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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022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8월 "그러니까 시는"

    진은영이 10년 만에 시집을 출간했다. 진은영이 호명해 새롭게 의미를 붙인 일곱 개의 단어(<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2003),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의 독백, 혁명, 시'의 말맛을 오래 곱씹는 동안 마침내 도착한 새 시집. 진은영은 <그러니까 시는>이라는 시로 자신의 시론을 펼친다. 그 10년 동안 시는 이런 곳에 있었다

    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 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그러니까 시는> (10쪽) 中

    이번 시집에 더한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처럼, 진은영의 시는 "사랑과 저항은 하나"(116)라는 하나의 명제를 두고 사랑과 저항이 뒤섞이며 나아가는 형태로 세계를 형상화한다. 시집이 출간되지 않는 10년 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2부는 '한 아이에게' 바치는 시로 채워져 있다. 영원히 2014년에 머물 2학년 3반 유예은 양의 말로 쓴 생일 시 <그날 이후>엔 그 싸움의 풍경 일부가 기록되어 있다.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48쪽)

    이렇게 끔찍한 세상을 두고 왜 우리는 계속 사랑하는 시를 읽는 걸까. 이 생각을 하며 이 시집을 받아들었다. "누군가 살해된 방에서 사는 일처럼"(92쪽) '꿈이 죽은 도시'에서 사는 일은 괴롭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은이), 김선영 (옮긴이) | 리드비 | 2022년 9월 "2021 나오키상, 일본 4대 미스터리 랭킹 1위"

    2021년 일본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 나오키상 수상을 포함해 일본 미스터리 4대 랭킹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신기록을 세운 소설,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 경력 20년의 정점이라 불리는 <흑뢰성>을 드디어 만난다.

    소설의 배경은 1578년 겨울. 일본 전국 시대 속에서 패권을 쥐기 위한 무인들의 암투가 한창이다. 약육강식이 시대정신이고, 살육이 일상인 날들. 지하감옥 '흑뢰성'이 있는 성 안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과 거대한 전란의 풍랑에 휩쓸리면서도 옳다고 믿는 것을 온 힘을 다해 추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호노부가 처음으로 도전한 역사 미스터리, 기대해도 좋다.

  • 그리고 펌킨맨이 나타났다
    유소정 (지은이), 김상욱 (그림) | 비룡소 | 2022년 9월 "현실로부터 도망쳐 도착한 세계에서 마주한 것"

    발 딛고 있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학교일 수도, 엄마와 학업으로 대화를 할 때 일 수도 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갑작스레 이사를 가게 된 예지는 매일 매순간 도망치고 싶다. 좋다고,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은 오직 가상세계 '파이키키' 뿐이다. VR 헬멧을 착용해야만 입장 가능한 파이키키에서 예지는 루나라 불리우며 흑표범을 타고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그곳엔 루나에게 중요한 모든 게 있다. 친구, 일자리, 업적. 초등학교 5학년이 현실에선 가질 수 없는 것.

    대개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도망쳐 도착한 세계는 만능이 아니다. 현실의 문제는 긴 물음표를 그리며 가상세계까지 따라온다. 혹은 가상현실의 버그가 먼지처럼 현실로 묻어 나온다. 결국 도망만 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은 실망스러"워도 "그럼에도 해 보는 수 밖"엔 없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2022 비룡소 스토리킹 수상작.

  • 매매의 심리
    박병창 (지은이)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8월 "주식을 하는 마음"

    고전물리학을 집대성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이작 뉴턴은 18세기 초 영국 남해회사 주식에 투자하여 제법 괜찮은 이윤을 얻었다. 만족스러워하던 뉴턴은 매도 이후에도 남해회사의 주식이 계속 오르자 다시금 큰돈을 남해회사에 투자했다. 하지만 뉴턴의 재투자 이후 남해회사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을 뉴턴은 하락장이 분명함에도 빠른 손절매 대신 빚까지 얻어 투자를 계속했고 결국 거의 전 재산에 달하는 큰 손실을 보았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 가치와 시장 유동성을 파악하기 위해 각종 경제지표와 뉴스를 살피고, 투자 기법을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머리로 열심히 공부해도 실전 투자에서 수익을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군중이 집단으로 한 방향을 향할 때 그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적인 심리, 매수할 때의 욕심과 두려움, 매도할 때의 손실 회피와 현실 부정 같은 심리가 잘못된 투자를 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뉴턴 같은 불세출의 석학도 크게 다를 수 없었다.

    전작 <매매의 기술>에서 ‘주식은 타이밍이다’라며 적시에 판단하고 대응하여 수익을 키우는 상황별 실전 트레이딩 기술을 이야기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주식 투자를 대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각자의 판단에 따라 사고파는 주식 거래에서 주식을 거래하는 사람의 심리는 기업의 이익 성장 가치나 시장 유동성에 버금가는 주가 판단의 요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장 참여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은 탁월한 투자 전략을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식상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주식투자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9.62022
  •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지은이), 박오복 (옮긴이) | 북하우스 | 2022년 9월 "우리가 오래 기다려온 바로 그 책"

    미국의 영문학자 일레인 쇼월터는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순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문학과 여성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일제히 흥분해서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43년이 지난 지금, 한국어판 재출간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알라딘 펀딩, 목표 금액 1200% 달성의 기염.

