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점차 결점 없는 매끄러운 상태로 나아가려는 것 같다. AI 활용의 최종적 목적은 인간의 실수와 비효율을 없애고 완전한 질서와 시스템을 확보하여 이상적 생산성을 달성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에 우리 모두가 등 떠밀려 가고 있다. 더러는 표백의 세계로 신나게 뛰어가지만 일부는 불쾌함과 찝찝한 마음을 안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긴다. 이게 맞나? 이래선 안 될 것 같은데... 아직 명확하게 언어로 옮기진 못하지만 어떤 예지성 불길함을 느끼는 이들이 분명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명쾌한 언어를 선사한다. 저자 팀 하포드는 책에서 '이래선 안 될 것 같은데...'의 이유 중 중요한 한 축을 설명한다. 완전하게 정돈된 질서가 가지는 위험과 편협함에 대하여.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정리된 환경에서 인간은 작은 실수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업무 환경을 장악할 기회를 놓친다. 그 결과는? 기계가 오작동을 하거나 고장 나는 순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숙련된 작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실수를 소거한 무균적 환경은 큰 사고를 막을 전문가를 양성해 내지 못한다.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창의력과 집중력에 관한 이야기로도 나아간다. 최고의 예술은 모든 잡음이 제거된 완벽한 환경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제한적 환경, 뒤섞인 혼돈 상황, 산만함 속에서만 발현되는 창조성이 있다. 혹여나 있을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책은 무질서만이 답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다만 모두가 표백된 질서의 세계로 홀린 듯이 나아가는 흐름 속에서 '잠깐만요, 혼돈과 불완전함의 가치를 잊고 계신 것 같은데요.'라며 우리가 간과한 세상의 이치를 짚어준다. 고민 없이 빠르게 나아가기만 하는 세계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책.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잘 쓴 원고를 그대로 읽는 연설은 청중을 열광시키지 못한다. 지나치게 전투준비에 치중하는 사령관은 생각보다 더 맹렬한 적을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쓸 때에도 우발적인 잡생각이 대개 우연한 영감으로 이어진다. 수량화된 목표는 엉뚱한 동기를 유발할 수 없다.
송이송이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개구리가 "하~암" 하품을 하며 기나긴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한다. 깊은 잠에 빠져 꿈나라를 탐험하는 개구리의 곁에 오리가 피리를 물고 다가온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어!"라고 속삭이며. 오리의 연주에 이어, 고양이가 물감과 도화지를 가져와 개구리를 위한 그림을 그려주고, 부엉이는 재미나게 읽은 이야기를 읽어준다. 코끼리는 개구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묘기를 선보이고, 나무늘보는 꾹꾹 눌러쓴 편지를 품에 안고 온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 외롭지 않도록 함께해 주고 싶은 친구들의 마음. 하나둘 전해지는 다정한 마음이 개구리의 꿈속으로 스며들어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차가운 계절은 포근한 온기로 덥혀진다. 마침내 찾아올 봄날, 개구리는 친구들과 얼마나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될까. "무해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이토록 천천히 스미듯이 다가올 수 있을까."라는 심사평과 함께 제6회 사계절그림책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 유아 MD 권벼리
제6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평
무해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이토록 천천히 스미듯이 다가올 수 있을까.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들리는 듯 차분한 그림 위로, 반짝거리고 생기 있고 쉿! 미소 짓게 하는 묵언의 재잘거림들이 더해진다. 작품을 읽는 동안,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과 무언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며 개구리와 친구들 사이에 흐르는 다정함을 응원하게 된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기다리는 마음은 온전하고 때로는 간절하다. _심사평(심사위원 서현·이지은·조은영)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을 통해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위화가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그리고 작가로 살아온 삶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기록한 산문집이 출간됐다. 이번 책에서는 작가로서의 면모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추려 담았고, 그 보편적이고도 단순한 서사 속에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녹아 있어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 많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위화 특유의 담담한 문장이다. 유년 시절의 가난과 외로움,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알게 된 기쁨과 불안, 나이가 들수록 선명해지는 상실의 감각까지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내는데,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 덕분에 삶의 비애마저도 이상하리만치 다정하게 읽힌다. 거창한 깨달음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조용히 되묻게 만드는 깊은 여운의 산문집이다.
- 에세이 MD 도란
이 책의 한 문장
추억 속에서 나는 밥 짓는 연기를 본다. 연기는 농가의 지붕에서 피어올라 조용한 저녁의 노을빛 속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이슬비가 내리는 들판의 모습은 가장 감동적이다. 그때 들판은 더 이상 광활하지도 않고, 피어오르는 안개는 왜인지 너무나도 따스하다. 나는 일을 마친 농민들이 큰 소리를 외치는 모습과 연못을 떠나기 싫어하는 물소 몇 마리가 좁은 논둑을 걸어가는 모습을 특히 좋아한다. 채소밭에서 나는 희미한 거름 냄새, 이 남쪽 지방 농촌의 축축한 냄새는 내게 있어 땅에서 나는 맑은 향기다.
역사를 처음 공부하고자 할 때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여럿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역시 방대한 분량을 들 수 있다. 넓은 지리적 범위와 장구한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과 집단이 서로 얽혀 추동한 무수한 사건과 그 이면의 여러 배경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기 쉽다. 10년 연속 세계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사 강사 이다지의 첫 번째 세계사 개설서인 이 책은, 길을 잃은 독자를 위한 길잡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책은 고대 문명의 탄생부터 현대의 국제 정세까지, 교양 수준에서의 세계사 핵심 장면을 선별하여 어렵거나 지엽적인 이야기는 과감히 덜어내고 주요 인물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어 오늘의 세계로 이어졌는지 명쾌하게 정리한다. 낯선 인물과 복잡한 사건 사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서술은 세계사 공부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어준다. 오랜 기간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이어온 저자의 이력에 걸맞은, 세계사를 처음 공부하는 독자의 눈높이에 알맞은 세계사 공부의 마중물이 되어줄 책이다.
- 역사 MD 박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