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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021
  • 나는 왜 내가 힘들까
    마크 R. 리어리 (지은이), 박진영 (옮긴이) | 시공사 | 2021년 6월 "자아라는 저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우리는 모두 스스로에게 과몰입해서 불행해져버린 것이 아닐까? 심리학의 거장 마크 리어리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대부분이 자아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크 트웨인의 이 말처럼. "내 삶에는 비극이 가득하다. 다만 대부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다."

    책에서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과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걱정과 실망, 오해와 피해가 어떤 것인지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 설명한다. 자아를 모두 없애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나를 괴롭혀서 인생이 자꾸만 팍팍해진다고 느낀다면 나 자신에 대해 이제 그만 탐구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고, 그 모든 질문에 대답하려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니까.

  •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은이), 백지민 (옮긴이) | 푸른숲 | 2021년 6월 "우리는 찬란한 어둠에 파묻힌 채 헤엄쳤다."

    “오늘 아침 폴란드 사회주의 공화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뉴욕의 한 아파트,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에 루드비크는 단 한 사람을 떠올리며 무너져 내린다.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이름, 야누시. 고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기 전에 미처 전할 수 없었던 말들과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 마음들을 그러모아, 루드비크는 영영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80년대 사회주의 체제 하의 폴란드는 거대한 감옥과도 같았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체포가 가능했던 처참한 시대. 그 속에서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이 있다. 세계가 요동치고 속수무책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호숫가의 어둠은 이들에게 차라리 찬란했다. 감시의 눈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자유를 허용했으므로.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제임스 볼드윈의 <조반니의 방>을 몰래 읽으며 누군가가 이들을 온전히 이해해준다고 믿었고, 또 함께할 내일을 상상했다. 그러나 어둠이 걷힌 후 돌아온 회색의 도시 바르샤바에서 두 사람이 목도한 것은 어긋남 뿐이다. 체제의 정당성을 믿고 그 안에서 출세하고자 하는 야누시와 자유의 가능성을 믿고 힘껏 부르짖는 루드비크는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며 양극단을 향한다. 시대의 격정 속에서 어긋나버린 사랑. 황량한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서정이 배가한다. 날씨와 공기의 변화마저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깊은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 오늘의 단어
    임진아 (지은이) | 미디어창비 | 2021년 6월 "키키와 임진아가 함께 수집한 일상의 빛나는 순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사물에게 배웁니다>의 에세이스트로, <어린이라는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잘 알려진 임진아 작가가 작고 귀여운 또 한 권의 에세이를 새롭게 펴냈다. 그동안 아기자기한 그림과 단정한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몰랑하게 만들어준 그가 이번 책에 반려견 키키와 함께 보낸 사계절에 관한 만화와 에세이를 가득 채웠다.

    사람과 개/고양이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그래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해가 늘어갈수록 반려인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하루하루의 시간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키키와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지내며 수집한 '오늘의 단어'에 얽힌 이야기에는 그런 애틋한 마음이 오롯이 드러난다. 키키와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작고 소소한 것조차도 소중히 여기며 온 마음으로 기록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죽기 직전에 딱 한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무슨 소리를 들을 거야"란 질문에 "키키가 물 마시는 소리"라고 답하고, "키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하고 키키의 속도로 함께 산책하는 그런 일상이 따뜻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수신지 작가와 김소영 작가의 말처럼, '하루를 살아갈 촉촉한 힘'과 '커다란 행복'이 되어주는 책이다.

  •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손희정 (지은이) | 마음산책 | 2021년 6월 "서로가 서로의 영화가 되어 '다시, 쓰는, 서사'"

    "세계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10대의 윤단비는 광주극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175쪽) 그 시절의 윤단비처럼 외로운 소녀 '옥주'의 눈빛을 클로즈업하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2020년 8월 개봉해 팬데믹에도 불구, 2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서 만났다. VOD 개봉을 늦추고 가급적 오래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이 영화에 대해 손희정은 "<남매의 여름밤>다운 선택"이라는 평을 덧붙인다. <다시, 쓰는, 세계> 손희정이 만난 여성영화의 우주. 2019~2020년 장편 극영화를 선보인 여성감독 13인(김도영, 윤가은, 김보라, 장유정, 임선애, 안주영, 유은정, 박지완, 김초희, 한가람, 차성덕, 윤단비, 이경미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엮었다.

    "중학교의 '왕따 교사' 미숙(<미쓰 홍당무>)의 영웅버전이기도 한 은영(<보건교사 안은영>)은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하고자 했지만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낸다."(189쪽)는 손희정의 해설과 함께 우리 안의 '이경미론'이 풍성해진다. 이경미의 영상물 특유의 '덜컹거리는' 질감의 기원을 떠올려본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씩씩함을 사랑한 2020년의 관객의 시선이 2008년 개봉한 영화 속 공효진의 새빨간 볼을 향해 거슬러 올라갈 때, 우리의 계보에 대한 깊은 사랑과 함께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다시 만난 세계> 중)지는 벅찬 기쁨을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독자에게 전하는 손희정의 러브레터.

7.62021
  • [세트] 호라이 + 호라이호라이 - 전2권
    서현 (지은이) | 사계절 | 2021년 7월 "서현 작가의 마법 주문, 호라이호라이!"

    어느 날 알을 깨고 탄생한 달걀프라이 '호라이'는 밥 위에 앉아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왜 하얗고 노란 걸까?', '왜 톡 터질 것처럼 약한 걸까?' 그리고 또 생각한다. 아니야, 나는 '하얀 눈밭에 떠오르는 태양'이었을 수도 있고, '우주를 나는 자유로운 우주선'이었을 수도 있잖아. '나는 호라이다!' 드디어 호라이는 공깃밥을 박차고 나온다.