    등장할 때마다 폭발적인 박수 세례를 받는 이 책은 영미문학 담론에서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동시에 감금, 폐쇄, 거식증, 가스라이팅 등 2022년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슈를 다룬다. 길버트와 구바 두 저자가 주목한 것은 지리적, 시대적 배경이 서로 다른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다. 작품들 속에 감도는 불온한 생각, 가부장제의 감시 하에서 숨김의 형태로 폭로하는 주체적 욕구들을 발굴하고 연결하여 책은 거대한 페미니즘 비평의 지도를 완성했다.

    시인 김민정이 "내 발로 걸어 올라간 다락방에서 나는 이 책을 읽느라 미쳐있는 여자다."라고, 여성학자 정희진이 "필독서란 이런 것이다."라고 추천했으나 범접하기 어려운 두께 때문에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면, 스크롤을 내려 책에 달린 수많은 기대평(100자평)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설렘으로 가득 찬 이들이 제 각자의 방에서 함께 이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 용기가 날 것이다.

  • 위로의 미술관
    진병관 (지은이) | 빅피시 | 2022년 8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답니다"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는 삶의 파고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사랑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에 영감을 준 그림,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아홉 번째 파도>가 실린 2장을 본다. 붉게 물든 여명을 향해 인간은 손수건을 흔든다. 다시 파도가 오고 있다. '필사의 노력이 부질없다고 하더라도' 아홉 번째 파도를 직면하는 용기. '바다를 가르며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희망'(94쪽)이 시작된다.

    경이를 큐레이팅한 <기묘한 미술관>으로 독자를 초대한 파리의 한국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이 위로의 미술관의 문을 연다. 자신의 삶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반 고흐, 프리다 칼로 같은 화가의 삶의 이야기부터 삶의 빛나는 순간을 기록한 앙리 마티스, 칼 라르손의 이야기까지, 그림 속을 거닐며 위안을 구한다. 앙리 마티스의 <굴이 있는 정물화>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를 연결해 설명하는 그림 이야기가 재미있다. 눈 앞에 놓인 과제를 보고 "그렇다면 세상이란 내가 칼로 까먹어야 할 굴이로군"(67쪽) 심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삶을 성숙하게 한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본다. 이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 땅콩일기 2
    쩡찌 (지은이) | 아침달 | 2022년 8월 “마음을 어루만지는 쩡찌의 다정한 그림 에세이”

    마음은 몸과 달라서 상처가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래서, 수시로 마음에게 물어야 한다. ‘너 정말 괜찮니, 괜찮은 거 맞니.’하고. 괜찮겠거니 생각하고 내버려 두거나 별거 아니겠지 하고 넘어가면 시간이 흐른 만큼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전의 마음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에 달하는 시간과 애씀이 동반되어야 한다.

    쩡찌 작가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 그림으로 표현하는 섬세한 작가다. <땅콩일기>를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작가의 두 번째 그림 에세이가 출간됐다. 작고 귀여운 땅콩이의 목소리와 시선으로 우울과 슬픔과 불안과 아픔이 반복되는 일상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각 장면 앞에서 챙기지 못한 지난 마음을 떠올려 가만히 들여다본다. ‘작가도 아팠구나, 나도 아팠구나’ 문득 든 생각에 잠시 머물렀다가 작가의 다정에 위로받는다. 마음이 작을 수도, 약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작고 약한 마음으로 살아가도 된다는 것, 그런 마음으로도 어둠 속을 지나갈 수 있다는 것. 작가의 그 말에 안심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 어둠을 걷는 아이들
    크리스티나 순토르밧 (지은이), 천미나 (옮긴이) | 책읽는곰 | 2022년 9월 "다시 이곳에 빛을 가져다주게 하소서"

    빛의 도시 차타나. 대화재로 인해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들은 불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갑자기 나타난 지도자 총독이 전해준 빛, 오브로 생활하게 된다. 물론 누구에게나 똑같이 빛이 돌아간 것은 아니다. 가장 밝은 빛인 황금색 오브는 상류층만 쓸 수 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어두운 보라색 오브를 쓴다. 엄격한 규칙 아래에서 사람들은 총독에게 순종한다. 한편, 교도소에서 태어났을 뿐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규칙에 의해 만 13세까지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하는 퐁과 솜킷. 교도소에 있어야 하는 규칙을 따르고 있지만 불편한 감정은 속일 수 없다.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교도소 출신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생활에 쭉 낙인이 찍힐 것이다. 누가 만든지 알 수 없는 규칙을 지켜야 할까?

    규칙을 지켜야만 하는 상류층의 아이 녹, 규칙을 어겨야 살 수 있는 퐁과 솜킷. 그리고 강 반대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는 사람들. 오브의 가격을 올리려는 총독의 계획을 눈치챈 핍박 받는 사람들은 기어코 거리를 점령하고자 한다. 이들의 행진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일어나 더 이상 이런 취급을 받지 않겠노라고 말할 때이기 때문이"다. "강 어느 쪽에 살든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반복되는 역사가 연상되는 이 이야기는 2021년 뉴베리 명예상을 수상했다. 뉴베리상을 2번이나 수상한 크리스티나 순토르밧 작가는 태국을 모델로 한 환상적인 배경을 통해 빛이 사라진 물리적인 어둠을 설명한다. 그리고 정의로움과 규칙에 대해 곱씹으라 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지니고 있다"라는 빛나는 사실과 함께.

