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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022
  •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김은정 (지은이), 강진경, 강진영 (옮긴이) | 후마니타스 | 2022년 5월 "한국에서 장애와 질병의 문화적 재현 방식"

    인식의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지배적인 관점에서 장애와 질병은 여전히 치유의 대상이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하지 마비 장애인, 처음 듣는 세상의 소리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청각 장애인의 이미지는 인간 승리의 모델이자 이상적인 복지 사회의 종착점처럼 그려진다. 이 치유의 판타지는 장애, 질병 당사자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폭력을 가하는데 저자 김은정은 타자에게 치유라는 명목으로 가하는 힘의 행사를 '치유 폭력'으로 명명한다.

    이 책은 근현대 한국 사회의 영화, 소설, 기사, 글 등의 문화적 텍스트들을 치유 폭력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장애학과 페미니즘의 눈으로 재해석한다. <심청전>, <노처녀가>, <백치 아다다>, '오아시스', '핑크 팰리스' 등의 작품들을 통해 저자는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가 장애의 문화적 재현, 관련 정책, 사회운동과 어떻게 만나는지, 그 과정에서 치유 폭력이 어떻게 가해지는지를 면밀하게 살핀다. 저자의 관점은 장애학에서부터 뻗어나가 페미니즘, 퀴어, 탈식민지적 관점과 교차하는데, 퀴어활동가 나영정은 "수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텍스트"라는 말로 이 책을 추천했다.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맥락을 두루 살피며 텍스트들을 집요하게 오가는 탁월한 저작이다.

  • 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은이) | 문학동네 | 2022년 5월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

    2006년 첫 소설집 <강산무진>을 낸 이후, 16년 만에 엮는 김훈의 두번째 소설집. 2020년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출간 당시 김훈은 심장질환을 겪으며 산소호흡기 투병을 경험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말하던 소설가의 눈은 이제 피안 너머를 본다. “여생의 시간을 아껴서 사랑과 희망, 인간과 영성, 내 이웃들의 슬픔과 기쁨, 살아 있는 것들의 표정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고 소회를 밝힌 김훈이 보는 삶의 풍경들.

    이 소설집의 첫 작품은 <명태와 고래>다. 명태라는 생물은 참 묘한 것이어서, 오호츠크해를 자유로이 오가던 이 생물이 어느 바다에서 잡히느냐에 따라 국적이 결정된다. 이춘개씨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바다에는 선이 없는데, "전쟁이 끝나자 향일포와 어래진 사이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졌다." (28쪽) 북쪽의 고향 어래진을 떠나 남쪽의 향일포에 자리잡고 고기잡이를 하던 이춘개씨의 배가 조류를 타고 어래진 포구로 흘러들어간 이후, '경계인'이 된 그의 삶은 운명에 휩쓸려 피안을 오간다. 한편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은 <저만치 혼자서>. 죽음을 앞두고 호스피스 수녀원에 모여 살게 된 수녀들은 허물어지는 자신의 몸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수감되고, 병을 얻고, 치욕과 불의를 견디는 삶. 이 도저한 비극을 '저만치 혼자서' 유한한 인간의 몸으로 어찌할 것인가. 김훈은 이제 그 삶에 손을 내민다. "노동하는 손, 사랑하는 손, 쓰다듬는 손, 주무르는 손, 주는 손, 받는 손, 부르는 손, 보내는 손, 기도하는 손...."을. (262쪽)

  • 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 민음사 | 2022년 5월 "2020 공쿠르상 수상작! 역대 수상작 중 최다 판매"

    파리에서 출발한 여객기가 갑작스런 난기류를 맞닥뜨린 후 무사히 뉴욕에 도착한다. 그리고 세 달 뒤, 동일한 여객기가 동일한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고, 동일한 곳을 향한다. 동일한 승무원과 승객들을 실은 채로. 이 기묘한 사건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여객기를 공군 기지로 비상 착륙시키고, 극비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해 9.11 사태 이후 처음으로 ‘프로토콜 42’를 발효한다.

    성실한 직업인의 탈을 쓴 청부살인업자부터 성공한 삶이라는 덫에 빠진 변호사까지, 다양한 나이대와 다양한 사연을 지닌 승객들은 세 달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자기자신을 대면한다. 그리고 도저히 못 본 척 할 수 없는 생의 진실을 마주하고 만다. 레몽 크노, 조르주 페렉 등의 작가들과 마르셀 뒤샹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함께한 실험적인 문학 창작 집단 ‘울리포(잠재문학작업실)’의 회원 작가, 에르베 르 텔리에가 울리포에 바치는 오마주. 번뜩이는 울리포적 장치와 생생한 서사가 만나 역대 공쿠르상 수상작 중 최다 판매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인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소설.

