시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을 도울 힘을 주겠다는 유혹과 모든 것을 잊고 다음 생으로 향하라는 충고 사이에서 갈등하는 말리. 마지막 달은 어김없이 떠오르고, 생을 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형이상학적 저승 누아르. 독자를 ‘세계의 어두운 심장’으로 데려가는 진지한 철학적 유희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친절함과 아름다움, 사랑과 충실함, 모든 인간의 삶을 정당화하는 이상의 추구를 발견하게 된다."라는 심사위원회의 찬사와 함께 만장일치로 2022년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

  • 어린이 마음 약국
    이현아 (지은이), 소복이 (그림) | 창비교육 | 2023년 9월 "어린이 마음 약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으면 우리가 흔히 하는 행동이 있다. "괜찮아? 호오 ~ 호오 ~" 분명 아픔이 클 텐데 아이들은 금방 울음을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처가 큰 경우, 병원의 치료가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상황에 대한 공감과 위로만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몸과 마음의 치료는 모두 '공감'에서 시작된다. 마음의 상처에 필요한 건 '공감'이라는 반창고이다.

    14년 차 초등 교사 이현아 선생님의 그림책 처방전. 그림책 처방이란, 어린이의 고민이나 사연에 대해 마음 약 편지와 함께 그림책을 처방해 주는 것이다. 이현아 선생님은 2016년부터 '교실 우체통 프로젝트', '온라인 고민 우체통'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때로는 상담을 하고 때로는 편지도 쓰며 어린이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나아가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그림책을 추천해 주었는데, 그림책은 짧고 간결한 글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함축되어 있어 상처가 난 마음을 지혜롭게 다독이며 염증을 가라앉혀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린이 마음 약국>은 실제 7년 동안의 어린이 사연을 18개로 유형화하여 증상별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다. '마음 건강 문진표', '똑똑 고민 있어요', '마음 약 편지', '그림책 처방전'의 4단계를 통해 자신의 증상에 맞는 사연을 읽고, 조언과 처방을 받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림책 처방전이 마음이 아픈 어린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길 바란다. <마음버스> 소복이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 드라큘라의 시
    김개미 (지은이), 경자 (그림) | 천개의바람 | 2023년 9월 "외로움과 두려움을 노래하는 드라큘라"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낸 채 붉은 액체를 마시며 고독을 즐기는 드라큘라. 흔히 떠오르는 드라큘라에 대한 이미지다. 하지만 김개미 시인의 시 속 드라큘라는 좀 다르다. 어린 드라큘라는 무섭고 외롭다.

    "어두워질 때
    기분이 이상할 때
    무섭다
    엄청 무섭다
    아이고, 지금도 무섭다"
    <내 방의 무서움> 중

    무서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바로 응시한다. 어린이라고 외로움과 두려움과 고독을 모를 리 없다. 만약 없다고 생각된다면 없어야 한다는 당위에 짓눌린 것을 아닐까. 김개미 시인은 본인만의 부드러운 어조로 간과하기 쉬운 어린이들의 숨은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다정함에 시를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9.222023
  •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구의 증명> 최진영 소설의 분기점"

    때로 목화는 "많이 죽었어"라는 말 외에는 꺼내지 못했다. 그럴 때 목수는 "한 명을 살렸다"라고 기록했다. (100쪽)

    2010년 첫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데뷔, 2023년 <홈 스위트 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사랑하는 이가 부재하는 세계의 적막을 기록한 <구의 증명>을 지나 이제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로 독자를 만난다.

    열여섯 살이 된 목화는 현실처럼 생생한 죽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참은 세계에 가득하여 사람들은 투신해 죽고, 차에 치여 죽고, 살해당하고, 노동하다 죽는다. 투신하는 이의 몸을 받아내던 순간, 목화는 자신이 단 한 사람만은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백 수천의 죽음 중 목화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나무 이파리 하나 정도의 힘으로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중개'가 반복되면서 목화는 살리는 자의 숙명이 할머니인 임천자와 엄마인 장미수를 거쳐 자신에게 전승되었음을 알게 된다.