    서현 작가는 전작 <눈물바다>, <커졌다!>, <간질간질>에서 달걀프라이가 모두 등장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달갈프라이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탄생한 달걀프라이의 대모험 <호라이>. '호라이'를 외치며 좌충우돌 어디서나 등장하는 호라이,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우주까지 뻗어가는 호라이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즐겁게 최선을 다하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서현 작가 자신을 닮은 것도 같다. 좋아하는 만큼 더 행복해지는 마법 주문을 우리도 외쳐보자. 호라이호라이!

  • 노 필터
    사라 프라이어 (지은이), 이경남 (옮긴이), 임정욱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6월 "여과 없는 리얼 인스타그램 스토리"

    2005년 초, 대학생들의 친목 도모 사이트를 만들어 막 인기몰이 중이던 하버드 출신의 한 청년이 미 대륙 반대편 스탠퍼드 캠퍼스를 기웃거렸다. 자신의 사이트에 사진 관련 도구를 추가해 줄 탁월한 개발자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제안을 받은 한 스탠퍼드 청년은 마침 사진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이 잘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버드 출신 청년처럼 대학을 중퇴하고 싶지 않았다. 그해 말, 하버드 청년의 사이트는 결국 사진 서비스를 시작했고 사용자는 5백만 명을 넘어섰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스탠퍼드 청년은 하버드 청년과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예상했겠지만, 하버드 청년은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회장 마크 저커버그, 스탠퍼드 청년은 인스타그램의 공동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이다.

    둘의 기막힌 인연은 2012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전격 인수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자신의 오랜 관심사였던 사진에 더욱 몰두했던 시스트롬은 2010년 인스타그램을 창업하여 1년여 만에 사용자 3천만 명을 돌파시킨 상황이었다. 그들의 시너지는 6년 만에 인스타그램을 사용자 10억 명의 공룡으로 만들었다. 둘의 동거는 2018년 끝났지만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1조 원에 인스타그램을 샀던 페이스북의 현재 시가총액은 1천조 원이며, 최근 미 정부와의 반독점 소송에서 승리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성공은 온전히 저커버그의 몫인가? 셀럽 같은 창업자들의 생생한 대화와 드러나지 않은 욕망들, 천재 직원들의 앱 개발 일화, 성공 뒤에 가려진 결점들과 내부 기밀까지, 그들을 둘러싼 그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장대히 펼쳐진다.

  • 데카메론 프로젝트
    빅터 라발, 모나 아와드, 카밀라 샴지, 콜럼 토빈, 리즈 무어, 토미 오렌지, 레일라 슬리마니, 마거릿 애트우드, 이윤 리, 에트가르 케레트, 앤드루 오헤이건, 테이아 오브레트, 알레한드로 삼브라, 디노 멘게츄, 캐런 러셀, 데이비드 미첼, 찰스 유, 파올로 조르다노, 미아 쿠토, 우조딘마 이웰라, 디나 나예리, 라일라 랄라미, 줄리언 푸크스, 리버스 솔로몬, 매튜 베이커, 에시 에두잔, 존 레이, 에드위지 당티카 (지은이), 정해영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마거릿 애트우드 참여!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코로나19로 완전히 뒤바뀐 우리의 일상. 아무도 예상치 못한 팬데믹에 세계는 공포로 뒤덮였고, 21세기의 우리는 중세 흑사병의 시대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느꼈다.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죽음이 일상이 된 14세기. 피렌체 교외로 피난을 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 <데카메론>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공포로 얼룩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에 착안한 '뉴욕타임스'의 편집자들은 동시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 시대의 <데카메론>을 탄생시키자는 프로젝트를 주창했다.

    그렇게 마거릿 애트우드와 레일라 슬리마니, 콜럼 토빈을 비롯한 작가들이 함께 뜻을 모았고, 세계 각지에서 도착한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는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격리 중인 지구인을 도와주러 온 문어 모습의 외계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부터 전염병을 피해 모인 사람들 틈에서 싹튼 어느 사랑 이야기, 봉쇄된 상황에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소설가의 이야기까지, 저마다의 개성과 세계관으로 다채롭게 빛나는 29편의 이야기들이 모였다. "힘든 한 해를 보내셨군요. 안 그런가요?"라는 안부 인사부터 "Memento Vivere!(살아야 할 운명임을 기억하라)"는 선언까지. 지금, 여기의 소설이 건네는 위로와 희망의 목소리를 만날 시간이다.

  • 끝내주는 괴물들
    알베르토 망겔 (지은이), 김지현 (옮긴이) | 현대문학 | 2021년 6월 "네가 나를 믿는다면 나도 너를 믿을게"

    인생의 어느 순간에 마주쳐 삶에 스며든 존재를 인연이라고 부른다면, 그 인연이 현실 세계의 존재에 한정될 이유가 있을까. 애서가라면 누구나 깊은 우정을 나눠 온 책 속의 캐릭터가 있을 것이다. 함께 우울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 기쁨의 표현 방법을 따라 하기도, 용기를 빌려보기도 하는. <끝내주는 괴물들>은 애서가 알베르토 망겔이 책에서 만난 인연들에 대해 쓴 책이다.

    앨리스, 드라큘라, 로빈슨 크루소, 슈퍼맨,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 그의 인생에 올라탄 여러 캐릭터들에 대해 망겔은 오래 관찰해 온 사실과 묵혀온 질문, 그리고 어떤 메시지들을 버무려 소개한다. 각 캐릭터들을 읽다 보면 그가 책들을 어떻게 연결 지어가며 읽는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친구가 되는지 느껴진다. 자신이 사랑하며 살아온 캐릭터들을 소개하며 그는 신난 것 같다. 신난 마음은 쉽게 전염되어 내 친구들도 차곡차곡 정리해 쌓아두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7.92021
  • 업스트림
    댄 히스 (지은이), 박선령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변화를 믿는 사람들의 선택"

