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날, 뉴스가 떠들썩했고, 많은 사람들이 인간과 AI의 대국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건 조금 충격적이고 신기한 일이었으나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반인에게는 잠시 놀라고 지나갈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바둑인들에게 AI의 승리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이 책의 인터뷰들을 읽고서야 알게 됐다. 당시 대국을 본 프로 바둑 기사들은 한동안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밥을 먹지 못했고 내내 술을 마셨다. 어떤 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어떤 이는 아주 오랫동안 정처 없이 걸었다. 인간만이 펼칠 수 있는 예술이자 스포츠라고 여겨온 바둑 경기에서 AI의 승리는 그들의 삶과 배움, 철학, 아름다움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는 프로 바둑 기사들의 인터뷰 대사는 마치 디스토피아 SF의 도입부 같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담긴 문장들이 처절하다.
그들의 절망이 과잉 반응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빠르게 증명되었다. 기술은 한번 도입되면 막을 수 없다. 장강명의 표현에 따르면 기술이란 야수와 같아서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날 이후 AI는 바둑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전까지 바둑 기사들이 공부하던 방식은 모두 폐기되었다. 이제 바둑계에서 AI로 공부하지 않는 바둑 기사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마치 스마트폰 없이 2025년의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번거로운 것처럼. 장강명은 AI 이후 바둑의 세계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AI는 바둑계를 어떻게 바꾸었으며, 바뀐 바둑계에서 득을 본 이는 누구인가, 잃은 것이 많은 이는 누구인가. AI는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바둑의 장르를 어떻게 바꾸었나.
그는 이 질문들을 하나씩 취재하며 답을 얻고자 한다. 문학계에도 AI라는 야수가 본격적으로 뛰쳐나온다면 그 이후의 풍경은 어찌 변할 것인지에 대하여. 그러니까 미래는 모든 분야에 같은 속도로 오지 않고, 그는 이 시간차를 이용해 문학을 비롯하여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최대한으로 예측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곧 들이닥칠 미래를 앞두고 읽는 바둑 세계의 이야기는 종종 소름이 돋고 눈물이 맺히게 한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바둑이라는 게임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의 매서운 취재, 인간의 모든 영역에 빠르게 침투 중인 AI 현실... 책의 내용과 책을 둘러싼 현실적 배경이 모두 합쳐져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AI의 습격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
주인공 공완두의 별명은 '완두콩'. 받아쓰기에서 빵점을 맞은 뒤로는 '빵완두'라는 별명도 생겼다.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하는 완두는, 매일같이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다.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스마트폰 좀 그만해!" "학교 숙제는 했니?"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도망치던 어느 날, 완두는 '잔소리탈출연구소'라는 비밀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비밀 요원 부엉이 '포포'는 완두에게 '집중력 도둑 찾기 미션'을 건넨다.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사람,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려는 사람, 가공식품을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바로 그런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집중력이 무엇인지, 집중력의 종류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도둑맞은 집중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완두 어린이와 함께 미션을 하나씩 완수해 나가며 얻는 성취감은 덤이다. 뇌과학자이자, 한 아이의 아빠인 정재승 교수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강력 추천한 이 책은,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고 싶은 모두에게 명쾌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날, 자칭 '요알못'들을 위한 보양 같은 책이 출간됐다. 2020년 '신상출시 편스토랑' 출연 이후, 대한민국 집밥 테이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던 '어남선생' 류수영이 그동안 선보인 레시피 중 가장 사랑받았던 메뉴들을 한 권의 책으로 선보인 것. 정말 좋아하는 취미였던 요리가 어느새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저자는, 요리를 공부해서 알리는데 큰 책임감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책에는 어남선생만의 편리한 계량법과 식욕을 자극하는 플레이팅 노하우, 다양한 상황에 도전해 볼 만한 레시피가 가득 담겨있다. 원하는 재료를 양껏 넣어 일주일 걱정없이 먹고 싶은 자취인들뿐만 아니라 온가족 든든하게 집밥의 온기를 나누길 바라는 이들 모두의 테이블에 평생 도움을 줄 요리책이다.
매일 글을 쓴다.
<구의 증명>, <이제야 언니에게>, <단 한 사람> 최진영의 창작노트는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어떤 문장은 내가 신기에는 너무 큰 신발 같고 어떤 문장은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없는 좁은 방 같다.'(7쪽)고 느끼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바위를 깨듯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다. 저녁이면 승률이 3할인, 질 확률이 더 높은 야구를 본다. 주머니에 넣어둔 책을 매만지는 사이 '손가락에서 용암처럼 폭발하는 것들을 다 쏟아내서 아주 뜨겁고 울퉁불퉁한 책으로 만들고 싶다'(33쪽)는 고요한 열망이 휘몰아친다.
