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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2021
  • 오늘의 어린이책 1
    다움북클럽 (지은이) | 오늘나다움 | 2021년 9월 "공존과 연대의 목록으로 만든 어린이책을 소개합니다"

    작년 여름, 성평등 어린이책 목록을 만들고 학교와 도서관에 책을 보급하며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한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이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에 중요성을 공유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도서 출간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오늘의 어린이책>은 바로 그 첫 결과물이다.

    주체성, 몸의 이해, 연대 등 10개의 키워드 아래 체계적이고 다양성 있는 성평등 어린이책 목록이 완성되었다. 처음 목록을 만들 때 빠져야 했던 도서와 청소년 도서까지 더해 총 262권. 이 한 권의 책에 도서관이 들어간 셈이다.

    어린이 책과 어린이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읽을거리, 선정된 책들을 어린이와 나누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교사와 양육자의 목소리, 김지은, 김유진, 이지유, 정진호 등 어린이책 전문가, 김소영, 이다혜, 박유신, 김현, 서효인 등 어린이 청소년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 온 여러 필자의 글도 함께 담았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이미 한 번 후퇴했으니 두 걸음 전진해야 한다면 지금이 그 순간이다.

  • 투자의 본질
    박세익 (지은이) | 위너스북 | 2021년 8월 "교만한 자의 무덤에서 살아남기"

    "와 예술이다!" 축구선수가 기가 막히는 골을 넣을 때, 야구선수가 환상적인 수비를 펼칠 때, 양궁선수가 과녁 정중앙의 카메라를 맞힐 때, 피아니스트가 현란한 연주를 선보일 때, 미술가의 압도적인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의 입에서 절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 감탄 속에는 우리는 흉내낼 수 없는 아주 어려운 기술이라는 경외감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동학개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저자 박세익 전무의 말을 들어보자. "주식은 사는 것도 예술이고, 파는 것도 예술이다." 어떤가? 평소 그렇게 생각해 왔다면 이 책은 건너뛰어도 좋다. 그러나 책 몇 권과 유튜브 몇 편, 강세장 속에 얻은 약간의 수익으로 자신이 주식투자에 소질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 자신만만했던 기세는 금리 인상이니 테이퍼링이니 반도체의 위기니 하는 뉴스 앞에 금세 수그러들기도 한다. 투자자들은 언제가 바닥이고 상투인지 고민하느라 매일이 스트레스다. 박세익 전무는 30년 가까운 투자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식시장에서 투자의 귀재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늘 상투였다." 8월 초중순, 코스피가 보름동안 10일이나 하락하며 3천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소리가 나올 때 이 책이 시중에 깔린 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또 듣는 이야기라 지루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매매 버튼을 멀리하고 본질과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앞으로의 투자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주식시장은 교만한 자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 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 이봄 | 2021년 8월 "일본 아마존 1위! 연쇄 의문사 사건 실화 소설"

    일본을 뒤흔든 연쇄 의문사 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 그는 결혼 사이트를 통해 만난 남성들에게 거액의 돈을 갈취하고 세 사람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를 만난 남성들은 하나같이 가지이의 외모를 언급하며 “노후를 돌봐줄 사람이라면 아무리 못생겨도 좋았다. 밥을 해줄 가정적인 여자라면 아무라도 좋았다.”며 그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고,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이 남녀 간 의견 대립으로 번지며 사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주간지 기자 리카는 구치소에 수감된 가지이의 독점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고심한다. 체포 직전까지 열정적으로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던 가지이의 환심을 사서 면회를 허락받기에 이르지만, 요리 이야기 외 사건 취재는 거부당한다. 세간의 자극적인 관심이 아닌 이 사건에 담긴 '여성 혐오'를 조망하고 싶다는 리카의 의도도 무시당한다. 어렵사리 가지이의 면회를 이어가던 리카는 그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씩 받게 되고, 그것을 계속해서 실행하게 되는데…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실화 사건 속에 숨겨진 이면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소설.

  • 대서울의 길
    김시덕 (지은이) | 열린책들 | 2021년 8월 "김시덕 서울 선언 시리즈 3권!"

    어떤 지역을 생각할 때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지도 속 울퉁불퉁한 모양의 면일 것이다. 김시덕 교수는 이번 책에서 면 말고, 면을 만들거나 가로지르는 선에 주목한다. 출퇴근길, 통학길, 만남의 장소로 가는 길,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 1호선, 빨간 버스, 경의선...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을 함께 오가는 사람들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김시덕 교수는 그간 간과되어 온 이 선적인 요소로 서울을 다시 본다.