    운동 선수는 불의의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낙제할 가능성이 크고, 아무리 주의를 줘도 아이들의 총기 사고는 막을 수 없다. 한집에 차가 두 대인 경우가 많아 주차가 불편할 수 있으며, 이사 예정인 곳에 창문이 막혀 있지만 공조기를 돌리면 괜찮을 수 있다. 이상은 '부정적인 결과가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하다는 믿음'의 예들이다. 저자는 이를 문제 불감증이라 부른다. 소를 어느 정도 잃으면 그때 외양간을 고치면 된다는 식이다. 여기엔 어차피 완벽한 외양간은 불가능하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문제 불감증은 완벽한 외양간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변화 시도를 원천 봉쇄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처럼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한 수습과 대응은 '반드시 해야 할' 다운스트림 활동이다. 반면 업스트림 활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누군가 "이것이 진짜 문제!"라며 나서야 하는 일인 것. 그 선제적 선택 앞에 "원래부터 그래왔고,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래야만 하죠?"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나은 직장, 사회, 인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혹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 넘긴 문제가 있는가? 조직과 사회에 팽배한 문제 불감증에 맞서 싸우려 하는가? 업스트림 활동을 위한 실전 지침들을 전하는 이 책이 변화를 위한 커다란 힘이요 실마리가 될 것이다.

  • 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7월 "나는 정갈하게 늙고 싶었다"

    윤성희의 여섯번째 소설집. 등단 10년 이상의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소설을 선정해 소개하는 '김승옥문학상'의 첫 수상작이었던 <어느 밤>이 수록되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장민지 어린이의 킥보드를 훔쳐 단지 안을 질주하는 할머니 이야기. 그러다 도로에 넘어진 그의 기억과 함께 그의 신산한 삶과 소소한 긍지가 함께 스쳐지나간다. <여름방학>, <남은 기억>, <눈꺼풀> 같은 각 단편의 제목은 대체로 그의 문장처럼 힘을 뺀 채 놓여있다. 문장은 소박하지만 문장을 풀어내는 한 문단, 문단은 길다.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엄마의 수다처럼 실타래를 풀듯 삶의 기억이 이어진다.

    "마술에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유머라고."(110쪽) 마술 선생님이 말한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일가를 이룬 소설가 윤성희도 꼭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25년 전에 1,500만원을 떼어먹은 아는 언니에게 대문 없는 국숫집에 가서 같이 욕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영순. 국숫집 주인은 남편의 회사에서 공금횡령을 한 총무과장과 남편의 내연녀로 현재 그 둘이 함께 살며 차린 국숫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남은 기억> 中) 욕 한바가지를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고개를 넘어넘어 국숫집으로 향하는 위풍당당한 중년 여성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윤성희의 이 슴슴한 유머에 어느새 마음이 찡해진다. 기억이 아주 많고 걸음이 느린 여성들의 이야기. 2021년의 윤성희가 집중하고 있는 이 나이 든 여자들의 이야기는 꼭 그 여자들처럼 부드럽고 단단하고 깊다.

  • 과학의 자리
    김우재 (지은이) | 김영사 | 2021년 7월 "과학적 사회를 위한 제언"

    한국 사회에서 과학이 담당하는 역할은 명확해 보인다. 돈을 벌기 위한 기술, 그 언저리 어딘가. 기술로서의 과학은 한국 사회에서 분명 독보적 권위를 가지지만 문화의 영역에서 과학의 자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우재 교수는 한국 과학의 얄팍한 자리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17세기 과학혁명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철학적 탐구를 통해 과학이 지성사의 중추였음을 밝혀내며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역설한다. 그는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인문학이 목소리를 독점하는 한국 학계의 편향성을 지적하며 과학이 사상의 중심이 되는 사회적 과학, 과학적 사회를 주장한다.

  • 한국사 읽는 어린이 세트 - 전5권
    강석화, 김정인, 임기환 (지은이), 서영 (그림) | 책읽는곰 | 2021년 6월 "선생님들의 선생님이 쓴 최초의 한국사"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방대함 때문일 것이다. 고대사부터 현대사를 아우르는 많은 이야기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당연히 당황 수밖에 없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부터 시작되는 많은 역사책의 흐름은 역사 분야의 흥미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오죽하면 조선 시대 왕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노래까지 만들어졌겠는가.

    <한국사 읽는 어린이>가 다른 역사책과 다른 이유는 공신력 있는 역사학자 3인이 썼다는 점도 있지만 과감하게 근대사와 현대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는 점이다. 역사는 '1575년,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다.'라는 문장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2001년 의인 이수현이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사건도 역사이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하며 K-POP의 위상을 널리 알린 것도 역사이다. "내일이면 역사가 될 우리의 오늘"을 기억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7.132021
  •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 남궁인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7월 "이슬아와 남궁인만이 쓸 수 있는 편지"

    연재 당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이슬아와 남궁인 작가의 서간에세이를 책으로 만난다. '연재노동자' '일상의 에세이스트' 이슬아, '죽음을 기록하는 작가' 남궁인. 그들은 에세이라는 장르에서 성실한 글쓰기를 해오며 두터운 독자층을 쌓아온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집필해온 글의 색과 결은 확연히 다르다.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더 많은 화제의 두 작가가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집을 이유가 된다.

    이슬아 작가는 먼저 파워풀한 굿 서브를 날리며 남궁인 작가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이슬아 볼을 남궁인 작가는 과연 어떻게 받아쳐낼 것인가. 두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흥미진진한 테니스 경기를 관전하는 기분이 든다. 튕겨져 나갈 듯 말 듯한 긴장감 속에서 최고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두 작가의 편지글에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겪은 일과 고충, 에세이스트로서 '갱갱갱신'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허심탄회한 고백으로 차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진심을 하나둘씩 내보이는 동안, 편지를 주고받기 전 가졌던 서로의 오해는 이해로 변하면서 우정의 세계로 진입한다.

