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데 없던 학창 시절의 경쟁, 성인이 되고 나서 그때를 돌아볼 때의 반응은 크게 두 분류로 갈리는 것 같다. 그 잔혹한 시절을 통과해냈다는 데에 대한 '괴로움의 훈장'같은 성취감, 혹은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악몽을 꿀만큼 독한 기억. 물론 둘 모두인 경우도 있다. 인생의 짧지 않은 시기를, 더군다나 자아 형성의 코어가 되는 시기를 경쟁과 압박이라는 갈고리에 갈기갈기 찢기며 보낸 이들의 마음엔 그 흔적이 오래, 진하게 남는다. 마음의 균열은 그저 흉터로 조용히 남아있지만은 않는다. 훈장 같은 성취감은 오만함으로 변질되기 쉽고, 독한 기억은 모멸감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김누리 교수는 그것이 한국 사회의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 그럼에도 더한 불평등을 요구하는 시민들, 끝없는 자기 착취, 자살률 1위...
그렇기에 이 책은 표면적으로 한국의 교육에 관해 말하는 책이지만 근본적으로 교육 너머,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변화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그는 한국 교육의 비정상적인 경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질문한다. 우리가 유일한 길이라고 여기거나 '당연하다', '자연스럽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근거를 따져 물으며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꼬집는다. 그는 독일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며 다른 가능성을 알려주고 시야를 트이게 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교육도, 사회도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감각이 엄혹하게 다가온다. 그 절망감을 동력으로 바꿀 수 있는지의 여부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오직 희망 없는 자들을 위해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사무쳐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목련이라 해야겠다
이대흠 <목련> 40쪽
목련 피는 계절, 이대흠의 시의 마지막 행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이라고'를 제목이 인용한 창비시선 500번 기념 시선이 출간되었다. 401번으로 1948년생 시인 김용택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2016)가, 499번으로 2000년생 시인 한재범의 <웃긴 게 뭔지 아세요>(2024)가 출간된 것처럼 창비 시선의 400번 시대는 한국시의 현재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시기였음을 엮은이 안희연, 황인찬은 주목한다. 401번에서 499번까지 이름을 올린 시인들의 시 중 한 편씩만 골라 현재적으로 어우러지는 시 90편을 물 흐르듯 엮었다.
어느새 꽃이 되어 떨어져
샘의 물방울에 썩어간다
그때 내게 사랑이 왔다
박형준 <달 나라의 돌> 72쪽
보고 싶었다고 말하려다가
있는 힘껏 돌을 던지고 돌아오는 마음이 있다
안희연 <슈톨렌> 74쪽
인용한 박형준-안희연처럼 안미옥-박연준, 장석남-박라연, 고영민-황인찬 등으로 시가 맞닿아 배치되어 있는데, 접한 시와 시 사이에서 훈기가 일면서 시를 읽는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지는 점이 읽는 내내 신기했다. 동시대의 감수성으로 읽는 현재적인 시의 풍경. 창비시선의 시 중 가장 좋아하거나 즐겨 읽는 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응답한 77인의 시인의 답을 더해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도 함께 출간되었다.
믿고 보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제28회 대상 수상작으로 정은정 작가의 <아무거나 문방구 1>이 당선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도깨비 '아무거나'는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이야기라면 아무거나, 뭐든 좋아해서 도깨비방망이는 잊어도 이야기 장부는 꼭 지니고 다닌다. 그런 도깨비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초등학교 뒷골목에 '아무거나 문방구'를 차린다.
도깨비 '아무거나'는 한때 주인으로부터 사랑받았다가 유기당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만 고양이 귀신 '어서옵쇼'를 문구점의 평생 직원으로 고용한다. '아무거나'와 '어서옵쇼'가 운영하는 문방구에서는 진기한 물건을 진열해 둔다. 우연히 문방구를 찾은 네 명의 어린이, 제이, 영재, 나리, 지우는 각각 '달달 샘물', '강아지 가면', '도깨비감투', '더블더블컵'을 공짜로 손에 넣게 되면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아이들은 문방구로 다시 돌아가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고, 문방구 주인아저씨이자 도깨비는 아이들의 여러 이야기를 흐뭇한 마음으로 장부에 기록한다.
누구나 각자의 마음속에 한 가지 이상의 고민거리를 지니고 산다. 마음 안에 꽁꽁 싸매어두기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난 후에 왠지 모르게 안심되고 위로받는 순간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든 좋아하는 도깨비라는 신선한 캐릭터와 네 아이들의 신기방기한 사연을 통해 이야기가 지니는 힘과 대화의 즐거움이 얼마나 크고 값진지 알려준다.
검사인 히로키에게는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 인간에게는 당연히 걸어야 할 평범한 길이 있다고, 그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의외로 많고 그 사람들과 범죄와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진다고 믿는 그는 아들이 그 길을 벗어나게 될까 초조하다. 침구 전문점 직원으로 일하는 나쓰키는 인생을 통째로 규정하는 비밀을 안고 있다.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타인이나 사회와의 연결을 최대한 지양하는 삶을 살지만,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다. 대학생 야에코는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학교 축제 준비위원으로서 ‘다이버시티 페스티벌’을 기획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과 연대할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는 남자를 만난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연결이 드러나는 순간, 소설은 독자를 강렬하게 흔들어놓는다.
