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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2025
  •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홍성수 (지은이) | 어크로스 | 2025년 10월 "우리는 동료 시민이 될 수 있을까?"

    “난민 수용은 국민에 대한 역차별이다”, “이주노동자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 “다문화 정책은 세금 낭비다”, “여성가족부가 남성을 차별한다”, “성소수자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슬람 사원 설립에 반대한다”, “카페에 아이를 동반하는 것을 금지한다”, “피트니스 클럽에 65세 이상은 출입 금지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는 시민을 볼모로 잡은 인질극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 “지역 할당제는 수도권에 대한 역차별이다”, “중국인 손님은 카페 분위기를 해친다”. 언제부턴가 우리 일상에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만연해졌다. 사회적 위기 속에서 특정 집단을 희생양 삼아 책임을 전가하는 혐오와 차별의 기재는 인류 역사 속에서 수차례 반복되었고, 때때로 끔찍한 재앙을 낳았다. 진짜 위기를 은폐하고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차별과 혐오의 정서는 과연 어떻게 생겨나고, 도대체 왜 반복되는가?

    혐오 표현이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를 설파하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가 이번에는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책은 차별이란 무엇인가, 차별은 왜 나쁜가, 차별 금지의 사유와 영역, 역차별 논란의 허구성, 종교와 차별의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 등 차별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두루 다룬다. 저자는 노골적이었던 제도적 차별이 사라지는 추세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차별은 여전히 강고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보다 면밀히 다듬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으로써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차별은 더이상 개인의 인성을 탓하거나 나중에 해결할 문제로 미룰 수 없는 우리 공동체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시급한 과제다. 저자는 “우리가 ‘차별하지 않는다’라는 안일한 착각에 머무는 동안 불평등의 고리가 단단해지고 있다”라면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 밤의 옷장 루베르 의상실 1
    꽃마리 (지은이), 모차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25년 10월 "어린이의 욕망을 이뤄주는 신비한 의상실"

    어두운 밤, 특정 어린이에게만 열리는 특별한 루베르 의상실. 그곳의 디자이너 루베르는 세상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든다. 단짝 친구도 없고, 어느 무리에도 섞이지 못하는 래은이는 루베르 의상실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루베르에게서 멜빵 반바지를 받는다. 반바지 주머니 속에서 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래은이는, 그 돈으로 잠시 친구들의 마음을 얻지만, 점점 욕망에 이끌려 엄마의 지갑을 훔치고,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과연 마법의 반바지는 래은이를 어디로 데려갈까?

    이 책은 어린이의 욕망을 다루는 매혹적인 판타지 동화다. 화려한 옷이 가득한 의상실, 미스터리한 루베르, 그리고 조수 레서 판다 이지의 등장부터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한 어린이가 여러 유혹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결국 잘못된 마음과 행동을 반성하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는데, 그 과정 중 또 다른 비밀을 마주하게 되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신선한 소재와 흡입력 넘치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모차 작가의 감각적인 그림까지. 읽는 내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음 권이 몹시 기다려질 것이다.

  • 알리트
    제레미 모로 (지은이), 박재연 (옮긴이) | 웅진주니어 | 2025년 10월 "산다는 건 태풍 같아."

    '풀리지 않는 매듭'이란 뜻의 알리트는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올챙이-개구리이다. 갑자기 삶에 내던져진 알리트는 연어 이오드를 만나 강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성체가 된 알리트는 산양 플롱크를 만나 좀 더 큰 세상을 마주하게 되고 그가 머무는 곳이 실바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던 이오드도 죽고 플롱크도 죽자 삶에 대한 큰 회의감에 빠지게 되었을 때 숲의 현자 악손에게 삶의 지혜와 숲 실바에 닥친 위기에 대해 알게 된다.

    <표범은 말했다> <판판판 포피포피 판판판>의 작가 제레미 모로가 이번엔 산파 개구리를 주인공 삼은 만화로 한국 독자를 찾았다. 전작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철학적으로 담아낸 작가는 노련한 솜씨로 이번에도 삶이 주는 충만함과 고통에 대해 묘사한다. 나아가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연생태계를 적나라하고 아름답게 그린다. 자연생태계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생에 대한 희구는 경탄을 자아내며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 같은 일도 가끔은 기적이 일어난다. 실바를 찢어버린 거대한 존재 레탈리트를 알리트가 막아버린 것처럼. 이 책을 만난 건 그런 기적 같은 일이다.

  • 겨울 정원
    이주란, 김성중, 김연수, 서장원, 임선우, 최예솔 (지은이)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이주란"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의 <겨울 정원>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김성중, 김연수, 서장원, 임선우, 최예솔의 수상후보작이 함께 실렸다. 2008년 활동을 시작한 김성중, 1994년 소설를 처음 발표한 김연수를 묶어 읽고, 2025년 소설 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등에 두루 작품을 올린 서장원, <유령의 마음으로> 등의 세계의 막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임선우를 묶어 읽은 후 아직 개인 작품집을 한 권도 엮지 않은 2023년 등단 작가 최예솔의 작품을 기대하며 읽는 방식으로 놓인 차례대로 작품을 읽어나가면 어느새 한 흐름을 품을 수 있을 듯하다.