9.132022
  • 일곱 할머니와 놀이터
    구돌 (지은이) | 비룡소 | 2022년 8월 "제27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구돌 작가의 본격 그림책 데뷔작이다. 동네 놀이터 평상에서 주무시던 할머니들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재주 많은 일곱 할머니의 떠들썩한 한낮 대소동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시간의 힘'을 개성 있는 이미지로 담아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어느 봄날, 놀이터 한쪽 구석 정자에서 할머니 일곱 명이 "드르렁 드르렁" 낮잠을 즐기고 있다. 고양이 그루가 나비를 쫓다 그네에서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들은 어느새 자기 자랑을 시작한다. 젊었을 때 뜨개방을 하던 홍장미 할머니의 자랑에 나머지 할머니들은 콧방귀를 뀌어댄다. "벌써 잊기라도 한 게야? 그렇다면 당장 내 재주를 보여주지!" 이후 할머니들의 놀랄만한 재주가 차례대로 이어지는데, 갑자기 놀이터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진다. 할머니들의 재주를 지켜보던 고양이 그루가 동물 학대범에게 잡혀간 것이다. 일곱 할머니는 각자의 장기를 살려 동물 학대범을 잡고 그루를 구한다. 이야기는 놀이터 구석에서 이 모든 소동을 지켜보던 할머니 고양이와 그루의 대화가 전하는 잔잔한 감동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의 모든 이미지는 모양 자를 대고 반듯반듯하게 그렸다. 뻣뻣한 움직임을 의도하여 과장된 모습을 연출했는데, 평면화한 납작한 그림이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다. 할머니들의 재주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의성어와 의태어, 그리고 놀이터 곳곳에 동물 학대범을 숨겨놓는 등의 디테일은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책의 앞표지에는 할머니들의 현재 모습이, 뒤표지에는 같은 동작을 한 젊은 날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작가는 "이 책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여정 가운데 어느 날의 한 페이지를 열어 잠깐 지켜본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 장의 이미지로 담아냈다고 말한다. 제27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 리가의 개들
    헨닝 만켈 (지은이), 박진세 (옮긴이)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2년 9월 "'스웨덴 누아르 마스터' 헨닝 망켈"

    스웨덴 소도시의 해안가로 떠내려온 구명보트. 그 안에 두 사람의 시체가 있다는 신고를 받은 발란데르 경위는 즉시 출동한다. 부검과 조류 분석이 진행되는 가운데 보트가 라트비아에서 왔음이 밝혀지고, 발란데르는 그쪽 경찰에 모든 것을 넘기고 수사를 종결할 꿈에 부푼다. 그때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향하게 될 것임을. 과중한 업무와 만성 피로, 깊은 우울과 환멸 속에서 정의 구현이라는 초심은 사라지고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니던 한 형사가 한겨울의 리가에서 맞닥뜨린 것은 거대한 충격으로 그의 실존을 뒤흔든다.

    발란데르는 목격한다. 소련의 붕괴를 앞둔 1990년대의 풍경을. 소련의 위성국가들을 둘러싼 견고한 장벽에 난 균열과 그 틈으로 밀어닥치는 자유의 물결을. 잃어버린 자유를 찾으려는 사람들과 자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리가의 공기 중에 떠도는 공포가 희망을 짓누르고 회색빛 거리에선 고통의 역사가 절규한다. 스웨덴에서 배운 수사의 문법은 라트비아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의 감시와 압제 속에서 진실에 가닿으려 갖은 수단을 쓰며 고군분투하는 발란데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것일까.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깨닫는다. 그가 결코 원치 않았던 거대한 음모의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스웨덴 누아르의 마스터'라는 호칭이 빛을 발하는 헨닝 망켈의 수작, '발란데르 시리즈'를 만난다.

  • 빠르게 실패하기
    존 크럼볼츠, 라이언 바비노 (지은이), 도연 (옮긴이) | 스노우폭스북스 | 2022년 8월 "빠르게 성공하고 싶다면 빠르게 실패하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계획을 세우고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점검하며 실패를 피하고자 골머리를 썩이다가 정작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바쁘다거나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어쩌면 스스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는 ‘그 일’을 시작하기를 미룬다. 시작하지 않았으니 실패도 없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성공도 없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20년간 진행된 ‘인생 성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존 크럼볼츠와 라이언 바비노는 연구기간동안 성공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행동 패턴을 찾았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피할 방법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과 지식의 한계를 드러낼 기회를 열심히 찾아 재빨리 행동에 뛰어들고 빠르게 실패하면서 배워나갔다. 결연한 결심이나 비장한 각오는 필요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실행해보자. 박막례 할머니도 말씀하셨다. “야, 실패가 뭔지 아냐? 했다는 거의 증거야.”

  • 우주의 바다로 간다면
    케빈 피터 핸드 (지은이), 조은영 (옮긴이) | 해나무 | 2022년 9월 "우주 심해의 생명체를 찾아서"

    미지의 우주를 향해 기나긴 항해를 떠난 보이저호가 보내온 목성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경이와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로파의 얼어붙은 표면 아래에서 포착된 거대한 바다의 흔적은 인식의 지평을 무한히 넓혔다. 그 후 낯선 천체에 물이 존재하고 그 속에 생명체가 살 것이라는 희망은 계속 커져왔다. 그렇게 시작된 인류의 탐험에 대하여. NASA의 행성과학자이자 우주생물학자인 저자가 지구의 심해와 태양계의 위성들을 오가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위성의 두꺼운 얼음 아래 바다가 있다는 근거와 그 깊숙한 곳에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보는 근거, 지구 심해 탐사에서 외계 바다 탐사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 지구의 심해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지역인 ‘열수구’가 생명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외계 바다에도 열수구가 존재한다면 이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주장 등, 지구 심해의 생태계를 토대로 우주에 있을 바다와 생명 존재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우리 위의 별을 가만히 응시하고 우리 아래의 심연을 묵묵히 들여다보는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말하며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함께 읽은 책.