    성별, 연령, 살아온 환경도 다른 두 작가가 유쾌하게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깊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전에 펴낸 각 작가의 에세이와 다른 글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나아가 독자에게 좋은 기운을 선사하는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 그래서, 동의가 뭐야?
    저스틴 행콕 (지은이), 푸크시아 맥커리 (그림), 김정은 (옮긴이) | 픽(잇츠북) | 2021년 7월 "동의는 진짜로 원하는 걸 선택하는 일이야"

    일상생활에서 "동의합니다."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 "좋아!"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그래서 그런지 '동의'라는 말은 더 어렵게 느껴진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친구와 떡볶이를 먹는 일, 그네를 타고 싶어서 놀이터로 뛰어가는 일... 책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 물어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배가 고프지 않지만 친구가 마음 상해할까 봐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간 경우, 그네를 타러 놀이터에 가고 싶었지만 마스크를 써야 해서 밖에 나가지 못 하는 일도 있다. 많은 친구와 함께 하기 위해 내 자유를 잠시 멈추는 일. 그것도 사회적 '동의'이다.

    단순하게 "응!"이라고 말하는 게 동의라고 여겨졌다면 이 책을 읽고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알아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고싶은 걸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힘과 권리, 자유가 적절히 모두에게 주어져야만 동의는 이루어질 수 있다. 어렵다고 해서 너무 당황하지는 말자. 쉬운 문장과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바른 선택을 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잊지 말자.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는걸!

  •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은이) | 민음사 | 2021년 6월 "성인 ADHD로 산다는 것"

    중독적 흡연 습관을 탈피해 보고자 정신과에 첫발을 들였던 26세의 어느 날, 금연보다 ADHD쪽이 훨씬 문제인 것 같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본질이 원래 붕괴되어 있다는 청천벽력의 진단은 꽤나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스스로를 버리고 살았다. 그리고, 음주, 약 복용, 정신과 상담을 반복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성인 ADHD의 삶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정지음은 성인 ADHD 진단 후 후회와 원망과 자책으로 보내온 수많은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내고 있는 현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 ADHD 검사와 치료를 받았더라면 엉망진창인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란 뒤늦은 후회, ADHD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실수투성이 일상과 불면의 밤, 우울증에까지 잠식당한 내면. 온통 어둡고 서글픈 이야기들뿐인데, 저자는 위트 넘치고 톡톡 튀는 문장으로 슬플 틈을 절대 주지 않는다. 소설도 아닌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신질환을 극복했다는 해피 엔딩도 아니며, 무한 긍정과 낙관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서른에 닿은 지금도 집중력과 충동, 주의력 등 여러 가지 조절에 장애를 겪고 있음을, 그런 정지음으로 얼마든지 살고 있고 살아갈 것임을 선명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 요네자와 호노부와 고전부
    요네자와 호노부 (지은이), 김선영 (옮긴이) | 엘릭시르 | 2021년 7월 "고전부 시리즈의 모든 것!"

    <빙과>의 출간 이후 어느덧 20년. 고전부의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소설에서 감춰져 있었거나 담기지 못했던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와 미공개 신작 단편, 작가의 해설과 인터뷰가 촘촘히 담겼다. 특히 고전부 멤버 네 사람이 즐겨읽는 책들로 구성된 책장 목록에는 각자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나 재미를 더하고, 요네자와 호노부와 온다 리쿠, 기타무라 가오루의 대담에서는 미스터리 애호가들의 밀도 높은 대화가 펼쳐져 어떤 것을 순수하게 사랑해서 파고드는 사람들이 발산하는 특유의 따뜻하고 무해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빙과>의 탄생은 작가가 대학 졸업논문과 병행해 집필한 '빙과 프로토 타입'이었다고 한다. 그 최초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학생이었지만 추후 고등학생으로 수정되었다. "대학생은 가려고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고등학생의 세계는 좁은 배움터 안에서 완결"되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를 '다운사이징'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고 단순한 세계이기에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감각으로 반짝일 수 있었던 학창시절. 고전부 멤버들이 그 푸르고 맑은 세계 속에서 영원하기를.

7.162021
  • 슈뢰딩거의 아이들
    최의택 (지은이) | 아작 | 2021년 7월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최의택의 출현"

    COVID-19 4차 대유행과 함께 학교가 또 문을 닫았다. 새학기가 찾아와도 친구를 만나러 학교로 갈 수 없는 이 계절, 최의택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선천성 근위축증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작가가, 계속해서 글을 쓰며, SF라는 문법을 만나 설계해 낸 학교 이야기. '학당'이라는 가상현실 교육 시스템을 배경으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소외된 존재들을 위해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가 유령이어야 하죠?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아이들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유령 같은 게 아니다." (17쪽) '유령'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청소년 범죄소설의 외피를 쓰고 경쾌하게 나아간다.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 도서관인 홍문관의 소설과 비소설 서가 경계 어디쯤, 운동장으로 쓰이는 '육조거리' 같은 설정들이 게임 시나리오 같은 소설의 전개와 만나면 '어딘가 SF스러운 멋짐이 폭발'(39쪽)한다.

    한국 최초의 장편 SF <완전사회>를 쓴 문윤성 작가를 기리며, 심사위원 김초엽, 민규동, 이다혜가 만장일치로 선정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대상 수상작. 김초엽 작가는 '멋진 동료 작가를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고 말하며 최의택 작가를 응원했다. 그 응원이 독자와 맞닿길 바란다.

  •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
    이재호 (지은이) | 어바웃어북 | 2021년 7월 "예술과 신화로 하는 해부학 강의"

    그 유명한 작품,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아프로디테의 유난히 처진 왼쪽 어깨를 눈치챘는가? 보티첼리는 첫사랑 여인을 모델로 아프로디테를 그렸는데 이 여인은 결핵으로 왼쪽 허파가 망가져 있었다. 허파가 상하면 그 위 어깨가 주저앉는다고 한다. 멋진 작품들을 감상할 때 해부학자의 눈에는 아무래도 조금 다른 지점들까지 보이기 마련일 것이다. 뼈대와 근육의 완벽한 표현으로 찬사를 받는 '밀로의 비너스'의 골반은 비뚤어진 상태다. 해부학자인 저자는 이 조각상을 보며, 볼기근에 문제가 생겨 트렌델벨버그 징후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이 책은 프리다 칼로, 샤갈, 고흐처럼 육체적 고통을 지니고 살았던 예술가들의 그림을 보며 그들이 부상을 입었던 신체 기관을 설명하기도 하고, 명화 속 신화를 통해 '림프', '메두사의 머리'처럼 신화 속의 이름을 따온 신체 기관이나 질병을 소개하기도 한다.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해부학자의 시선을 통과하니 또 새롭다. 저자는 예술과 신화, 해부학이 잘 버무려진 이야기를 친절한 도슨트처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외출하기 겁나는 요즘 같은 때, 집콕하며 후루룩 읽기 딱이다.