    수상작 이주란의 <겨울 정원>은 혜숙의 말로 전개된다. 혜숙의 삶은 단순하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오피스텔로 출근해 청소하고, 매일 비슷한 도시락을 먹고, 귀가해 딸이 권한 영화를 보다 잠든다. 혜숙과 함께 사는 딸 미래는 소설을 쓴다. 혜숙은 종종 미래와 겨울 정원의 언 배추 몇 포기를 보며 소주를 마신다. '난 소설을 잘 모르고, 현실은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18쪽)라는 말의 태도로 혜숙은 연애하고 노동하며 자기 인생을 산다.

    청소일을 하던 엄마를 둔 딸의 입장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 돈은 없지만 딸을 막무가내로 키우지 않은, 성실하고, 자부심이 있고, 적극성이 있어 언니들의 모임에 초대되는 혜숙에게 자꾸 우리 엄마 얼굴이 겹쳐졌다. 소설가는 서술자인 혜숙이 자신의 삶을 자기 말로 서술하도록 한다. 한 여성이 말하는 리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이 인물이 오피스텔의 오브제가 아닌 존엄한 한 인간이라는 걸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상대방의 몸에 온전히 들어가 그가 겪은 일을 함께 겪는 걸 시도하는 소설의 방식, 이 시점을 택한 작가의 용기를 지지하며 수상을 축하한다.

11.72025
  • 키스 자렛
    이기준 (지은이) | 시간의흐름 | 2025년 10월 "재즈, 즉흥의 신비 그리고 키스 자렛"

    재즈. 정의하기 어려운 이 음악 장르는 보통 즉흥성이 주요 요소로 꼽힌다. 즉흥성은 '마음 가는 대로' 정도로 해석하기 쉽지만, 재즈 연구가 이기준은 좀 더 깊이 해석한다. 예술의 영역에서 즉흥은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을 통해,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 하며 즉흥을 고급스럽게 다루는 사람은 평소의 훈련 정도가 상당할 것이라 평한다.

    키스 자렛.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솔로 앨범 <The Koln Concert> 를 비롯해 수많은 명연주를 남긴 이 시대의 재즈 아이콘이자 천재. 그의 즉흥성은 탄탄한 기본기 위에 세워진 눈부신 성과다. 우연이라는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다가오는 모든 것에 열려 있어 아름다운 연주를 해내는 키스 자렛. 저자는 재즈의 본고장 뉴욕에서 30년 넘게 키스 자렛을 연구해 오며 그의 최측근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해 아카이빙한 방대한 자료들을 이 책에 담았다. 그의 연주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 그리고 그를 이제 막 알아갈 독자들에게 큰 선물이 될 테다.

  • 마르크스주의 입문
    이찬용 (지은이), 배세진 (감수) | 오월의봄 | 2025년 10월 "새로운 세대가 쓴 마르크스주의 입문서"

    '요즘 세상에 무슨 마르크스주의냐' 하던 시기도 지났다. 기후위기와 극단적 빈부격차, 파시즘의 대두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으로 치닫는 세계, 마르크스주의는 다시 부상하며 재해석되고 있다. 세상을 걱정하는 새로운 세대에겐 이 오래된 사상의 대물림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마중물이 되기에 적절하다.

    2003년 생의 젊은 저자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개념들을 정리하고 마르크스주의 학자들과 참고도서들을 소개한다. 간결하고 친절한 서술 덕분에 배경지식이 전무한 이들에게도 이해가 어렵지 않다. 마르크스주의의 일면에 대한 단편적 인상들로 어렴풋한 이해만 하던 이들 또한 책을 읽고 난 후엔 정갈한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신뢰 깊은 이름 배세진의 감수로 책은 의심 많은 독자의 걱정까지 불식시킨다. 인문, 사회 분야의 너른 독서로 향하는 길의 초입에 서 있는 독자들에게 산뜻하고 단단한 디딤돌이 될 책이다.

  • 부자 아빠 투자 불변의 법칙
    타짱 (지은이), 박선영 (옮긴이) | 큰숲 | 2025년 10월 "유언장 대신 남긴 책"

    죽음을 앞둔 저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재테크의 노하우도, 투자 성공담도 아니었다. 그는 숫자와 그래프가 아닌, '삶의 태도'를 전하고 싶었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 돈이라는 도구를 통해 진짜 자유를 얻는 방법을. 그래서 이 책은 투자에 관한 책이면서도 결국 '사람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에게 남길 유산이 재산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인생의 가치는 '얼마를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연스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도 언젠가 내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돈보다 더 큰 가치를 배우게 된다.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힘'과 '지속하는 마음'이다. 부를 쌓는 법을 넘어, 부를 지키고 나누는 철학까지 전하는 이 책은 단지 투자자가 아닌 '인생의 설계자'로서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과 시선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단단한 유산이 될 테니까.

    출근길, 아직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아이에게 물려줄 진짜 유산은, 어쩌면 지금의 삶과 선택 속에 이미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 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은이), 송섬별 (옮긴이)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가장 강렬한 퀴어 문학의 현재"