9.162022
  •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병률 (지은이) | | 2022년 9월 “이병률, 나를, 당신을, 세상을, 세계를 사랑하는 일”

    전작 <혼자가 혼자에게>에서 이병률 시인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3년 만에 펴낸 신작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일에 관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그리고, 사랑이 주는 공기에 관해 쓴 산문이다.

    시인에게 사랑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삶이고, 사람”이다. 시인은 시인만의 감성을 담은 이 산문집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에는 ‘가장 정확한 사랑의 형태’인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는다. 사랑하고, 사랑을 잃고,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과 순간들, 그 사이사이 쉼 같은 장면의 사진들이 한데 잘 어우러진, 시인다운 책이다.

  • 빌리 서머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황금가지 | 2022년 9월 "스티븐 킹 누아르 스릴러, 작가가 된 암살자"

    그간 여러 번의 암살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온 청부살인업자 빌리 서머스. 그가 지켜온 원칙은 정말 '나쁜 놈'만을 타깃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제 업계에서 손을 씻고 은퇴를 갈망하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금액의 제안이 하나 들어온다. 살인 혐의로 수감되어 재판을 받을 예정인 남자를 살해해 달라는 의뢰다.

    마지막 임무를 위해 작가로 위장해 마을에 잠입한 빌리는 영 못마땅하다. 에밀 졸라와 윌리엄 포크너, 찰스 디킨스를 좋아하지만, 의뢰인 앞에서는 ‘바보 빌리’라는 멍청함을 연기해온 빌리에겐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위장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예상외로 매우 보람찬 일이었다. 글쓰기에 완전히 빠져버린 빌리에게 무엇보다도 창작이 중요해질 무렵, 의뢰에 숨어 있던 음모가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스티븐 킹이 선보이는 본격 누아르 하드보일드 스릴러.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은이) | 창비 | 2022년 9월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정지아의 이 장편소설은 추석연휴와 함께 독자에게 닿기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가 아나키스트인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코미디물인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의 예를 들며 이 소설을 추천하면서부터다. "올해 읽은 책 중 제일 재밌고 강력하다!"는 평을 얻은 이 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시 판매금지, 기소 등의 사건을 겪은 정지아 작가가 32년만에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7쪽) 대학교 강사인 딸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겪으며 3일 동안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다른 일면에 대해 체험하게 된다.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빨치산인 아버지. 먼지 한 톨도 유물론적으로 귀중하다고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궤변을 늘어놓던. 유물론자라 죽음 뒤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던. 사회주의자이지만 노동은 도무지 익지 않아 소주로 자신을 마취하며 노동을 견뎌온. 연좌제로 작은 아버지 아들의 진학에 해를 끼친. 바람을 피우던. 빨치산은 스스로 빨치산 되기를 택한 것이지만 빨치산의 딸은 자신이 택한 삶이 아니기에, 이 '늙은 혁명가의 비루한 현실'(52쪽)을 딸은 복합적인 기분을 품고 추억한다. "하염없이, 라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할 듯"(62쪽)하다는 소설 속 인물의 고백처럼, 우리 각자의 아버지가, 그 밉고 비천하고 안쓰러운 모습이 자꾸 '하염없이' 어른거린다.

  • 다정한 물리학
    해리 클리프 (지은이), 박병철 (옮긴이)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밝히는 여행"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라는 질문에 실험물리학은 우주가 처음 탄생하는 순간을 실험실에 재현하는 것으로 답한다. '빅뱅 제조기'라 불리는 커다란 기계 속에서 두 가닥의 양성자 빔을 정면충돌시키고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우주를 만든 빅뱅의 순간이 재현되며 이론 속에서만 존재했던 힉스 입자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불꽃과 전기, 엔진을 이용해 우주의 기원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실험물리학자 해리 클리프. 그가 발로 뛰며 보여주는 물리학의 세계는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현장감이 가득하다. TED와 영국왕립학술원에서 인기 강연으로 등극한 저자의 책 속으로, 전 세계 연구소와 과학사를 종횡무진하며 물질의 기원을 밝히는 유쾌한 여정을 떠나보자.

9.202022
  • 투자에도 순서가 있다
    홍춘욱 (지은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정답은 없어도 순서는 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대학생,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3~40대, 은퇴를 앞두고 노후 자금 마련을 고민하는 50대 이상 직장인들 모두 작고 소중한 월급만으로는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게다가 주변에서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누군가는 주식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인생을 역전했다고 한다. 가상 자산이 미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금이야말로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안전자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면 얼른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조급하다고 덜컥 당장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투자에도 각자의 생애 주기에 맞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홍춘욱이 그간 활동을 통해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질문들에 답하는 책을 출간했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20대를 위한 반반 적립식 투자, 주택 구매를 위해 빠르게 돈을 모아야 하는 30대를 위한 투자 3분법, 너무 높은 집값 때문에 한국 부동산 구입을 망설이는 40대를 위한 탈무드 투자법,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들 위험을 고려해야 할 연금 생활자를 위한 투자 4분법 등 사회초년생부터 은퇴자까지 연령대별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주식, 채권, 부동산, 금 등 다양한 자산을 생애주기에 맞게 적절하게 구성하여 제시하는 투자 전략을 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투자 공부가 된다. 투자를 시작하려는 나이가 몇 살이든 참고할 수 있는 투자의 순서에 귀를 기울여보자.