2021년 출간 이후 일본을 뒤흔든 문제의 베스트셀러. ‘다양성’이라는 말에도 쉽게 포함되지 못하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죽이고 살아가는 가운데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잡을 다른 손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은 정욕(正欲),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지, ‘바르다’는 것, ‘어엿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공격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바르지 않다고,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 욕망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나서도 쉽게 입을 때기 어렵게 만드는, 그럼에도 마음속 한구석에 균열을 일으켜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사념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작. 카프카가 말했던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맞는 열다섯 번째 봄이다. 2021년부터 <나뭇잎이 마르고>, <저녁놀>, <제 꿈 꾸세요>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매 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사랑하고 욕망하는 작가 김멜라가 <이응 이응>으로 마침내 대상을 수상했다. 연인과의 '바로 그 포옹에서 시작'(48쪽)된 이 이야기는 '성적 욕망을 해소해주는 기계'가 있는 어떤 세계에서 감각 신경세포에 주어지는 (그야말로 기계적인) 자극이 아닌, 지금은 사라진 특정한 누군가와의 포옹을 그리워하는 인물 '오미자물'에게 귀를 기울인다. 살갗이 아니라면 우리가 놓이는 자리는 어디여야 하는지 질문하는 이 이야기는 오독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전진하는데, 놀랍게도 이야기의 끝은 '저녁놀'의 빛깔처럼 따스하다. 사랑하고 욕망하는 김멜라의 인물들은 일관되게 오해를 무릅쓰고 전진해왔다는 점에서, 작가의 현재가 집약된 소설로 읽혔다.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는 미래시제에 놓여 있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영 센터의 강습반에서 헤엄치는 느린 수영인 '주호'와 '희주'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와 함께 읽을 수 있을 공현진의 미래소설, 문장웹진에서 2만 회 이상 읽힌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로 화제가 되기도 한 <보편 교양> 김기태의 미래 소설, 진짜 신할머니를 차지하려는 굿 장면이 광기로 번득거리는 <혼모노> 성해나의 미래소설 등을 기대해 본다. 김지연의 <반려빚>의 '그날 밤 꿈에서 정현은 반려빚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207쪽) 같은 장면을 상상하며 나도 나의 반려빚을 잘 달래고 갚으며 도래할 소설을 만나기 위해 잘 살고 싶어졌다. 세계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소설 속에서 산책할 수 있다. 수상을 축하한다.
"마음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심장에 손을 갖다 댈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머리 정도일까.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는 이 질문은 기쁨, 슬픔 같은 내 감정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려달라는 물음과 같다. 연필과 색연필로 자기만의 그림 스타일을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는 요안나 콘세이요는 <당신은 여기 있어요>를 통해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보여준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게 이 책은 반투명 트레싱지에 작업하였기에 책 오른쪽에 있는 그림은 넘겨야 할 다음 페이지가 아니다. 왼편으로 옮겨가며 매 순간 다른 이미지를 선사하는 장치가 된다. 덩그러니 놓인 흰옷 아래에는 손수건, 사과 그리고 맞잡은 손이 있다. 그 맞잡은 손 위로 쌓인 물건들은 작가 자신을 상징하기도 하며 그의 할머니, 그의 딸이다. 유년의 기억은 대를 이어 반투명한 종이 위로 쌓이고 쌓여 그들을 연결한다. 이곳에 있으나 없는 존재의 모순을 눈앞에서 보기에 속절없이 "더 이상 당신이 여기 없던 때부터 당신은 정말로 여기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이쯤에서 다시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있노라 답하겠다. 라에티티아 부르제와 요안나 콘세이요도 이 답에 수긍하지 않을까? 독자 여러분의 답은 어떨지 궁금하다.
읽지 않은 이에게 책을 권하려면 책의 내용을 뭉뚱그리고 축약하여 설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종종 몇 개의 단어들로 책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책을 향한 해코지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책의 경우 특히 그렇다. 언어를 전달하는 방식과 그 안에 담긴 내용, 글에 흐르는 기운이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를 감각하게 하는 책이라면, 그것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새로운 세계를 정의 내리고 요약하고자 하는 모든 언어가 이미 기존의 오염된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설명하기가 난감한 이유다.
팀 잉골드가 말하는 '조응'은 '상호작용'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상호작용이 "관계 사이에서" 나타난다면 조응은 "어우러져 나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과도한 자아중심성을 넘어서서 비인간 생명체, 사물, 자연과 어우러져 관계 맺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7년간 쓴 에세이의 모음인 만큼 주제와 소재는 다르지만 이 글들의 중심을 잡는 태도와 시선, 관점은 한결같다. 태도와 시선, 그것은 일정 부분 감각에 관한 것이기도 해서 이 책에서 느껴지는 정동은 이성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읽는 이의 감각에 달라붙는다. 독서하는 동안 접신하듯 그의 눈으로 본 지금의 단절된 세상은 뒤틀리고 괴이한 구석이 많으며, 또한 서로가 얽히며 존재하는 세계는 아름답다. 엮임과 얽힘, 순환과 생성에 관한 통찰 깊은 문장들은 계속해서 영감을 제공한다. 단단하고 깨끗한 힘으로 가득 찬 이 에세이는 우리의 존재 방식을 강하게 흔든다.
프란치스카 비어만 작가의 <책 먹는 여우> 계절 시리즈는 2020년 겨울 편, 2022년 여름 편이 국내 소개되었다.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살랑살랑하게 만드는 2024년의 봄, 여우 아저씨의 봄 이야기를 새롭게 선보인다. 분홍빛 바탕색에 하트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는 표지가 읽기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출판사 사장 빛나리 씨는 여우 아저씨의 새 책이 나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열다섯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다. 여우 아저씨는 책의 영감을 얻기 위해 봄 산책을 나섰다가 분홍색 곤충 '쿠피엘라 아모로사'의 침에 쏘이고 만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벌레의 침에는 사랑에 푹 빠지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어 분별력을 흐트러뜨려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보이게 만든다. 침에 쏘인 직후 우연히 마주친 화가 여우 미라 씨에게 푹 빠져버린 여우 아저씨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초록빛 새싹, 꽃의 향기, 따스한 햇살, 봄바람이 마음속에서 좋은 감정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봄이 발산하는 밝고 좋은 기운과 작가만의 기발한 상상력을 담아 이 계절과 무척 잘 어우러지는 산뜻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건넨다.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시작으로 출발한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시적 여정이 2024년 600호에 도달했다. 테두리를 색으로 감싼 길쭉한 사각 프레임, 2024년에 시를 읽는 독자의 눈으로 봐도 어색함이 없는 故오규원 시인의 디자인을 근간으로 계속될 시의 모험을 기대하며 시인선 600번 기념 시선을 맞는다. 표지 뒷면에 놓이는 '시의 말'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날개 환상통>, 김혜순, 527번 (39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 567번 (83면)
<날개 환상통>으로 ‘2023년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수상하기도 한 김혜순은 이런 시의 말을 남겼다. 501번 이원(2017년)부터 599번 이장욱(2024년)까지 시의 말이 놓인 자리와 함께 미래의 시를 향해 푸른 항해를 시작한다.