    흙먼지가 날리는 거리에 기념비처럼 서 있는 건물, 황폐해진 채 버려진 건물 ‘팰리스’에 살고 있는 노인 후안 죽어가고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한 청년이 찾아왔다. 후안은 방문자에게 자신이 죽으면 이곳에 남아 자신의 방을 넘겨받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때는 그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은 프로젝트까지. 거기에는 종이 조각, 신문에서 잘라 낸 기사들, 사진들, 손으로 쓴 메모들이 들어 있는 파일 폴더, 그리고 페이지 대부분을 시커멓게 칠해 지운 두꺼운 책 두 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성적 변종들 : 동성애 패턴 연구>라는 이름의, 검은 마커로 덧칠해진 문장으로 가득 찬 책. 후안과 청년은 지워진 텍스트 사이로, 암전된 역사 위로,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삭제된 역사와 조각난 기억을 이어 가기 시작하고, 그 사이로 잊힌 이름들이 드러난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퀴어 작가 저스틴 토레스의 2023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역사 속에서 지워지고 검열된 퀴어들의 목소리에 관한 아카이브 자료를 독특하게 재구성하고 있는 소설로, 실존하는 연구서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구는 20세기 초 퀴어 사회학자 잰 게이가 실제 퀴어들로부터 수집한 인터뷰를 담고 있었지만, 왜곡되어 퀴어들의 증언은 병리학적 진단으로, 욕망은 장애로 번역되었다. 암전된 사실, 강요당한 침묵을 대변하듯 이야기는 군데군데 비어 있고, 끊어지지만,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이야기를 따라 청년과 후안의 삶이, 검게 덧칠해진 ‘연구’와 그 뒤에 숨겨진 한 이름이 되살아난다. 첫눈에 들어온 표지부터 손으로 느껴지는 질감, 본문 곳곳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덧칠해진 이미지들까지, 책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강렬하다.

11.112025
  • 하루 한 장 나의 표현력을 위한 필사 노트
    유선경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나만의 문장을 찾고 싶다면"

    필사 열풍의 시작이었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그 후속작이 출간됐다. 이번 책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내는 말은 매번 짧고 상투적인 단어밖에 없는 자신이 답답한 이들을 위해 나만의 표현력을 찾는 길을 안내한다.

    책의 왼편엔 저자가 직접 고른 문장들이 적혀 있고, 오른편엔 필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그 아래에 저자가 쓴 메모가 있다. 메모는 해당 문장의 핵심 메시지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이 문장이 왜 잘 쓴 문장인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간 기계적으로 옮겨 쓰는 필사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저자의 상냥한 안내가 도움 될 것이다.

    2025년이 50일 남짓 남았다. 올해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면 남은 시간 동안 이 책으로 필사를 시도해 보면 어떨지. 조금 더 나은 표현력을 장착한 채로 내년을 맞이하겠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빨리 크리스마스가 왔으면 좋겠어
    로렌 차일드 (지은이), 장미란 (옮긴이) | 토토북 | 2025년 11월 "<찰리와 롤라> 25주년 기념 신작"

    귀엽고 유머러스한 일상 속 아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찰리와 롤라' 시리즈 작가 로렌 차일드가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돌아왔다. 시리즈 탄생 25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이번 책에서는 단 하루의 축제가 아닌, 매일매일을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가는 두 남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았다.

    매 순간 “크리스마스야?” 하며 들뜬 롤라와, 그런 동생을 다정하게 돕는 찰리. 두 아이는 편지를 쓰고, 뜨개 양말을 만들고, 종이 눈송이를 붙이며 ‘기다림’을 둘만의 놀이 공식으로 바꿔나간다. 천, 종이, 사진 등 다양한 사물로 만든 입체적인 콜라주 스타일과 정감 있는 손글씨, 리드미컬한 문장 구조는 흥겨움을 더하며,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유쾌한 아이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지루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법? 찰리와 롤라가 함께 알려줄 것만 같다.

  • 고추장 심부름
    한소곤 (지은이), 모차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5년 10월 "사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야기의 힘"

    비극적인 사건으로 살얼음판이 된 궁궐. 입맛을 잃은 임금은 우연히 생각시 소복이네 집의 고추장을 맛보고, 그제야 식욕을 되찾는다. 전국 산해진미 대신, 맵고 달달하고 짭조름한 고추장맛에 반한 임금을 위해 소복이는 먼 심부름 길에 오른다. 이 책은, 맛있는 고추장을 찾아 떠난 소복이의 파란만장한 심부름 여정을 정겹게 그려낸다.

    동화는 궁궐로 무사히 돌아온 소복이가 임금의 부름을 받아 하루 동안의 여정을 풀어놓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강물에 휩쓸려 위기에 처하고, 수상한 묘지기를 피해 도망치다 기절하기도 하며, 어렵게 돌고 돌아 마침내 고추장 주인을 만난 여정을 소복이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로 들려준다. 그 맛깔나고도 생생한 이야기에 임금은 물론, 상선, 양 상궁 등, 궁내 여러 사람들까지 흠뻑 빠져든다. 웃음과 온기가 사라졌던 궁궐은 소복이의 이야기 덕분에 생기를 되찾는다. 사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이야기의 힘을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는 훈훈한 동화다.

  • 탄젠트
    그렉 베어 (지은이), 유소영 (옮긴이) | 허블 | 2025년 11월 "SF 거장 그렉 베어 작품세계의 정수"

    암갈색 피부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한국식 이름을 가졌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 팰. 소년은 이웃집 로런의 초대를 받아 들어간 집에서 은둔 수학자 피터를 만나고, 피터가 고민하고 있던 작업, 4차원 초입방체의 형태를 구체화하는 프로그램을 체험해 본다. 이후 피터는 전자 건반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팰을 초대해 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치고, 이내 팰이 고차원 내에서의 좌표와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사용하며 고차원 영역을 탐색하던 팰은 그 과정에서 ‘바깥세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에서 외로움을 느껴 바깥세상 사람들을 향해 음악을 연주하기로 하고, 피터와 함께 자기장이 4차원으로 확장되는 원뿔 형태의 스피커 시스템을 만든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곳’에 속해있지 않은 팰과 피터. 그들이 음악을 연주해 ‘바깥’으로 보내자, 이윽고 방문자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형태로 찾아온다.

