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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021
  •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4월 "미래는 이미 이곳에, 2021년의 얼굴들"

    젊은작가상이 2021년의 봄을 알린다. 수상자로 호명된 작가는 전하영,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모두가 젊은작가상을 통해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다. 아직은 낯선 작가를 만나는 설렘. 아직 단독 작품집을 출간하지 않은 작가, 전하영이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55쪽)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 중 '매사에 분명한 여자'를 맡고 있다. 매혹적인 친구 '연수' 옆의 여자1을 맡은 여자. 이 성애의 화살표에서 '소외된' 여자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혹은 자신에게만 세상의 다른 면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때 영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나는 이제 중년에 가깝고, 계약직 행정사무 보조로 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현재의 나는 대학 시절의 강사 '장 피에르'와 '연수', 그리고 '나'로 이루어진 술자리와 파리 여행 같은 것을 기억해낸다. 연수의 허벅지를 만지던 장 피에르의 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우리를 매혹했던 장 피에르의 유약하고 책임감없는 기질이 2021년엔 어떤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할지. 우리가 사랑했던 예술의 자리에 놓인 잔해를 우리가 어떤 말로 정의해야 할지, 이제 우리는 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바닷가로 떠밀려온 쓰레기를 보면 참담한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줍게 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소설은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56쪽)라는 연수의 문자와 함께.

    "어느 날 두 사람은 학생회관 옥상에 앉아 부당한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다 그 미움을 사랑으로 바꿔 특별한 목적 없이 세상을 향해 온정을 베푸는 일을 도모했다." (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 91쪽) 앙헬, 체, 대니 같은 이름들. 주어진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소통하는 김멜라의 사람들처럼. '과학 소녀'가 나오는 소설을 쓰는, '껑충한 남자 옷을 걸친 여성'이 아닌, '경준'으로 불리어야 마땅한 한정현의 사람들처럼, 다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소설을 읽는다. 그 온정이, 낙관이, 우리의 2021년을 기록한다.

  •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지은이) | 미디어창비 | 2021년 4월 ""이 시간을 건너면 다시 여행이 찾아올 거야.""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하루에 백 번쯤 내뱉지만 현실은 꽉 막힌 공간에 있는 우리에게. 휴가가 있더라도 쉽게 여행을 선택할 수 없는 우리에게. 여행의 기쁨을 잃어버린 채 마스크 쓰며 답답한 일상을 반복하는 우리에게.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작가가 그런 우리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샌프란시스코, 가마쿠라, 베네치아, 아를, 리옹, 더블린, 포틀랜드, 밀라노, 우붓, 제주도, 교토. 언젠가 밟았던, 여행했던 그곳들의 기억을 불러내어 가장 좋았던 순간의 이야기를, 가장 다정한 문장으로 써내려간다. 한 통의 편지에는 한 번의 여행이 담겨 있어 읽는 각자의 마음이 제일 먼저 닿는 곳부터 읽으면 된다. 어딜 펼쳐도 이국의 풍광과 여행지에서만 겪을 수 있는 우연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김민철 작가의 편지들은 우리가 잠시 잊은 여행의 감각을 깨워주고, 이 시간을 건너면 다시 여행이 찾아올 거라며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 싱크 어게인
    애덤 그랜트 (지은이), 이경식 (옮긴이)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3월 "알고 있던 것들을 잊어야 할 때"

    이미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경험과 학습 등으로 한번 자리잡힌 생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시험을 볼 때 답을 고치면 십중팔구 틀린다거나, 개구리를 찬물에 넣고 끓이기 시작하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저자 애덤 그랜트는 진리처럼 여겨지는 그 이야기들을 연구를 통해 '다시 생각해' 봤더니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오랜 믿음이 바뀔지는 미지수다. 우리에겐 이미 형성된 지식과 견해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옷과 신발, 휴대폰은 최신형으로 쉽게 바꾸면서 생각은 수십 년간 바꾸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긴급히 도망쳐야 하는 순간에도 무거운 장비를 버리지 못하고, 특급호텔이 극심한 불황에도 '1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다. 다시 생각하기는 배우고 알고 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정신적 유연성을 기르는 일이다. 다행히 호텔들은 재택근무자와 호캉스족을 위한 무박상품을 내놓고, 항공사들은 무착륙비행을 통해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우리 개인과 기업에겐 다시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당연한 것들 (한정판 퍼즐 에디션)
    이적 (지은이), 임효영, 안혜영, 박혜미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3월 "이적 "다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 힘껏 웃어요." "

    "코로나19로 마음이 복잡한 날들, 희망을 꿈꾸며 갑자기 노래를 지었어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2020년 4월, 가수 이적이 SNS를 통해 불러준 노래 '당연한 것들'. 금세 지나갈 거라는 막연한 바람이 무색하게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한없이 두렵고 우울해지던 그때. 입학식을 하고, 꽃놀이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름 휴가를 가는 평범한 일상, 당연했던 것들이 너무나 그립던 그때. 그 모든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불러준 노래 '당연한 것들'.

    이 노랫말에 호주, 미국, 한국 등 각기 다른 곳에서 코로나를 맞은 세 명의 그림 작가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풍경과 사람들,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함께 담아 그림을 그렸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화사한 봄꽃, 뜨거운 모래사장과 시원한 파도, 박수와 함성이 가득한 콘서트장과 모두 함께 모여 과일을 수확하는 과수원...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한장 한장 그림책을 넘긴다.

4.62021
  • 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은이), 서제인 (옮긴이) | 엘리 | 2021년 3월 "황금사자상 수상작 '노매드랜드' 원작!"