한국 아동 문학의 대표 작가 이금이의 대표작 <밤티 마을 이야기>가 출간 30주년을 맞아 <큰돌이네 집>, <영미네 집>, <봄이네 집>의 전면 개정판과, 네 번째 이야기 <마리네 집>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세대를 거쳐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시리즈인 만큼, 새로운 이야기의 출간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을 독자들에게 <마리네 집>은 선물과도 같은 책이 되어줄 것이다.
이번 새 책의 주인공은 네팔 아이 '마리'다. 네팔 사람들, 학교와 돌봄 센터 그 어느 곳에서도 환대 받지 못하는 마리는 '물에 떨어진 기름방울'처럼 겉도는 기분으로 산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 형편 때문에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내졌던 경험의 상처를 안고 사는 영미. 어느 날, 마리네의 2층 집으로 영미가 이사를 온다. 마리처럼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 채 살아가는 영미와 마리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다가 영미 조카 진우의 등장을 계기로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 책은 마리와 영미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가는 과정 안에서 어떻게 각자의 상처를 꺼내어 보여주고, 나누고, 치유해 나가는지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밤티 마을 사람들의 환대로 네팔인 가족인 마리네가 진정한 보금자리와 행복을 찾게 되는 과정을 훈훈하게 그려내어 기쁨과 온기로 가득 차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파도야 놀자> <여름이 온다> 등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에세이가 출간됐다. 도서 표지를 장식한 색색의 컬러는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의 책 속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사 없이 그림만으로 섬세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해온 이수지의 세계에, 이렇다 할 그림 없이 이야기만 가득한 책이 등장했는데 어쩐지 그 서사에서도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이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가로서, 엄마로서, 예술가로서, 그리고 최고 권위의 상(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수상자로서의 이수지를 면밀히 기록하고 있다. 때론 일기 같기도, 때론 작업 일지 같기도 한 솔직한 글들 사이에서 이수지 작가가 추구해온 예술의 세계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그림책 혹은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오늘 점심에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올여름 휴가를 가는데 괌, 다낭, 오사카 등 여러 선택지 중에서 어디를 갈지 등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한다. 이직을 할지 말지, 집을 지금 살지 나중에 살지, 이견이 있는 사람과 언쟁을 할지 말지! 선택은 복수의 선택지 안에서 하나를 고르는 행위이고, 결정은 한 대상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행위이다. 일상은 선택이고, 인생은 결정이다.
‘파남 스트리트(Farnam Street)’의 설립자 셰인 패리시의 화제작 <클리어 씽킹>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워런 버핏, 레이 달리오, 대니얼 카너먼, 빌 애트먼 등 거인들과의 인터뷰와 행동경제학에서 추출한 최고의 의사결정법 '클리어 씽킹'이 성공은 반복하되 실패는 피하도록 돕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생각을 더욱 합리적으로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라, 최고의 결정을 방해하는 힘들을 극복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검증된 사고법을 제시한다. 평범한 순간을 비범한 결과로 바꾸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모건 하우절, 애덤 그랜트가 강력 추천했다.
아이가 면접을 통해 부모를 선택한다는 참신한 설정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설 <페인트>를 통해 40만 독자를 만난 이희영의 신작. 올 봄 '핀 시리즈'를 100권째 출간하며 서가를 갖춘 '핀 시리즈'의 장르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표지를 들여다보면 이끼 낀 언덕 같은 푸른 뭉치의 형상과 눈이 마주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인시울에겐 때때로 스스로의 얼굴이 이렇게 보인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제 눈엔 젖소처럼,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칸딘스키의 초상화처럼, 색색 블록처럼, 실제의 시울과 다르게 읽히는 것이다. 얼굴을 제대로 알고 싶긴 하지만 이 비밀에 익숙한 것도 썩 나쁘지 않다. 동그랗다, 갸름하다, 귀엽다, 매력 있다, 성격 좋게 생겼다, 자기 얼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때론 너무 많은 형용사에 갇히니까.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묵재'가 던진 공에 부딪쳐 이마가 찢어진 후, 시울은 딱 그 흉터의 면적만큼 드디어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하루엔 수많은 아름다운 얼굴이 휴대전화 액정을 스쳐지나간다. 틱톡 조회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로 각자의 매력이 수치화되는 세상에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유행과 그것들을 보여주는 매체와 스스로를 향한 핀셋 같은 시선과 기준'(83쪽)에 갇히지 않기란 쉽지 않다. '보기 싫은 흉터라 할지라도'(126쪽) 그것이 나의 일부라면 손을 들어 인사하는 용기가 필요한 소설 읽는 독자에게 힘이 되는 여정이 전개된다. 로미오의 말처럼 '다쳐 본 적 없는 자가 흉터를 비웃는 법.' 용기내어 자신을 바로 보는 순간은 대나무숲처럼 상쾌하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불온한 검은 피>,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의 시집으로 독자들과 소통해온 허연 시인이 처음으로 동시집을 선보인다. 시인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예쁜 딸 '허민재'가 있다. 시인은 딸 민재의 엉뚱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상상력 덕분에 많이 배운다고 고백한다. 아빠와 딸의 알콩달콩 일상 이야기에 소복이 작가의 세 컷 만화가 더해져 특별한 한 권의 동시집이 탄생했다.