    네뷸러상 5회, 휴고상 2회, 엔데버상 2회, 중국 갤럭시상 및 일본 성운상 등을 수상한 SF의 거장 그렉 베어 단편집. 앞서 소개한 표제작 <탄젠트>를 비롯해, 나노기술이 최초로 등장한 SF이자 휴고상 및 네뷸러상을 수상한 <블러드 뮤직>,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동을 설계할 수 있는 미래를 다룬 <자매들> 등 작가의 대표 단편 9편을 한데 모아,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 세계의 정점을 보여준 소설집으로 평가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작가 도리스 레싱이 “사람들은 모른다. SF야말로 동시대 최고의 사회소설이며 그렉 베어는 최고의 작가라는 것을. 나는 그를 존경한다.”라며 작가의 작품세계를 극찬하기도 했다.

11.142025
  •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이영도 (지은이)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어스탐 로우는 작가답게 계속 쓴다 "

    <눈물을 마시는 새> 이영도가 7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 인기 작가 어스탐 로우는 백작의 초청으로 그의 별장 '오소리 옷장'에 방문한 뒤 이곳에서 살해된다. '어느 집에든 죽지도 살지도 않은 채 글만 쓰는 사람 한두 명쯤은 있'(10쪽)는 터. 어스탐 경은 살아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혼자일 때면 펜을 들어 쓴다. 심장에 단도가 꽂힌 채 이 사건의 용의자를 가명으로 등장시킨 '임사전언'을 집필한지도 어언 4년. 그는 작가답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이 이야기를 야심차고 게걸스럽게 계속해서 쓰고 어느덧 대하소설은 장장 9권에 달해 결말을 향해 간다. 어스탐 경의 유산관리인, 어스탐 경의 친족과 초청인, 용의자 검거를 앞둔 수사관 등이 오소리 옷장에 모여 이 글이 작가 어스탐 로우의 글인지, 언데드의 글인지에 대한 만신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밀실이 만들어졌고, 막이 오른다.

    도입부의 '장편은 단편을 쓸 시간이 없는 작가가 쓰는 거잖소.'(9쪽)라는 작품 속 대사와 32만자에 달하는 이 작품의 묵직함이 어우러지는 순간부터 피식 웃게된다. 이영도 세계의 인물들답게 등장인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와 역할을 활달하게 해낸다. 인물들의 열렬한 웅변을 듣다 실없이 웃다보면 묘한 훈기가 느껴지는 것이 영락없이 이영도의 소설. 판타지와 추리소설과 짧은 희곡까지,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가란 어떤 족속들이고 그들에게 독자가 어떤 의미인지 소설가는 오직 소설로 말한다. 그러니 독자는 읽고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밖에. 이 작품을 읽은 후 함께 이영도 쓰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영도 필사노트 vol.1도 함께 출간되었다.

  •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뉴 에디션
    김민식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영어, 이제 꺼내먹을 시간이다"

    학창 시절 내내 영어에 많은 시간을 들였고 시험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막상 말하기 앞에서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직원이 "Go ahead"라고 말했을 때 순간 멈칫해본 경험이나, 카페에서 "Take your time"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문자 그대로의 뜻만을 생각해 당황했던 순간처럼, 단어도 알고 문장도 아는데 실제 상황에서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얼어붙는 일이 일상 속에서 여전히 반복된다. 이는 우리가 오랜 시간 시험 중심의 영어에 익숙해져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뉴 에디션>은 이러한 공백을 실질적인 말하기 능력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안된 책이다. 저자는 영어 울렁증의 핵심을 "입에서 바로 나올 문장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하며, 통문장 암기가 영어를 실제로 '내 말'로 만드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실제 상황에서 즉시 꺼내 쓸 수 있는 문장들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며, 학습자가 스스로 루틴을 쌓아가며 영어 말하기의 기초 체력을 단단히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결국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많이 아는 영어가 아니라 바로 말할 수 있는 영어가 진짜 실력이며, 단 한 권을 온전히 외우는 경험이 그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이끄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조깅을 하던 어느 날, 한 외국인이 다가와 "Excuse me, where is the tennis court?"라고 물은 적이 있다. 순간 얼어붙었지만, 문장이 불쑥 떠올랐다. "Go straight for two blocks and turn right, and you’ll see it." 말하고 나서 괜히 혼자 웃었다. 외국어는 결국, 용기 내서 한 문장이라도 꺼내보는 자신감이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말이다.

  • 정승제의 수학 대모험 1
    설민석, 조영선 (지은이), 최진규, 박지영 (그림), 정승제 (감수) | 단꿈아이 | 2025년 11월 "가장 쉽고 재밌는 수학 학습 만화의 탄생"

    여러 일본 어린이 책을 번역하고, 다종의 에세이를 펴내기도 한 권남희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좋은 어린이 책이란 흥미로운 스토리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그 말에 깊이 동감하는 바,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려면 우선 흥미를 끌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을 가장 정확히 겨냥한 분야가 '학습 만화'다.