  • 깨어있는 부모
    셰팔리 차바리 (지은이), 구미화 (옮긴이) | 나무의마음 | 2022년 5월 "찬란한 아이들과 함께하는 부모라는 여정"

    누군가를 환대할 수 있을 때, 나는 나의 불완전함에 대한 공포를 조금 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돌려받을 대접이나 시혜를 베풀었다는 만족감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고립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 머물러 나로 종료되지 않음.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과 이런 교류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아서, 많은 이들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로 처음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은 초보 양육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 부모 대신 아이를 돌보는 사람까지 누구나 참고하면 좋을 이야기를 담았는데, 등장하는 일화들에서 실수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완전히 감격하는 존재이자 아직 부서지려면 한참 먼 영혼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른들의 실수를 주로 담았다.

    아무도 검증해주지 않은 자기만의 기준, 사회적 통념이라고 부모가 생각하는 것, 좌절된 꿈까지 그 양상은 다양하다. 부모가 아이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것. 서로 다른 사람으로 서로에게 배우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기회에 대한 책. 남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 이어졌던 따스함인지도 모른다.

6.102022
  • 노바
    새뮤얼 딜레이니 (지은이), 공보경 (옮긴이)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폭발하는 별의 심장으로 돌진하는 우주선"

    32세기의 우주. 깊은 어둠을 가르고 태양계 너머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이들이 타고 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걸 잃게 될지 생각해봤어?" 로크 본 레이 선장의 질문에 저마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지만, 이미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 우주선은 단 하나의 좌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폭발하는 별의 심장부를 향하여.

    모든 것의 시작은 '일리리온'이었다. 일리리온은 모두의 꿈이다. 그것은 광산에서 끝없는 노동을 해야 겨우 소량을 채취할 수 있는, 우주에서 가장 희귀한 물질이다. 은하계의 패권을 쥐겠다는 야망으로 가득한 로크에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은하계를 이루는 모든 물질을 제련하는 용광로의 이미지. 가장 뜨겁고 가장 환하게 빛나며 폭발하는 신성(노바)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그 들끓는 용광로에서 일리리온을 마음껏 퍼내오면 어떨까?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신성에 우주선이 파열되고 목숨을 잃기 십상인 모험. 그렇게 모두가 미쳤다며 혀를 내두르던 무모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광기의 선장 로크의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 일리리온 광산에서 일하는 가족을 둔 쌍둥이 형제, 타로카드 점을 보는 곡예단원들, 고대 20세기의 화석이나 마찬가지인 '소설' 쓰기에 매달리는 학자, 구세계 지구 출신 '시링크스' 음악가가 운명을 함께한다. 공기와 냄새, 소리와 빛을 구현하며 청자의 오감에 가닿는 32세기의 악기 시링크스. 이 소설 전체가 마치 시링크스로 연주하는 한 편의 음악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해왕성이 트리톤의 우주정거장에 뿌리는 황금색 빛, 오팔색으로 빛나는 모래, 용암이 끓는 바위 틈새의 데일 것 같은 공기, 황량한 고원을 뒤덮은 안개의 습기. 저 너머의 시공간이 찬란하고 선명하게 펼쳐져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현세대의 가장 중요한 SF 작가"라고 찬사를 보낸 작가이자, 언어학과 SF의 만남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바벨-17>의 작가 새뮤얼 딜레이니. 그의 또다른 강렬한 대표작 <노바>가 그리는 세계를 만난다.

  • 우리 다시 언젠가 꼭
    팻 지틀로 밀러 (지은이), 이수지 (그림) | 비룡소 | 2022년 6월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전하는 따뜻한 마음과 위로"

    이수지 작가가 지난 3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 이후 새 그림책을 내어 놓았다. 안데르센상 수상 이후 그림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많아져 기쁘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엔 '애틋한 그리움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여기' 있는 아이와 '저기'에 있는 할머니는 멀리 떨어져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를 그리워한다.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은 아이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하늘을 당장 날아가 할머니 집 마당에 내려 문을 두드리고 싶어 한다. 편지, 전화, 컴퓨터도 좋지만 할머니 바로 옆에 딱 붙어 있는 게 더 좋은 아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다. '언젠가 만날 꼭 그날이'... 지금이 되도록!

    포인트가 되는 창문, 편지, 컴퓨터 모니터 등에 구멍을 뚫어서 뒤의 그림을 일부 연결해 다각도로 이야기를 표현했다. 이 구멍은 할머니와 아이의 물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을 이어 주는 통로가 된다.

  • 알고 보면 반할 민화
    윤열수 (지은이) | 태학사 | 2022년 6월 "산과 꽃과 책, 당신이 무엇을 소망하든"