  •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엄유진 (지은이) | 문학동네 | 2022년 9월 “연필 그림으로 기록한 행복의 조각들”

    따뜻한 연필 그림과 손글씨로 15만 팔로워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제의 인스타툰 ‘펀자이씨툰’을 두 권의 단행본으로 만난다. 선천적 부끄럼쟁이 펀자이씨. 그의 밝기만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모험을 감행하고 예상하지 못한 행복의 순간들을 다채롭게 경험한 이야기, 태국인 남편 ‘파콘’과 질문 많고 사랑스러운 딸 ‘짠이’와 함께하는 일상의 면면을 만화와 에세이로 두 권의 책에 빼곡하게 담았다.

    인생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펀자이씨에게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만 펀자이씨는 어려움 속에서도 작고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발견해내는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의 작은 조각 하나하나 모으는 일을 소중히 다루고, 성실하게 기록해왔다.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 어린 펀자이씨가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하고 싫은 걸 싫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모습에서 응원하는 마음이 불끈 솟고, 짠이가 사랑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라고 말할 때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펀자이씨의 인생을 채우는 하루하루의 작은 웃음, 친절, 용서와 배려가 밝고 환한 그림을 만나 읽는 내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준다.

  • 클로버 (양장)
    나혜림 (지은이) | 창비 | 2022년 9월 "<위저드 베이커리>를 잇는, 창비청소년문학상"

    제주도 수학여행비 354,260원이 없어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현정인의 삶에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고양이 악마 헬렐이 찾아왔다. 일주일의 휴가를 정인과 보내기로 한 헬렐이 정인에게 '만약에'라는 만능 주문으로 정인을 유혹한다. 폐지를 수집하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며 유통기한이 지난 패티를 쓰는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인의 삶은 '참을인' 자로 가득 차있다. 악마의 주문을 선택하면 불평할 수 있는 아이(13쪽)조차 되지 못하는 정인도 자신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정인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단지 100만원을 모으는 게 꿈이던 정인에게 온 세상을 권하는 고양이. "그냥 모른 척 눈을 감아. 다들 그렇게 사니까." (106쪽)라고 악마는 유혹한다. "불운 앞에서 인간은 묻지. 왜 나인가?" "행운에겐, '왜 나인가?' 묻지 않으면서.'(134쪽) 같은 논리를 잇는 현란한 말솜씨로, 인간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악마는 정인을 유혹한다. 모파상의 <목걸이>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로, 한화 이글스부터 나이키 에어 맥스로 이어지는 풍부한 인용을 엮은 이야기로, 첫 책을 내는 작가 나혜림이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위저드 베이커리>, <아몬드>와 같은 작품을 소개한 창비 청소년문학상의 수상작. 세상의 모든 정인에게 작가의 말의 한 문장을 함께 권하고 싶다.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냥 하세요." (241쪽)

  •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김성우 (지은이) | 생각의힘 | 2022년 9월 "생동하는 영어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

    학창 시절의 영어 공부가 늘 지루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과정은 꽤나 즐거웠다. 그렇지만 학생 때의 영어 공부는 총체적인 세계를 받아들인다기보다는 다음 단계가 깜깜한 채로 눈앞의 과업만을 달성해가면서 정체 모를 어떤 것을 완성해나가는 기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의아한 마음을 뒤로 미루고 맥락 없는 단어들과 1형식부터 5형식까지의 수학 공식 같은 문장들을 무작정 외웠던 기억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내가 배운 영어는 뭐랄까, 비유하자면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를 따로따로 만든 다음 한데 모아 엮은 어색한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의 꼴은 애매했고 현실의 대화에서 대체로 삐거덕댔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는 이 책에서 인지언어학에 대해 설명한다. 무작정 언어를 외워서 익히는 학습이 아닌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사고 구조와 언어가 엮인 방식을 파악하여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학습이다. 접근해 본 적 없는 방식이라 학생의 입장으로 비교해 볼 순 없지만, 영어권 사회가 사고하는 방식을 먼저 파악하고 단어와 문법을 매칭하는 학습이라면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경우는 현저히 줄어들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사람의 꼴을 먼저 익힌 후에 그에 맞는 팔다리와 머리, 몸통을 만들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형상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김성우는 이를 두고 언어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어의 마음이라니. 영어에 상처받은 마음밖에 모르던 우리에겐 조금 낯선 개념이고, 그래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진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와 언어가 맺는 관계를 파악한다는 관점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다. 각 장이 설명하는 개념들은 내가 공부해온 것들을 톺아보며 생긴 의문으로 건설적인 학습법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영어의 세계를 조금 더 총체적으로 인지하고 싶은 독자, 영어 교육의 더 발전적인 방향을 고민하는 교육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9.232022
  • 에어리얼
    실비아 플라스 (지은이), 진은영 (옮긴이) | 엘리 | 2022년 9월 "가장 온전한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의 진정한 마지막 시집 <에어리얼: 복원본>을 진은영의 음악적인 번역으로 만난다. 시인은 1932년에 태어나 1963년에 사망했다. 1965년 <에어리얼> 첫 출간 당시, 그의 남편이었던 테드 휴스는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시의 배치를 바꾸어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시집을 만들어냈다. 실비아 플라스의 딸인 프리다 휴스는 "'사랑Love'이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봄Spring'이라는 단어로 끝나게 만든"(13쪽) 어머니의 의도를 따라 이 시집을 읽을 것을 권한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검은색 스프링 바인더 공책에 놓인 원고 그대로 번역된 시집으로, 이제 온전한 실비아 플라스를 만난다.