    거대한 학습 만화 시장에 출사표를 내며 등장한, 인기 수학 강사 정승제. 수학의 '수'만 들어도 움츠러드는 아이들에게 기본 개념과 원리를 가장 쉽고 재밌게 전하고자 나선 것이다. 오랜 현장 경험에서 나온 탄탄한 설명, 여기에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화려한 그림이 더해져 아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까지도 기꺼이 빠져들 만큼 흥미롭다. '가장 쉬운 수학 학습 만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정재민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5년 10월 "그럼에도 사람, 그럼에도 신뢰"

    판사 출신 변호사이자 여러 TV 프로그램과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법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 정재민이 이번에는 ‘신뢰’를 주제로 한 책을 펴냈다. 이 에세이는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미리 독자들을 만났고, 목표 금액의 500%를 넘기며 출간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법복을 벗은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법의 이면에 숨은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기 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과연 사람을 믿어야 하냐고, 저자는 독자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질문은 결국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라는,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현실의 문제로 이어진다. 법정이라는 불신의 공간에서 사람을 지켜보던 그는 불신이야말로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의심하는 기술’보다 ‘현명하게 믿는 법’을 이야기하며, 믿음이란 결국 타인을 향한 용기이자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일임을 차분하게 일깨운다.

11.182025
  • 레슨
    이언 매큐언 (지은이), 민승남 (옮긴이)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이언 매큐언의 일생이 담긴 소설"

    우크라이나의 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로 발생한 방사능 먼지가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을 무렵, 룰런드는 혼자 남겨졌다. 정확히는 태어난 지 7개월이 지난 아들 로런스와 함께. 앨리사는 “당신 잘못이 아냐.”라는 쪽지 한 장을 남긴 채 모습을 감추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그의 내면에 파동을 일으키고,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과거의 인물을 소환한다. 둥근 얼굴, 꼿꼿한 자세, 향수 냄새, 엄격함. 그에게 빛나는 재능이 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챘던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선택하게 만든 사람. 잉글랜드 동부 서퍽주에 위치한 기숙학교 학생이었던 11세 소년의 첫 번째 피아노 레슨 선생 미리엄 코넬을.

    현대 영문학의 거장 이언 매큐언의 신작 장편소설. 그의 첫 자전적 소설로, 간결하고 정돈된 문장으로 허구와 현실을 엮어내며 개인과 역사, 사랑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족관계, 유년 시절, 태어난 해까지 작가 본인을 빼닮은 주인공 롤런드는 수렁에 빠진 채 허우적대는 모습으로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그가 자신을 떠난 여자와 자신이 떠난 여자의 기억 사이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초라한 주변인으로, 개인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휩쓸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며 표류하듯’ 살아가며 그 끝에 만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거장의 박력을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소설.

  • 나는 너를 아는데
    박영란 (지은이) | 우리학교 | 2025년 11월 "박영란 작가 신작, 동경과 매혹에 관한 이야기"

    학교 다니는 학생이라곤 없는 고급 전원주택 단지 '포레'에 유일한 중학생이었던 나를 돌봐주고 비싼 밥을 이따금 사주던, 든든했던 고등학생 '그 사람'.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 서울로 전학을 한 뒤 호주로 유학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포레로 돌아왔다. 다만 황당한 건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가 저질렀던 폭력은 완벽한 남의 일처럼 그저 기사로만 확인 할 수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5년 전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으며 또 다시 마주한 그와 풀지 못한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청소년기의 미묘한 관계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권력의 문법을 통찰력으로 묘사해 온 박영란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미로를 선보인다. 이 작품 속에선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친절을 가장한 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미세하게 줄타기하며 묘사한다. '그 사람'으로 대표되는 무섭지만, 선망하는 대상은 청소년기를 보낸 독자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가해자의 편에 설 것인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그 몫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 이상한 문장 그만 쓰는 법
    이주윤 (지은이) | 빅피시 | 2025년 11월 "호감도 높이는 문장 쓰는 법"

    톡, DM, 포스팅, 메일… 스스로 쓰기와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이들도 하루에 쏟아내는 글자 수를 따져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말의 시대에 목소리와 말투가 호감도를 결정했다면, 문자 소통의 시대에는 문장이 곧 인상이다. 정확한 쓰기의 효용에 무심해도, ‘맥락만 통하면 된다’고 여겨도, 정작 상대는 엉성한 문장들에 계속 걸려 넘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틀린 맞춤법, 어색한 표현, 문장의 흐름을 망치는 오류들을 고치고, 깔끔하고 정확한 문장을 쓰는 법을 차근차근 안내한다. 모두가 셀프 브랜딩과 자기계발에 기꺼이 투자하는 시대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은 결국 신뢰를 잃지 않는 문장력이다. 감사하게도 이 능력을 키우는 데엔 큰돈도, 과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확실한 효과를 약속하는 투자가 드문 지금, 문장은 가장 가성비 높은 투자다. 깔끔한 이미지, 단정한 소통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 이야기의 신
    한윤섭 (지은이), 이로우 (그림) | 라임 | 2025년 11월 "이 책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문학평론가 김지은은 한윤섭 작가의 전작 <숲속 가든>을 통해 작가를 "이야기의 장인"이라고 칭송했다. '이야기'를 화두로 새롭게 선보인 이번 책에서 다시 한번 작가 스스로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해 보인다.

    이 책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의 신>이란 책을 읽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책이 너무 궁금한 열두 살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세상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며 아이에게 이야기를 지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할머니와 아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지어 서로에게 들려준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나무, 자동차... 주변의 풍경과 사물 어느 것이든 두 사람의 상상력에 의해 살아 숨 쉬는 각각의 '이야기'로 피어난다.