    알라딘에서 2022년 6월 진행되는 이벤트의 대상도서를 구매하면 '책가도' 일러스트 무선 충전 패드를 함께 받을 수 있다. 우리말 '책거리'로도 불리는 책가도는 어떤 것을 그린 그림일까. 이 책은 "책을 중심으로 사물들을 늘어놓은 모습, 혹은 책장 속에 배치해놓은 문방사우나 이에 관련된 물건들"(183쪽)을 그린 일종의 '정물화'로 책가도를 설명한다. 문인의 고매한 학덕을 기리는 그림 속 책들. 책꽂이에 서지 않고 누워있는, 책등 대신 면지가 보이는, 실로 꿴 종이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야기 하나하나를 아껴 읽었을 옛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회민화박물관 관장 윤열수의 민화 이야기가 30년 만에 돌아왔다. 이건희전의 병풍에 그려진 거북이에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수험생의 방에는 왜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그림을 걸어두는 걸까? 민화를 그리고 읽고 즐기는 모든 이들이 궁금해할 거의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대중의 소망을 반영했던 당대의 그림들, 산과 사슴과 복숭아와 잉어를 140여 컷의 생생한 도판과 함께 읽으며 우리를 둘러싼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 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동료 시민 안내서
    지니 게인스버그 (지은이), 허원 (옮긴이) | 현암사 | 2022년 5월 "꽤 괜찮은 앨라이가 되고 싶다면"

    얼마 전 내 가족 중 한 명이 당황한 얼굴로 급히 방 문을 열었다. 친구가 커밍아웃을 했는데 제대로 된 반응을 한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우리는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에 대해 찬찬히 얘기하며 함께 분석(?)을 했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잘 모르겠다.' 친구들의 커밍아웃 순간마다 작은 불안감을 느낀다. 큰 실수를 하진 않은 것 같지만 이 반응이 최선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친구나 가족이 용기를 내준 순간을 나의 부족함으로 망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불안이다.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반가운가. 더 이상 why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 당장의 how to를 원한다! 하는 이들에게 딱이다. 용어의 사용부터 흔한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설명, 적절한 대화법까지, 앨라이로서 취할 수 있는 자세와 행동에 대해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수로 일을 그르칠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점은 스스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제법 괜찮은 앨라이가 되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자신을 힐난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포용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아가기에 딱 좋은, 6월이다.

6.142022
  •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
    샤크 코치, 에리카 코치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6월 ""운동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수십 년 동안 운동은 내가 아닌, '남'이 하는 영역의 것이라 여겼다. 아무리 먹어도 찌지 않는,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건강한 나이가 진작에 지났음을 뒤늦게 자각하고, 이제는 운동이 '내'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테니스, 풋살, 그리고 탁구. 운동의 세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지 3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에 흠뻑 젖을 수도 있구나, 내 몸에 근육이 붙을 수도 있구나' 난생처음 몸을 움직여 얻게 되는 변화와 희열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한국 1위를 차지하고 이후로 수년간 1등의 자리를 지켜낸 샤크 코치와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운동을 만나 운동인으로 거듭난 에리카 코치가 운동 에세이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운동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강렬한 이 한 문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 저자는 비만이 아니었던 적 없던 시절의 이야기, 술독에 빠져 지낸 시간들, 편견에 가득 찬 표현을 들어야만 했던 모욕의 경험들, 여성의 건강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일련의 과정들을 각자의 언어로 무척 유쾌하게 풀어냈다. 단숨에 읽힐 만큼 매 페이지마다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면서도, 때로는 운동하는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무례함에 대해서는 엄중한 목소리를 내며 쾌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근력과 체력을 키우기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운동하기 좋은 나이,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일단 몸을 움직이면 분명 전과는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다.

  •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임소연 (지은이) | 민음사 | 2022년 6월 "김초엽, 장하석 추천! 과학과 여성 사이"

    많은 논쟁을 빠르게 종결하는 마법의 문장.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니까." 오랜 시간 동안 과학은 '객관적인 진실'의 동의어로 여겨졌다. 과학이 선택한 것, 증명해낸 것, 발전시켜낸 것은 곧 시대의 상식과 가치관이 되어왔다. 과학은 과연 절대 믿음의 권위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을까? 페미니즘의 눈으로 본 이 유서 깊은 신뢰엔 의아하고 억울한 지점이 많다.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저자 임소연은 한데 묶인 경험이 별로 없이 어색한 사이로 지내온 여성과 과학을 함께 본다. 여성의 입장에서 과학을 보거나 과학이 여성을 다룰 때, 과학이 절대 객관이라는 명제엔 쨍한 균열이 간다. 사실은 성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성염색체, 목적과 효용이 불분명한 성별 생물학적 차이 연구, 남성과 여성의 신체 특징을 모방한 로봇의 사용 목적 차이 등 임소연은 과학이 사회적 차별을 흡수하여 선택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지식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짚으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 비판들을 통해 임소연이 제안하는 목표는 과학과 여성 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다. 여성과 과학이 언제까지고 어색하게 지낼 수는 없다고 말하는 그는 잘못 설정된 관점들, 잘못 끼워진 연결고리들을 다시 손보고 다듬어 우리가 서로에게 우호적인 관계가 되길 원한다. 외면당한 시간이 오래라 빠르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이 책과 같은 정확하고 단단한 지적이 누적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은이), 심연희 (옮긴이) | 다산책방 | 2022년 6월 "브리 라슨 주연, 애플TV+ 방영 예정 드라마 원작"