사랑이 자취를 감추면 기다리자 (23쪽)
그러니까 지금을 살자. 의미를 찾지 말고 일단 살아야 한다. (75쪽)
글을 쓰지 못하는 나도 나다. 글은 나의 일부다. 글이 나를 잡아먹도록 두지 말자. (91쪽)
해석을 하려면 일단 살아야 한다. 정신없게라도 살긴 살아야 해. (132쪽)
부디 내가 나를 계속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218쪽)
다짐하듯 적어놓은 단단한 문장은 최진영 작가처럼 쓰는 삶을 꿈꾸는 이들의 열망에 함께 놓이면 좋겠다. 글과 삶과 사랑에 관해 '그것이 유치하고 철없고 부끄럽고 즉흥적이고 무모하고 연약하며 돌이킬 수 없는 것에 가까운 감수성이라면 더욱 좋다.'(58쪽)고 작가는 애호하는 마음을 긍정한다. 버릴 문장임을 알면서도 계속 쓰는 마음, 지는 걸 알면서도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마음으로 작가는 쓰고 지우고 버리고 고치며 이 창작노트를 적는 동안 장편소설 <단 한 사람>을 완성했다. '이글스는 진짜로 도약했다. 꼴찌가 아니다. 9위다. 흐름을 탔다.' (178쪽)고 적어둔 문장에 답하듯 2025년 7월 현재 작가의 야구팀 '독수리'는 상위권에서 날고 있다. 설사 날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주머니 속 날개짓이면 충분하다. 넘어질 때마다 매만지기 좋은 책, 다시 일어날 힘을 선물할 책이다.
7월 29일 금요일, 더블린은 화창했다. 오후 2시 27분. 카헐은 평소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는 이상하게 기울어 있다. 누군가는 안부를 묻고, 누군가는 퇴근을 종용한다. 집에 돌아온 그는 고양이 밥을 주고 샤워를 하고, 데운 저녁을 삼키며 떠올린다. 그를 떠난 여자.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과의 싸움, 뒤바뀐 마음, 감정의 균열. 소설은 겉보기엔 평범한 하루를 따라가지만, 그 안에 도사린 후회와 분노, 미묘한 긴장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차가운 문장과 고요한 서사 속에서 서서히 부상하는 내면의 균열은, 키건 특유의 서늘한 스타일로 압축돼 있다.
클레어 키건이 25년의 시차를 두고 완성한 세 편의 단편을 묶은 신작 소설집.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국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키건은 이번 작품에서 ‘따스함’을 걷어낸 차가운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작가는 일상 속 여성혐오, 불균형한 권력 구조, 남성성의 계보가 어떻게 일상화되는지를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파헤친다. 프랑스판 제목이 ‘Misogyny(여성혐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과 남성, 관계와 침묵, 혐오의 유산을 추적하는 섬세한 기록이다. 겉으로 보기에 고요하지만 손대는 순간 살점을 베어 먹는, 극한의 추위에 차갑게 얼어붙은 쇳덩이 같은 소설.
15%가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유태인들의 교육법에는 특별한 철학이 담겨 있다.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가 아니라 "오늘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것이다.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힘, 그것이야말로 사고의 근육을 단련하고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 진짜 배움이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는 AI가 빠른 속도로 일상을 점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술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우리의 선택과 사고를 대신하려 든다. 이럴 때일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능력, 바로 '질문하는 힘'을 다시 붙잡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사고의 방향을 설계하고 질문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AI가 우리를 압도하기 전에.
<생각의 주도권을 디자인하라>는 국내 1호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가 10년 만에 펴낸 신작으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적 역할을 성찰한다. 저자는 성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가 질문하는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AI는 인간의 사고를 비추는 거울이며, 동시에 인간의 사고를 대신할 수 있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질문을 멈춘 순간, 인간은 주체가 아닌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질문이 사고의 씨앗이자 창조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AI 시대에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정답을 빠르게 찾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확한 답을 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책은 질문을 통해 나를 단련하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며, AI와 공존하는 미래를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단단한 철학서다. AI 시대의 흐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흐름을 이끌어갈 것인가. 지금, 우리 모두가 반드시 던져야 할 마지막 '질문'이다.