  • 스키마와라시
    온다 리쿠 (지은이), 강영혜 (옮긴이)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7월 "온다 리쿠, 시대의 여름을 기억하며"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형 다로와 동생 산타. 골동품 업계에는 물건에 얽힌 기담들이 아무렇지 않게 떠돈다. "사람들은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골동품을 사는 것"이라는 철학으로 이에 익숙해진 형제이지만, 얼마 전 업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뇌리에 남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된 건물의 철거 현장에서 한 아이를 봤다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다.

    처음에는 동네 꼬마가 숨어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모두가 목격한 아이의 인상착의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된 형제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도 어쩐지 그 이야기가 아련하게 느껴져 자꾸만 이끌린다. 한 시대의 여름을 기억하며. 골동품과 오래된 카페, 근대의 건축물, 모든 낡아가는 것과 그것이 간직한 기억에 바치는 온다 리쿠의 헌사.

  • 널 위한 문화예술
    널 위한 문화예술 편집부 (지은이) | 웨일북 | 2021년 7월 "40만 명이 선택한 유튜브 아트 채널"

    40만 명이 선택한 유튜브 아트 채널 '널 위한 문화예술'의 시선을 책으로 만난다. 예술가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다른 예술가와는 어떤 점이 달랐고 자신만의 영감과 표현은 어떻게 찾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에게 다가간다.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이야기.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39쪽) 물 위에 떠있는 여인은 현대의 패션 화보 등에서 레퍼런스로 활용될 정도로 인기있는 이미지이다. 과연 당시에도 이 그림이 아름답게 인식되었을까. '널 위한 문화예술' 채널은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청록색과 자주색과 보라색 같은, 당시 꺼려지던 색을 주조로 사용한데다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 거장들이 추구하던 균형미와는 거리가 먼 그림. 오필리아를 그리던 밀레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 순간을' 그리기 위해 (실제로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꽃들의 개화시기는 모두 다르다고 한다.) 집요하게 호숫가를 관찰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 예술가의 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림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모나리자>의 도난 사건과 '역주행' 이야기. 툴루즈 로트레크의 모델이자 최초로 누드화를 그린 여성화가로 남은 빌라동 이야기. 우리를 울게 하는 그림을 그리는 마크 로스코의 이야기. 유튜브 영상처럼 친절한 글을 따라 읽으며 그림을 보는 눈이 선명해진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앙리 마티스의 붉은 방, 고흐의 해바라기로 이어지는 색채 이야기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7.202021
  • 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지은이), 라승도 (옮긴이) | 곰출판 | 2021년 7월 "필름 위에 시간의 현실을 각인한 예술가"

    한때 멸종했던 책이 다시 독자를 찾았다. <봉인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지나간 세기 출간되어 독자의 사랑을 받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책. 절판 후 높은 중고가가 형성되는 등, 많은 팬이 몹시 기다리던 책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책 제목처럼 영화를 위해 '순교'한 타르콥스키의 영화 예술의 미학을 만난다. <이반의 어린 시절>, <솔라리스>, <희생> 등의 작품을 통해 "셀룰로이드 필름 위에 시간의 현실을 각인할 수 있는 영화의 독보적으로 소중한 잠재력"(86쪽)을 구현하는 것을 시도한 예술가가 자신의 신념에 대해 쓴다.

    타르콥스키의 마지막 영화 <희생>(1986)의 이야기. 한 수도승은 죽은 나무에 3년 간 물을 준다. 죽은 나무가 꽃을 피우는 불가능을, 흐르는 시간을 필름 위에 각인하는 불가능을 예술가는 꿈꾼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만 보려고 극장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몇 시간이나마 진정한 예술가들과 진정한 사람들과 함께 진정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22쪽)라는 타르콥스키 팬의 편지에 공감하는 영화팬이라면, 롱테이크로 찍은 화면이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상영되는 스크린을 멍하니 응시하며 그 공간이 우주적이라고 인식해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타르콥스키가 말하는 예술가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 듯하다. 러시아어 원전을 직접 번역한 새 번역본으로 만나는 타르콥스키의 철학. 많은 타르콥스키 팬의 바람처럼, 그의 다른 책 역시 조만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 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지은이), 정영목 (옮긴이) | 교양인 | 2021년 7월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종교와 폭력에 관하여"

    서양보다는 덜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종교가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크게 이의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는 진실일까? 종교는 처음부터 폭력을 품은 채로 탄생했을까? 세계적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방대한 문헌을 통해 여러 종교들을 들여다보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간다.

    그는 고대 중동, 중국, 인도 종교의 기원에서부터 제국 시대의 기독교와 이슬람교, 근대의 종교 개혁, 종교전쟁, 이슬람과 테러리즘, 그리고 현시대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역사를 샅샅이 훑으며 종교와 정치, 그리고 폭력의 관계를 밝혀낸다. 이 광대한 지적 여정을 통해 암스트롱이 찾은 진실은, 종교는 정치 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이라는 통념을 오갈 데 없이 반박하는 설득력 있는 책이다.