민재는 늦은 시간에 들어와 수염 난 얼굴로 뽀뽀를 해서 잠을 깨우는 아빠에게 "아빠 제발 애매한 시간에 오지 마세요."라고 하고, 아빠가 사준 너무 맛있는 갈비를 먹고 들어온 날 "오늘은 갈비였다."라고 일기를 쓴다. 또, 아빠에게 뭘 해달라고 할 때마다 아빠가 "내일 해 줄게."라고 말해서 '내일'이 밉다고,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빠와 딸의 따뜻한 교감으로 채운 하루하루를 사랑스러운 동시로 읽는 내내, 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어여뻐서 절로 미소 짓게 된다. 동시와 짝을 이루는 소복이 작가의 재치 넘치는 세 컷 만화는 또 다른 매력으로 키득키득 웃게 만든다.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이 동시집을 혼자 읽을 수는 없다. 특별히, 어른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연말연시를 위해 다이어리를 새로 정리할 때 친구들의 생일과 가족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요즘 시대에도 음력으로 날을 챙길 때가 있기에 음력 달력을 찾아가며 그해의 날을 기록한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쉬는 날을 확인하다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날에 표시가 없으면 체념하듯이 고친다. 2.18, 4.3, 4.16, 4.19, 5.18, 6.29, 7.15, 10.21, 10.29…. 그리고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날들을 생각한다. (여러분은 앞선 날짜들이 어떤 날인지 다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왜 우리는 쉽게 잊고' 세상에 이런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
사회학자 노명우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재난을 잠정 국면, 전조 국면, 사태 발생 국면으로 나누어 각각의 국면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야기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재난을 두루 살펴 재난의 구조와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비슷하게 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슷하게 비이성적이고 불평등했던 세계/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각의 재난을 넘어 해야 할 일을 모색할 수 있다.
4월, 누군가는 가장 비통한 달이라 한다. 감정만 남은 기억은 제자리에 머무는 시간만 늘릴지도 모르겠다. 기억하겠다는 외침과 약속은 우리가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호명하겠다는 증인 선언과도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눈물은 뒤로하고 말한다. 잊지 않겠다고.
“그걸 알아서 뭐에 쓰는데?”라는, 반쯤은 조롱에 가까운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도 현대 사회 기준에서 다소 실용적이지 않다고 평가받는 분야에 관심을 둔 사람일 확률이 높겠다. 조선 후기 중인층의 서화완상문화나 11세기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한 노르만계 귀족의 기독교화 과정 같은 주제를 공부하는 일은 대체로 그 유용성에 대한 조롱 섞인·무례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앎의 값을 평가하고 구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일정 부분은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화되어 있다. 필요한 앎과 불필요한 앎, 좋은 앎과 나쁜 앎, 더 많은 앎과 더 적은 앎을 구별하는 일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졌나.
평생 대학을 중심으로 한 중세 교육제도를 연구한 프랑스의 중세 철학자 자크 베르제는 12~13세기 무렵을 그 전환점으로 본다. 볼로냐나 파리 등지에 모여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던 사람들이 이 활동에 좀 더 분명한 형태를 주고자 했고, 자신들의 성취를 ‘학위’라는 자격으로 공인받으려 했다. 이들은 지식과 교육제도의 발전 속에서 일정한 유형의 앎에 일정한 수준으로 숙달한 존재가 되었고, 이렇게 선취한 지식에 기반하여 특정한 실천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책에서 베르제는 그들을 ‘식자’라고 명명한다. 중세 말, 교황권의 전성기를 지나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국면에서 유효한 행위자가 될 만큼 그 수와 사회적 무게를 확보한 식자층은 그들을 구속하고자 하는 교회와 정치에 맞서고, 한편으로는 깊이 편입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현대’가 있었고, 그 속에는 그들의 문제가 있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성공하거나 실패하였다. 힘을 가진 자들의 압력, 아는 자들의 욕망이 뒤엉킨 공부하는 인간의 역사는 그 위로 한 사회 전체의 변동을 그리는 밑그림이 된다.
10년이 흘렀다. 세월과 혐오의 힘을 빌려 기억을 덮으려는 시도들에 맞서 우리는 기억해왔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이 거대한 참사와 우리 각자가 관계 맺는 방식은 서로 다를 것이고, 각자의 마음속에 꽂혀있는 이야기의 조각 또한 조금씩 다른 면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모든 기억의 출발점은 같다. 4월 16일의 처절한 실패와 절망. 우리의 기억은, 진실은, 그 날 어떤 종류의 실패와 은폐가 있었는지를 낱낱이 살피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 하루에 관한 가장 면밀한 기록이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지난 10년 간 세월호에 관해 쌓인 모든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했다. 세월호는 왜 위험했나. 기울어진 최초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침몰은 곧 불가피하게 참사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나. 해경은 구조에 왜 실패했나. 그날 해경지휘부는 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을 했다. 그것들은 무엇이었나. 참고 자료에 대한 각주만 56페이지에 달한다. 그만큼 면밀하고 꼼꼼한 기록이 다각도로 펼쳐져 있다. 희생자들의 이름과 꿈과 사랑에 대한 기억, 그 아래엔 꼭 2014년 4월 16일의 진실이 함께 놓여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반복하지 않겠다는 말을 공허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사죄와 유일한 약속, 그 시작에 있는 책이다.
히로시마 레이코의 대표작 <전천당> 시리즈의 스무 번째 이야기는 시즌 1의 완결작이다. 2013년 일본 내 첫 출간 이후 10년 만에 시즌 1이 막을 내린다. 스무 권에 걸쳐 전천당의 주인 베니코와 마네키네코, 스미마루 고양이, 그리고, 약 128개의 과자와 121명의 행운의 손님이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내며 어린이 독자들을 흥미진진한 독서의 세계로 이끌었다.