    <이야기의 신> 속에서 다시 동명의 책이 등장하고, 그 책에서 뻗어나간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독특한 구성이다. 주인공 아이처럼,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책 곳곳에 깊이 배어 있다.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상상력이 집결된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바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11.212025
  • 김영하 30주년 기념 도서 세트 - 전3권
    김영하 (지은이) | 복복서가 | 2025년 11월 "김영하와 30년, 앞으로도 함께"

    1995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김영하가 작가생활 30년을 집대성한 30/3에디션을 펴냈다. 최근작 <오직 두 사람>부터 등단작 <거울에 대한 명상>까지 총 16편의 대표작을 발표 역순으로 편집해 실어 시간여행하듯 작가를 만날 수 있는 단편선, 제22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심문관 앞에 놓인 인간의 처지라는 고전적인 문학적 주제를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구현한 장편소설 <빛의 제국>, 1990년대의 '신세대' 작가에서 2010년대의 잡학사전을 쥔 '문학박사' 김영하, 2020년대의 어떻게 쓰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현재적 작가 김영하의 목소리를 일별할 수 있는 대표 산문 45선을 모은 산문선까지 세 갈래의 김영하를 엮었다.

    1995년엔 PC통신이라는 것이 있었고 2020년대엔 여전히 팬데믹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작가와 통과한 세 권의 작품집 말미에 붙인 2025년 버전의 작가의 말을 읽으며 김영하의 오랜 독자로서 나 역시 독자의 시간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도서관 맞은편 서점에서 영화에세이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2003, 현재 절판)를 고르던 고등학생, 영화화된 김영하의 소설에 대해 토론하며 친구 기숙사에서 밤새 떠들었던 대학생 시절이 내 안에 있다. 작가의 말처럼 김영하를 읽으며 '네 번年代의 연대가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다.' 작품목록이 업데이트될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행운이다. 다음 십년 동안 김영하는 또 어떤 것을 보여줄지, 아직 읽지 못한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 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은이)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전쟁 이야기이자 사람이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

    루리 작가의 대표작 <긴긴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2021년 첫 출간 이후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손에 손을 거쳐 읽히고 있다. 2021년에 읽은 <긴긴밤>을 2025년에 다시 읽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 책은 앞으로도 오래 사랑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루리 작가의 신작 <나나 올리브에게>는, 올리브나무 집과, 그 집을 지키는 나나 올리브와 얼룩무늬 개, 그리고 그 집을 거쳐간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어른이 된 소년이 기억을 더듬어 올리브나무 집을 다시 찾아간다. 얼룩무늬 개와 올리브나무가 맞아주는 그 집에서 나나에게 부치는 편지를 담은 노트를 발견하여 읽고, 깊은 회상에 젖는다.

    전쟁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일상이 엉망진창이 된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준 올리브나무 집. 그곳에서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살아내게 된 이들의 목소리로 올리브나무 집, 나나 올리브의 이야기가 채워진다. 이 책은 한 번 읽기보다 두 번 세 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읽을수록 처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다 선명해지고, 결국 사람이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하미나 (지은이) | 물결점 | 2025년 11월 "하미나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후 4년 만에 찾아온 하미나의 신작. <미괴오똑>이 여성 우울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 드는데 성공하면서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면 이번 책은 하미나가 쓴 여러 형태와 주제의 글들을 넓게 펼쳐 보이며 본격적으로 그가 어떤 저자인지 보여준다.

    이 책의 글들은 한 결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감정 속에서 쓰인 글들이 여러 형식을 넘나들며 책이라는 경계 안에 묶였다. 글은 각기 다른 맥락으로 질문들을 쏟아 내는데, 그것들은 단단한 중심축에 붙들려 있다. 하미나는 주류 사회가 주입하려는 앎 바깥의 우주에 눈을 뜨고 있으며, 그가 쏟는 질문의 중심축은 바로 이 우주에 위치한다. 형식도 주제도 다른 글들이 한데 묶여 있음에도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롭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마치 하미나가 보는 세상을 주제로 기획한 갤러리같이 느껴진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이 갤러리는 장마다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되 결론적으로 모두 합쳐져 하나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기존의 정리된 질서로부터 도망치고 질서를 파괴하고 질서에 돌팔매질하며 점점 자신만의 진실을 구축하는 책.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스즈키 유이 (지은이), 이지수 (옮긴이) | 리프 | 2025년 11월 "최초의 2000년대생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일본의 저명한 독문학자이자 괴테 전문가로, 독문학자가 천직일 수밖에 없겠다 싶은 이름을 가진 히로바 도이치는 결혼 25주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시던 홍차 티백 꼬리표에서 정체불명의 문장을 마주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괴테의 이름과 함께 적혀있는 이 영어 문장은 평생 괴테 연구에 매진한 독문학자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나중에 출처를 찾아볼 요량으로 티백의 꼬리표를 떼어 집에 돌아와 책상 앞 코르크판에 꽂아둔 그는 조만간 있을 방송 강연용 원고를 퇴고하던 도중 불현듯 그 정체불명의 문장이야 말로 자신의 괴테 연구의 진수를 한마디로 표현한 결정적인 문장일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후 도이치는 여러 판본의 괴테 전집을 뒤지고, 동료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문장의 출처를, 진위를 찾기 위한 탐색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탐색은 어느 순간 창작을, 인용과 진실, 언어와 믿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스물세 살의 젊은 작가 스즈키 유이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작가를 최초의 2000년대생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만들어준 작품.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다는 다독가의 작품답게 작품 곳곳에는 괴테, 플라톤, 밀턴, 말라르메 등 방대한 인용문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해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흘러가며 소설 후반부에 서로 연결되는 부분은 주인공 도이치가 작품 내내 천착하고 있는 명제 그 자체와도 맞닿아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새로운 문학의 탄생”이라고 극찬했고, 일본 언론은 그를 움베르토 에코, 칼비노, 보르헤스에 견주며 “일본 문학의 샛별”이라고 평했다. 이 소설이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작품으로 꾸준히 계속 만날 작가의 첫 번째 국내 번역 작품이 되길 기대한다.