    "이게 새로운 은퇴자들의 시대예요." 책 속 인물의 말 한마디가 이 책에 대한 가장 간략한 소개 같다. 집 대신 차에서 살며 평생 일하는 삶, 미국 노년층의 뉴노멀이다. 책은 이 노마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좇는다. 평생 일했고, 성실했고, 전문 분야가 있었고, 한때 다른 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했고, 존경받기도 했던 이들은 지금 길 위에 있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열심히 살았지만 삶에서 튕겨져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는 상상하지 않았던 미래라도 세상은 이들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존의 물류창고는 차에서 살며 일하는 노년층을 환영한다. 값싸고 성실하고 금방 교체되는 인력, 사용자 입장에서는 반길 조건이다. 노마드 노동자들은 물류창고에서, 캠핑장에서, 놀이공원에서 쉼 없이 노동하며 하루하루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열악한 풍경이지만 이들의 삶이 온통 잿빛인 것은 아니다. 차 안에도 기쁨과 낙관, 새로운 희망의 자리는 있다. 이들은 서로를 붙잡고 꿈을 꾼다. 인생의 바닥에서 여전히 농담할 여유를 찾고 삶을 긍정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왜 늘 애쓰는 건 개인뿐일까. 파괴되고 배신당한 삶들에 대한 책임마저 개개인에 맡긴다면, 국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고 굵은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 곁에 있다는 것 (양장)
    김중미 (지은이) | 창비 | 2021년 3월 "김중미가 다시,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김중미가 다시,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장소를 이야기한다. 행정구역이 되기도 하고 마을이 되기도 하는 그곳의 이름은 '은강'. 예전엔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살던 판잣집(<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있었고, 현재는 쪽방촌과 빌라와 아파트 단지가 혼재한다. 재개발 이후 어떤 가정은 아파트로 떠나갔지만, 아직도 은강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국적이 다르거나, 장애가 있거나, 불운했던 어떤 사람들. "배를 곯지 않는다고 가난이 없어진 건 아니다." (17쪽) 은강방직 해고 노동자인 이모할머니의 삶을 소설로 남기고 싶은 지우.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호조무사를 꿈꾸는 강이. 은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대 진학을 준비하는 여울. 세 친구는 서로를 위해 어깨를 내어주며 의좋게 한 시절을 지낸다. 은강의 '가난'마저 상품화하겠다는 쪽방 체험관 정책이 발표되며 세 친구는 자신의 할머니, 어머니가 그랬듯 분노한다.

    보이지 않는, 보고 싶지 않은 곳에 여전히 가난이 존재한다. '체공녀 강주룡'의 시대와,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고 해냈던 은강방직 '여공'들의 투쟁의 시대와, 7미터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여성 노동자의 시대. 강경애의 소설과 김중미의 소설 사이의 시차. "임용고시를 단박에 붙었다는 영웅적 서사"(25쪽)가 쉬이 허락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관해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내가 살던 '안산시 원곡동'을 잘 기억하려 하지 않던 나는, '성적이 좋은 상위권 아이들은 면학실로 가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73쪽)하던 내 학창시절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이 시대 소녀들의 삶이 이전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소설이 향하는 곳과 자신의 삶이 향하는 곳이 일치하는 작가 김중미가 전하는 뜨거운, 혹은 따뜻한 이야기. 감독 이길보라와 작가 은유가 추천했다.

  •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은이), 송태욱 (옮긴이) | 비채 | 2021년 4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신작"

    홋카이도 동부의 작은 마을 에다루에 사는 소에지마 가족 3대. 할머니 요네의 탄생부터 손자 하지메의 귀향, 그리고 그 곁을 지킨 네 마리의 홋카이도견들까지. 약 백 년에 걸친 한 가족의 역사가 소설 속에 잔잔히 흐른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인연 속에 머무르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인간의 생을 담담히 그려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경험한 슬픔과 기쁨과 아픔을 이야기 안에 담아 완성한 장편"이라는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말이 소설의 분위기가 전작들에 비해 유난히 고요하고 정적인 까닭을 짐작케 한다. "별처럼 밤의 시가지처럼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소설 속 표현처럼, 하루하루의 희로애락도 이렇게 커다란 정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조망하면 그저 아름다울 뿐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 치도 삶을 미화하지 않고 지독하게 객관적이건만, 어째서 이리도 아름다운 것일까!”라는 감탄사를 덧붙이며 가쿠타 미쓰요가 추천했다.

  • 제로 웨이스트 키친
    류지현 (지은이) | 테이스트북스 | 2021년 3월 "친환경 식생활이자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에 대하여"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하자'라는 구호를 통해 냉장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식생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냉장고를 최소화하는 삶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냉장고에 반드시 넣어야 하거나 혹은 넣지 않는 게 좋은 재료들을 자세히 소개한 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 요리와 남은 식재료로 만드는 독창적인 요리들 또한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모든 식재료와 음식물을 냉장고에 일단 '넣고 보는' 현대인들로서는 냉장고를 최소화하여 생활한다는 것이 다소 당황스럽고, 비효율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도 냉장고 (및 냉동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고 사과를, 양파를, 대파를 사고 있는 나의 모습은 분명히 이 지구에 유익한 일은 아닐 것이다. 주방에서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실천, 이 작은 변화가 모여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어쩌면 이 지구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4.92021
  • 도움받는 기분
    백은선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4월 ""백은선의 시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시집 <가능세계>,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의 신작 시집.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의 언어로'라고 선언하며 시작하는 시. 시집을 여는 첫 시는 <클리나멘>이다. 나이테처럼 구불구불 퍼지는 말의 행렬. 이 행에 눈이 멈춘다.

    모든 여자가 스물한 살이었거나
    스물한 살이 될 거라는 게
    고통받을 거라는 게

    보는 눈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클리나멘> 중

    감히 납작함을 무릅쓰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에 실린 시인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본다. "스물한 살부터 스물여덟 살 때까지, 매일 700칼로리를 계산해서 먹었고 그 이상은 먹지 않았다." (75쪽) '스물한 살'의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게 맞았을까. 우리가 존재한 그 방식이 예술적인 게 맞았을까. 다시 <클리나멘>속, 시인은 변주하며 다짐한다. "아름다움을 갖는 것 /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 것 /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

    "고전들의 정수만 두고 다시 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 (<픽션다이어리> 부분) '보르헤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쓴 시' (<졸업> 부분)에서 시인은 어딴 서사에 대해선 '빻았다'는 평을 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이전'과 같은 눈으로 이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점은 확실해보인다. 나침반을 잃은 탐험대처럼 헤맬 수 밖에 없는 말들. 그리하여 이 시집에서 백은선이 취하는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문장을 숨기기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많은 말 속에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니야 그냥 두는 거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부분) 라고 말하며 '그냥 둔' 많은 말들. "대신 무엇을 쓸 수 있을까요? 떠올렸다고 하면 될까요? 봤다고 하면 느낀다고 기억한다고 하면 뭐가 다른가요? 그런 안일 속에서 쓰며 쓰며 쓰며" (<우리가 거의 죽은 날> 부분) 이어지는 긴 시를 따라 읽으며 노고를 무릅쓰는 사랑을, 부스러지기 위해 나아가는 용기를 읽는다. "한국 시에 벌어지는 사건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시인 황인찬의 추천사 중) 순간. 백은선의 시집이 2021년에 도착했다.