어른 독자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은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20권에는 총 여섯 개의 신기한 상품이 등장한다. 결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대신 골라주는 <골라주시계>, 먹으면 모든 방면에서 능력이 우수해지는 <우수 슈크림>, 건망증을 해소시켜 주는 <기억 듬뿍 초코바>, 도전 정신을 높여주는 <챌린지 오렌지>, 물건을 잘 수리하여 깨끗이 돌려주는 능력을 키워주는 <돌려줄래 사과 탕후루>, 지나친 집착과 욕심을 버리게 만드는 <만족 캔>.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전천당의 신기한 상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 로쿠조 박사가 만든 인공 지능 '츠구미'와 인기 앱 '작은 천사 츠구미'의 등장으로 전천당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 속도감 넘치게 풀어낸다.
행운을 잡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뻔한 스토리 전개에서 벗어나, 행운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상황들을 보여주며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건넨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것들이 쌓여서 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거니까." 마음을 움직인 이 대사를 오래 곱씹으며 시즌 2의 출간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2005년 4월 23일, 'Me at the zoo'라는 이름의 한 영상이 업로드된다. 무명의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이 동영상 사이트는 이 19초 분량의 영상을 시작으로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대의 콘텐츠 플랫폼이 된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튜브(YouTube)'이다. 콘텐츠 소비 방식이 전통적인 텔레비전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그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완전히 변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유튜브가 있다.
세계 최대 콘텐츠 플랫폼 '유튜브'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몇 년 전 일이지만, 초등학생 대상으로 직업 선호도 1위가 유튜버였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유튜브가 어떻게 운영되고,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튜브, 제국의 탄생>은 유튜브 역사와 함께한 300여 명을 취재하고 유튜브를 둘러싼 모든 히스토리를 밝혀낸 책이다. 초기 동영상 사이트의 시작부터 기업 안팎을 둘러싸고 벌어진 온갖 갈등과 스캔들, 분투와 성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감 없이 담아내고 흥미롭게 파헤쳤다. 독자들은 이제, 이 흥미로운 유튜브 히스토리에 빠져들 일만 남았다. 게다가 책을 읽는 동안 광고가 없는 것은 덤!
삼 개월 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운영하던 음악 학원을 정리하기 위해 방문한 린쌍은 그곳에서 은은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학원에서 운영되던 수업들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하나둘씩 끝나고 선생들도 학생들도 남아있지 않았을 터, 아내의 뵈젠도르퍼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연주한 것은 뜻밖에도 야구모자를 눌러쓴 중년의 피아노 조율사였다.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뛰어난 실력에도 학원의 교습 제안을 거부하고 피아노 조율을 맡고 있다고 한다. 린쌍은 연주를 마친 조율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에 빠졌고, 이윽고 조율사가 입을 열었다. “린 사장님, 댁의 스타인웨이는 괜찮습니까?”
타이완 주요 문학상을 휩쓴 궈창성의 장편 소설이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포기한 마흔세 살의 피아노 조율사와 아내의 죽음 이후 아내가 남기고 간 피아노 때문에 그를 만나게 된 예순의 사업가가 피아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공명의 방정식을 갖고 태어나며, 그것을 사랑 또는 신뢰라고 부른다는 말을 등에 지고 실망과 갈망 속에서 헤매는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를 음표처럼 우아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그렸다. 삼십 대 때 더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작가가 십삼 년 동안 내면 깊은 곳의 회의감, 상처의 누적에 따른 피로와 미망을 마주한 결과로 내놓은 소설.
긴 식탁 위에 불안정하게 솟은 나뭇가지 위로 책, 옷걸이, 커피잔, 주전자 같은 살림살이가 걸려 있다. 식탁 맞은편 의자엔 빨간색 새가 앉아 있다. 갑자기 새의 색이 사라진다. 색을 잃은 새가 식탁보를 움켜쥐고 날아간다. 여지없이 식탁 위에 모든 것이 와장창 부서진다. 화자는 어쩔 도리 없이 그 새를 쫓아간다. 계속 망가진 그곳에 앉아있을 수 없으므로.
글 없는 그림책인 이 책의 작가, 이사 와타나베는 일본에서 페루 북부로 이주한 이주민 3세이다. 낯선 땅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전작 <이동>에 이어 이번 <킨츠기>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 부서지는 마음들에 희망과 용기를 전해준다.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를 옻으로 이어 붙이고 금분으로 장식하는 공예 기법이다. 전혀 다른 그림의 찻잔 반쪽과 반쪽을 이어 붙여 금으로 장식한다. 어찌 그것이 예전의 모습보다 별로라 할 수 있을까? 깨진 마음이 붙은 이음새는 빛난다. 그 안에 희망, 그리고 새 삶이 있다. 2024년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작.