11.252025
  • 나로 살 결심
    문유석 (지은이)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판사에서 작가로, 그리고 나 자신으로"

    <개인주의자 선언> 이후 10년, 이제는 판사의 법복을 벗고 드라마 작가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문유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됐다. 판사로 재직했던 23년 동안 저자는 수많은 사건들을 목도하며 그 안에서 가장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조직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그는 1년간의 숙고를 거쳐 제2의 삶을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온전히 나의 삶을 내가 주도적으로 찾기 위해.

    그의 선택은 충동이 아니라 지난 시간을 정직하게 돌아본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새로운 길이 가져올 불안과 책임을 피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어릴 적부터 품어 온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이 결국 그를 다시 책상 앞에 앉혔다. 이 책에서 문유석은 안정된 직업을 내려놓는 과정, 작가라는 불확실한 삶에 몸을 담그며 마주한 현실적 고민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자유의 의미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판사와 작가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건너오며 그는 무엇이 자신을 움직이게 했는지, 나로 산다는 것이 결국 무엇인지에 대해 깊고 단단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 등대들, 조용히 빛나는
    문선희 (지은이) | 가망서사 | 2025년 11월 "여전히 고공에 사람이 있다"

    현대사회와 시스템의 모순을 직시하며 <묻다> <이름보다 오래된>을 펴낸 사진작가 문선희 신작. 우연히 신문에서 당시 세계 최장기였던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 씨의 고공농성 기사를 접한 이후 2005~2019년 사이 33곳의 고공농성 장소를 사진으로 찍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가 아닌 한참 후 찍힌 장소들은 낯설기만 하다. 망망대해에 놓인 듯한 송전탑, 굴뚝들은 책 제목과 같이 등대처럼 보인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공농성 장소-등대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노동환경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작업 노트처럼 써 내려간 문선희 작가의 글에서 노동자들을 향한 연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이 걸어온 시간을 되짚어 잊혀진 투쟁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 연대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건은 과거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고공농성의 이야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600일간 불탄 옥상을 지킨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세종호텔 앞 지하차도 진입 차단 시설에서 투쟁 중인 고진수. 보통 사람들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
    정은주 (지은이), 김푸른 (그림) | 우리학교 | 2025년 11월 "장애와 비장애, 편견과 오해, 그리고 이해"

    정은주 작가의 대표작 <기소영의 친구들>이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한 아이들이 서로의 상실과 슬픔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깊은 감동을 주었다면, 새 작품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은 그 감동의 결을 한층 더 넓히고 깊게 만든다. 또 하나의 대표작이자, 작가의 최고작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소심한 선아와 윌리엄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산에.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두 아이는 헤어졌다가 5학년이 된 해, 산에가 전학 오면서 재회한다. 독특한 행동으로 오해받는 햇살과 당당한 외톨이 민준까지 더해져 네 아이는 한 모둠이 된다. 하지만 작은 오해로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 산에와 민준, 피해자가 된 햇살, 그리고 난처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어 나서는 선아. 네 아이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얽히고설키며 펼쳐진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장애와 비장애라는 경계 앞에 선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편견과 오해라는 장벽을 넘어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서사는 아이들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은 울컥하게, 또 어느 순간은 웃음이 터지게 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로도, 이 귀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김혜순, 신해욱, 이제니, 김승일, 김현, 서윤후, 조시현, 최재원, 임유영, 고선경, 유선혜, 한영원 (지은이) | 허블 | 2025년 11월 "김혜순부터 유선혜까지, SF X 시"

    천자문을 외울 때 첫 장부터 마주치게 되는 낱말은 집 우宇, 집 주宙. 이 낱말은 글자를 둘러싼 지붕 모양에서 시간축을 향해 나아가는 우주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김초엽, 천선란부터 그렉 이건, 윌리엄 깁슨을 넘나들며 과학소설의 우주를 개척해온 출판사 허블이 시적인 것과 SF적인 것의 접점을 모색하는 시집을 선보인다. SF적인 것을 사유하는 시가 놓인 집. 김혜순, 신해욱, 이제니, 김승일, 김현, 서윤후, 조시현, 최재원, 임유영, 고선경, 유선혜, 한영원이 참여해 바둑판 위에 돌을 올리듯 적절한 자리에 시편을 놓았다.

