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외계인을 태운 우주선이 불시착했다. 이 문장을 놓고 어떤 풍경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영화 <컨택트>처럼 드니 빌뇌브적인 고요함? 뉴욕을 침공한 <어벤져스> 속 외계인들의 물량공세? 소설가 김원우는 이런 풍경을 상상했다. 개천절에 출근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외교부 직원은 외계인이 불시착하는 걸 목격하자마자 '휴일인데 과장한테 전화해도 되나?'(83쪽)를 고민하고, 미국인은 외계인이 상륙한 곳이 아메리카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심하고, 한국 정부는 '관광 상품'으로 국가 원수들에게 자몽을 닮은 이 외계인과 사진찍을 수 있는 권리를 팔며 으스댄다. 유튜브엔 외계인이 이번 독감의 원인이라는 가짜 정보가 난무하고, 외계인 테마주가 화제에 오르내리고, 어떤 종교단체장은 외계인에게 '세례'를 시도하다 제지당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런 현상을 비웃다 '자필 사과문'을 올리기도 한다.) 이 왁자지껄하고 혼란스러운 세계의 어떤 조각이 당신의 유머감각과 통하는 바가 있다면, 이 우주 활극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스타트렉>의 열렬한 팬이며, 잠시 아이돌 활동을 한 적이 있는 나영은 '자몽'에 대한 집착으로 2020년에만 네 편의 논문을 썼다. 외계인에 대한 연구에 실패한 각계의 전문가들은 자몽 전문가로 학계에 알려진 나영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영은 '자몽의 생산과 변이에 관련된 발견에 도움이 되는 견해에 대하여'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외계인이 자몽을 닮았다는 것과 나영이 오노 요코의 '자몽' 작품집에 대한 미술 평론을 썼다는 것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어 나영이 이 위기에서 세계를 구해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 수다스러움에서 어떤 유머와 재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역시 이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곧 공개될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김원우는 '크리스마스'와 '인터내셔널'을 함께 놓은 제목에 대한 질문에 "저에게 있어 '인터내셔널'만큼 평화와 가까운 단어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저항과 투쟁과 유머와 평등이 함께 놓인 자리에서, 그의 우상인 코니 윌리스의 소설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들'(69쪽)의 투쟁이 시작된다. 도서관에 얽힌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선 이곳에서 이어나갈 싸움까지 이어지는 활달한 SF를 크리스마스에 읽을 것을 권해 본다. 김초엽, 이다혜, 민규동이 심사한 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외계인에 대해 뭐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가 뭘 발견할지, 나영 씨가 오셔서 뭘 발견하실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도 해보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보는 거예요. 다음 기회는 있을지 없을지조차 몰라요. 저는 이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세계에 부는 극우 바람이 피부로 느껴질 때마다 두려움이 인다. 한때 충격적이었던 혐오는 어느새 일상적 언어가 되고 있고 당연하던 보편적 가치들은 그 색이 바래는 중이다.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우리가 파시즘을 떠올릴 때 우리에게 유난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이들이 누군지는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누구에게든 칼을 쥐여줄 수 있다. 파시스트 정치도 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누가 어떤 거짓말을 하는지 꼼꼼히 지켜볼 수 있다면 파시스트를 가려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생계는 머리와 손발을 가만두지 않는다. 모든 언론을 살피며 비교해 보기엔 시간도 체력도 역부족이다. 이런 우리에겐 현실의 흐름을 정확히 읽도록 도와주는 책이 필요하다. 예일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파시스트 정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전술을 정리하여 이 책에 담았다. 책 한 권만으로 세계 정치를 꿰뚫는 통찰을 가질 순 없겠지만, 이 책은 분명 눈을 번쩍 뜨도록 한다. 책에서 나열하는 파시스트 정치의 징후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많은 문장들에서 소름이 돋을 것이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정당한 전술과 파시스트 정치의 음흉한 전술의 차이를 인식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목적에 충실하게, 책은 읽기 편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간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던 이들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많은 시민들이 이 책을 읽고 진실과 거짓을, 진심과 기만을 함께 가려낼 수 있길 바란다. "정치는 다 똑같지."라는 말은 민주주의의 종말을 불러올 것이다.
- 사회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전문 지식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지적으로 세련된 논쟁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현실은 우리가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보다 항상 더 복잡하다. 과학 언어는 그것 없이는 보이지 않는 구별을 나타내기 위해 훨씬 더 복잡한 용어를 필요로 한다. 사회적 현실은 적어도 물리적 현실만큼 복잡하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에서, 구별을 나타내기 위한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가진 공공 언어는 필수적인 민주주의 기구이다. 그것 없이는 건강한 공적 담론이 불가능하다. 파시스트 정치는 정치 언어의 질을 떨어뜨리고 저급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파시스트 정치는 현실을 가리고자 한다.
깨끗한 물에서만 살 수 있는 물 요정은 어른 물 요정이 되기 위해 평생 딱 한 번 뭍을 향한다. 그 숲 깊은 곳 호수에서 보름 동안 머물어야 비로소 성체가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물 요정을 노리는 적이 많다. 맑은 물을 독으로 오염시키는 괴물고기 우라는 물 요정을 이용해 배고픔을 채우려 한다. 물 요정 나나이는 우라의 표적이 되었지만 용감한 소년 타키를 만나면서 우라로부터 벗어나 간신히 성체가 된다.
인간과 물 요정 두 존재는 전혀 다른 타인이지만 우정이라는 덕목 아래 통과의례를 겪으며 한 걸음 더 성장한다. 이 성장은 누구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들 스스로 성취한 것이라 더욱 눈부시다. 일본 주니어 판타지 소설상 대상을 수상한 <물 요정의 숲>이 소개되며 히로시마 레이코가 쌓아가고 있는 세계관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어린이 MD 임이지
추천의 말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저절로 붙는 모험담이라 10대가 된 어린이가 책 읽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청아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 최나야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
스위스 바젤 중앙역이 내려다보이는 시내 한복판, 원통형 탑처럼 보이는 한 빌딩에 국제결제은행(BIS)이 있다. BIS는 국제금융의 중추 기관으로 한 세기 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 시작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전쟁 배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기구이며,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홍콩과 멕시코시티에 대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60여 개 국가의 중앙은행이 가입해있으며,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1996년 9월 33번째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보다 먼저 설립된 기관으로, 수십 년 동안 BIS는 돈, 권력, 그리고 은밀한 세계적 영향력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보통 사람들은 BIS의 존재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을뿐더러,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 책은 세계 중앙은행들의 은행이라 불리는 BIS의 역사에 대한 책으로,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BIS와 국제금융이 얽힌 사건들을 소설처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스스로 금융 분야의 중립적인 테크노크라트라고 주장하는 중앙은행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저자는 BIS와 중앙은행이 정치적인 성격의 조직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주장한다. 이자율이나 화폐 공급량과 같은 중앙은행가들의 결정은 고도로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결정이 다수 대중에게 상이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앙은행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함을 주장하며, BIS의 비밀주의를 폐기하고 전문가주의를 민주적 통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성경 속 바벨탑처럼 금융으로 쌓은 이 탑도 무너질 수 있음을 제목으로 암시하고 있다.
2022년 8월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유의미함을 실감케 하는 가운데, 이 책이 올바른 중앙은행 독립성 개념을 정립하고 민주적 통제를 고민하는데 유의미한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 경제경영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실제로 배상금 지급 종료와 금본위제 붕괴는 오히려 BIS에 호재임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BIS는 설립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의도란 대규모 자본이동을 보장하고 정치인과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초국적인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