    시집 <에어리얼> 초고의 번역본과 원고 복사본을 함께 놓고 읽을 수 있는 것도, 복원본을 만나는 기쁨이다. 번역자인 진은영은 '음악적인 시집이 되기를'(277쪽) 원한 시인의 의도처럼 맞게 '시를 읽을 때 마침표의 위치에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꼭 소리 내어 읽어주길 바란다."(277쪽)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시를 낭독한 실비아 플라스의 음성과 함께 이 시를 느낄 것을 권한다. ( https://youtu.be/w_iu-uT67aE )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선을 그어 가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읽으며 새삼 실감한다. 시인의 전설적인 문장, "아빠, 아빠, 이 개자식아, 나는 끝났어."(<아빠>, 129쪽)를 지나면 이 시집의 막바지에 배치된 네 편의 시, <양봉 모임>, <벌 상자의 도착>, <벌침>, <겨울나기>에 이른다. 실비아 플라스의 아버지가 땅벌 연구의 권위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벌에 대한 애착이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어쩌면 삶의 진실일, 시인을 둘러싼 모순을 생각하며 에어리얼에 실린 마지막 시 <겨울나기>의 마지막 줄을 소리 내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시인이 채 맞지 못한 그 봄을 상상하며.

    벌들이 날고 있다. 그들은 봄을 맛본다.
    The bees are flying. They taste the spring.

  • 역설계
    론 프리드먼 (지은이), 이수경 (옮긴이) | 어크로스 | 2022년 9월 “분석하고, 모방하고, 넘어서라.”

    한국어 사용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름으로 유명한 ‘시발 자동차’는 1955년 미군이 사용하다 버린 윌리스 MB를 해체하여 부품을 재조립해 만든 한국 최초의 자동차다. 당시 자동차 개발 기술이 없던 상황에서 이미 개발된 제품을 분해하여 분석한 뒤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개발한 역설계의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역설계 전략은 기술업계에서 경쟁사의 제품에 반영된 최신 기술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혁신적인 제품을 분해하고 분석하여 제품에 반영된 신기술과 탁월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업계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

    사회심리학자이자 행동 변화 전문가인 론 프리드먼은 역설계 전략을 비단 산업계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예술, 스포츠 등 우리가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탁월한 제품, 불후의 명작,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 등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의 기법을 분석하여 그 안에 숨겨진 통찰력을 발견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가 단순한 모방과 재현에 그치지 않기 위해 분석 대상의 탁월함을 이용해 자신만의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공식을 개발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바로 이 책에서 말이다.

  • 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은이), 이은주 (옮긴이) | 푸른숲 | 2022년 9월 "다중우주의 나에게 납치된 나, 애플TV+ 방영 확정"

    시카고의 한 대학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치는 제이슨. 턴테이블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랑하는 아내 다니엘라와 아들 찰리와 함께 나누는 저녁은 그의 소박한 행복을 상징하는 순간이다. 가끔 부부는 생각에 잠긴다. 안락과 열정을 뒤바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15년 전 그들이 사랑에 빠져 어린 나이에 찰리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미술계 유망주였던 다니엘라는 유명 화가로 성공하고, 물리학계의 촉망받는 인재였던 제이슨은 연구에 매진해 세계적인 석학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런 날에는 우울이 밀려오기 전에 지금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애써 되새긴다. 방어에 실패하는 날도 있다. 언제나 제이슨의 지성을 부러워하던 대학원 동기의 유명 과학상 수상 기념 파티가 열리던 밤이 그렇다. 제이슨이 연구를 계속했더라면 자신이 상을 못 탔을 것이라는 친구의 농담에 그의 마음속 뭔가가 무너져내린다.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제이슨의 뒤를 하나의 그림자가 휙 덮친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그것은 다름 아닌 다중우주에서 온 제이슨 자신이다. 순식간에 그에게 삶을 도둑맞고 다른 우주로 내쫓긴 제이슨은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가 "이토록 푹 빠져서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 소설은 실로 오랜만이다."라고, 리 차일드가 "탁월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라고 추천하며 함께 읽은 책. 강렬한 흡인력으로 내달리는 이야기 끝에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장 뤽 포르케 (지은이), 야체크 워즈니악 (그림), 장한라 (옮긴이) | 서해문집 | 2022년 9월 "동물의 존재 이유를 묻는 우아한 공방"

    지난 46억년간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고, 이는 생물다양성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여섯 번째 대멸종에 주목하는 이유다. 우리는 느리지만 확실히 여섯 번째 대멸종을 겪고 있다. 인류가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야할 여섯 번째 대멸종을 두고 짧고 강렬한 우화가 시작된다.