    그는 사람들이 오가는, 이리저리 뻗은 길을 통해 대서울을 정의한다. 그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대서울의 구조를 파악하고, <서울 선언>과 <갈등 도시>에서 확인했던 문제의식이 대서울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한다. 도시화의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들, 이주와 철거, 불공정한 점거의 역사는 서울 선언 시리즈의 1,2권에 이어 여전히 그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김시덕 교수가 이어가는 한국 사회의 기록은 이번 책에도 성실히, 면밀히 담겼다.

9.72021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9월 "부커상 수상 이후 5년, 한강 소설의 현재"

    한강을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을 떠나, 서점 직원의 입장에서도 매 해마다 소설가 한강의 신작을 기다렸다.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을 함께 엮어 출간될 '눈 3부작'의 물성을 상상하며. 본래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로 놓일 것이었던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가 (3부작의 두번째 이야기가 '작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독립된 이야기로 드디어 독자를 찾았다. 한강의 소설을 사랑한 독자라면 첫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의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음색이 상상될 법한 시적인 풍경으로, 눈보라가 친다.

    소설가 경하는(당연히 이 인물은 소설적 인물이다.) 5월의 광주에 대한 소설을 썼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23쪽) 생각했던 그는 정작 소설을 끝내고도 한참 그 소설에서 놓이지 못하고 있다. 경하에겐 만주와 베트남 등에서 '역사를 통과한 여성들'(34쪽)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남겨온 친구 인선이 있다. 고향인 제주 중산간에서 목수가 된 인선이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 부상을 입고 자신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경하는 오랜만에 인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인선의 부탁으로 경하는 제주의 눈보라를 무릅쓰고 1948년의 제주, 정심의 이야기 속, '유골 수백 구가 묻힌 구덩이가 맥락도 설명도 없이'(167쪽) 놓인 풍경에 닿는다.

    5월 광주, <소년이 온다>의 모진 문장을 읽은 독자들이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깊은 상처를 경험했듯, 작가도 '그 소설'을 쓰기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듯하다고 한강은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말했다. 죽은 사람의 얼굴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녹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1948년의 소녀가 그 이후에도 긴 삶을 살아냈다는 걸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강이 쓴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이야기, 혹은 우리를 살게하는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작가 스스로를 구한 이 소설이, 독자에게도 가닿길 바란다.

  • 불쉿 잡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은이), 김병화 (옮긴이) | 민음사 | 2021년 8월 "당신의 직업은 세상에 쓸모 있는가?"

    앗 뜨거라, 싶은 제목인데 '불쉿 잡'에 속하는 직업들에 대한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설명을 들여다보면 이보다 적절할 수 없겠다 싶다. 차별적, 가부장적, 권위적 관점은 끼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풀어가며 그레이버는 세상에 유해하거나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직업들을 지적한다. '일만을 위한 일'의 증가로 태어난 직업들, 이를테면 오직 할 일 없는 회장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존재인 비서, 오직 서류를 양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서류 작성 직원, 회사가 히피 집단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할 일 없이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리셉션 직원 등이 불쉿 잡이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1/3이, 네덜란드인의 40%가 자신의 일이 세상에 무의미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국이라고 별다를 것 같진 않다.

    세상의 한쪽에서는 유의미한 일을 과도하게 하며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존재의 의미가 전혀 없는 직업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 그레이버는 그 이유로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을 꼽는다. 실질적인 상품의 생산보다는 시스템에 따라 자원을 이동시키는 것으로 유지되는 정치 경제적 구조가 불평등한 부의 분배와 불쉿잡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그는 불쉿 잡으로 범벅된 불쉿 사회의 탈출구로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생계와 노동의 연결고리가 끊어져야 노동 윤리에 대한 고찰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는 취지에서다.

    먼저 "불쉿 직업이라는 현상에 관하여"라는 그레이버의 센세이션 한 칼럼이 있었고, 이 주제에 쏟아진 수많은 토론과 편지를 분석하여 확장한 내용이 이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엔 많은 직업인들의 생생한 '무의미함'이 담겼다. 지금 하고 있는 내 일과 비교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내 직업은 세상에 쓸모가 있는가? 고민해 볼 기횐데, 사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많다면 그래도 아직은 갱생의 기회가 있는 사회일 것 같다. 아직 돈이 완전한 의미가 되진 않았다는 말이니까.

  • 귀신 사냥꾼이 간다 1 : 요괴마을
    천능금 (지은이), 전명진 (그림) | 비룡소 | 2021년 9월 "어린이 심사위원을 사로잡은 호러 판타지"

    귀신 사냥꾼 해주와 귀신 보는 아이 태주, 그리고 다섯 요괴 차사들이 펼치는 스릴 만점의 귀신 잡는 이야기다. 귀신을 본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태주는 가세가 기울어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 댁으로 간다. 그곳에서 귀신 사냥꾼 해주를 만난다. 500년 넘게 귀신 사냥꾼 일을 해온 해주는 태주의 동생 태희를 귀신으로부터 구해준다. 이를 계기로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는 태주와 해주, 그리고 해주를 도와주는 요괴들이 '어벤저스'를 이루어 요괴 퇴치에 나선다.