핸드폰이 망가져 급전이 필요한 장시루. 민속학을 공부하는 엄마의 잡다한 짐 속에서 우연히 저주 스티커를 만들 수 있는 책과 칠보 볼펜을 발견한다. "스티커로 저주를 거는 방법"이라 첫장에 쓰여 있는 그 책에는 저주 강도에 따라 정교함이 다른 그림들이 빼곡히 있었다. 부적도 짚 인형도 아닌 이런 그림으로 저주를 내릴 수 있다니? 시루는 다크웹에서 저주를 팔아 소소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각양각색의 저주 문의가 쇄도한다. '전교 1등 답안지 밀리게 해주세요.' 라거나 '직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가 큰 실수하게 해주세요.' 같은 것들. 하지만 시루가 다니는 같은 학교 선생님을 저주하는 문의에 멈칫하게 된다. 설상가상 시루가 판매한 저주 스티커를 떼어버리는 옆 반 소우주의 등장까지. 그저 용돈벌이로 시작했던 저주 스티커 판매는 부작용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비스킷>으로 수많은 청소년 소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 김선미가 선보이는 새로운 이야기. 우리에게 익숙한 무속, 그중에서도 저주라는 소재로 독자들의 관심을 돋우고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자연재해까지 고민하게 해주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주가 쌓이면 자연재해가 온다.'라는 소우주의 말은 지진, 기후변화 같은 손 쓸 수 없는 재해를 한 번 비튼다. 이런 천재지변이 어쩌면 인간들이 쉽게 품는 나쁜 마음 때문이라면?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아주 악랄해서 접착성이 강한 스티커처럼 흔적이 남는다. 그 미움과 끈적임도 책임질 힘이` 있다면 오히려 그 힘으로 나와 내 주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김선미 작가가 바라는 세계가 아마 그런 곳인가 보다.
""여백(margin)에 있는 것들"이란 의미에서 파생된 마지네일리아는 책의 여백에 남기는 표식, 주석, 메모, 삽화, 분류할 수 없는 반응의 흔적들을 총칭한다." 김지승은 서문에서 마지네일리아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며 여성적 읽기와 마지네일리아의 필연적 얽힘에 대해 말한다. '여성(이면서 동시에) 독자'인 이는 이중 억압의 모순 속에서 텍스트를 읽어 나가기에 독후 감상이 한 결로 정돈될 수 없다. 텍스트에 순응하고 저항한 흔적은 마지네일리아로 남으며, 유무형의 마지네일리아는 시공간을 넘어 저자와의 연결을 가능케 한다.
김지승은 이 책에서 자신의 마지네일리아를 풀어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테레사 학경 차,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다와다 요코, 찬쉐.... 여성 작가들을 읽으며 그는 책 속의 텍스트와 자신의 삶 속 이야기를 엮는다. 시적인 문장 덕분일까, 텍스트와 그의 현실 사이엔 문턱이 없다. 두 개의 세계 사이를 문장들은 조금의 덜컹거림도 없이 자유롭게 횡단한다. 텍스트와 삶은 서로를 침투하고 서로를 다시 해석해 내면서 정해두지 않은 결론과 목적으로 나아간다.
한 여성의 삶에 다른 여성들의 삶이 중첩되는 풍경이 만들어내는 왠지 모를 고통과 파리한 아름다움, 현실의 이야기를 곱씹고 재해석해 내는 글이 가지는 고요한 힘이 이 책엔 있다. 여성 독자라면 아껴가며 읽을 원고와 그런 원고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살려내는 편집이 어우러진 에세이.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엔 나의 마지네일리아를 되짚어보게 되는 책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왜 어떤 이들은 불확실성 앞에서 한발 물러서고, 어떤 이들은 오히려 그 안으로 뛰어들어 기회를 만들어내는 걸까? <리스크테이커>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한다.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모한 베팅이나 대담한 한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만의 통찰을 믿고, 때로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판돈을 거는 용기이자 전략이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고, 판을 흔들며, 미래를 앞서 차지하는 사람들의 생각법을 낱낱이 보여준다.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던 안개를 걷어내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명확한 힌트를 건네는 책! 지금부터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은 점점 더 빠르게 진화하고, 시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친다. <리스크테이커>는 이 혼돈 속에서 기회를 읽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위험을 다루는 방식에 집중한다. 데이터와 확률, 그리고 냉철한 계산으로 무장한 이들은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판을 만들고, 기회를 쟁취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리스크를 피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무대로 나아갈 것인가. 위험을 마주할 때야말로 진짜 미래를 손에 쥘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이 책을 관통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위험을 감수할 용기와 그것을 관리할 통찰,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잡아채는 직감이야말로 미래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리스크테이커>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한 발 더 나아가라고, 한 번 더 판돈을 올리라고 속삭인다. 우리는 모두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분명 더 단단한 결심을 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관망자가 아니라, 판 위에 올라선 플레이어로서.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의 소설가 황정은이 2021년 출간한 에세이 <일기>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2024년 12월 3일 화요일에 시작해 2025년 5월 1일 목요일에 끝이 나는 작가의 일기를 그러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12월 3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작가는 세면대 밸브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한다. 12월 4일 수요일, 기술자가 방문해 수리하기로 약속까지 잡았으나 그 약속은 다음 주로 미뤄지고 만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열 시 삼십사 분, 바로 계엄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황정은의 이 일기는 계엄 선포와 해제,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의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매일의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던 한 개인의 감각과 생각, 사소하고도 절실했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커다란 사건의 그림자 아래서도 여전히 밥을 먹고, 고양이를 돌보고, 고장 난 세면대를 걱정하며 살아가야 했던 날들의 기록은 우리 모두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한 사람의 작은 일기인 동시에 혼란의 시간을 견뎌낸 우리 모두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마주보게 하는 단단한 문장이자 시대의 기록이 될 것이다.