    1950년대 미국에서 여성 화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연구소에서는 언제나 실험 보조 인력으로 오해받고, 진짜 전문가를 데려오라는 말을 듣는다. "남자들이 일터에 나가 우주에서 행성을 발견하고 법을 제정하는 등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를 봐야 한다는 통념"이라는 익히 알던 견고한 장벽이 실제로 얼마나 더 높고 두껍고 단단한지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급기야 비혼모라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난 엘리자베스 조트. 매일 "내 인생은 끝났어."라고 읊조리면서도 부엌을 실험실 삼아 연구를 계속하던 그에게 우연이 마법을 부린다. TV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에 출연하며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이 된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요리는 화학이고 화학은 삶입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꾸는 능력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라고 말하며 당시 허드렛일 취급을 받던 '요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편견이나 통념이 아닌 사실에 기반하여 세상과 화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엘리자베스의 시도는 큰 반향을 일으켜 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다. 보니 가머스의 데뷔작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행보는 소설 속 엘리자베스를 닮았다. 미국 아마존 평점 4.7점, 굿리즈 4.5점을 기록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영화 '캡틴 마블'의 브리 라슨이 주인공을 맡아 동명의 애플TV+ 드라마로 방영 예정이다.

  •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
    빌 게이츠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6월 "코로나19를 마지막 팬데믹으로 만들기 위해"

    전 세계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날들을 겪고 나니 왠지 머릿속에서 '절대 벌어지지 않을 상황'으로 분류된 일의 가짓수가 후드득 줄어들었다. 코로나19보다 더 강력한, 생각하지도 못한 형태의 다른 바이러스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한 번 겪었으니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까? 글쎄. 오답 노트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에서 또 틀리기 십상이다.

    빌 게이츠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파악한 보건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넥스트 팬데믹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 각국의 보건 대응, 마스크 착용의 효과, 백신 개발의 과정, 제약업계와 글로벌 유통 시장의 내부 사정 등을 되짚어보고, 다시 올 수 있는 팬데믹에 대비한 액션플랜을 제시한다. "정부, 과학자, 기업과 개인은 또 다른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이상의 위기를 막기 위해 함께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6.172022
  • 노랜드
    천선란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소설집"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소설집. 그는 장르소설을 쓰는 소설가로 알려져있다. SF와 판타지와 호러를 넘나들며 천선란의 소설은 세계를 상상한다. 하지만 그 세계가 우리의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회용품 쓰레기를 먹고 몸집을 부풀리는 '바키타'(<바키타> 中)의 출몰에 기뻐하며 다시 멸망 이전 시대의 사람들처럼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는 인류. 바키타는 무한히 쏟아지는 쓰레기를 먹으며 무한히 자란다. '공룡이 사라졌듯 인간도 사라져야 할 때가 다가왔을 뿐이므로'(90쪽) 이제 지구가 아닌 곳에서의 생존을 준비해야하는 <푸른 점>의 미래인류는 어떨까. '우리는 식량난 시대에 살고 있다'(113쪽)는 수업을 학교에서 받는, 유전자조작 옥수수로 가득찬 밭의 형제들의 모습은 또. (<옥수수밭과 형> 中) 전국적인 가뭄, 사라지는 꿀벌, 방글라데시에 가득 쌓인 버려진 옷의 강. 2022년의 우리는 어느새 소설 같은 세계를 산다.

    "모아놓고 보니 소설이 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두번째 소설집을 엮으며 천선란이 말했다. 경이롭고 으스스한 열 편의 이야기. 지난 2년간 팬데믹을 통과하며 천선란을 거쳐온 이야기들이 여기에 놓였다. 이름을 잃은 채 구천을 떠돌던 <-에게>의 혼령은 광화문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을 만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낼 실마리를 얻는다. 천선란의 소설이 우리의 세계에 이름을 붙여줄 때, 우리 역시 이 세계를 살아야 할 실마리를 조금쯤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은이),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리처드 도킨스 최신작, '비행'의 모든 것"

    우리를 이 땅에 묶어두는 중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 '비행' 능력을 가진 동식물과 인간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진화생물학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날개의 기능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 공중에서만 생활하는 칼새, 날개의 효용이 다하면 물어뜯어 떼어내는 여왕개미, 지느러미를 휙휙 흔들어 활공하는 날치, 바람을 타고 여행하는 민들레 홀씨.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하노라면, 언제나 하늘을 나는 꿈을 꿔온 인류의 역사가 그 뒤를 잇는다. 이카로스의 깃털 날개, 천사와 요정의 날개부터 열기구와 비행기를 거쳐 우주선까지.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니 각잡고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내려놓아도 좋다. 자연스러운 연상에 따라 이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훌쩍 전환하는가 하면, 갑자기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도 불쑥불쑥 던져져서 작가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어느 푸르른 주말,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읽다가 생각에 잠기기도 하다가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책이 데려가는 대로 몸을 맡기기를 권한다. 어쩌면 독서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비행의 체험이 아닐까. 작가의 말처럼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므로.