    매년 어린이 심사위원 100명을 선정해 오로지 어린이 선정위원들이 수상작을 가려내는 스토리킹 문학상이 어느덧 9회를 맞이했다. 이번 어린이 심사위원들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이 아주 많이 담겨 있는 욕심쟁이 책”이라며 이 책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 주었다. 몰입감이 넘치는 공포 스릴러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외국어 학습담
    로버트 파우저 (지은이) | 혜화1117 | 2021년 9월 "로버트 파우저의 외국어 순례"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몽골어, 프랑스어, 한국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에스페란토어... 로버트 파우저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들이다. 아, 그의 모국어는 영어다. 나열된 언어들을 보자니 경외감이 밀려온다. 개수를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 많은 외국어들을 평생 즐겁게 익히며 살아온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나요?" 아마 그가 살면서 "How are you?" 다음으로 많이 들은 질문 아닐까. 이제 그는 적절하게 간명한 대답을 고민하느라 머리 아프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책만 내밀면 해결이다.

    마치 외계인의 초능력과도 같아 보이는 수많은 외국어를 구사하니, 초능력과도 같은 학습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역시 약은 꼼수는 없나보다. 학습에 대해서 그가 하는 말은 그간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암기, 인내, 반복, 이해... 다만 이 책의 특별한 지점은 여러 언어들을 마주하고 학습해온 로버트 파우저의 경험담과 그 속에서 우러 나오는 흥미, 열정, 몰입, 깨달음 같은 감정들이 전해져와 그 자체로 마음에서 어떤 종류의 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뿜어져 나오는 환한 활력, 그것이 이 책에도 여지없이 들어있다. 언어 학습에 욕심있는 이들에게 필독서로 자리잡을 책이다.

9.102021
  • 초격차 투자법
    잭 슈웨거 (지은이), 조성숙 (옮긴이), 신진오 (감수) | 리더스북 | 2021년 8월 "수익의 격차는 어디에서 오는가?"

    주식 투자에 어떤 정해진 법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기계적 투자가 가능했다면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들은 벌써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투자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수익을 내고 손실을 입는다. 수익의 격차도 천차만별이다. 이른바 '3% 떼기'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0%가 넘는 수익에 흥분조차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더 큰 수익을 맛보는 쪽은 후자다. 우리가 그 비범한 투자가들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투자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 각자도생의 현장에서 큰 수익을 내는 투자가들은 어떤 원칙과 전략으로 투자에 임할까? <투자의 본질>에서 저자 박세익은 주식은 사는 것과 파는 것 모두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제 이 책에서 11인의 투자 예술가들을 만나볼 차례다. 인터뷰어는 그 유명한 잭 슈웨거다. 헤지펀드 전문가다운 날카로운 질문으로 인터뷰이들의 작은 습관과 행동 패턴까지 속속들이 끄집어내는 그의 장기는 이번 신작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만난 숨은 고수들의 투자 스타일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인데, 자신과 맞는 스타일을 찾아 수정하고 발전시켜 보자. 나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0%를 향하여
    서이제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저는 왜 예술 뽕도 못 맞아요?”"

    한국 문학을 즐겨읽는 독자라면 언제부턴가 서이제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2018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 2021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이 계절의 소설을 소개하는 '소설 보다' 기획에 세 차례 이름을 올린 작가의 첫 소설집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작가는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변화하던 시기에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어떤 우리는 작가 서이제와 같은 시간을 통과했을 것이다. 종로3가에서, 홍대에서, 삼청동에서 우리가 사랑하던 극장들이 문을 닫았듯, 우리의 청춘도 필연적으로 한 장면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에릭 로메르 영화를 보고 채식주의자가 된 것만 봐도 알겠다.'(73쪽,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 중)는 소설 속 인물의 말솜씨는 여전히 어떤 우리를 웃기고 만다. 막을 내렸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끝나는 건 아니니까.

    "아무래도 영화 같은 건,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355쪽, <0%를 향하여> 중) 이 문장에 '영화' 대신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이를테면 '소설'같은 것을 대입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말의 진심을, 사랑의 진심을, 영화의 진심을 믿습니까?"(318쪽)라는 소설 속 질문이 공허해보이지 않는 건, 서이제가 묘사하는 이 '청춘'들의 '예술 뽕'에 여전히 '진심'이라고 말할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우리는 이런 자신을 쑥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이제의 문장처럼 곤궁하고 푸르고 우리답게 살아갈 것이다.