지방 소멸, 고령화, 인구감소…남의 일 같지 않은 우리 사회의 암담한 현실이지만, 일단은 소설의 이야기다. 네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해 인구 6만을 유지하고 있는 난하카마시에는 모든 주민이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요양센터로 떠난 후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마을 ‘미노이시’가 있다. 새롭게 취임한 시장은 타지역에서 이사 오는 주민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I턴 프로젝트’를 시작, 업무를 전담할 ‘소생과’를 신설하며 마을을 되살리기 위한 행보를 이어간다. 공무원 만간지는 소생과로의 전보를 일종의 좌천이라고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을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과연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요네자와 호노부가 드물게 선보이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 소도시를 부흥시키려는 공무원과 희망을 안고 이주해 온 주민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는 필치로 담아냈다. 책은 어찌 보면 소소하고 또 우연의 일치에 불과해 보이는 일군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단편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종장에 이르러 그 모든 우연처럼 보였던 것이 우연이 아니고, 호의로 보인 것이 호의가 아님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놀랍고도 씁쓸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현대 사회의 병폐를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가의 놀라운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작가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그야말로 나의, 우리의 ‘비극’이다.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시인하다>
시인으로 20년을 보낸 박연준이 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산문 <듣는 사람>(2024), <고용한 포옹>(2023)과 소설 <여름과 루비>(2022)등을 발표하며 시의 안팎을 오가는 사이 스무 살에서 마흔 살로 시간이 갔다. 많은 죽음이 지나가니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던 마음은 이제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유별난 슬픔이 잔잔해진 곳에서 화자는 이제 작은 것들을 본다. '이제부터// 작은 것에만 복무하기로 한다'(<유월 정원>)는 다짐으로 살아남은 자의 책무인 것처럼 작은 것들과 눈을 맞춘다. 절절 끓는 이에겐 부드러워질 시간이 기필코 올 것임을, 이미 액체로 녹은 이에겐 더 작아지고 더 순해져 기화할 시간이 반드시 올 것임을 예감하는 말과 함께 시의 리듬으로 말소리가 나직나직 작아진다.
끓여서, 잊는 거죠
질긴 시간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감각이 액체로 녹을 때까지
<나는 당신의 기일(忌日)을 공들여 잊는다>
수없이 보고 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대로 알고 가는 여행과 발 닿는 대로 가는 여행, 개개인의 취향대로 고르면 되는 부분이라 어느 쪽이 더 좋고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 다만, 역사와 문화를 습득한 후라면 여행의 방향이 달라지고,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들에 시선을 두게 되면서 경험의 영역이 확장된다.
마음먹으면 언제든 가볼 수 있는, 우리 곁의 궁궐. '걷고, 보고, 느끼고 상상하며 궁궐을 더 재밌게 탐험하는 법'을 알려주는 <어린이 궁궐 탐험대>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그 첫 권의 장소는 경복궁이다. <궁궐 걷는 법>의 저자 이시우 작가와 서평화 그림작가가 뭉쳤다. 포실하고 귀여운 고양이가 등장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과 함께 경복궁의 곳곳으로 안내한다. 탐험 미션과 주제 탐험 코스 안내까지 알차게 담았다. 편하게 들고 다니기 좋은 볼륨감인 데다, 책의 재킷을 펼치면 경복궁 지도로 활용할 수 있다. 어느 곳으로든 가보고 싶게 만드는 이 계절,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이 책을 들고 아이들과 탐험하면, 책 이전과 이후의 경복궁이 분명 다르게 와닿을 것이다.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600호를 출간한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새로운 빛깔, 하늘색 프레임 안에 바닷빛이 놓였다. '시집 출간 제안을 받고 바로 눈 내리는 곳으로 떠났다'는 시인의 말 첫 줄부터 시인이 맡은 눈냄새가 밀려드는 듯하다. 여행산문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를 애독한 독자에겐 풍경까지 생생할 외딴 곳에 우리가 놓인다.
어디쯤 오고 있나요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가능성> 부분
'더 사랑해야 할 몇몇 얼굴들을 생각하다가' (<기차표>) / '결국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지만 혼자 서 있었다' (<줄>)고 나는 적는다. '오래 액자가 걸린 자리에 사각의 자국이 남겨져 있'(<상실의 배>)다면 나는 바라볼 뿐이다. 이 자국이 놓인 자리에 시 말고 더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사랑과 나의 거리가 멀고, 우리가 멀기에 비로소 발생하는 리듬이 있다. 그러니 해설에 더한 이광호의 문장처럼 적을 밖에. '그리고 이병률이다. 말이 더뎌지는 순간이야말로 그 마음의 리듬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라고.(171쪽)
2024년 3월 3일 00:00 토트넘 vs 팰리스. 경기 시작이 자정인지라 본경기를 볼 수 없었던 초등생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패드를 켜고 EPL 하이라이트를 보더니 환호를 질렀다. "손흥민 EPL 13호골, 공동 6위!" 아시안컵에서 복귀한 후 EPL에서 손흥민의 첫골이었다. 아들은 축구 선수 중에 손흥민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의외로 '인성'이란 대답이 나왔다. "실력도 월드클래스인데, 인성까지 좋잖아요!" 나는 손흥민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입니다."
손웅정 감독이 2010년부터 작성해온 독서 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책. 한국에서 나갈 때마다 책을 한 번에 이삼십 권 챙겨가고, 모자라면 인편을 통해서 받기도 했다는 손웅정 감독은 책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독서를 통해 지금 간절하게 필요한 문장을 찾고 그 통찰을 발판 삼아 지금 처한 상황을 새롭게 보려 했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 기본, 가정, 품격, 통찰, 행복 등 열 세가지 키워드를 다룬다. 좋은 책은 세 번 이상 정독하고 중요한 부분은 검정, 파랑, 빨강 볼펜으로 표시를 해가며 더 공부를 해야겠다 싶은 것들은 메모를 하며 전투적으로 책을 읽고 노트에 필사를 했다면서, 노트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 글씨는 쓰는 일과 같았다고 비유를 한다. 축구 인생 50년, 독서 인생 30년, 노트 인생 15년. 이 모든 시간을 가다듬어 지혜로 벼려낸, 지금은 우리가 손웅정의 인생 수업을 경청해야 할 때이다!
큰별쌤 최태성이 한국사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학습만화 시리즈 <최태성의 한능검 한국사>는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한국사 자격증에 관심이 없는 어린이 독자도, 심지어 어른 독자까지도 사로잡는 콘텐츠가 알차게 담겨 있다.