  • 어금니 깨물기
    김소연 (지은이) | 마음산책 | 2022년 6월 "시인 김소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 속에서"

    시인 김소연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한자리에 오래 웅크려 있었고, 자주 지쳤고 쉽게 엉망이 되었던 날들이 있었음을 고백하는 글로 산문집 <어금니 깨물기>를 시작한다. 그의 네 번째 산문집인 이 책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날들, 어금니를 깨물며 버텼던 시간 속에서 쓴 글들이 담겨 있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오래 사랑받아온 <마음사전> <한 글자 사전> <시옷의 세계>에서 마음과 감정, 일상을 살폈다면 이번 책은 내밀한 가족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무능했지만 무해했던' 아빠와 '같은 무능이었어도 유해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불러낸다. 가족사 외에도 '무릎을 감싼 채 웅크리고 앉은 한 아이가 겨우 자기 심장만을 바라보며 시를 썼던 시절', 시에 대한 애정, 시 쓰기의 고단함과 환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시인은 다른 시인의 시집들을 읽으며 "한 개인이 자기 방식으로 입을 열어 자기 어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세계"라고 표현했다. 이 산문집은 사랑하고 갈망하고 마침내 회복에 가닿기까지의 시간을 시인의 감각과 언어로 표현해낸 각별한 세계다.

  • 녹색 계급의 출현
    브뤼노 라투르, 니콜라이 슐츠 (지은이), 이규현 (옮긴이), 김지윤, 김홍중, 김환석, 이현정 (해설) | 이음 | 2022년 6월 "기후붕괴 시대의 새로운 계급 정의"

    멀지 않은 미래의 절망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자, 기후붕괴로 인해 사라질 일상을 짐작하는 자, 그것을 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실체 있는 희망을 찾는 자...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는 기후붕괴 시대의 새로운 계급 주체인 이들을 "녹색 계급"으로 호명한다. 녹색 계급은 기존의 성장 중심 세계 질서가 인간과 자연을 향한 칼날이었음을 인정하고 우리가 향해야 하는 유일한 길이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아우르는 '생성 시스템'임을 인지하는 배경 위에 존재한다. 녹색 계급은 환경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주체이며 곧 모든 시민이 가져야 할 정체성이기도 하다. 책은 우리가 스스로를 녹색 계급으로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법과 실천을 짧은 메모들로 제시한다.

    브뤼노 라투르가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나는 어디에 있는가?>의 논의에서 한발 나아가 이번 책에서 "계급"이라는 전투적 정치 용어를 꺼낸 이유는 선명해 보인다. 구체적이고 급박한 연대적 움직임이 필요한 현실, 저자들은 새 시대에 맞는 계급의 정의를 새로 씀으로써 적극적 정치적 행동을 촉구한다. 역사의 시한이 한정되어버린 지금 시급한 일은 전 세계가 공통된 정체성을 가지고 가능한 희망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일테다. 변화시킬 수 있는 미래의 영역이 날마다 줄어들고 있다.

6.212022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은이), 노승영 (옮긴이) | 문학동네 | 2022년 6월 "2021 부커상 최종후보, 지식의 절정과 파열"

    아인슈타인은 중력장 방정식을 알아냈지만 해를 구하지 못했다. 생전엔 풀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1차 세계대전 참호에서 온 편지는 그래서 기적이었다. 해를 풀었다는 독일군 중위 슈바르츠실트의 편지. 그 해는 정확했지만 한 가지 기묘한 점이 있었다. 큰 질량이 아주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시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결국에는 시공간을 닫아버리는 특이한 해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어떤 물체라도 이 바닥 없는 구덩이 같은 것과 만나면 우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누구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주가 질서를 벗어나 그런 무의 심연에 도달할 리 없었다.

    슈바르츠실트는 자기 논리의 오류를 찾고자 광적으로 연구에 몰두하지만 잘못된 부분을 찾지 못한다. 엄습하는 공포. 그것은 하나의 사실만을 가리킨다. "물질이 괴물을 낳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물리학도, 어떤 학문도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혼돈 속에서 그는 이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해본다. "수백만 명의 인간 의지가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현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이내 그는 확신한다. 이미 조국 독일을 휩쓴 광기, 누구도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유럽 문명의 붕괴가 이 법칙에 의한 것임을. 그때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 모조리 무너져내린다. 수십년 후, 학계는 슈바르츠실트의 발견을 공식 인정하며 이를 '블랙홀'이라 명명한다. 블랙홀을 처음 발견한 자가 스스로 파국을 맞은 이후에.

    오늘의 세계가 있기까지. 이제 영원한 진리로 통하는 과학사의 위대한 개념들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 정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만나는 지식의 절정. 신비에 싸인 세계가 마침내 실체를 보여줄 때, 환희는 찰나에 그치고 깊은 곳을 봐버린 자의 고독이 시작된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깊은 곳의 영토에 발을 들인 자들은 끝내 일상으로 돌아올 길을 잃고 만다. 이들은 탈출로 인해 자신의 전부가 부서져 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지 못했다. 과학과 인간 사이, 작가는 길이 끊어진 두 세계를 잇기 위해 문학의 시선을 도입한다. 불가해의 영역을 인식하려는,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시도로서. 그렇게 아름답고도 쓸쓸한 이야기들이 남았다. 황량함 속에서 황홀한 빛을 발하고 있는.