  • 느끼고 아는 존재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은이), 고현석 (옮긴이), 박문호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8월 "안토니오 다마지오, 인간 의식에 대한 통찰"

    인간 의식 연구의 세계적 석학,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최신작이다. <데카르트의 뇌>, <사건에 대한 느낌>, <스피노자의 뇌>, 그리고 <느낌의 진화>로 인간의 느낌과 감정에 대해 센세이셔널한 연구를 소개해온 그는 이번 책에서 그간의 연구들에서 핵심 내용을 위주로 다듬고 정리하여 펴냈다. 인간의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선 느낌과 감정, 앎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다마지오 연구의 결정판이다.


    그는 이전 책들에 대해 문장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대중의 평가에 좌절스러웠다는 심정을 밝혔다. 이번 책에서는 장을 많이 나누고 장마다 제목을 붙이는 등 간결한 편집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최대한으로 돕고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간 읽어온 그의 저작을 포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다마지오의 사상을 처음 들여다보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지은이) | 빅피시 | 2021년 9월 "파리의 한국인 문화해설사와 거니는 미술관"

    영화 <우먼 인 골드>는 나치에게 몰수당한 가족의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레이디 인 골드'를 둘러싼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가 유럽에서 가장 큰, '총통 박물관'을 건설하려는 허무맹랑한 계획을 품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다. 히틀러가 약탈하고 감추어 놓았던 그림, 독재자가 사랑한 낯선 화가의 이름을 미술관을 거닐다 만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가 그것. 히틀러 때문에 사라진 미술품을 찾아내는 특수부대 이야기, 영화 <모뉴먼츠 맨>에도 이 그림이 등장한다. 17세기의 네덜란드 '무명 화가'의 그림이 이 그림을 둘러싼 맥락과 함께 보면 한층 풍성해진다. 시체를 찾아다닌 화가 제리코,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아버지를 그린 궁정화가 고야 등 그림에 얽힌 이야기로 미술관을 만난다.

    파리의 한국인 문화해설사, 가이드 진병관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와 함께 미술관을 여행한 이들이 남긴 여행의 추억을 여럿 읽을 수 있다. 루브르며 오르세 같은 미술관을 당분간은 직접 방문할 수 없다면, '취향의 방', '지식의 방', '아름다움의 방', '죽음의 방', '비밀의 방'으로 큐레이팅한 이 기묘한 미술관으로 걸음해보는 게 어떨까. 언젠가 파리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다정한 가이드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9.142021
  •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정세랑, 김인영, 손수현, 이랑, 이소영, 이반지하, 하미나, 김소영, 니키 리, 김정연, 문보영, 김겨울, 임지은, 이연, 유진목, 오지은, 정희진, 김효은, 김혼비, 김일란 (지은이) | 창비 | 2021년 9월 "정세랑,김소영,김혼비... 여성창작자들의 '나의 언니'"

    정세랑,김인영,손수현,이랑,이소영,이반지하,하미나,김소영,니키 리,김정연,문보영,김겨울,임지은,이연,유진목,오지은,정희진,김효은,김혼비,김일란 총 스무 명의 여성창작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이 책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화려한 필진에 주목하기보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모여 목소리를 내는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이와 국적, 시대를 뛰어넘어 '언니'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란 공통 질문에 스무 명의 창작자들은 자신의 삶에 선한 영향을 준 '언니'를 불러와 각자의 방식으로 편지를 써 내려간다. 스무 가지의 색으로 펼쳐지는 각 편지에는 닮고 싶은, 손을 맞잡고 싶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보다 더 다정할 수 없는 문장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언니가 되어보자고 든든한 격려를 보낸다. 김혼비 작가는 축구를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말로 서로의 눈이 되어주는 순간"이라 말한다. 이 책은 '글로 서로의 눈'이 되어준다. 당신의 곁에 늘 함께하겠다는 진심 어린 응원과 함께.

  • 지구의 깊은 역사
    마틴 러드윅 (지은이), 김준수 (옮긴이) | 동아시아 | 2021년 8월 "지구의 심원한 역사와 그 속의 인간"

    지구는 언제 생겨났나? 지금의 우리야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45억 년 전이라는 대답이 무심결에 나오지만, 지구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순간의 인류에게 지구 탄생 시기를 추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다. 지구의 탄생부터 시작해 지구 역사를 밝히는 작업에는 다양한 이론의 탄생과 반박, 보완과 발전의 과정이 있었다. 이 책은 그 모험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지구의 역사 그 자체라기보다는 지구의 역사를 찾는 역사에 가깝다.