  • 몽 카페
    신유진 (지은이) | 시간의흐름 | 2021년 3월 "파리, 어느 카페의 기억과 이야기들"

    두 권의 산문집과 소설을 썼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번역한 신유진 작가는 이십 대와 삼십 대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시간을 머물렀던 곳은 카페다. '혼자인 채로 테이블만큼의 거리를 두고 타인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들렀던 프랑스, 파리의 어느 카페들. 작가는 카페의 호두나무 테이블의 상처, 커피와 담배, 카페에서 나누었던 대화, 카페에서 바라본 풍경과 같은 작은 기억과 이야기들을 불러내어 작고 예쁜 한 권에 담아 독자들에게 건넨다.

    때로는 한국인의 시선에서, 때로는 파리지엔느의 시선에서 바라본 파리 카페의 시간들이 감각적으로 펼쳐진다. 바다를 등진 카페에서 '살겠다'라는 말을 내뱉었던 순간을, 사랑하는 연인과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를, 카페를 가득 채운 특유의 공기를 고스란히 담은 각각의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지금, 여기, 파리의 시간에 머물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음을 붙잡는 문장과 오래 기억하고픈 장면이 자주 등장하여 아껴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정도언 (지은이) | 지와인 | 2021년 4월 "<프로이트의 의자> 정도언 10여 년 만의 신작!"

    삶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운명의 몫, 사건에 대한 해석은 나의 몫이다. 나를 둘러싼 일들을 어떤 이야기로 읽어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정신분석가 정도언 교수는 정신분석이 인생의 이야기를 고쳐 읽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이번 책은 상실감, 환상, 자기애, 정체성, 초자아, 열등감, 공격성, 고독감의 8가지 주제를 다룬다. 그는 삶의 면면에서 관성적 사고 아래 작동하고 있는 무의식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적극적으로 기술을 제시한다기보단 담담하게 생각을 풀어내는데, 30년 간 마음의 세계를 탐구해 온 그가 부드럽게 꺼내어놓는 무의식에 관한 진실들이 마음을 툭툭 치고간다. 우리 각자 인생의 서사를 건강하게 구성하도록 돕는 책이다.

  • 슈퍼팬
    팻 플린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4월 "구독자, 회원수, 트래픽 너머"

    어떤 책이 소개되었다 해서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뭐 이젠 구독자 10만 정도는 놀랍지도 않은 시대가 된 것 같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유명 기업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구독자들 중 '찐팬', 이를테면 해당 유튜버가 책을 펴냈을 때 바로 서점으로 달려갈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그 수를 소극적으로 1%만 잡아도 1천 명인데, 이 책은 그 소수의 추종자들을 '슈퍼팬'이라 부른다. 시간, 돈, 그리고 감정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들은 때로는 죽어 가던 회사를 살려 내기도 한다. 그러한 슈퍼팬만 있다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어도 먹고살 것 같고, 어떤 물건이든 1천 개 정도는 충분히 팔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슈퍼팬으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당신을 발견한 순간 즉시 슈퍼팬이 되지 않는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급함을 버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4단계의 팬덤 피라미드를 차근차근 밟아 오르는 일이다. 물론 그 여정은 쉽지 않다. 보다 적극적인 유대가 없다면 그들은 계속 머무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 단계의 사람들을 상위 단계로 옮기는 전략적 접근은 그래서 필요하다. 채널의 구독자든 물건을 구매해 주는 고객이든, 봉사하는 마인드로 '청중들'을 대해야 함은 물론이다. 기억하자. 모든 성공은 가장 아래 단계인 '비정기적 청중', 즉 우리를 우연히 알게 된 이들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4.132021
  •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은이) | 창비 | 2021년 4월 "월급만으로는 부족해! 장류진과 달까지!"

    2006년 데뷔한 야구선수 류현진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그 기록은 아직 류현진의 것이 유일하다. 시즌은 매해 치러지고 신인왕은 매해 탄생하지만, 이른바 '괴물 신인'의 출현은 (안타깝지만) 매 해 있는 사건은 아니다. 신인작가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의 출간 역시 매 해 찾아오는 유형의 사건은 아니었다. 판도를 뒤흔든 한 권의 책. 화제의 작가 장류진이 장편소설로 독자를 찾았다.

    초코밤으로 유명한 마론 제과에 입사한 세 여성.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팀에서 겉돌고 있다. 스낵팀의 다해, 구매팀의 은상, 회계팀의 지송. 인사평가는 늘 '무난'을 넘지 못하고, 상사는 존경할 만한 구석이 없다. 자신의 월급은 모두 모으고 부모님의 지원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 특유의 '해맑음'과는 다른 낯빛을 지닌 그들. 디테일을 잘 알아보는 구석진 곳에 선 이들, "우리 같은 애들"(193쪽)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가 된다. 이 우정을 이끌어나가던 언니, '은상 장군'이 어느 날 탑승한 코인 열차, '이더리움'의 등락과 함께 이들의 우정도 거대한 낙차에 휘말리게 되는데.

    '달까지' 라는 표현은 차트 급상승을 기원하는 코인 시장 참여자들의 은어라고 한다. 2017년의 코인 열풍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더리움의 5년 간의 차트를 펼쳐놓고 시점을 맞추어가며 '팔아야 해, 팔면 안 돼' 이들을 응원하며 이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 어디까지 간다고?" 이 외침이 서늘하게 들리는 것은 일확천금이 아니고선 '모든 게 유려하고 우아'(179쪽)한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열차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 소설가 정세랑은 "장류진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은 많겠지만 아무도 따라 하지 못할 것이다. 장류진이 쓰는 소설은 장류진만 쓸 수 있다."라고 이 소설을 이야기한다. 적절하게 달고 적절하게 쓰다. 이 미묘한 맛의 배합은 장류진만이 할 수 있다.