  • 보통 일베들의 시대
    김학준 (지은이) | 오월의봄 | 2022년 6월 "만연한 혐오의 시대, 다시 일베를 들여다보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적극적 혐오를 일삼는 이들에겐 '일베'라는 딱지가 붙었었다. 혐오의 강도가 결코 약하진 않았지만 그 시절의 혐오와 반사회적 언행은 일베라는 일탈적 커뮤니티로 게토화되어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혐오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일베 내부의 문화는 자연스레 더 큰 사회로 흘러나왔고 이제 일베와 일베 아님을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 없는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혐오가 퍼지는 방식, 약자를 멸시하고 차별의 자유를 외치며 정치적 옳음을 우습게 여기는 분위기는 일베의 논리와 흡사하다. 하여, 이 책은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혐오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일베를 말한다.

    저자는 2014년 화제를 일으켰던 논문,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을 쓴 김학준이다. 이후 8년, 혐오가 깊고 넓어지는 동안 그는 일베가 탄생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 일베 데이터의 분석, 일베의 특수성과 일반성에 대한 분석 등 논문의 내용을 확장하여 이 책을 펴냈다. 책엔 일베에 대한 구체적이고 빽빽한 증언과 분석이 담겼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이 책을 '안전'하게 타자화된 일베라는 '작은' 서클에 대한 이야기로 읽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문제화된 집단'을 문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와 그에 따른 사회적 삶의 변형이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책이 목표하는 바를 강조하며 추천했다. 일베 하지 않는 평범한 일베들의 시대, 장난스럽고 살벌한 혐오의 기원을 짚어보는 책이다.

  •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
    노구치 유키오 (지은이), 박세미 (옮긴이) | 랩콘스튜디오 | 2022년 6월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인가?"

    축구든 야구든 한일전은 언제나 우리를 뜨겁게 한다. 그러나 대등한 승부를 펼친 스포츠와는 달리 경제는 그간 사정이 좋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2018년의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 경제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IMF가 발표한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에서 한국이 일본을 역전한 것이다. IMD의 '세계경쟁력 연감' 순위에서도 2019년부터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 해당 지표들이 국민의 삶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우리가 잘했기 때문이겠지만, 불현듯 궁금해진다. 어떤 문제들이 그렇게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

    기나긴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베노믹스라는 기치 아래 불을 지피던 일본이 아니었던가. 저자는 바로 그 아베노믹스와 엔저 정책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렇게 자국 경제에 일침을 가하는 이는 일본의 경제 석학 노구치 유키오 명예교수다. 그는 고령화, 실질임금 하락, 미진한 디지털 생태계 적응과 같은 성장의 걸림돌을 조목조목 짚으며 이대로라면 일본은 선진국 대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책은 저출산, 저성장, 원화 약세 등 비슷한 상황에 놓인 우리가 참고해야 할 조언들로 가득하다. 반면교사는 이럴 때 삼으라고 있는 말이겠다.

  • 색이름 사전
    아라이 미키 (지은이), 정창미 (옮긴이), 이상명 (감수) | 지노 | 2022년 6월 "자목련색 기차부터 이집션 블루 자전거까지"

    2022년 팬톤이 선택한 올해의 색은 오묘한 보라색, '베리 페리Very Peri'라고 한다. 이 색상은 팬톤 넘버 17-3938, RGB값으로 102, 103, 171 이며 HEX코드로 #6667AB, CMYK로 70-63-9-0이라는 코드값을 갖고 있다. 라일락꽃과 수국꽃과 제비꽃 이파리마다, 지나가는 사람의 보라색 스니커즈까지 오손도손 살고있는 이 '70-63-9-0'이라는 코드값의 색상이 이름을 얻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색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자목련색 기차부터 이집션 블루 자전거까지, 우리를 둘러싼 색상 중 369가지 색이름을 한 권의 사전으로 엮었다. 일본에서 출간된 원서를 중심으로 하되 한국인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은 감수를 통해 걸러내어 한눈에 색이름을 살피도록 도왔다. 출판 디자이너 등이 참고할 수 있는 정확한 CMYK 값이 있어 실용적이기도 하다. 어울리는 색이 아닌 좋아하는 색과 함께 살고 싶은 여름날이다. 색이름 사전의 148쪽 '아쿠아'색(C20 M0 Y0 K0)을 향해 퐁당 빠지고 싶다.

6.242022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은이), 김지은 (옮긴이) | 책읽는곰 | 2022년 6월 "어느 보통날 당신의 마음에 스미는 한 권의 그림책"

    저마다의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가는데 있어, 때론 한마디 말로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 미묘한 감정을 정확히 나타내는 외국어가 있다면 과연 어떤 단어일까.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한 구절 한 문단으로 표현해도 모자를 감정들을 17개국 71개의 단어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영어 ‘히라이스’,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독일어 ‘토아슈르스파니크’,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주는 고양감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헤젤리흐’...