티모시 투쳇은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쉽게 첫 문장을 써 내려가지 못한다. 뚜렷한 이야깃거리도,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경험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글쓰기 대신 위대한 작가들의 방식부터 배우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피츠제럴드의 서명을 흉내 내다 고서점 주인 페니브룩의 눈에 띈 티모시는 그의 가게에서 희귀본에 유명 작가들의 가짜 사인을 그려 넣는 일을 시작한다. 더스패서스, T.S. 엘리엇, 대실 해밋, 오하라, 헤밍웨이의 이름으로 위조된 책이 한 권씩 팔려나가며 그의 삶도 점차 윤택해진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은 어느 날, 산책하던 폴 오스터가 서점에 들렀다가 자신이 사인하지 않은 책을 발견하면서 균열을 맞는다. 분노한 작가는 경찰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티모시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우아한 연인>, <모스크바의 신사>, <링컨 하이웨이>로 전 세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에이모 토울스의 첫 소설집 <테이블 포 투>는 단편 여섯 편과 중편 한 편을 엮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 책의 수록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속 인물들이 대부분,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두 사람만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새로운 진실과 마주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말한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단 한 번의 대화, 그 조용한 불꽃 같은 순간들을 포착한 이 작품집은 위트와 세련미, 따뜻한 통찰로 가득하다. 각 편마다 치밀한 구성과 정제된 문장으로 완성도를 높여 에이모 토울스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
첫 장을 펴서 읽다가 다시 덮고 표지를 봤다. 분명 의학 교양서가 맞는데? 도입부가 소설 같다. 긴박한 응급실, 전날 먹은 음식이 체한 응급실 의사, 분수처럼 토사물을 뿜어대는 환자... 카오스의 현장을 바삐 묘사하던 책은 이내 본분을 잊지 않고 소화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위, 침, 식도에 관한 설명이 명쾌하게 이어진다. 한창 흥미롭게 소화관에 대한 강의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금 아까 등장했던 환자가 나온다. 응급실의 풍경은 여전히 어지럽고 이제 책은 또 다른 환자를 유심히 살핀다.
응급실 의사 남궁인이 쓴 이 책은 응급실의 환자들을 매개로 인간의 몸에 대해 설명한다. 아픈 사람은 아픈 부위에 대해 왜 아픈지, 이곳이 원래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지금 나의 몸은 어디가 고장 난 것이며 어떻게 잘못 작동하는지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응급실에 찾아온 환자들의 급박한 상태로 독자의 주의를 단단히 붙들어 맨 저자는 해박한 의학 지식으로 우리 머리에 떠오른 물음표를 하나하나 처리해나간다. 이미 전작 에세이들로 자신을 증명한 이야기꾼답게 그는 현실의 풍경과 교양 의학 강의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가며 독자의 집중력을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다.
남궁인은 서문에서 "의학이란 그리 복잡하지 않고 의사의 결정에는 몇 가지의 간단한 근거가 있으며 맥락만 익힌다면 이보다 흥미로운 세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아마 이것은 의사 아닌 대부분의 우리가 바로 원해왔던 지식이기도 할 것이다. 내 몸이라는 우주를 공부해 보고 싶었지만 왠지 재미없고 어려울 것 같아 미루고만 있었던 이들을 위한 최적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