    지구과학의 역사를 연구해온 원로 학자인 마틴 러드윅은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여러 학자들의 생각과 활동을 추적하여 담고 여러 이론의 관계들을 정리하며, 지구의 시간을 밝혀온 인간의 역사를 엮어냈다. 그는 이 책에 자신의 역사가로서의 이력 모두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구의 역사가 발견되고 발전되어 온 과정이 밀도 높게 담겼다. 과학 지성사에 관심 갖는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 에이전트 러너
    존 르 카레 (지은이), 조영학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존 르 카레가 생전 발표한 마지막 소설"

    영국 비밀 정보국 요원으로 해외를 떠돌며 무수한 임무를 완수해온 내트. 계속 현장에서 뛰고 싶지만 은퇴가 코앞에 다가왔고, 사무직을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자리 간수만 할 수 있다면야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첩보 활동이 국가를 뒤흔들던 화려한 시절은 끝났다는 냉소를 머금고 있지만, 평생 정의의 편에 서서 살아왔다는 자부심만은 확고하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에게 정보국은 뜻밖의 임무를 제안한다. 어쩌면 그의 긍지를 모조리 불사르고 재조차도 남지 않을 마지막 임무를.

    철옹성 같던 정보국에도 시대의 변화를 타고 바람이 불었다. 더이상 여성은 단순 속기 업무만 하지 않고 가장 유능한 직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적국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교묘해졌다. '대의' 뒤에 숨은 이들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가면만 바꿔 쓴 채로 요원들을 낯선 곳으로 내몬다. '조국'이라는 감히 의심해서는 안 될 거대한 명분을 양 어깨에 짊어지도록 강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 브렉시트를 향해 질주하는 영국. 격변하는 시대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명민하게 꿰뚫어온 거장의 시선이 빛나는 작품.

  • 몬스터 차일드
    이재문 (지은이), 김지인 (그림) | 사계절 | 2021년 9월 "차별과 편견의 벽을 뛰어넘기"

    가상의 질병인 '몬스터 차일드 증후군'을 겪는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제1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몬스터 차일드 증후군'은 어린 시절 발병해 발작과 신체 변이를 일으킨다. 변이를 통제할 수 없고 짐승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들을 차별한다. 뚜렷한 은유의 방법으로 실제 사회에 존재하는 장애, 인종, 성별 등 모든 차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네 주민들은 몬스터 연구소를 혐오 기관으로 낙인찍고 없애야 한다고 시위를 한다. 기자들은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짜 뉴스를 양산한다. 그런 것들을 피해 시골로 도망친 하늬와 그의 동생은 자신들이 몬스터 차일드라는 사실을 절대 알릴 수 없다.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차에 나타난 또 다른 몬스터 차일드 연우는 하늬에게 자기 긍정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이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할 수많은 '뮤턴트'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준다. 긴박하게 이어지는 장르물의 매력을 잃지 않으며 차별의 문제를 짚어내는 탁월한 문장들이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코끝이 찡해지는 건 덤이다.

9.172021
  • 시대의 1등주를 찾아라
    이한영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1년 9월 "마음이 편해질 주식에 투자하라"

    한 사람의 소액 투자자로서 지금까지 지켜 오고 있는 투자 원칙이 하나 있다. 해당 업계 혹은 한 분야의 1등 주식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으로 치자면 베스트셀러만 구입하는 셈인데, 사실 이런 식의 독서는 지양되곤 한다. 세상엔 베스트셀러가 아닌 좋은 책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식 투자의 경우는 다르다. 훌륭한 기업, 좋은 주식인데 꼭꼭 숨어있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우리가 잘 모르는 좋은 기업, 시장이 아직 알아주지 않는 좋은 주식이야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우리 일반 투자자들이 이미 다 알려진 정보만으로 내로라하는 애널리스트와 매니저들을 제치고 나만의 숨은 진주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년 연속 펀드대상을 수상한 저자 이한영은 여기에 '시대의 1등주'라는 근사한 수식어를 붙였다. 한 시대를 이끄는 성장 산업과 그 대장주에 투자하면 마음 편히 승수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의 제목에는 17년간 지켜 온 그의 투자 원칙과 함께 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책은 주도주에 투자하는 톱다운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기업을 직접 분석해 보는 보텀업 방식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사지 말아야 할 주식을 골라내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적당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함께 전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주식에 몰두하지는 말자는 말이겠다. 모름지기 마음 편한 투자가 최고다.

  • 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지은이), 이승민 (옮긴이) | 문학동네 | 2021년 9월 "게일 콜드웰과 캐럴라인 냅이 공유한 모든 것"

    문학평론가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 게일 콜드웰과 <명랑한 은둔자> <욕구들>의 작가 캐럴라인 냅은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다. 한국어 서문을 추가하여 다시 출간된 이 책은 게일 콜드웰이 2002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캐럴라인 냅을 추억하며 두 사람이 작가로서, 애견인으로서, 친구로서 공유했던 7년의 시간을 되살려 기록한 것이다.