시리즈의 첫 권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를 다룬다. 준이와 단이, 돌치, 태성, 곽승을 등장인물로 내세워 한능'검'을 찾아 떠나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만화로 담았다. 지루할 틈이 전혀 없는 흡입력 강한 만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흐름이 파악된다. 각 장의 마지막에 꼼꼼한 해설을 덧붙인 한능검 기출문제 코너와 큰별쌤의 한국사 강의를 들을 수 있는 QR 코드가 수록되어 있어 만화와는 색다른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한국사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책이다.
세상의 부조리가 유독 하나하나 크게 보이고 사람들의 무례함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느낄 때, 까딱하면 이제 나 곧 소리를 지를 수도 있겠다 싶을 때, '설마'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간다. 슬며시 달력을 꺼내 본다. 어김없다. 정확히 생리 일주일 전이다. 좌절스럽다. 호르몬에 또 당했다. 몸의 작용에 그리 둔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호르몬의 위력을 통감할 것이다. 매달 당해도 거의 매번 방어에 실패한다. 호르몬, 그게 대체 뭐길래 내 감정을 이리 무지막지하게 조종하나. 그래도 PMS 증후군에 관한 한 호르몬의 작용은 날짜 계산으로나마 알 수 있기라도 하지, 그 외에 내 몸과 마음에 어떤 호르몬이 얼마나,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막연히 상상해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내 의지라는 것은 사실 호르몬의 의지인걸까? 호르몬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 책은 바로 이 질문들에 답한다. 세계적 내분비 전문의인 저자가 인간의 생애 주기에 따라 어떤 호르몬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들려준다. 산모의 만성 스트레스, 그러니까 코르티솔의 과도한 분비는 아이가 태어나고 난 이후 신체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후 첫 1~3년, 아기의 뇌에선 호르몬 폭풍이 일어나는데 이 시기가 앞으로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과체중과 호르몬 사이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고, 피임약은 기억력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노인의 식욕 감퇴 역시 호르몬과 연결되어 있다. '내 몸이 왜 이럴까', '인간은 왜 이럴까'와 같은 질문들에 호르몬이 줄 수 있는 답변이 많다니 놀랍다. 호르몬에 관한 체계적인 교양서로서 이 책은 몸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눈을 뜨게 한다. 몸과 건강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망원동 브라더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신작 소설. 2003년 대전시 구도심에 자리한 '돈키호테 비디오'의 '라만차 클럽'에서 중학생이던 아이들은 돈키호테 아저씨와 한 철을 보냈다. IMF가 쓰나미처럼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부모의 조기퇴직과 떠밀리듯 개업한 요식업 업장과 필연적인 폐업이 남았고 방치된 아이들에겐 '돈아저씨'와 떡볶이를 먹으며 <고양이를 부탁해> 비디오를 보고 <어린 왕자> 소설을 읽는 시간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돈키호테 아저씨의 산초 역할을 하던 '진솔'은 15년이 지나 다시 대전으로 와서 그때 그 아저씨를 기억해낸다. 외주 프로덕션 6년차 피디로 일하다 조직에 자기 아이템을 도둑맞고 끝내 잘리게 된 솔은 유튜브 컨텐츠로 다시 일어서려 한다. 돈키호테 비디오 자리에 가게만 남기고 사라진 '돈아저씨'의 행방을 찾는 유튜브 컨텐츠가 그의 기획이다.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라만차와 톨레도, 에스파냐 전역을 달렸다. 시대의 돈키호테 장영수 아저씨를 찾는 솔의 컨텐츠도 대전으로, 서울로, 통영으로 장면을 바꾸며 학생운동, 학원가, 비디오 대여점, 출판사, 영화사에서 펼쳐진 아저씨의 모험을 수집한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필요 없는 강의를 파는 일, 저명한 교수의 이름으로 대리 번역물을 출판하는 일과 타협하지 않아 아저씨는 가는 곳마다 불화했다. 상인들에게 두들겨맞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볼 때처럼, 돈아저씨의 실패는 우습고 애처로워서 끝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저씨를 찾는 여정에 동행한 그 라만차 클럽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솔'에게 변액보험, 경제적 자유, 파이프 라인, 마세라티 같은 단어를 말한다. 그때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어지는 소설. 그 끝에 우리의 '돈아저씨'가 서있을 것만 같다.
카프카는 책이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지만 책이라는 도끼의 특징은 내면만 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어붙은 내면이 깨부수어진 사람은 반드시 바깥세상의 어느 지점도 깨고 싶어진다. 그래서 어떤 책들은 금서가 된다. 세상이 얼어붙은 채로 가만히 있길 바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간 선 너머의 영역은 언제나 매혹적이고, 금서가 존재하는 한 금서의 독자 또한 존재한다. 문화부 기자인 저자는 이 붉은 책들의 탐험가로서, 역사의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금서 30편을 꼭 붙잡아 이 책에 묶어 두었다.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 아이리스 장의 <난징의 강간>, 팡팡의 <우한일기>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 등 금서로 지정되었거나 현재도 금서인 책들의 내용을 설명하며 책은 이들이 왜 금서가 되었는지, 금서의 지정으로 인해 저자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함께 들려준다. 책 속의 내용도, 책을 둘러싼 현실의 상황도 주로 무겁고 안전하지 않은 이야기다. 책이 가진 불온한 힘은 때로 그것을 쓴 작가마저 파괴해버린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안전하지 못한 책이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 책이 담은 진실이 역사 속에서 유효하다면 그 책은 어떻게든 독자를 찾고 살아남아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떻게든"의 한 방식일 것이다.
명색이 한국어가 제1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구사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표현이 맞는 말일까? 모든 언어가 그러하겠지만 사용자끼리의 규칙인 맞춤법은 너무 어렵다. ('너무'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부사였는데 최근 그 쓰임이 확장됨에 따라 긍정적인 표현에도 쓸 수 있게 되었다.) SNS 상에 맞춤법이 틀린 채로 글을 올리면 영원히 '박제'되어 고통받을 수도 있다. 인터넷상에 글을 쓸 때는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면 된다지만 실제로 글을 써야 하는 시험에서 맞춤법이 틀린다면?