    나무의 연대기와 인간의 계보가 설화처럼 엮여 있다. 이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는 이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해가 지는 곳으로' 슬픔의 끝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이던 작가가 '10여 년간 붙들고 지낸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소설로 건넨다. 단 한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57쪽)

  •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 아몬드 | 2023년 9월 "중요한 것은 유전자가 아니다."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나는 어떻게 현재의 내가 되었을까?" 20세기 이전,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양육되고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결정한다고 답했다. 20세기에 들어 생물학의 발전으로 부모가 물려준 DNA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현대 과학자들은 서두의 질문에 대해 '유전자'와 '경험'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중요하다고 대답해왔다. 그러나 유전자와 경험 사이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요인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마치 조명의 밝기를 조절하는 조광기처럼 우리가 처한 환경과 경험이 DNA의 활성 정도를 조절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요인이 DNA의 염기 서열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DNA가 작동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특정 DNA를 전혀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 수도 있고, 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그렇게 유전자에 새겨진 경험은 후대로 대물림되기까지 한다. 이는 생물학 분야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주제로 꼽히는 '후성유전학'의 최신 연구들이 증명해낸 결과다.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험이 유전자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들은 생물학의 도그마와 판도를 뒤집었다. DNA가 인간의 형질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뿐 아니라 ‘본성 대 양육’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도 무너뜨리고 있다. 저자는 후성유전학에서 밝혀진 새로운 지식이 암과 노화, 중독과 알츠하이머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기억에 관한 질환, 조현병과 양극성장애와 자폐와 우울증 같은 정신 병리에서 긍정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다."라는 메시지와 그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책이다.

  • 비스킷
    김선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청각과 관련된 질환을 앓고 있는 제성, 하지만 이로 인한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 구운 과자인 비스킷처럼 쉽게 부서지기 쉬운 속성을 떠올려 제성은 이들을 '비스킷'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 비스킷은 사회에서는 '존재감', 개인적으로는 '자존감'을 잃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데, 제성은 절친인 덕환과 함께 마련한 일종의 비밀기지 '아지트'에서 비스킷이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기 시작한다. 과연 제성은 비스킷을 발견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을 우리의 세계로 다시 끌어오는데 성공할수 있을까?

    <비스킷>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최종 두 작품 중, 오로지 100% 청소년 독자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대상작이다. 작가는 <비스킷>을 통해 말한다. "누구도 비스킷이 될 순 있지만, 누구도 비스킷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청소년들이 경이로운 세상 속으로 한 발 더 다가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김달님 (지은이)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김달님만이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삶의 이야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여 그들의 말과 이야기를 고운 글로 지어 전달하는 작가 김달님. 그는 평범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들려준 말과 이야기 속에서 삶을 계속 사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찬찬히 경청하여 포착한 이야기들을 마음을 다해 기록한 신작 에세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독자들에게 건넨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 정성을 다해 청소 노동을 하며 관찰한 일들을 일기장에 기록하는 사람. 자주 보는 나무에 봄이 어떻게 오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 일흔일곱에 복지관에서 처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 손수 따뜻한 밥을 지어 위로를 건네는 사람. 조용히 우는 사람의 손에 귤 한 조각을 쥐여주는 사람.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좋다고 고백한다. 소중한 이들과 기꺼이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무언가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마음,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마음, 행복이 분명 있을 거라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온 과정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9.262023
  • 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아난요 바타차리야 (지은이), 박병철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9월 "21세기의 우리는 폰 노이만의 설계대로 살고 있다."

    컴퓨터, 스마트폰, 인공지능,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설계부터 게임이론의 발명과 양자역학의 수학적 완성까지. 21세기의 핵심 토대가 된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의 이름은 존 폰 노이만.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20세기 후반의 사상사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진보 중 폰 노이만을 ‘~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는 분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인생 전체가 20세기 문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년간 학술지 ‘네이처’에서 편집자로 일한 저자가 '20세기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 불리지만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폰 노이만의 삶의 궤적을 파헤치며 그의 광대한 학문적 성과, 인류에 공헌한 업적을 중심으로 당대 과학사의 치열한 풍경을 생생히 구현해냈다.