    각각의 동물들은 법정에서 자신의 종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 설명하기 시작한다. 수리부엉이, 담비, 갯지렁이, 유럽칼새... 한 세기 안에 멸종될 것으로 예상되는 동물들은 생물다양성의 보존이 인류의 지속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법정의 공방은 치열하게 이어지지만 최종 목적은 비판이 아니다. 그저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자는 것.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조율하며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대멸종이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었다면 여섯 번째는 인간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의 말을 다시 읽어본다. "지구의 주인이라는 시대착오 속에 돈키호테로 살고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9.272022
  • 문장과 순간
    박웅현 (지은이) | 인티N | 2022년 9월 "박웅현의 문장과 일상의 기록"

    광고인 박웅현이 6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전작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에서 책 깊이 읽기의 즐거움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가 이번에 새롭게 펴낸 책은 에세이로, 광고인이자 독서인으로서 틈틈이 기록해온 문장과 일상의 단상이 산뜻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읽고 배운 것을 체화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자신의 문장이 된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으로 읽고, 손수 써서 모은 문장을 작가의 노트와도 같은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 독자들에게 전한다. 장르를 넘나들며 엄선된 문장들은 박웅현 인생의 나침반이자 생각의 원천이다. 좋은 문장과 일상의 순간순간에 그의 시선과 언어가 더해져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로 확장된다. 아홉 번째로 꼽는 단어 '행복'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즐거움 중 하나다. 때로는 몇 마디의 말보다 단 한 문장이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책으로 연결해주는 문이자, 산책하는 마음으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는 <문장과 순간>은 한 문장이 품은 단단한 힘과 값진 삶의 경험을 나눈다.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
    지나영 (지은이)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기본만 잘해도 아이는 잘 큰다"

    난치병을 앓고 그 과정에서 건져올린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감동을 주었던 <마음이 흐르는 대로>의 저자 지나영 교수가 이번에는 범람하는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 핵심만 골라내어 집대성한 결과물을 내어 놓았다. 대한민국은 육아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본질육아법'을 소개한다.

    이 책은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 안에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하는 정도면 충분하며, 조건 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부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맹훈련하는 조련사가 되는 함정에 빠지지 말기를 바라며 아이를 존중하면서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이를 바라보기 이전에 부모 자신을 돌아보고, 아이와 함께 성장할 줄 아는, 아이의 눈에 행복한 어른이 되어보자. 이 책이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도 불안함을 느끼는 부모들에게 근본적이고도 명쾌한 해법이 되길 바란다.

  • 다이버시티 파워
    매슈 사이드 (지은이), 문직섭 (옮긴이)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다양한 것이 더 강하다."

    1996년 8월 23일, 아프가니스탄 토라보라의 동굴에서 한 남자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턱수염을 기르고 전투복 안에 허름한 옷을 걸친 그는 전 세계의 무슬림들에게 미국에 대항하는 전쟁에 참전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CIA의 정보 분석가 대다수는 동굴에 사는 초라한 행색의 남자가 미국에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다이버시티 파워>의 저자 매슈 사이드는 CIA가 오사마 빈 라덴의 위협을 제대로 간파해내지 못한 원인을 조직 내부의 다양성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시험과 검증을 통해 뽑힌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되었을 CIA 분석관은, 대부분 중산층 출신의 개신교인 앵글로색슨 백인 남성 일색이었다. 지나치게 동질적이었던 그들은 관점의 사각지대가 너무도 컸기에, 누구도 무슬림들에게 오사마 빈 라덴의 허름한 옷이 이슬람 선지자들을, 동굴에 기거하는 모습이 박해를 피해 동굴로 피신하였던 무함마드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능력이 아닌, 관점의 다양성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대부분의 과제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복잡하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수행 능력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점과 통찰, 경험,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인지 다양성을 확보한 집단은 획일화된 집단이 서로의 비슷비슷한 의견에 동조하느라 시간을 보낼 때, 서로 다른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과정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풍부한 사례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올바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효율적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추천사가 와 닿는다.

  • 내추럴 와인; 취향의 발견
    정구현 (지은이) | 몽스북 | 2022년 9월 "내추럴 와인이라는 신세계"

    와인이 대형마트에서 가장 목이 좋은 곳에 놓인지는 꽤 오래된 일이다. 또한 요새는 와인, 막걸리, 위스키 등 주류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셀렉샵도 크게 늘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있다. 주류 선택지가 많아진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내추럴 와인'은 이미 많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힙'한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내추럴 와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한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으로, 알라딘 단독 북펀드 오픈과 동시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고, 1천 만 원이 넘는 펀딩 기록을 세우며 내추럴 와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준 바 있다.

    이 책은 내추럴 와인의 의미와 올바르게 마시는 법, 계보와 역사, 세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 메이커와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내추럴 와인들까지 내추럴 와인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총망라한 기본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색다른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방법, 내추럴 와인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9.302022
  • 털실타래 Vol.1 (2022년 가을호)
    일본보그사 (지은이), 강수현, 김수연, 남가영, 배혜영 (옮긴이)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9월 "니터들이 사랑한 잡지, 드디어 한국어 판으로 만나다"

    따스한 니트가 생각나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몸과 마음에 온기를 주는 니트와 니트 소품들에도 디자인 트렌드가 있는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오랫동안 니터들의 사랑을 받아온 수예 잡지 <털실타래>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보그사에서 매 계절 발간해온 매거진 <모사다마>의 첫 공식 한국어판인 <털실타래>는 2022년 가을호를 시작으로 한국의 니터들에게도 드디어 찾아왔다.