    책읽는곰에서 0세부터 100세까지 전 연령을 아우르는 세계 각국의 그림책을 엄선하여 선보이는 ‘보통날의 그림책’ 시리즈 첫 번째 책.

  • 퀀텀 라이프
    하킴 올루세이, 조슈아 호위츠 (지은이), 지웅배 (옮긴이) | 까치 | 2022년 6월 "별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너드 소년이 어떻게 NASA의 과학임무국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흑인 물리학자가 되었는지'를 다룬 하킴 올루세이의 일대기에 관한 기사는 그에게 '갱스터 물리학자'라는 별명과 함께 유명세를 가져다주었다. 가볍게 소비되는 누군가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고, 너무도 거칠었던 인생에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느껴온 것을 진솔하게 말하고 싶었던 그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별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라는 헌사를 담아.

    지긋지긋한 가난과 폭력은 일상이었다. 생업으로 몰래 마약을 제조해 판매했던 가족,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걸어야 하는 험악한 골목. 선물로 받은 새 자전거처럼 지나치게 반짝이는 것이나 책을 들고 다니고 심지어 그것을 읽기까지 한다는 것은 놀림과 괴롭힘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곳이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처음으로 그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고, 무한히 넓은 밤하늘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의 욕구로 굶주린 그에게 A부터 Z까지 모든 단어를 망라한 백과사전은 보물과도 같았다. 여느 때처럼 부모님이 싸우는 집을 탈출해 백과사전 E권을 들고 계단참을 향한 날, 모든 것이 달라진다. Einstein(아인슈타인)을 만난 것이다. 그것은 경이에 가까웠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몰아치는 거대한 폭풍"을 따라, 과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따르는 길을 가기로 한다. 그는 삶을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ing)에 비유하며,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범주 안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언제까지고 결정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운명과, 한 사람의 인생에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찬미하며.

  •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라자니 라로카 (지은이), 김난령 (옮긴이) | 밝은미래 | 2022년 6월 "2022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미국에 사는 인도 이민자 가족의 여자아이 레하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두 개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으로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레하 주변의 세계는 미국적인 것과 인도적인 것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리된 채로 혼재하며, 레하는 그 세계들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여자친구들, MTV와 댄스파티, 남자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 남자아이)가 미국이라는 세계를 자유와 연결 짓는다면, 고기를 먹지 않고, 전통 명절을 챙기고, 가부장적이기도 한 대가족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하는 것 같은 일들은 인도라는 세계를 구속과 연결한다. (마치 댄스파티에 부정적인 엄마처럼)

    그러나 레하는 아서 왕보다 태양의 여신 사비트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세상에 '인도어'라는 건 없고 인도에는 수십 가지의 말이 있다고 친구에게 설명해주고 싶은 것처럼, 자신의 기원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다. (마치 사랑하는 엄마를 백혈병으로부터 꼭 지키고 싶은 것처럼)

    우리가 선 세계는 언제나 둘 또는 그 이상으로 경계 지어질 수 있지만, 누구도 레하가 어느 쪽에 서 있다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경계란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발이 자라고, 보폭이 넓어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 진짜 성장이란 게 있다면 내 발아래 그어진 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닫는 바로 그 순간과 닮았을 것이다.

  •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정재율 (지은이) | 민음사 | 2022년 6월 "나는 오늘 새로 산 도마와 오래 살고 싶다"

    "천천히 먹자 체하지 말고 나는 오늘 새로 산 도마와 오래 살고 싶다" (<가정 예배> 中) 삶에게 딱 이정도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 '슬픔이 뭔지도 모르고 / 그새 자라'(<투명한 집> 中) 버린 사람. '둥둥 떠다니는 마음 같은 건 / 다 가라앉아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中) 생각하는 사람. 어떤 기억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왔기에 그는 '잘 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3부의 제목이기도 하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을까? 2019년 등단한 정재율의 첫 시집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말이 궁금하다.

    '신발도 없이 죽는 건 서러우니까 / 매일 양말 먼저 신는다' (<현장 보존선> 中)는 다른 사람의 설움을 짐작하는 사람. 새끼 펭귄에겐 방수 기능이 없어 저체온증으로 작는 게 더 흔하다는 걸(<0> 中) 알고 있는 사람. '내가 처음으로 쓴 칫솔이 아직도 썩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고 (<부표> 中) 문득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의 눈으로 보는 여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름이 되면 수업을 듣던 뒤통수가 자주 녹아갔다"(<레몬과 회개> 中)고 기억하는 여름의 향과, "바깥은 온통 내가 사랑한 여름이었다."(<여름은 온통 내가 사랑한 바깥이었다> 中)고 서술하는 여름의 온기. 정재율의 이 단정한 감각 사이에서 시를 읽으며 여름을 맞고 싶다.

6.282022
  • 여자들의 왕
    정보라 (지은이) | 아작 | 2022년 7월 "<저주토끼> 정보라의 여성 X 판타지"

    2022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정보라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의 소설은 첫 출간 당시였던 2017년보다 2022년에 10배 이상 많은 독자를 만났다. 참혹하고 쓸쓸하고 강인한, 어떤 복수의 뒷면을 그린 저자가 여성 판타지를 엮어 새 책을 낸다.