  • 예민한 사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은 습관
    니시와키 슌지 (지은이), 이은혜 (옮긴이) | 더퀘스트 | 2021년 6월 "정신과 의사의 습관 처방전"

    재택근무를 해서일까. 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윗집의 청소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얼마 전 구입한 차량용 휴대폰 거치대의 잡소리가 거슬려 구매 후기를 샅샅이 뒤졌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인다. 평소 사무실의 키보드 소리, 슬리퍼 소리, 전화벨 소리에도 업무의 흐름이 끊기기 일쑤다. 내가 소리에 유독 민감한 걸까. 나만 이렇게 예민한 건지, 같은 고민을 나눌 사람은 없는지, 주위의 눈치를 살피느라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신경쓰지 않으려는 생각이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들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정신과 상담을 고민하는 날이 많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다. 자신도 예민한 성격 때문에 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놓는 그는 예민함은 질병이나 장애가 아니어서 의학적 치료법 역시 없음을 고백한다. 대신 그는 스스로 예민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해 낼 수 있었던 57가지 생활 지침들을 소개한다. 일시적 안정을 위한 방어적 대응이 아닌, 성격의 변화까지 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결책으로서 말이다. 간단한 결심이나 습관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저자와 이렇게 고민을 나눌 수 있어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 사랑의 은어
    서한나 (지은이) | 글항아리 | 2021년 7월 ""지금 가장 기다리는 작가" 서한나 에세이"

    좋은 에세이란, 문장과 이야기에 한참 머물게 하고,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고, 모든 감각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전 페미니스트 문화기획자 그룹 보슈BOSHU에서 활동하며 공저 <피리 부는 여자들>을 펴냈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써온 서한나 작가의 단독 저서 <사랑의 은어>가 바로 그런 에세이다.

    서한나의 에세이는 7월의 브루클린 거리의 냄새를 맡게 하고, 이상한 술집에서 취하게도 하고, 타이베이의 식물원 옆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도 하고, 하얀 털뭉치 같은 솜이의 애교에 마음 녹게도 하고, 엄마의 웃긴 말에 울다가도 웃음 터지게 만든다. 특히, 엄마에 관한 글은 몇 편이 더해진다 해도 어떤 애틋함으로 어떤 기쁨으로 어떤 뭉클함으로 읽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가 데려가는 장소들, 만나게 하는 사람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이야기들로 채워진 서한나라는 작은 세계의 경험은 특별하다. 그의 다음 에세이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7.232021
  • 밝은 밤
    최은영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7월 "얼마나 서럽구 외로웠냐고 묻는 편지처럼"

    "그날 할머니와 나는 목성을 봤다. 목성의 흐린 줄무늬를 봤다. 할머니는 아이처럼 감탄하면서 접안렌즈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99쪽) 할머니와 엄마의 사이가 나빠 오래 만나지 못한 할머니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곳은 희령. 지연은 이혼 후 희령에서 천문대 연구원으로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오래 혼자 살아온 할머니는 화사한 빛으로 '일복'을 맞춰입고 동료인 할머니들과 소소한 노동을 하며 자신을 스스로 돌보며 사는 법을 안다.

    할머니와 지연의 공통점은 말이 없고 잘 참는 아이였다는 것. 자신의 어머니가 백정이라는 아이들의 놀림에 어떻게 대처했냐는 지연의 질문에 할머니는 "난 그런 걸 말하는 애가 아니었어."(95쪽)라고 대답하고, 그 대답에서 지연은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같은 쪽)가던 자신을 발견한다.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증조 할머니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지연은 증조할머니 - 할머니 - 엄마 - 나로 이어지는 모계서사의 백 년의 시간과 만난다. "우리 대견한 영옥이. 아가 아처럼 울지도 않구, 마음 다 감추고 사느라 얼마나 서럽구 외로웠어."(115쪽)라고 달래주던 새비 아주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로,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86쪽)던 지연이 치유된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단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도 문장의 질감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작가 최은영이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자꾸 '왜'를 묻곤 했던, 그저 있는 그대로인 내 모습 그대로 용인받고 싶었었던 우리의 유년을, 그 외로움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왜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르냐고, 왜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영영 없어져버리는 거냐고, "천주님에게 사과받고 싶"(124쪽)다고, 언젠가 별이었을, 우리의 몸에 깃든 이 고통은 무엇이냐고. 그 서럽고 외로웠던 이들의 물음에 응답하는 답장. 최은영이 편지를 쓴다. 이제 밝은 밤이다.

  • 쓰는 기분
    박연준 (지은이) | 현암사 | 2021년 7월 "박연준 신작 산문, 시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

    '시는 어렵다. 시는 재미없다.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해본 적 있는 이들에게 박연준 시인이 신작 산문 <쓰는 기분>을 건넨다. 쓰는 일 못지않게 읽는 일마저 어려우니 시란 장르는 어느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박연준 시인은 쓰고 읽는 사람으로서 시 앞에서 망설이고 난처해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시인은 시를 이해하겠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테이블에 놓인 음식처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처럼 그저 받아들이라고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느슨한 마음으로 시집을 한 권 사서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시의 언어에 자신을 맡기고, 시의 기운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이 시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도 말한다.

    시인이 차분히 들려주는 이야기 사이사이 시인의 작품을 포함하여 몇 편의 시가 등장한다. 시인이 안내하는 문장과 작품을 가만한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시를 대할 때 갖춰야 할 마음과 태도가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전보다 시에 조금 더 다가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이진하 (지은이), 정진희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방학은 좀 쉬라고 있는 거 아닌가?""

    방학은 '학업을 놓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방학 때는 주인공 준보 말대로 좀 놀아도 된다.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퇴색되었고 방학 숙제가 더 중요해져 버렸다. 준보는 게임하고 유튜브 보고 친구랑 놀고 싶은데 엄마는 숙제를 하라 말한다. 그리고 아주 달콤한 제안을 한다. 방학 숙제 상을 받으면 원하는 것을 사주겠다는 엄마의 제안! 준보는 이제 최정예 팀을 모아 갖고 싶은 게임기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그런데 최정예 팀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절친 구봉이와 반 1등 경수까지 모았지만, 방학 숙제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어렵기만 하다. 너무 다른 준보와 구봉이와 경수.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거야. 방학 숙제 상을 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방학 숙제보다 우리 사이가 여기서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지?