    2022년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20세기의 돌풍 속에서 시대를 초월한 도전을 펼쳤던 존 폰 노이만의 삶은 우리에게 인류의 지성과 잠재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그가 현 시대를 살고 있다면 어떤 미래를 꿈꾸었을지 이 책과 함께 상상해보기를 권한다."고 말하며 추천했고, 물리학자 정재승이 "21세기 현대 문명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미래에서 온 과학자’를 꼽자면 과연 누굴까? 딱 한 명이 떠오르는데, 이견 없이 ‘존 폰 노이만’이다. 오늘날 현대 문명이 어디서 누구로부터 비롯됐는지 그 기원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존 폰 노이만은 21세기의 우리가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게 될지 선명하게 상상한 유일한 20세기 인간이었을지 모른다."고 말하며 함께 읽은 책이다. 2022년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영국과 미국 아마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 눈부시게 불완전한
    일라이 클레어 (지은이), 하은빈 (옮긴이) | 동아시아 | 2023년 9월 "<망명과 자긍심> 일라이 클레어 신작"

    장애를 대면하는 사회와 의료 체계는 당사자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상대를 비장애의 상태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은 바람의 상태로 끝나지 않고 곧잘 실행에까지 옮겨지며, 그 끝에 상대의 감동한 얼굴까지 기대한다. 그러나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 장애 및 트랜스 활동가이자 시인인 일라이 클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 장애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장애와 더불어 자아를 형성해 온 이에게서 장애를 소거했을 때, 그는 무엇으로 남는가?

    일라이 클레어는 치유와 회복 이데올로기가 내포한 정치성을 파고들며 장애와 장애화 문제에 대해 전복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격성은 언제 인정되는가. 결함은 왜 문제시되는가. 어떤 낙인은 문제의 본질 없이 낙인만이 문제이지 않은가.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그가 목격하거나 사유한 환경 문제를 중첩시키며 클레어는 논의를 진척시켜 나간다. 그의 논의가 직선으로만 뻗어나가진 않는다. 백인, 선천적 뇌성마비 장애인, FTM 트랜스젠더. 자신의 정체성을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그는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치유와 맺는 관계에 대해 살피며 조심스러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의 통찰은 당차되 사려깊다.

    자신의 개인적 고통,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 환경과 인간 간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가 서로 엮여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형식과 내용을 아울러 새로운 사고를 자극한다. 빛나는 통찰, 아름다운 글, 삶에서 길어올린 응축된 에너지. 그의 전작 <망명과 자긍심>에 이어 입에서 입으로 두고두고 추천될 책이다.

  • 스티커 도깨비 무지 막지
    홍민정 (지은이), 하민석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9월 "홍민정 신작 동화, 다정한 도깨비 무지 막지의 등장"

    고스트 빌리지, 으스스한 느낌이 감도는 이 놀이동산 입구를 지키는 존재들이 있다. 몸집은 작고, 얼굴에는 귀여움이 한가득 묻은 도깨비, ‘무지’, ‘막지’. 키 재기 형상에 깃들어 입구를 지키고 있지만 이들의 야망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놀이동산 안으로 당당히 입성하는 것. 과연 이 두 도깨비는 목표대로 ‘무서움 순위 꼴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요즘 어린이들은 도깨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귀신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 으스스한 고스트 빌리지도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진짜로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지와 막지는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겠다는 야망을 아이들이 무섭지 않도록 보호하는 수호 도깨비가 되는 것으로 바꾼다. 무엇이 더 나은 일인지 선택했다.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친절함과 다정함의 세계에서 도깨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 홍민정 신작 동화.

  • 벽 타는 아이
    최민지 (지은이) | 모든요일그림책 | 2023년 9월 "다름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왼손잡이는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으로 간주했던 것일까? 여기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을 긋고 경계하는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발칙하고 유쾌하게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벽 타는 아이는 '보통마을'에 살고 있다. 부모님은 아이가 '모자성'에 보내지기 전에 고쳐보려고 노력한다. 어른들 눈에 이상한 아이들은 모두 '모자성'으로 보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고쳐보려고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아이는 소리친다. "나는 벽 타는 아이예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듯 아이는 방에서 벽 타기를 실컷 즐긴다. 그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자성에 갇힌 아이를 발견하고는 벽 타는 아이는 스스로 모자성으로 향한다. 벽 타는 아이는 왜 스스로 모자성으로 간 걸까?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최민지의 여섯 번째 창작 그림책 <벽 타는 아이>가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출간되었다. 이번 그림책에서 작가는 '다름'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주목해 다름이 다양함으로 기꺼이 인정받는 세계, 소수가 존중받는 사회를 이야기한다. 배우 이윤지, 동화 작가 송미경,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이 강력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