  • 생각의 쓰임
    생각노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생각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어디 새로운 건 없을까? 좀 색다른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이러한 고민은 비단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등 창작자들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마케터와 기획자들은 새롭고 신선한 '한 방'을 찾아 머리를 싸맨다. 기획안 마감일 며칠 전부터 속이 쓰리고 출근이 두렵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갑자기 떠올라 우리를 구원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그러나 포기하긴 이르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기획의 단서는 도처에 널려 있다.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을 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재료가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을 붙들 방법은 없을까? 동료 및 후배 마케터, 기획자들을 위해 '생각을 쓰는' 자신의 노하우를 들려주는 저자에게 주목해 보자. 블로그 등 콘텐츠 활동에 잔뼈가 굵은 그는 수많은 인풋 소스들에서 비롯된 생각들을 어떻게 끌어모으고 어떻게 적시 적소에 활용하는지,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까지, 같은 실무자로서 고민했던 모든 흔적들을 아낌없이 담았다. 최고의 재료는 신문 같은 정제된 콘텐츠, 그 중에서도 책이 으뜸이라 말하는 그의 생각이 특히 반갑다.

  • [세트] 디테일 사전 : 시골 편 + 도시 편 - 전2권
    안젤라 애커만, 베카 푸글리시 (지은이), 최세희, 성문영, 노이재 (옮긴이) | 윌북 | 2021년 4월 "호그와트, 고담시티... 내 캐릭터의 삶이 담기는 세계 짓기"

    대부분의 스토리텔링에서 배경은 배경 이상이다. 호그와트나 고담시티처럼 환상적인 세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말할 때, 세로로 긴 창문 밖으로 여름의 나무들이 정열적인 생기를 뿜어대는 대저택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보리 톤으로 싹 인테리어한 오피스텔에 사는 셜록 홈즈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사는 배경 속에서 3D로 살아난다. 이야기가 절로 흘러나오는 배경을 찾아헤매는 작가들을 위한 구세주가 나타났다.

    도시 편과 시골 편으로 나뉘어 출간된 이 책은 장소에 관한 백과사전이다. 여러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에 관한 상세한 묘사와 해당 배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 그곳에 있을 법한 사람과 묘사 예시까지 모자람 없이 담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글쓰기 코치인 저자들이 글 쓰는 이들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최대한 도움 줄 수 있는 것들을 꼭꼭 눌러담은 것 같다. 작가들의 책상, 손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이 책이 자리 잡고 앉아 언제든 휘릭휘릭 넘겨볼 수 있는 위안이 되길 바란다.

  • 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
    마틸다 우즈 (지은이), 아누스카 아예푸스 (그림), 김래경 (옮긴이) | 양철북 | 2021년 4월 "마법은 절망의 순간에 찾아와 손을 내민다"

    신비로운 섬 알로라. 하늘을 나는 물고기 덕분에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골목길 덕분에 관광객과 화가들이 모이는 마을이었다. 이 아름다운 섬에 어느 날 전염병이 돌아 가족을 모두 잃은 목수 알베르토. 가족들을 위해 관을 짜게 된 후로 그는 마을의 유일한 관 짜는 사람이 된다. 전염병이 사라진 후 30년 동안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꼬마 티토와 그의 반려새 피아. 이질적이지만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셋의 조화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커다란 세계로 한 발짝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 마틸다 우즈는 첫 작품인 <소년과 새와 관 짜는 노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으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연상케 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주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의 따뜻한 문장은 동화에 걸맞는 희망을 가득 품고 있다. 환상적인 도시인 알로라를 구현한 그림 작가 아누스카 아예푸스는 첫 그림책으로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짙은 파란색의 그림은 환상의 나라로 독자를 이끄는 데에 충분하다.

4.162021

  • 김홍모 (지은이) | 창비 | 2021년 4월 "세월호 7주기, 여전히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돕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이다. <홀>은 <좁은 방> <내가 살던 용산> 등 우리 사회가 겪었던 그간의 비극에 글과 그림으로 힘을 보태왔던 김홍모 작가가 2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 1년 동안 독립웹툰플랫폼에서 원고료 없이 연재했던 작품으로 1,066명이 참여한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정식으로 출간이 되었다.

    책은 세월호 참사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우리 또한 그 상처에 직면하게 한다.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고 응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책을 펼치면 <홀> 출간에 힘을 실어준 이들의 명단이 앞, 뒤 총 4면에 걸쳐 빼곡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만화를 함께 읽는 것, 바로 우리가 세월호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우주를 꿈꾼다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은이), 고정아 (옮긴이) | 밝은미래 | 2021년 4월 "<안녕, 우주> 작가의 두 번째 뉴베리 수상작"

    2021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1986년 1월, 핼리 혜성의 관측을 위해 챌린저호 발사가 지대한 관심을 받던 시절. 미국 델라웨어주에 사는 세 남매의 한 달을 그린 이야기이다. 좋아하는 농구에 재능이 없어 고민인 캐시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짜증이 나고 불만이 가득한 피치, 그리고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투명 인간이라 생각하며 자신감을 잃어가는 버드가 그 주인공이다.

    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존재의 의의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구 바깥의 일이 대수일까. 엄마와 아빠는 서로 싸우기 바쁘고 세 남매도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사람들 수만큼의 우주가 있다고 한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우주를 도는 책 속 주인공들은 지구 밖 우주와 완전히 멀어질 수 없다. 실제 역사 속 챌린저호의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각자의 역사 속에서 그 도전은 완전히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 키키 키린의 말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은이), 이지수 (옮긴이) | 마음산책 | 2021년 4월 "마음이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리 해도 재미없거든"

    책의 끝부분에 실려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추도문에서, 그는 키키 키린과의 관계를 "'마음이 맞았다'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은 <키키 키린의 말>이지만 품은 내용은 키키 키린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와의 관계에 더 가깝다. 삶의 어느 순간에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한데 엮여 나왔다.