    술에 중독된 시기를 겪었고, 운동을 즐기며 개를 키우는 내향인으로 공통점이 많았던 두 작가는, '사람 둘, 개 둘'의 작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어주었다. '쾌활한 우울증 환자' 게일 콜드웰과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두 여성의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 개 클레먼타인과 나눈 교감과 신뢰 관계, 그리고, 소중한 존재의 죽음과 애도. 게일 콜드웰은 몸에 새겨진 기억의 언어로 그 모든 이야기들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읽는 내내 느꼈던 우정과 사랑이 주는 충만함과 뭉클한 감동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 남는다.

  • 오늘부터 배프! 베프!
    지안 (지은이), 김성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9월 "배고플 때 밥 친구 배프, 영원한 친구 베프"

    서진이는 유림이에게 떡볶이를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 앞 분식집에서는 계산을 할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달콤한 초콜릿을 사서 유림이네 어머니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지만 참치캔은 살 수 있어도 초콜릿은 살 수 없었다. 유림이네 어머니는 친구의 밥을 뺏어 먹지 말라고 유림이를 혼냈다고 한다. 서진이는 그냥 떡볶이를 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1학년 때부터 '급카'를 쓴 소리는 저녁을 공원에서 먹는다. '급카'를 쓰는 4학년 오빠도 공원에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급식카드를 쓰는 게 생각보다 썩 편하지도 자랑스럽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아동급식카드는 취약계층 어린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발급되는 카드이다. 이 카드는 평범한 카드의 모양을 띄고 있으나 사용을 하는 것도 까다롭고 사용 후에도 기분이 영 개운하지 않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밥을 사줄 수도 없다. 숨어서 밥을 먹게 만든다. 작가는 제도의 허점을 긍정적인 서진이의 시점으로 꼬집는다. "현실의 문제점을 고발하기 위해 인물과 상황을 소비하지 않고, 흑백논리에서 벗어난 점이 돋보인다."는 심사평을 받은 2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 에피타프 도쿄
    온다 리쿠 (지은이), 권영주 (옮긴이) | 비채 | 2021년 9월 "온다 리쿠, 도쿄를 걸으며 부유하는 생각들"

    "도쿄의 묘비명(epitaph)으로 무엇이 어울릴까?" '에피타프 도쿄'라는 제목의 희곡을 집필하고 있는 K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도쿄를 걷는다. 진보초를 거닐며 여러 테마의 헌책방을 들러보기도 하고, 태풍 치는 낮에 재즈 카페로 피신해 연극 오프닝곡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옛 성터에서 비명에 죽은 무장이 귀여운 캐릭터가 된 것을 보며 모든 것을 '귀여움'으로 승화시키는 "일본인의 무시무시한 악력"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도쿄의 적절한 묘비명을 떠올리지 못한 K의 여정은 '요시야'와 함께하면서 더욱 풍성해진다. 자칭 흡혈귀인 요시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도쿄의 오랜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도쿄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곳곳을 함께 배회하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주인공의 일상을 담은 소설이 흰색 페이지 위에 중심 줄기로 흘러가고, 액자식 구성으로 보라색 페이지에 K의 희곡 '에피타프 도쿄'가, 분홍색 페이지에는 연극 상연을 위한 K의 메모가, 파란색 페이지에는 요시야가 쓴 에세이 '드로잉'이 실려 있어 다층적인 독서 체험을 할 수 있다. 주인공과 나란히 도쿄의 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입체적인 소설.

9.242021
  •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바츨라프 스밀 (지은이), 강주헌 (옮긴이) | 김영사 | 2021년 9월 "숫자로 현실을 파악하기"

    전기 자동차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국가별 행복 지수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나? 인간의 기대 수명은 정점에 이른 것일까? 이 같은 질문들을 받았을 때 대략적인 방향과 경향성을 대답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이상을 말하려고 하면 얼버무리게 된다. 사실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에너지, 환경, 경제 사상가 바츨라프 스밀은 이번 책에서 현재 세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데이터와 통계로 설명한다.

    책이 다루는 주제는 에너지, 환경, 기술, 국제 정세, 인구와 식량 등이다. 이 광범위한 범위에 걸친 71가지 소주제에 대해 스밀은 숫자와 숫자에 얽힌 맥락으로 명확한 대답들을 내놓는다. 각 소주제는 2~3장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설명으로 채워져있다. 막연하게 둥그스름한 상만 있는 우리의 현실 인식에 콕콕 야무진 바늘땀을 새겨줄 책이다.