    방학은 학업을 놓는 시기이긴 하지만 오히려 우정을 돈독히 쌓을 수 있는 시기이다. 코로나로 인해 점점 더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여름 방학의 기쁨과 우정을 잊지 않도록 알려주는 건 어떨까.

  • 자살에 대하여
    사이먼 크리츨리 (지은이), 변진경 (옮긴이), 하미나 (해제) | 돌베개 | 2021년 7월 "자살 이야기의 출발점"

    사람 이름 뒤에 붙었을 때 가장 묵직한 충격을 주는 단어가 '자살' 아닐까. 이 단어는 중력이 커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자살자가 생전에 했던 말들, 그의 삶, 죽음에 대한 애도, 그리워하는 방식까지도. 자살은 존재를 덮고 금기의 이미지만을 부각시킨다. 산 자들은 말을 잃는다. 사이먼 크리츨리는 이 오랜 침묵 앞에서 질문한다. "우리가 때로 삶을 끝내기로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할 때는 왜 그 복잡성을 박탈"당해야 하는 거냐고.

    그는 이 책에서 자살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을 살펴보고 자살에 관한 금기의 근원-기독교적 관점, 공동체에 대한 의무-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데, 자기소유권에 근거한 '자살할 권리'의 논리에서 맹점을 찾아낸다. 자살에 대한 찬반을 모두 비판하고 나서 그는 유서들을 통해 여러 형태의 자살들을 살피고 자살과 삶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크리츨리는 이 책을 쓴 동기를 "자살을 둘러싼 어휘를 넓히고, 그 현상을 기술하고 이해할 더 많은 단어를 찾으며, 공허하고 진부한 말보다는 공감으로 자살을 대하는 것"이라고 썼다. 세대나 시대를 쪼개 자살의 추이와 원인을 파악하는 사회학적 연구도 중요하지만, 자살에 대한 해묵은 인식의 변화를 위해 언어를 발굴하는 것이야말로 당장 함께 해나가야 하는 작업 아닐까. 금기의 이미지 앞에서 계속 입을 다물고 있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세상에서. 이 책은 그 출발점이다.

7.272021
  •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이미예 (지은이) | 팩토리나인 | 2021년 7월 "올 여름에도 좋은 꿈 꾸세요"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꿈 백화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두 번째 이야기. 1년차 판매 사원이 된 페니는 첫 연봉협상도 하고 '꿈 산업 종사자'로 인정을 받아 '컴퍼니 구역' 접근 권한도 얻는다. 하지만 '민원관리국'에서 페니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꿈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이들. 꿈자리가 뒤숭숭한 1단계 민원 제기 고객부터 꿈꾸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3단계 고객까지, 다양한 불만을 만나며 페니는 꿈을 파는 백화점의 실무에 더 깊이 다가가게 된다. "왜 저에게서 꿈까지 뺏어가려고 하시나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 792번 단골 손님. 이 손님에겐 꿈이 왜 고통이 된 걸까?

    '영화든 드라마든 재밌는 이야기를 만나면 ‘왜 재미있을까’ 분석'(인터뷰 중)한다고 말하는 작가 이미예가 설계한 행복한 꿈 이야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상상을 바탕으로 따뜻한 문장으로 우리의 밤을 위로한다. 무릎 아래가 없는 채 태어난 꿈 제작자 킥 슬럼버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범고래가 되는 꿈'을 제작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꿈을 설계할 수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파자마 파티의 초대장이 매일 밤 찾아온다. 모든 준비는 끝난다. 그저 눈을 감고 편히 있는 것만으로도.

  • 강방천 & 존리와 함께하는 나의 첫 주식 교과서
    강방천, 존 리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1년 7월 "좋은 기업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법"

    운전과 주식투자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거의 모든 운전자는 자신이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긴장감은 잊은지 오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몇 차례의 매매를 통해 수익을 맛보고 나면 투자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뿌듯해한다. 전업 투자를 살짝 고민하기도 한다. 불의의 사고를 경험하거나 큰 금전적 손해를 입고 나면 그러한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하지만 기본의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 큰 손해를 감수해 볼 필요는 없다. 한번 돌이켜보자. 지난 수개월 내지 1년간 얼마나 많은 매매를 했는지, 그렇게 얻은 수익은 얼마인지, 그 과정에서 마음을 졸이며 신경쓰느라 허비한 시간의 가치는 얼마나 될지를 말이다.

    내로라하는 투자 전문가들이 10년 정도를 내다보라고 조언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시장은 다르다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존리 대표는 말한다. "결국 주식은 시간과 확신의 문제"라고. 큰 수익을 맛보지 못하고 잦은 매매를 하게 되는 건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강방천 회장은 "좋은 기업은 반드시 상승한다는 확신"을 가지라고 덧붙인다. 주가지수나 저점 고점 등 매매 타이밍을 고민하지 말고 좋은 기업을 찾는 일에 몰두하자는 말이다. 주식을 사놓고 잊어버린 사람이 나중에 가장 큰 부자가 되었더라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써 부정하려 해도 주식투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대가들의 조언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 끝까지 쓰는 용기
    정여울 (지은이),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정여울의 글쓰기 QnA"

    당신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와 1:1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해 보자. 다정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글쓰기에 관한 문답을 계속해서 주고받을 수 있다고. 영감을 어디에서 찾는지, 그것이 말라버리진 않는지. 어떤 책이 도움 되는지,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글쓰기가 힘들지 않은지. 자료조사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다면 이보다 큰 공부가 있을까. 대화를 모조리 기억하고 기록해두려 애쓸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록과 같다.

    정여울은 첫 글쓰기 책인 이번 책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 소신, 노하우 등을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글쓰기 책에서도 그는 특유의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는 여전하다. 딱딱한 원칙은 빼고 마음가짐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위주로 전하니, 강연보다는 고민 상담에 가깝다. 농도가 진한 고민 상담은 희망과 동력이 되어준다. 그치지 않고 매일 쓰는 그의 옆에서 함께 달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타르, 맥스 글래드스턴 (지은이), 장성주 (옮긴이) | 황금가지 | 2021년 7월 "2020 휴고.네뷸러.로커스 상을 휩쓴 화제작!"