    어떤 이의 특별함이라는 것은 누군가 발견해내기 전까진 그저 유별난 특성일 뿐이다. 책엔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키키 키린이 기울인 노력과 그 보이지 않는 구석을 매번 발견해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대화가 변주를 거치며 여러 차례 나온다. 특별함과 그 특별함을 알아보는 특별함. 이를 고레에다는 "마음이 맞았다"는 말로 표현했지만, 분명 이 표현보다는 더 진한 관계가 둘 사이엔 있다.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의미를 창조해낸 십 여년의 세월 간 둘 사이에 쌓인 신뢰와 우정 같은 것들이 대화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담백한 진실과 진심이 오가는 여섯 차례의 인터뷰 끝엔 고레에다의 추도문이 있다. 어딘가 쿵 내려앉는 마음을 느끼며 읽다 보면 아쉬움과 애틋함이 번져온다. 이 관계의 마무리마저 참 이들스럽다 싶다. 이들의 영화를 보고 난 후 매번 그랬던 것처럼, 책을 덮고 나서 한숨을 한번 폭 쉬었다.

  •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
    리타 맥그레이스 (지은이), 김원호 (옮긴이) | 청림출판 | 2021년 4월 "변화하고 있어야 살아남는다!"

    심한 규제 탓에 시장에 새로이 진입할 수 없었던 많은 음향 기업들이 무선 이어폰에 탑재되고 있는 음성증폭기술의 발전 덕에 보청기와 이어폰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비싼 가격과 불편한 착용감 때문에 보청기를 멀리했던 수요층들이 어디로 움직일지는 뻔한 일이다. 이제 보청기 시장은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승자는 일찌감치 음성증폭 이어폰을 준비하던 기업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당시의 그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단 말인가? 세계적 경영 구루인 저자 리타 맥그래스가 그 비결과 해답을 찾는다. 희미한 변화의 징후를 한발 앞서 포착하는 법,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마주하는 기업과 리더, 그리고 우리 개인들의 자세에 대해서다.

    인텔 회장을 역임한 앤드루 그로브는 일찍이 비즈니스의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는 지점을 '전략적 변곡점'이라 칭하며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조건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에 없던 변곡점을 목격하고 있다. 모두가 코로나 때문이라 말하지만, 사실 변화는 단기간에 실현되지 않는다. 기업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가 현실로 다가온 시점에서 시도하는 변화는 이미 늦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비대면 시대를 예견하고 준비해 온 기업들은 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할 자격이 있다. 전기차 혹은 메타버스 시대의 진짜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어떤 기업이 어떻게 변화하여 살아남을 것인가? 다가올 미래가 자못 흥미진진하다.

4.202021
  • [세트] 매일과 영원 1~2 세트 - 전2권
    문보영, 강지혜 (지은이) | 민음사 | 2021년 4월 "매일의 기록과 문학론 '매일과 영원' 시리즈"

    작가들의 매일의 기록과 문학론을 담은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이 출간되었다. 문보영, 강지혜 두 시인이 각각 <일기시대>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로 시리즈의 첫 문을 열었다.

    손으로 쓴 일기를 독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서비스 '일기 딜리버리'를 운영하고 있는 문보영 시인. <일기시대>는 문학을 처음 접했던 이십 대 초반의 이야기, 불면의 밤에 쓴 일기들을 담았다. 상상력이 동원된 '일기일 뿐인 일기', 그래서 더 문보영 시인다운 글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제주의 사람들. 제주 여행의 좋았던 경험이 제주 이주로 이어져 식당 주인, 큰 개의 보호자 역할까지 획득한 강지혜 시인.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는 시인이 제주에서 여러 정체성으로 고군분투한 매일의 모험에 관한 기록이다.

  • 밤을 걷는 밤
    유희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밤의 산책자' 유희열과 함께 걷는 시간"

    라디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부터 뮤직 토크쇼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밤의 진행자'로 활약해온 뮤지션 유희열이 '밤의 산책자'로 나섰다. 종로구 청운효자동, 중구 명동, 송파구 방이동, 영등포구 선유도공원 등, 다양한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발견한 서울 곳곳의 풍경과, 옛 추억의 이야기와 감정들을 유희열만의 감성 언어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토이'로 활동하며 음악을 처음 시작한 곳, '소년 유희열'이, 밤늦도록 일하고 귀가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골목, 어머니가 좋아하는 동네, 청춘의 흔적들이 스민 거리. 처음 가본 곳에서는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면서 서울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고, 과거에 걸었던 장소에서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기분 좋은 추억의 시간에 빠져든다. 유희열 특유의 유연하고 편안한 글로 안내하는 밤의 산책길은 그리움, 애틋함, 쓸쓸함, 찬란함이 한데 어우러지며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 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4월 ""영원히 걷고 싶은 기분이 들게 했다""

    <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장편소설. 두 인물의 이야기가 주요한 '서사'를 구성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나'의 것. 일기가 될지 소설이 될지 모를 무언가를 쓰고 있는 작가 '나'는 온천장 근처를 산책하던 중 우연히 들어간 목욕탕에서 60대 여성 최명환을 만나 그의 소개로 충동적으로 부산에 월세 아파트를 계약한다. 젊은 시절 최명환은 부산 미국문화원 앞의 회사에서 근무하며 돈을 모으고 모으며 그 돈을 이유로 모욕당한 과거가 있다. '나'는 글을 쓰거나 부산을 산책하고, 가끔 최명환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친구들과 드문 부산의 눈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수미'의 것.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친척 언니 '윤미'는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학교 선생님은 언니를 감시해야 한다고 수미에게 말한다. 윤미 언니는 광주의 '조윤미'를 만나러 가고, 수미는 그곳에서 광주의 사람들을 처음 만난다. 출소한 언니를 두고 언니의 인생은 망했고 시집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미는, '조윤미'라는 이름의 광주 시민이 1980년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증언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본다.

    박솔뫼는 작가의 말에 "순간순간 이해했다고 착각한 장면을 무척 좋아하면서 그것을 품은 채 다음 걸음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기존에 발표된 박솔뫼의 소설보다는 줄거리가 명확한 편이지만, 이 소설 역시 그 매력이 서사만으로 명쾌하게 전달되진 않는다. "어쩐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고 짐을 싸서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가보고 싶어."라고 생각할 사람들. 그들의 산책은 "일단 기분이 좋았고 젖은 물냄새와 비 냄새가 낙엽과 섞여 영원히 걷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한다. (118쪽) 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산책의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 이 소설이 알맞다. 어떤 과거는 다른 과거와 동심원을 그리며 관계맺고 미래로 나아간다. "지금이라는 시간이 미래에도 과거에도 통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멋지고 동시에 슬픈 걸까."라는 사이토 마리코의 말, "이 이야기에는 내가 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완전한 방식이 담겨 있다."는 황예인의 말에 매혹되는 소설 애호가라면, 당신은 박솔뫼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고, 스스로의 미래를 산책하는 연습을 경험할 수 있다.

