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에서 정희진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수전 손택이 있다." 여성 해방을 향해 가는 이 지독히도 거칠고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여정 속에서 다시금 정신을 다잡도록 냉수를 끼얹는 텍스트, 우리에게는 수전 손택이 있다. 이 선명한 문장,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통찰, 읽기를 신나게 만드는 리듬감.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 독자들 사이를 이미 수많은 텍스트들이 거쳐갔다고 해도, 그래서 이제 페미니즘적 텍스트라면 조금은 이골이 났다고 해도 수전 손택의 글엔 여전히 새로운 특별함이 있다.
50년도 더 전에 쓰인 글, 한국 사회가 조금은 이미 지나온 듯 여겨지는 내용도 있지만 대체로는 여전히 사무치게 유효하다. 그의 글은 지치지 않았고 낡지 않았으므로 현재의 우리에게 생생한 힘을 건넨다. 투쟁의 지리멸렬함 속에서는 이따금씩 본질을 다시 환기시키는 불쏘시개를 넣어주어야 하고, 손택의 텍스트들은 그 역할을 하기에 손색이 없다. 지적 자극을 열망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며 문장마다 줄을 긋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