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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첫 장편소설. 은교씨와 무재씨는 철거 직전인 전자상가에서 일하다 서로를 알게 되었다. 일행과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던 은교씨를 무재씨가 부른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10쪽)라고 말하는 무재씨. 이 쓸쓸한 사람들은 그림자를 잃고 마는 풍경을 호명한다. '개연적으로, 빚을'(18쪽) 지는 소년 무재의 부모. '요즘 그림자가 일어서,'(47쪽)라고 말하는 여씨 아저씨의 친구. '그래서 내 그림자가 일어섰을 때'(47쪽)라고 말하는 여씨 아저씨. '은근슬쩍 그림자를 앞세우고 출근하는' (142쪽) 은교씨를 무재씨가 잡는다. "노래할까요." 청하며.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생긴 가마를 '가마'라고 부르는 건 편리하기는 해도 '가마의 처지로 보면 상당한 폭력'(41쪽)이라고 말하는 마음, 밟았으면 어쩔 뻔했냐고, 개구리의 약한 발가락을 두고 놀라는 마음,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126쪽)다고 생각하는 마음. 이 귀한 마음을 아끼는 이들이 여전히 이곳에 존재함을 믿는다.
다시 쓴 황정은의 작가의 말대로 '거의 십삼년이 흐르는 동안 / 세상의 폭력은 더 노골적인 쪽으로 / 그걸 감추는 힘은 더 교묘하게 감추는 쪽으로' (190쪽) 흘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의 십삼년이 흐르는 동안 은교씨가 오가던 오무사가 사라졌듯, 은교씨와 무재씨가 냉면을 나누어 먹던 노포의 함석지붕도, 함석지붕을 두들기던 빗소리의 그림자도 언젠가 일어설지 모른다. 그렇게 사라지게 두어도 되는 거냐고, 2010년 첫 출간된 책이 2022년 복간되어 여전히 그림자에게 말을 건다. 따라가지 마세요. 노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