    이 단편집의 첫 세 이야기는 공주, 기사, 용 연작으로 읽을 수 있다. 이웃 나라로 '시집 가는' 공주와 그와 사랑에 빠진 기사와 공주를 사랑하게 된 어수룩한 왕자와 간악한 '시어머니'인 왕비와 그들을 지켜보는 용. 이 전형적인 서사를 정보라는 이런 식으로 쓴다. 유모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더럽고 치사하니 하루빨리 스스로 글 읽는 법을 터득하여 (...) 직접 찾아 읽'(17쪽)으며 '기사가 칼을 겨누었을 때도 (...)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39쪽) 울지 않는 공주의 이야기로. 간악한 왕비에게도, 좀비가 되어 칼을 쫓는 기사들에게도, 눈을 가늘게 뜨는 용에게도 다 그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가려진 사람들이 보인다. 궁중 암투극과 흡혈기담 같은 익숙한 이야기를 틀어 정보라처럼 세계의 건너편을 본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여자들의 모습을 보면, 무엇보다 즐거워하며 이 세계를 창조했을 소설가의 신명이 상상이 된다. 작가의 말을 빌려와 마지막 문장으로 적는다. "독자 여러분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 식량위기 대한민국
    남재작 (지은이) | 웨일북 | 2022년 6월 "UN, "코로나 위기 다음은 식량 전쟁이다""

    기후위기라는 키워드에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붙는 단어들은 이런 것이다. '녹는 빙하', '2050년의 거주불능 지구', '폭우와 산불'... 모두 사실이지만 추상적인 위기감을 자극할 뿐 일상에 구체적으로 달라붙지는 않는 말들. 그래서 현 상황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먼 일로 여기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엔 기후변화 전문가이자 코이카 농업 ODA 전문가인 남재작 박사의 이 문장은 늘어져있던 공기를 팽팽히 당긴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 문명이 위기에 처한다면 그것은 식량 위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기온이 1.5도 상승할 때, 우리의 먹거리는 얼마나 사라질까. 음식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 전문가들은 곧 전 세계가 곡물을 두고 경쟁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세계 각국은 식량난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한국은 과연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남재작 박사는 이 책에서 우리가 기후 위기를 어떻게 초래했는지, 그리고 이에 따른 식량난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며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뜨거워지는 지구 속 우리 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책, 조천호 박사와 장대익 교수가 추천했다.


  •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은이), 민경욱 (옮긴이)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히가시노 게이고 추천 "단연 최고의 작품!""

    타이베이의 1975년을 추억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여파가 도시를 휘감아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대혼돈의 시기. 열일곱의 '나'를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불사신처럼 강했던 할아버지가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언제나 독일제 권총을 지니고 다니며 전쟁에서 활약했던 무용담을 늘어놓던 할아버지. "우리에게 대의 같은 건 없었단다. (...) 이쪽에서 밥을 먹여주니 이쪽 편이 되는 거지. 공산당도 국민당도 하는 짓은 같아. 다른 마을에 마구 쳐들어가 돈과 먹을거리를 빼앗았지. 그렇게 백성들을 먹어치우며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전쟁이란 그런거야."

    대만으로 건너와 포목점을 운영하며 본토로 금의환향할 날만을 기다리던 할아버지에게 "제멋대로 살아온 반세기의 청구서"가 도착한 것일까. '나'는 죽음에 서린 깊은 원한을 감지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생을 걸고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겠다고. 중국과 대만, 본토 출신 외지인과 박해받는 토착인, 국민당과 공산당. 눈먼 대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잠식해 언제나 양자택일을 강제한다. 폭력과 활기가 공존하는 거리, 참배객으로 성황을 이루는 도깨비불 사원,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면서도 애써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사람들. 격동의 시대가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2015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극찬을 받은 소설로, 심사위원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가 심사를 맡은 이래 단연 최고의 작품"이라 말하며, 미야베 미유키가 "모든 것이 빼어난 걸작"이라 상찬하며 추천했다.

  •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
    김효은 (지은이) | 문학동네 | 2022년 6월 "나눌수록 커지는 이상한 셈법의 비밀"

    <나는 지하철입니다>의 김효은 작가가 신작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번 신간은 다섯 남매 중 둘째였던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야기의 첫 장면은 “우리는 다섯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나누는 것을 피곤해 하지만 노란 장화 한 켤레, 선풍기 바람, 하나뿐인 삼촌 등 나누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최고의 위치를 선점하며 틈새를 공략하고 방법을 만들어 낸다. 자녀가 하나, 많아야 둘인 가정이 많은 요즘 시대엔 다른 누구와 나누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내 것'인 게 많아졌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 중 하나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나눌수록 커지는 '사랑의 셈법'을 일깨워 준다.

    전작 <아홉 살 마음 사전>을 통해 이미 어린이들의 속마음을 세심하고 재미있게 표현해냈던 작가는 이번에도 특유의 다정한 그림체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