  • 완벽한 생애
    조해진 (지은이) | 창비 | 2021년 9월 "그러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

    마음 둘 곳이 없어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조해진의 문장은 방을 내어준다. 이 소설은 방을 내어주며 연을 맺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더 이상 일을 하며 버틸 수 없어 충동적으로 계획한 제주 여행을 앞두고 자신의 영등포 집을 에어비엔비 사이트에 내놓은 윤주와, 연인이었던 은철의 고향에서 지내고 싶어 그 방을 빌린 홍콩인 시징. 윤주는 제주에서 신공항 건설 관련 활동가로 일하는 친구 윤주와 함께 지내며 윤주의 공간을 빌린다. 이렇게 서로 곁을 내어주며 이 이야기는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의 자리를 만든다.

    "신념과 사랑이라는 단어들에 함유된 아름다움이 어째서 우리의 마음을 때때로 더 가난하게 하는지"(작가의 말. 170쪽) 소설가 조해진은 이 물음을 품은 채 이 인물들을 바라본다. 자신이 사랑한 자리마다 모두 폐허인 이들이,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무너진 자리를 보며 마음 아파할 때,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173쪽)고 말하는 소설가의 문장이 곁을 내어준다. 비정규직으로, 홍콩인으로, 베트남전 참전자의 가족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하다 멈춰 선 이들에게 필요할 바로 그 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 (101쪽)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102쪽)

  •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지은이) | 동아시아 | 2021년 9월 "여성의 고통에 대한 새로운 역사"

    동기가 강한 글이 가지는 에너지가 있다. 살기 위해 쓰는 글, 살리기 위해 쓰는 글. 하미나 작가는 이 책을 쓰는 일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가 삶에서 품어 숙성시켜 온 질문, 분노, 고통, 공감과 같은 감정들이 정돈된 글의 외피를 입고 힘 있게 뻗어나간다.

    조울증 당사자로서 그는 여성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무시해온 남성 중심 사회의 맥락을 거부하며 여성 정신 질환에 관한 이야기를 새로 쓴다. 31명의 20-30대 여성 인터뷰이와의 질 좋은 인터뷰, 주체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정신의학,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린 통찰, 한국 사회의 여성 경험에 대한 구조적 분석 등을 통해 그는 고통받는 여성들을 "알아준다." 그가 말했듯 고통받는 이들에게 "알아줌"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라서, 그것을 해내고자 애쓰는 이 책의 전반에는 진한 연대의 기운이 감돈다.

    방치되어 왔던 여성 정신 건강의 여러 구석들을 세심히 살피며 커다란 그림을 그려내는 이 책이 여성 우울증에 대한 인식 변화의 물꼬가 되길 바란다. 우울한 여자는 관음의 대상도 동경의 대상도 혹은 무시되어 마땅한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 납작한 시선 앞에 최대한의 입체성으로 이 책이 증명한다.

  •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지은이) | 부키 | 2021년 9월 "의사와 함께 떠나는 역사 추리 여행"

    2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귓병을 앓던 베토벤의 고뇌와 이를 극복하고 써낸 수많은 명곡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종이 느낀 통증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베토벤의 청력 상실의 원인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은 발진티푸스 등 다른 질병의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베토벤을 직접 문진하고 검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때 필요한 것은 역사적 자료와 의학적 지식이다. 이 책은 여기에 탐정의 시선을 더해 세종의 허리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한 추리에 나선다.

    아니나다를까, 저자는 의사다. 국제 학술지에 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세종의 허리 통증이 강직성 척추염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실어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세종대왕뿐 아니라 가우디, 도스토옙스키, 니체, 모네 등 역사적 인물들이 남긴 작품, 행적, 어록 등을 통해 그들이 앓던 병과 그 병이 끼친 영향에 대해 짐작해 본다. 그런데 이 책은 의학 서적일까 역사책일까, 아니면 위인전일까 추리물일까? 아마도 그 모두를 골고루 섞은 비빔밥 같은 책이 아닐까. 확실한 것은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역사 여행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9.282021
  • 여성과 광기
    필리스 체슬러 (지은이), 임옥희 (옮긴이) | 위고 | 2021년 9월 "전 세계 3백만 부 판매, 페미니즘의 고전"

    드디어 출간이다. 중고로도 구하기 어려워 많은 독자들이 애태우며 기다려온 필리스 체슬러의 대표작, <여성과 광기>가 알라딘 독자 북펀드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돌아왔다.

    1972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여성의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 파문을 일으킨 최초의 질문이었다. 왜 너무 많은 여자들이 미쳤다는 진단을 받는가?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정신의학은 누구를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체슬러는 가부장제의 파수꾼으로서의 정신의학이 광기를 이용해 여성을 통제해온 배경을 파헤친다.