    열두 편의 시가 한 부를 이루고 총 세 부로 서른여섯 편의 시를 엮은 시-집의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시인이 쓴 작품인지 시집 맨 뒤 편 수록작 안내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가급적 시가 놓인 그대로 답을 모르는 채 궤도를 따라 감상해보면 좋겠다. SF적이면서 시적인 것, 기술적인 것이 자아낸 섬광을 함께 겪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시가 놓일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

11.282025
  •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지은이) | 디플롯 | 2025년 11월 "김보영 첫 창작론"

    ‘SF 작가들의 작가’ 김보영이 선보이는 첫 글쓰기 책. 이 책은 글쓰기의 AtoZ를 모두 알려주는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김보영은 오래 단련된 장인이 자신만의 공구를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듯 오직 손끝으로 체득한 방법들만을 알려준다. 자잘한 기술이나 지루한 설명은 모두 소거하고, 오로지 좋은 글쓰기에 관한 핵심만을 담아냈다.

    SF란 무엇인가, 아이디어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좋은 SF는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 그는 망설임 없이 정중앙으로 들어서서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유와 태도,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를 가리는 부분 없이 꺼내 놓는다. 그 태도는 쿨하고, 내용은 매력적이다. SF 창작을 하는 이라면 껴안고 살게 될 책이다.

  • 더 센스 : 당신도 센스가 있다
    호소다 다카히로 (지은이), 롱블랙 편집부 (옮긴이) | 롱블랙 | 2025년 11월 "센스는 훈련으로 깨우는 것이다"

    무채색 정장처럼 튀지 않는 것이 미덕인 회의실, 누군가 용기 내어 던진, 날 선 아이디어는 "현실성이 없다"거나 "너무 튀지 않냐"라는 핀잔 속에 뭉툭하게 깎여나가기 일쑤다. 한국 사회에서 '센스'를 발휘한다는 것은 이처럼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우리는 내면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어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기까지 수많은 자기 검열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결국 "센스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자신의 고유한 감각을 스스로 마모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최고의 카피라이터 '호소다 다카히로'의 진단은 명쾌하다. 그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컨셉을 다루는 능력이 철저히 센스에서 비롯되며, 이 센스는 신비로운 영감이 아닌 누구나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한 '기술'이라고 단언한다. 막연한 재능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감각을 논리적인 훈련의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화두이다.

    전작 <컨셉 수업>이 기획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방법론에 집중했다면, <더 센스 : 당신도 센스가 있다>는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인 사람의 '기본기'를 재설계한다. 저자는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자신만의 필터로 걸러내어 언어화하고 최적화하는 7가지 사고 훈련법을 제시한다. 이는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자, 스쳐 지나가는 현상을 뾰족한 무기로 바꾸는 구체적인 지침이다. "당신도 센스가 있다"는 부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올바른 훈련을 통해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조직 논리 속에서 무뎌진 감각의 날을 다시 세우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시각을 갖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이고 든든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언젠가 나도 "센스 있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분 좋은 기대를 품어본다. 오늘을 희망으로 채우는 것만큼, 삶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것은 없다.

  • 공감에 관하여
    이금희 (지은이)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배려이자 매너에 대하여"

    자타공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통 전문가 이금희.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이 열리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진다. 2022년, 말하기의 실용적인 기술을 담은 책 <우리, 편하게 말해요>를 선보인 이후 3년, 이번에는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일상에 밀착한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로 돌아왔다.

    이 책에는 이금희가 그동안 만나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으며,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제안이 함께 녹아 있다. 서로 예민하고 날카로워지기 쉬운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작은 관심과 공감의 힘이 결국 서로를 지탱해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감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작은 배려이자 삶의 힘이라는 것이다. 2025년을 서서히 마무리 하는 요즈음, 관계와 일상에 지친 모두에게 추천하는 다정하고도 단단한 책이다.

  •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젊은작가상 함윤이 첫 소설집"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작가 함윤이 첫 소설집. 표제작 <자개장의 용도>의 '나'는 분에 넘치는 자개장을, 여성에서 여성으로 전승된 가족의 물건을 들고 상경했다. '너비는 약 넉 자, 높이는 여섯 자. 양쪽 문을 가로지르는 자기 장색과 검개 옻칠한 나무 모두 보석처럼 빛'(11쪽)나는 이 물건은 가족들이 친척들에게 돈을 꿔서 보증금을 마련한 대학 신입생의 자취방에 놓이기엔 너무 크고 고급이다. 자개장 안에서 가고 싶은 곳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는 그곳에 갈 수 있다. 자개장의 규칙은 돌아오는 건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 돌아오려면 걸어서,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비용과 시간을 들여 대가를 치러야 한다.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은 값을 요구한다는 것, 그것이 꿈의 규칙이라는 걸 안다.

    함윤이의 소설 속에서 사람들, 여자들은 어디로든 간다. '강 건너' 같은, 분수에 넘치는 곳을 욕망하던 이들은 기어코 <강가/Ganga>의 '강가'처럼 여공이 아닌 '강가'가 되기 위해 이국의 호텔 테라스에 선다. 이곳에서라면 '나는, 남자를, 사러, 왔어요.'(97쪽)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수호자>의 '기절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목 조르기 게임에 응해 경동맥을 내놓을수도 있다. 저 세상에 잠시 다녀온 기분, 썩 나쁘지 않은 그 찰나의 기분을 위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된 사람들의, 환상을 위해 목을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윤이는 자개장의 빛깔처럼 오묘한 문장으로 쓴다. 읽는 것만으로 이 곳의 중력에서 벗어나 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추동력 있는 소설의 등장이다.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함윤이의 세계에 읽는 사람은 '분명 매혹될 것이다. 언제나 어디로든 떠나게 해주는 물건이라니, 이런 것에 무심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자개장의 용도>, 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