  • 내가 사랑한 화가들
    정우철 (지은이) | 나무의철학 | 2021년 4월 "EBS 클래스e <미술극장> 정우철의 예술 산책"

    전시장의 '피리부는 사나이'. EBS 클래스e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한 프로그램 <미술극장> 진행자, 도슨트 정우철의 첫 책. 화가인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접한 한 청년이 그림을 통해 얻은 기쁨을 관객과 함께 나누기 위해 무작정 '도슨트'가 되었다. 전공자가 아닌 그는 자신이 받아들인만큼만 관객에게 설명한다. 그의 삶을 바꿔놓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화가들, 마르크 샤갈에서부터 베르나르 뷔페까지(정우철은 베르나르 뷔페전에서 도슨트로 화제를 모았다.) 열한 명의 작가를 스스로의 입말로 소개한다.

    우리는 '알폰스 무하'의 전시장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그와 함께 화가의 대표작을 보며 파리에서 펼쳐진 화가의 눈부신 성공기와 상업적인 성공 후 그가 천착한 슬라브 미술을 차례대로 살피며 무하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경험한다. 나치가 불태우려던 그의 작품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를 비교해보며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예술가이자 한 인간인 화가들의 이야기를 관객의 눈높이에서 풀어 설명하는 친절한 미술 수업이 산책을 권한다.

4.232021
  • 공간의 미래
    유현준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코로나 이후,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까"

    작년에 가구 판매량이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재택근무하는 이들이 늘었고, 집에 오랜 시간 머물다 보니 가구가 눈에 들어왔고,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일각에선 멀지 않은 미래에 여의도와 역삼의 땅값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재택근무가 본격화되면 사무실 의존도가 낮아지고, 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들의 땅값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생활상과 공간은 당연히 적극적인 변화를 주고받는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사는 이 공간들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이 주제에 건축가 유현준이 발 빠르게 통찰력 있는 답을 가져왔다.

    교육 공간, 거주 공간, 사무 공간, 상업 공간 등 그는 우리 생활에 밀접한 공간들의 미래 모습을 여러 방면으로 추측한다. 개별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거실과 방이 합쳐진 형태의 집 실내, 맞춤 교육 과정이 있는 학교 등 예측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하지만 미래는 고체형이 아니다. 물론 책엔 합리적 근거가 꼼꼼히 기술되어 있지만 유현준은 자신이 "거짓 선지자"가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내놓는 이유에 대해 그는 "더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다각도에서 예측할수록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흔들림은 언제나 위기와 기회를 함께 품고 있다. 이 책은 기회에 힘을 싣는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은이), 노진선 (옮긴이)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마법의 도서관, 서가의 책을 펼치면 다른 삶이 시작된다"

    더는 삶의 모든 면을 견딜 수 없어 죽기로 결심한 노라. 그가 눈을 뜬 곳은 초록색 책들이 가득한 마법의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전부 너의 다른 삶이야." 다정한 사서의 안내를 받은 노라는 서가에 꽂힌 책이 모두 자신이 살고 싶었던, 혹은 살았을지도 모르는 삶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지 않은 길'을 수없이 가볼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뮤지션 혹은 동네 펍 주인이 되는 삶, 빙하학자나 수영 선수가 되는 삶, 헤어진 전 연인과 다시 만나는 삶, 도전적이지만 불안정한 삶,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삶, 아이가 있는 삶… 노라는 '완벽한 삶'을 찾을 때까지 무수한 책들을 펼쳐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노라는 어쩐지 자꾸만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후회 없는 삶,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 다른 삶으로 작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한 판타지.

  • 불량 판결문
    최정규 (지은이) | 블랙피쉬 | 2021년 4월 "그 판결엔 죄가 없습니까?"

    한 tv쇼에 출연한 가수 양희은 씨가 51년 차 가수가 된 비결로 '열정 없음'을 꼽았다. 그저 "슴슴한 미련함"으로 밀고 온 세월이라고. 불타오르는 결기 대신 군불같은 은은함이 무기인 사람들이 해내는 영역이 있다. 신념의 실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창을 휘두르는 이들이 가지는 상징성과 노고가 분명 있지만, 그 열정에 부러지는 모습들도 자주 목격한다. 제자리에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짱돌을 던지는 이가 마침내 균열을 만들어낼 때, 뻑적지근한 히어로는 못 될지언정 사람들은 그가 늘 있던 자리를 떠올려보곤 한다.

    이 책은 짱돌파 최정규 변호사가 법조계에 던지는 묵직한 돌덩이다. 연수원 시절, '8시간 시험' 중간에 김밥을 먹는 것으로 점심시간 없는 비인간적 시험에 작은 반항을 했던 그는 이제 자신이 몸담고 일해온 법조계의 비상식적 행태와 판결을 조목조목 따진다. 법정이 특권의식을 담요처럼 두르고 의식 없이 저지르는 무례함, 국민에 대한 존중과 성의 없는 재판들... 저자는 공분할만한 판결들에 가차 없이 불편함을 드러내고, 판사의 지각이나 반말 사용 등 일상적 행태들에까지도 모두 디테일한 까칠함을 보인다. 일반 시민이자 독자로서 이 까칠함이 좋았는데 그의 지적은 허례허식, 권위, 가오 따위에서 멀찍이 물러나있는 사람의 눈에만 정확히 보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에게 벌거숭이라고 말한 아이의 의심 없는 말처럼.

    고발당한 이들은 부끄러움을 느낄까? 간절히 바라지만 스스로 깨닫긴 쉽지 않아 보인다. 법조계의 강철같은 특권 앞에서 이 책은 그저 타격없는 돌멩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겐 단단한 짱돌로 보인다. 짱돌은 여럿이 같이 던지는 게 맛인 것을, 법조계가 알아채기 이전에 독자들은 알 것이다.