    출간 50주년을 맞아 재출간한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이 이야기가 그저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를, 심지어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기록으로 남기를 바랐습니다."라고 말했던 일화를 덧붙였지만, 2021년 현재도 이 책은 절절히 유효하다. 식민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전쟁은 지난하다.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 느껴질지라도, 앞선 여성들의 등 위에서 또 그다음 단계의 돌파구를 찾아 나서는 일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믿음이라는 사실엔 틀림이 없다.

  •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
    강창희, 고재량 (지은이)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9월 "노후 걱정을 시작하라!"

    환갑 즈음에 은퇴하여 10~15년 정도를 퇴직금과 자식들의 부양에 의지해 살던 부모님 이상의 세대들과 우리 젊은 세대들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지금 대한민국 40대들의 기대수명이 90살이 넘는다고 하니, 60살에 은퇴해도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자식들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고 황혼 이혼과 비혼 인구의 증가 등으로 노년에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가 일반적인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은퇴 후의 삶을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곤 한다. 막연히 주식에 오래 묻어 두면 되겠거니 생각하거나, 정년이 점점 연장되겠지 연금이 느는 등 복지가 좋아지겠지 같은, 한마디로 그때 가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들도 많이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직장인들의 예상 은퇴 시기는 50대 초반으로 점점 빨라지고 있다. 더이상 안일하게 있을 수 없는 명백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 것. 이제 적극적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공부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국내 노후설계 분야의 일인자인 저자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노후를 위한 자산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과 원칙을 오래도록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해도 은퇴 후 12만 시간을 더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금융 자산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말과 함께. 제목처럼 오십부터 노후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선 오십까지는 노후 걱정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걱정을 덜어 줄 이 책이 있어 다행이다.

  • 죽은 등산가의 호텔
    아르카디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보리스 나타노비치 스트루가츠키 (지은이), 이경아 (옮긴이) | 현대문학 | 2021년 9월 "스트루가츠키 형제, SF와 고전 추리의 만남"

    하얀 설원과 연보랏빛 산이 창밖으로 그림처럼 펼쳐지고, 벽난로의 따스한 향이 감도는 아늑한 호텔. 그 이름은 '죽은 등산가'다. 이런 무서운 이름의 유래는 과거에 투숙하던 등산가가 조난 사고로 사망한 후, 그가 머물던 방이 박물관처럼 보존되고 그가 키우던 개도 호텔에 계속 살면서 오히려 이곳이 유명세를 얻었기 때문이다. 글렙스키 경위는 온갖 업무로부터 탈출해 모처럼의 휴가를 위해 이곳에 여장을 푼다.

    휴가의 기분을 만끽하며 스키를 즐기던 것도 잠시, 경위는 투숙객들이 하나같이 무언가 수상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게다가 호텔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죽은 등산가의 유령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사건에 이어 살인을 예고하는 메모가 발견되고, 경위는 어쩔 수 없이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러시아 SF의 빛나는 랜드마크,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추리소설의 열렬한 애호가임을 자부하며 발표한 소설. 언제나 현실 저 너머의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는 SF가 고전 밀실 미스터리와 만나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보증한다.

  •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지은이) | 민음사 | 2021년 9월 "장강명 추천! 개미들의 욕망과 좌절"

    한동안 카톡만 켜면 억억 소리가 들렸다. 누구는 코인으로 몇 억을 벌어 퇴사하고 또 다른 누구는 빌딩을 샀다고. 초 단위로 널뛰는 코인 시장 옆에는 차라리 안정적인 듯 보이는 주식 시장이 있었다. 코인 시장이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곡예를 탈 때, 때마침 오르는 코스피 지수를 타고 '이 정도는...'이라는 생각으로 슬그머니 주식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많았다. 나만 손놓고 있나 하는 불안감, 초저금리 시대의 막막함, '재미 좀 본' 주변인들 추천의 콜라보가 낳은 본격 주식 시대. 여기서 들리지 않는 것은 실패담이다. 정말 '존버'하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시장일까? 주식은 서민들의 마지막 사다리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개미들이 주식으로 꿈꾸는 황홀한 미래에 그 어떤 꽃향기도 없음을 증언한다. 매매방에 입실한 저자는 개인 전업투자자들과의 심층 면담을 바탕으로 이들의 현실을 파악했다. 계속되는 손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투자. 어떤 구조가 이들을 끝없는 투자의 굴레에 빠지게 만들고 끝내 필패하도록 만드는가? 책은 시야를 넓혀 이들이 속한 사회구조까지 총체적으로 살핀다. 그간 사회가 보지 않았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개미들이 올라선 위태로운 둔덕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