    '시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두 종족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간의 가닥'을 따라 먼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역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방식으로 공격과 방어가 진행되는 전투. 그 무대는 침몰하기 전의 아틀란티스 섬, 로마의 카이사르 암살 현장, 대영제국의 우아한 찻집, 칭기즈칸의 기마 군단을 비롯한 역사 속의 다채로운 시공간을 오간다.

    하나의 시간 전쟁에서 임무를 완수한 최정예요원 '레드'는 죽어가는 세계의 잿더미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봉투에 '읽기 전에 태워 버릴 것'이라 적혀있는 위험한 편지가 상대 진영의 요원 '블루'가 보낸 함정인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에 이끌린 레드는 그 서신을 읽고만다. 고심 끝에 레드는 답장을 보내고, 조롱과 도발로 시작된 묘한 편지 교환은 서로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와 무수한 갈래의 시간 가닥을 뚫고 비밀스럽게 이어지는데… "매혹과 미혹, 광채와 광기, 암시와 암호로 가득한 이야기."라고 말하며 켄 리우가 추천한 작품.

7.302021
  • 엄마 도감
    권정민 (지은이) | 웅진주니어 | 2021년 7월 "엄마가 태어났습니다. 나와 함께."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 얼굴은 내가 배 속에서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엄마는 생후 100일까지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이 드는가 하면, 아주 개인적인 일(예를 들면, 배변 활동)까지도 아기와 같이 하려고 한다. 내가 울면 아무리 밤이 깊어도 치타보다 빠르게 달려오는 엄마, 날마다 택배를 잔뜩 배달받는 엄마 (엄마는 내 장난감을, 나는 택배 상자를), 가끔은 숨바꼭질 놀이를 좋아하는 엄마 (소파 뒤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이불 속에서 울고 있는), 엄마의 엄마를 만나면 완전히 달라지는 엄마...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에서 식물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관찰했던 권정민 작가가, 이번에는 아기가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다. 아름다운 외모에 모성애로 똘똘 뭉친, 멋지고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머리는 까치집에, 티셔츠와 수면 바지 차림으로 졸기 일쑤인, 밤마다 육아백과를 펼치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허둥대고 당황하고 울기도 하는, 하지만 24시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가 보인다. 모두 아기를 바라보는, 가장 고귀한 순간에 어쩌면 가장 힘들고 외롭고 소외되었을 엄마. 처음 엄마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세상 모든 엄마에게 무한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이반지하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퀴어,노동자,생존자,유머리스트,예술가 '이반지하'"

    이반지하는 누구인가. "단호하다. 거침없다. 말도 안 되는데 말이 된다. 계산 없이 계산되어 있는 쇼를 만든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간단명료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 '이반지하'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 강렬한 표지와 제목으로 일단 시선을 사로잡는 이반지하의 첫 책을 읽고 나면 그를 어떤 하나의 존재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에 깊이 동감할 것이다.

    퀴어, 노동자, 생존자, 유머리스트, 예술가 총 다섯 가지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이반지하'에 관한, 그가 경험해온 세계에 관한 진솔한 기록이다. 깊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지나 유니크한 예술 세계를 이룩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거침없는 문장으로 시원하게 펼쳐 보인다.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장착하여 슬퍼하거나 좌절할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각 글의 말미에 실린 촌철살인의 '이반지하의 말'은 놓치거나 잊고 사는 감각을 확실하게 깨워준다. "뭘 하든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요 마음대로 사시면 돼요."

  • 열두 살 장래 희망
    박성우 (지은이), 홍그림 (그림) | 창비 | 2021년 7월 "박성우 시인의 어린이를 위한 진짜 장래 희망 안내서"

    아홉 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홉 살 마음 사전>을 펴냈던 박성우 시인이 이번엔 열두 살을 위해 돌아왔다. 한창 자신의 장래를 위해 고민할 첫 번째 시기. 최근 뉴스를 보니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 1위는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변화한 시대에 부합하는 직업일 테다. 그렇다. 결국, 장래 희망은 직업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 내 꿈은 충족되거나 사라지는 걸까? 장래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작가는 구체적인 직업을 안내하고 되는 법을 설명하지 않고 삶의 방향으로 삼으면 좋을 가치들을 설명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을 목표로 할 수 있으며 '지구를 사랑하는' 요리사가 될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하고 어른 말씀을 잘 듣는 아이가 커서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일도 꽤 멋진 장래 희망이라는 걸 이 책은 알려줄 것이다.

  •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은이) | 엘릭시르 | 2021년 7월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한 남자가 사체를 호수에 유기한다. 남자는 교사, 유기당하는 사체는 그가 가르치던 학생이고 둘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시작해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라는 문장으로 맺는 이야기의 프롤로그. 이제 우리는 스릴러 소설의 독법대로 이야기의 단서를 쫓아 범인을 찾아야 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집중하는 사이, (대부분의)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할 기회를 놓친다. <유괴의 날>, <내가 죽였다>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해온 소설가 정해연은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인물과 인물 사이를 오간다. 누가 다현을 가장 미워했을까? 등장하는 인물마다 알리바이와 동기를 짜맞추며, 우리는 범인이 '누구'인지에 집중한다.

    "준후는 인간의 방심을 믿었다." (54쪽)라는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스릴러를 읽는 독자들 역시 스릴러의 문법에 익숙해져 있다. 익숙함의 눈으로 이 소설을 보다보면 결말의 반전이 놀라움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스포 금지', '전무후무한 결말' 등을 홍보 문구로 내건 출판사의 소개글은 (적어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13.67> 같은 '반전 미스터리'를 기대하는 독자를 위한 올 여름의 선택. 스포일러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포'를 밟기 전 경험하는 것이다. 개봉 당일 그 어떤 인터넷 게시판도 찾아보지 않고 바로 극장에 가는 그 마음으로, 이 책을 가급적 빨리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