  • 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은이), 공보경 (옮긴이) | 황금가지 | 2021년 4월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으로 발표한 소설"

    평범한 직장인 바튼 도스는 고속도로 공사 통지를 받아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세상을 떠난 아들과의 추억이 서린 집을 쉽사리 떠날 수 없는 도스는 이사를 미룬다. 그러나 도시 개발이라는 대의 앞에서 한 인간의 소중한 사연이란 대형 크레인으로 밀어버리면 그만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속도로 공사를 막기 위한 도스의 몸부림은 그를 점점 파멸로 치닫게 할 뿐이다. 자본의 논리 앞에서 철저히 파괴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강렬한 메시지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책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작가 '리처드 바크만'은 뉴욕에서 태어나 선원으로 일했다. 뉴햄프셔에 정착한 후에는 목장을 운영하면서 불면증의 밤에 쓴 여러 권의 심리 스릴러 소설을 출간했으며, 1985년 희귀암으로 숨을 거뒀다. 그는 그렇게 잠든 채로 잊혀졌을 지도 모른다. 워싱턴의 한 서점 직원이 탐정을 방불케하는 '수사' 끝에 스티븐 킹과 리처드 바크만, 두 작가의 유사성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훗날 킹은 바크만을 창조한 이유에 대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그것이 낡아빠지게 만들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바크만이 남긴 다섯 편의 장편 소설 중 하나인 <로드워크>, 스티븐 킹의 새로운 목소리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4.272021
  • 바늘과 가죽의 시
    구병모 (지은이) | 현대문학 | 2021년 4월 "비로소 생의 아름다운 순간"

    소설은 안의 작업실에서 시작한다. 닷새간 지속된 장마, 햇빛은 라스트의 코에 닿아 부서진다. 그늘지고 건조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기엔 '이 나라'의 기후가 적절하지 않다. 혹서 아니면 혹한, 백 아니면 흑, 나 아니면 너, 우리 아니면 그들. (12쪽)로 선을 긋는 사람들. '죽음과 삶' 역시 이 땅에선 철저하게 반대편에 있다. 이 땅에서 안은 구두를 짓고 지내며 영생을 산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안과 같은 정령들은 보편적인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이상 한 곳에 머무를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사는 곳을 옮기고 외모와 이름을 바꾸어 살아가는 안. 지금은 모두 떠나갔지만, 그가 처음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라, 그에게도 '미아'와 같은 형제들과 함께 구두를 짓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안이 지은 구두의 솜씨를 보고 그의 작업실을 찾아온 미아. 그는 인간과 사랑에 빠져 그와의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안은 그들을 보며 자신의 삶이 빛났던 한 순간을 기억해 낸다. <아가미>, <파과> 구병모 신작 소설. 안의 작업실의 구두 가죽 냄새와 먼지를 묘사하는 구병모의 절제된 단어들만으로도 이곳이 구병모가 지은 집임을 실감한다. 구두를 짓는 안의 일과 이야기를 짓는 소설가의 일 사이를 오가며, 비통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경험하는 순간, 한 켤레의 구두가 시 처럼 놓인다.

  •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태 켈러 (지은이), 강나은 (옮긴이) | 돌베개 | 2021년 4월 "2021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소설 <깨지기 쉬운 것들의 과학>으로 한국에 알려진 저자 태 켈러는 본인을 1/4 한국인이라고 칭한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1/4 한국인이라 정의 내린다. 어린시절 할머니(Halmoni)로부터 한국의 많은 구전설화를 들으며 자란 그는 이번 소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에 전면으로 한국 설화 '해님과 달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는다.

    주인공 릴리와 그의 가족은 아픈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 환상을 믿을 수 있는 나이의 릴리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호랑이와 신경전을 벌인다. 소중한 할머니를 낫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말은 비록 환상일지라도 릴리의 마음을 흔든다.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가족 간의 이별, 그로 인한 슬픔 등을 새로이 마주한다.

    '조아여'(조용한 아시아 여자애)에 갇히기 싫어하는 샘과 자신을 투명 인간이고 전형적인 '조아여'라고 여기는 릴리. 한국적인 전통을 고수하는 이민자 밑에서 자라 정체성 고민을 겪었던 2세대 엄마. 낯선 땅 미국에서 자신의 고향을 지키고자 했던 1세대 할머니. 긴 세월을 아우르는 이민자 여성들의 '자기 찾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비트의 세계
    데이비드 아우어바흐 (지은이), 이한음 (옮긴이) | 해나무 | 2021년 4월 "기계의 언어, 인간의 언어"

    "문송"한 입장으로서, 저자 소개를 듣자마자 광활한 거리감을 느꼈다. 문학, 철학,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전직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프로그래머. 문학, 철학과 컴퓨터과학 사이의 거대한 장벽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인지, 그는 이 다른 분야들을 문지방 넘듯 쉽게 넘나든 삶을 자랑한다. 덕분에 그가 쓴 이 책은 두 세계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크게 보면 <비트의 세계>는 언어에 대한 책이다. 기계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바이링구얼인 저자는 언어와 세계를 교차하여 분석한다. 기계의 언어로 인간사를 볼 때 그는 결혼 생활에 소프트웨어 공학의 주요 원칙을 대입하며 사라지지 않는 버그, 즉 부부 싸움의 해결책을 찾아내거나 인간관계에 대한 지식의 불완전함을 근거로 '결함 허용성'을 지녀야 함을 깨닫는다. 반대로 인간의 언어로 기계의 세계를 해석하면서는 단순하게 분류하고 꼬리표를 붙이는 데이터들이 사회적 편견과 편향을 강화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서문에서 그는 '틈새'라는 단어로 컴퓨터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아슬한 고리를 지적한다. 하나의 언어로만 사고할 때 보이지 않던 양 세계의 틈새들이 그의 통역을 거치자 드러난다. 확실히, 저자의 특별한 이력에서만 나올 수 있는 책이다. 그가 발견해내는 더 많은 틈새들이 궁금하다.

  • 마음챙김이 일상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캐럴라인 웰치 (지은이), 최윤영 (옮긴이) | 갤리온 | 2021년 4월 "인생의 속도는 누가 결정하는가?"

