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완성은 마지막 돌을 놓는 순간이 아니라, 대국을 마친 뒤 판을 복원하며 패인을 분석하는 '복기(復棋)'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일종의 처절한 오답 노트이다. 왜 그 순간 그 수를 두었는지, 당시의 오판은 무엇이었는지, 더 나은 응수법은 없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승리보다 패배의 원인을 복기하는 일이 훨씬 고통스러운 이유는 자신의 미숙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스스로를 질책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에 있다. 그러나 대국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맹점을 찾아내고, 스승의 조언이나 상대의 수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뇌가 아닌 몸으로 정석을 체화하는 이 고통을 견뎌낼 때 비로소 실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 결국 오답 노트의 본질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성이자, 다음번 유사한 국면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내기 위한 치열한 훈련이다.
이러한 복기의 논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주식 시장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이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 주식 투자 역시 기법보다 중요한 것이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자신의 심리적 요인을 바로잡는 일이지만, 대다수의 초보 투자자는 깨진 계좌를 직면할 용기가 없어 복기를 외면하곤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17년 동안 온몸으로 겪어낸 치열한 기록, <대신 주식해드립니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자산이 아닌 타인의 경험을 통해 실패의 경로를 간접적으로 밟아보는 것은 비싼 수업료를 치르지 않고 시장의 냉혹함을 배우는 가장 영리한 방법이다. 시장의 광기 속에서 자신의 심리적 허점을 거울 치료하고, 무너지는 계좌보다 먼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이 '간접 복기'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 경제경영 MD 김진해
저자의 말
"주식으로 손해 본 적 있으신가요? 혹은 아직 겁이 나서 시작을 못했나요? 그럼 잘 찾아오셨습니다. 이 책에서는 여러분 대신 주식해드립니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꽃의 생김새와 향기를 묘사하는 단어들이 풍부하게 등장한다고 해서 모두 감각적인 글이 될 수는 없다. 감각적인 글이란 어떤 리듬, 대체할 수 없는 어떤 문장, 순간적인 흡입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 상태로 보여주는 어떤 장면들의 조합으로 완성된다. 이 책처럼.
환경역사학자인 저자 제시카 J. 리는 웨일스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3대에 걸쳐 이주자로 살아왔고 그런 그에게 '경계'란 늘 가까이에 있는 개념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경계를 넘나드는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을 함께 풀어 놓는다. 인간에 의해 국경과 대륙을 넘어 퍼져나간 식물들, 이제는 유해종, 비자생종, 침입종으로 분류되고 낙인찍힌 식물들. 경계와 가장자리, 폭력과 탐욕, 아스라한 기억들이 섞인 이 이야기들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놀랍게도 아름다움이다.
곱고 쨍한 꽃들의 색과 강렬한 향기,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 발목을 감싸는 해초와 발바닥에 밟히는 모래, 몸을 누르는 바닷물의 무게... 그의 기억은 오감을 자극하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고, 식물의 역사와 자신의 가족사를 오가는 서술은 마치 부드러운 파도처럼 경계를 무심히 넘는다. 따뜻한 한낮의 물속에 몸을 담그고 나누는 대화처럼 왠지 나른한 읽기를 끌어내는 책. 가녀리고 질긴 아름다움이 남는 책이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나는 친구들과 가족과 켈프의 올리브그린색에 이끌린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에게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바다에서 온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수도권 유명 학군지에서 제자들을 명문 미대에 줄줄이 합격시키며 근무하던 한 미술 교사. 어느 날 갑자기 전국에서 외국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국경 없는 마을’의 한 중학교로 발령받았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학교로 가는 길에는 낯선 음식 냄새와 외국어 간판이 가득하고, 교실에 들어서니 외국어 이름에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아이들은 ‘모국의 얼굴’로 앉아 있었다. 교사는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학교에서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언어를 몰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먼저 오고 말은 최소한만 거드는 영상 자료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술'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자, 아이들은 애틋한 일상과 꿈, 아픔을 작품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건너온 아이들’만이 가진 유일한 기억이 담겨 있었다.
책은 국공립학교 교사이자 화가, 그림책 작가인 저자가 이주 배경 청소년이 90%인 중학교에 발령받으며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안에는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려 애쓴 한 교사의 노력, 언어 없이 ‘예술’로 이야기하며 서로를 알아간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콩고민주공화국 등지에서 ‘건너온’ 아이들은 학교 안팎에서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낯선 나라에서의 어린 삶을 살아낸다. 언어도 국경도 중요하지 않은 그들의 수업은 새로운 형태의 공교육이 가능하리라는 작은 희망을 보여주었고, 저자는 2023년 교육부와 교직원공제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스승상’을 수상하였다.
- 사회과학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전교생 대부분이 다문화인 우리 학교에서 아이들은 ‘다르다’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웠다. 누군가를 “나랑 다르니 나쁘다”고 판단하지도, “달라도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냥 나, 너는 그냥 너일 뿐이었다. 그 당연한 인정이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줬다.
작가가 의대에 다니던 시절, 권력에 취해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던 교수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교수의 부당함에 맞서지 못하던 어느 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작가는 교수에게 당당히 맞섰다. “저희는 교수님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저희를 존중해 주십시오.” 그 후로 교수는 더 이상 학생들을 마음대로 대하지 못했다.
이처럼 부당한 일 앞에서 용기 내어 말하기란 쉽지 않다. 불이익이 두렵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되고, 맞서는 일 자체가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침묵을 선택한다. <그건 내 마음이 아니야> 속 주인공 ‘프란시스코’도 그렇다. 축구보다 줄넘기가 더 좋지만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축구를 하고, 친구를 놀리는 아이들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저 지켜만 본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과 다른 선택을 거듭하는 동안, 이름표에 적힌 ‘프란시스코’의 글자는 하나씩 지워져 간다. 어른들 역시 다르지 않다. 엄마도 아빠도 처리해야 할 일에 쫓기며 조금씩 자기 이름을 잃어간다.
이 책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 솔직하게 말하는 법 등, 인간관계의 노하우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경험과 생각, 그리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게 만든다. 내 이름을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뿐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 어린이 MD 송진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이들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을 잃지 않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유년기에 올바르게 자기표현 하는 법을 배운 아이는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아 존중감과 주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길러진 자기다움은 훗날 힘든 관계에서도 거뜬히 회복할 힘을 줍니다. _ 최은아(초등 교육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