전 대치동 국어 강사인 유튜버 밍찌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맞춤법 100개를 정리하여 소개한 이 책은 그의 전 직업정신이 십분 발휘되어 기발한 방식으로 맞춤법을 쉽게 알려준다. 가령, 공중파 방송 및 신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틀리는 '피다'와 '피우다'를 살펴보자. 목적어가 있는 것들은 '피우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그러니까, 담배는 피는 게 아니라 '피우다' 란 말이다. 바람은 '후후' 불고 '우우' 피우고. 헷갈린다면? 밍찌의 공식처럼 '우우'로 외우면 되겠다.
맞춤법?그게먼데?안지키면외않되? 밍찌 작가는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한 단계 레벨 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맞춤법 지키기"라고.
매일 아침 알람으로 눈을 뜨고 회사로 출근했다 집으로 돌아온다. 주말이 되면 살짝 들뜨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급격히 사그라든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일주일을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고, 분기가 가고, 그렇게 한 해가 흐른다. 그러다가 문득 두려워진다.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의 저자 김신지가 바로 이 같은 질문에 이 책을 통해 답을 준다. 24절기가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이라고. 저자는 24절기에 따라 1년을 살아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청명 즈음에는 꽃비를 맞으며 산책하고, 하지에는 제철 감자로 요리를 해보고, 입동에는 그간 뜸했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해 본다.
이 계절에 맞는 꼭지를 읽어도 좋고, 곧 다가올 그리운 계절을 그리며 그에 맞는 글을 읽어도 좋은 책이다. 곧 다가올 소만 즈음에는 (2024년엔 5월 20일.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로 여름의 문턱이 시작되는 계절) 나만의 여름 맞이, 매실을 사다 깨끗한 유리병에 설탕과 함께 차곡차곡 담아야겠다. 그리고 잠시 오늘도 수고한 나를 토닥여 줘야겠다.
진정한 어른, 진정한 스승이 없는 이 시대, 참 스승이었던 법정 스님의 입적 14년 만에 미공개 말씀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법정 스님이 1994년 만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가 30주년을 맞이하기도 한 올해, 이를 기념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강의한 내용을 풀어 공개한 이번 책은 곧 다가올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여러모로 뜻깊은 출간이 되었다.
책에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했던 법정 스님의 강연이 실려 있다. 주지 스님으로 계셨던 길상사에서부터 부산 가톨릭센터까지, 서울 동덕여대서부터 춘천을 거쳐, 대구까지. 각기 다른 장소와 사람들에게 설파하신 법정 스님의 메시지는 지금도 충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매일의 삶을 빠르고 바쁘게 살다 보면 정작 내가 어디고 가고 있는지 모를 때가 적지 않다. 잠시만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진짜' 나를 찾아보자.
컬트 집단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그저 기괴할 뿐이다. 컬트 지도자의 궤변과 권능, 집단 문화의 폭력성과 비인간성, 추종자의 비논리적 믿음,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얽혀 거대한 거짓말 같아 보인다. 그러나 집단 광기는 현재 우리의 현실 안에도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화제 된 사이비 종교의 이름만 몇 개인지. 혼란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데에 이 책이 도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컬트에 빠질까. 그 내부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책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악명 높고 기괴한 컬트 집단에 대해 얘기한다.
챌스 맨슨부터 마셜 애플화이트까지, 책은 컬트 지도자들의 성장 배경과 그들이 만든 집단 내에서 벌어진 일들,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악행들을 상세히 기술한다. 건조하게 쓰였지만 그들의 행위 자체가 잔혹하기에 심약자에게는 주의를 요한다. 책의 내용은 동명의 미국의 인기 팟캐스트를 토대로 한 것인데, 한국의 사례를 다루진 않으나 책이 분석한 컬트 지도자들의 성향과 행적들이 모두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컬트 지도자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인간 사회의 끔찍한 일면을 파헤쳐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구독자 150만명 <라이브 아카데미>로 영어 공부 좀 해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입소문 난 빨모쌤의 첫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영어가 쉽게 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가지 책과 컨텐츠에 접근해보지만 실제로는 별 도움을 받지 못한다. 빨모쌤은 이렇게 말한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안해서 그래요." 영어 말하기를 귀찮아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버렸을 때 진정한 배움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영어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라는 뼈 때리는 조언을 하고 수년간의 쌓아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바로잡아야 할 공부 습관과 태도에 대해서 면밀히 알려준다. 그 동안 채널에서 인기있었던 콘텐츠를 포함하여 빨모쌤이 직접 제작한 음원 강의 영상이 <라이브 아카데미>채널에서 출간일 기준 구매자에 한해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지금부터 빨모쌤과 함께 머리속에서 맴돌기만 하는 영어가 아닌 말문이 트이는 진짜 공부를 시작해보자.
교실에서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던 활명수 나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금 내는 아이들>이 3년 만에 두 번째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책은 기초 경제 개념을 익힐 수 있는 전작의 업그레이드 편으로, 사이다 나라 친구들의 투자 이야기를 다룬다.
주식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식회사와 주식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권에서는 전작의 주요 인물인 시우의 동생 시호를 중심으로 교실에서 주식회사를 만들어 꾸려 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시호와 친구 이본이 함께 주식회사 '팔아,다이쓰'를 설립하여 고군분투하며 운영해가는 과정을 생동감 넘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주식회사의 개념, CEO의 역할, 주식을 사고파는 법, 재무제표 작성법 등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코너를 곳곳에 넣었다. 올바른 경제 습관에 이어 현명한 투자 방법도 재미있게 습득하고 싶은 어린이 독자에게 이 책을 함께 읽어 보자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