    저명한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를 피부로 느끼기란 어렵다. 현재의 기준도 모호하다. 1 나노 초든 1초든 아니면 1분이라 한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은 똑같다. 매 순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우리에겐 그저 과거와 미래만 있을 뿐이다. 베스트셀러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로 널리 알려진 영적 지도자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라는 것은 일종의 질병입니다." 그렇다. 어쩌면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려면 그 생각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겐 마음챙김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다. 그것은 생각을 몽땅 비우는 것이 아닌, 맑고 또렷한 생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저자는 마음챙김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성공하여 삶을 변화시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챙김에도 연습이 필요함을, 마음챙김도 습관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퇴근길 정류장까지의 발걸음을 세어 보고 차가 올 때까지 호흡을 가다듬는 일부터 시도해 보면 어떨까.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4.302021
  •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지은이), 강동혁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마션> 앤디 위어 신작, 전 세계 동시 출간"

    이름 모를 별들을 지나는 우주선 '헤일메리호'. 기나긴 수면 끝에 선내의 침대에서 눈을 뜬 한 인간이 있다. 자신의 이름도 고향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주선 내부의 감각은 어딘가 낯이 익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헤일메리호를 탐색하던 그에게 지구에서의 기억이 섬광처럼 떠오른다.

    태양이 빛을 잃어가던 기이한 현상과 빙하기를 앞둔 지구, 온갖 관측과 연구 끝에 태양이 미지의 미생물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던 순간, 그리고 기술적 한계 탓에 편도행으로 설계된 헤일메리호는 지구로의 귀환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하나씩 돌아오는 기억에 망연자실한 마음도 잠시, 우주선 계기판에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외계 우주선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는 태양의 빛을 되찾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마션>을 잇는 유쾌한 우주 활극.

  • 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은이), 배명자 (옮긴이),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돌고래는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상어 입에 박힌 낚싯바늘을 빼주는 다이버 이야기가 한창 화제 됐었다. 우연히 옆에 온 상어 입에 있던 바늘을 빼준 뒤, 고통받던 온 동네 상어들이 다 찾아왔다고. 그가 빼낸 수백 개의 낚싯바늘 사진을 보자니 상어들이 대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저 동네에 바늘 빼주는 인간이 있어"라고 했을까? "그 인간을 공격하진 마"라고도 했을까? 단지 먹잇감의 위치를 알리는 정도의 단순한 소통이 아니기에 그들이 나누었을 대화에 대한 상상은 하고 또 해도 재밌다. 상어도 마찬가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온 바에 따르면 돌고래는 각자의 이름이 있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한단다. 또 상상을 해본다. 돌고래 사회에도 예쁜 이름, 특이한 이름이 있을까? 나처럼 평생 경영학을 전공했냐는 질문을 듣는, 조금 괴로운 이름도 있을까?

    이 책은 동식물과 미생물이 서로 소통하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인간만이 소통한다는 생각은 이제 오만하게 여겨지지만, 이토록 활발한 속삭임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줄은 몰랐다. 전자에너지나 색소를 이용하거나 초음파, 냄새를 송신하는 등의 갖가지 방법들로 동, 식물, 미생물은 서로를 속이고 설득하고 교감한다.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들만 스포 하자면 '좀비개미버섯'이라는 버섯은 생식을 위해 개미의 뇌를 조종한다. 미어캣은 천적의 종류에 따라 다른 종류의 경보를 외치며, 여치는 앞다리에, 나비는 날개에 고막이 있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자 아니랄까 봐, 저자 마들렌 치게는 이 놀라운 이야기들을 술술 읽히도록 재미있게 전한다. 페터 볼레벤이 "유머러스하다! 경이롭다! 그리고 전혀 새롭다!"라며 추천한 이유가 있다.

  • 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지은이) | 마음산책 | 2021년 4월 "시인의 말로 쓰다듬는 예술의 순간"

    뮤리얼 루카이저의 세상을 바꾼 한 문장,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문장은 판화가이며 조각가인 케테 콜비츠의 삶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동자의 삶을 판화로 남기던 유대인 예술가는 세계대전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후 비통한 마음을 '검은 피에타'로 기록했다. 작은 아이를 안은 중년 여성의 둥근 등은 그의 신산한 삶을 짐작케 한다. '몸을 앞으로 숙인 채 두 손을 모은 어머니의 모습'(95쪽) (조각상 <부모>)을 보면서 우리는 이 절절한 비통함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느낀다. 케테 콜비츠의 이야기를 뮤리얼 루카이저가 시로 썼듯, 다시 그들의 예술을 나희덕이 산문으로 쓴다. 나희덕 예술 산문. 그가 사랑한 예술 작품을 시인의 말로 쓰다듬는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암투병을 하며 반핵운동을 했다. 다큐멘터리 '코다CODA' 속 한 장면, 대지진 후 구조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카모토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받은 감동을 나희덕은 시인의 말로 이렇게 기록한다. "결국 모든 게 사라질 운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은 시간 동안 "덜 부끄러운 무엇"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 바로 이런 태도가 사카모토를 드물게 좋은 예술가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였다." (36쪽) 바흐의 '평균율'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하루가 되고, 다시 류이치 사카모토의 사색적인 음악이 나희덕의 시가 된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서 시작되어 이매리의 시에서 맺는 이야기. 나희덕이 쓰다듬은 자리에 남은 말의 온기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것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된다.

  • 무라카미 T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권남희 (옮긴이) | 비채 | 2021년 5월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소설 못지않게 재밌다. 이번 신작 <무라카미 T> 역시 가장 하루키다운 에세이로,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에 이미 매료된 독자들이라면 지나치기 어렵다. 맥주, 위스키, 레코드, 자동차... 하루키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은 다양하다. 그중, 티셔츠에 관한 열여덟 편의 에세이를 이번 책에 담았다.

    "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이 모이는 것이 인생의 모티프 같다"고 한 하루키는, 이 책에서 '자연스럽게 모인 티셔츠'와 그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한다. 하루키가 소장하고 있는 티셔츠는 무려 수백 장. 단편소설을 탄생하게 만든 단돈 1달러짜리 'TONY TAKITANI' 티셔츠부터 시작해서, 서점, 대학, 자동차, 동물, 맥주까지, 카테고리별로 각양각색의 티셔츠들이 등장한다. 글 사이사이 배치된 컬러풀한 티셔츠 사진들과 말미에 수록된 인터뷰 글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