    아름다운 색의 조합, 창의적이면서도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디자인,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을 함께 담은 사진들은 니터뿐만 아니라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번 가을 호에서는 '페어아일 뜨개법'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한국 뜨개 작가의 인터뷰와 편집숍 등의 내용을 꼼꼼하게 담았다. 어쩐지 쓸쓸한 계절 가을도 아름다운 니트와 함께라면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며 해본다.

  • 눈감지 마라
    이기호 (지은이) | 마음산책 | 2022년 9월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등의 짧은 소설로 독자의 지지를 얻은 이기호의 연작 짧은 소설. 대학 졸업장과 함께 채무자가 된 두 청년, 박정용과 전진만은 기숙사 짐을 빼며 함께 방을 구해 학자금대출을 갚기 위해 우선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옆 방 사람의 소리가, 소주를 따고 딸과 통화를 하는 모든 생활이 들리는 방에서 정용은 생각한다. "나는 왜 늘 그런 벽 뒤에서만 살았을까?"(46쪽) 이 벽 뒤에서 자고 일어나 청년들은 출근을 한다. 편의점, 택배 상하차, 고속도로휴게소...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일은 화를 유발한다. 유튜브에서 무슨 심리학과 교수가 하는 말을 듣고 진만은 그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반영해보려 하지만, 그 고운 말은 겉돌뿐이다. "남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병이 될 수 있고..."(112쪽)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영끌'을 하려 해도 영혼값이 '다이소'에 불과한 이들이 노동이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피해갈 수 있나. 정용은 그런 진만을 보고, 진만의 탓이 아닌걸 알면서도 화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113쪽) 안쓰러운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끝내 웃음을 섞어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이 이기호 소설의 매력. 꼭 체호프의 이야기 속 인물들을 만난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 (234쪽) 그러니 당신 "눈감지 마라"

  • 일그러진 몸
    캐런 메싱 (지은이), 김인아, 류한소, 박민영, 유청희 (옮긴이) | 나름북스 | 2022년 9월 "여성의 노동은 왜 늘 과소평가되고 더 위험한가"

    표준 피아노 건반이 평균적인 백인 남성 손 크기에 적절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대부분의 약물 복용 기준 또한 남성을 기준으로 세워진 것처럼 많은 일터는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일터들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사고를 당하고 다친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는 쉽지 않다. 여성 각자가 느끼고는 있지만 수치심과 부담감으로 인해 뭉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터에서의 여성 소외를 과학이라는 객관으로 밝혀낸다.

    평생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대해 연구해온 생물학자 캐런 메싱은 여성이 처한 복잡한 현실을 섬세하게 짚으며 일터에서 여성이 어떤 위험을 감당하고 있는지 파헤친다. 대부분의 직종에서 여성의 일은 더 가볍고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 연구 결과, 더 높은 육체적 부담을 지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 중심의 현장들에서 다른 신체를 가진 여성이 느끼는 수치심과 이를 숨기고 해내는 업무, 그리고 업무 과정에서의 사고와 부상을 조사하며 메싱은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터에서 여성이 위험하다는 말을, 그것도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위험하다는 말을 하기는 간단치 않다. 공고한 성차별은 언제나 틈을 노린다. 어떤 일터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다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을 때, 차별이 짙은 사회는 문제의 해결 방식을 엉뚱한 방향으로 낼 수 있다. "그러니까 남자가 해야 해." 같은 결론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정도의 슬로건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캐런 메싱은 여성이 직장 내 성평등과 건강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평등이 아니라고 말한다. 직장에서 일궈내야 할 평등은 고용에서의 평등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 이상이다.

  • 네가 맛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어
    츠지 히토나리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 니들북 | 2022년 9월 "나는 산다는 걸 주방에서 배웠어."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인데, 유독 마음이 힘든 날이 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귀가했던 어느 날. 머리로는 도저히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몸은 따뜻하고 맛있는 한 끼를 원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요리를 하는데, 요리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생기가 돌고,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뭉근한 위로가 차올랐다. 주방이라는 공간과 나를 위한 요리의 시간이 큰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던 특별한 날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츠지 히토나리가 삶의 가장 추웠던 날을 온기로 데워 준 30가지 요리 이야기로 독자들을 다시 찾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는 마음을 닫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됐다. 절대 울지 않았던 아이의 눈물을 보게 된 후로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이와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로 다짐하고, 주방의 불을 늘 밝히며 식탁을 차렸다. 매일 아침마다 쌀을 씻으며 '지지 않을 거야'하고 되뇌었다는 말에서 그가 느꼈을 절망감을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한 요리와 애틋한 마음으로 돌본 초등학생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책에는 아이를 홀로 키운 아빠로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식탁 위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30가지 요리 레시피를 담았다. 아빠와 아이의 뭉클한 대화, 인생의 소중한 깨달음이 레시피와 잘 버무려져 특별한 요리 교실을 만들어준다. 마치 아빠가 아이에게 가르쳐 주듯이 프랑스 가정식 요리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당장이라도 따라해볼 마음이 생긴다. 책을 읽는 동안 참지 못하고 몇 가지 요리를 만들어 보았는데, 무척 맛있었다. 손수 만든 맛있는 요리와 함께한다면 더욱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