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진영이 2013년 발표한 장편소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는 짧게 독자를 만난 후 절판되었다. <구의 증명>(2015)이 20여만 부가 판매되며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된 2020년대에 최진영의 세계에 새로이 입장한 독자들은 중고책으로라도 서너 배의 값을 치르고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만나기 위해 서성였다. 바로 그 소설이 11년 만에 초고 파일명이었던 <원도>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곁에 돌아왔다.
죽음을 목전에 둔 '원도'라는 인물이 있다. 횡령과 사기, 탈세와 살인혐의를 달고 여관을 전전한다. 가족도 그를 여러 번 버렸고 세상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골목길에 쓰레기처럼 놓인 처지로, 검붉은 피를 토하며 원도는 자신을 이곳으로 몰고 온 수많은 우연과 선택을 곱씹으며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되묻는다. '그 구멍으로 온 생이 콸콸 쏟아져 사라질 것'(30쪽)을 알면서도 기어이 삶의 이유를 되묻는 남자. 죽어 마땅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그의 악덕이 이어질수록 징글징글할 정도로 삶의 의지가 콸콸 쏟아진다.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음악 같은 문장은 그의 세계를 애호하는 독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하다. 자격 없는 삶도 마땅히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 가차없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에서 희미하게 빛이 내려앉는 듯한 소설이다.
- 소설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원도는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원치 않아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는 죽음을 선택했다. 선택? 선택이었을까? 자유롭게? 자유였을까? 정말 그것을 원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의심 끝엔 마침표처럼 언제나 동일한 질문이 들러붙었다.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현대인이 가장 많이 듣는 주문 중 하나가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아닐까. 복잡한 세계, 나를 알아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시대의 외침이 온갖 미디어에서 메아리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해석하고 분석하고 고민하고 방황하고... 잠깐, 잘 생각해 보자. 스스로를 파악하기 위해 분석하는 대상은 대체로 '과거의 나'다. 우리는 과거의 나를 기반으로 분석한 자신에 자아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 통합성 위에 현재와 미래의 삶을 그려본다. 그런데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말한다. "그 자아는 망상입니다."
책은 우리의 자아라는 것이 어째서 뇌가 만들어 낸 허구인지를 과학으로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뇌의 인지 방식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세계를 이야기로 해석한다. 이야기의 형식을 거치지 않고서 뇌는 세계를 해독할 수가 없다. 어릴 때 듣고 경험한 이야기는 우리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스키마로 자리 잡고, 우리는 그 틀 위에서 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이야기를 편집하여 자아를 만들어낸다. 물론 기억이란 완전치 않기 때문에 제멋대로 어떤 부분은 강화하고 어떤 부분은 삭제한, 왜곡된 상태로. 여러 실험과 예시, 이론을 근거로 들며 책은 찬찬히 뇌가 자아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러면 어쩌란 말일까. 지금껏 형성해온 자아가 망상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토대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대체 누구인가. 저자는 이에 대한 답까지 친절히 준비해두었다. 뇌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활용하여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이라 읽는 동안 간간이 어지러워지겠지만, 나라는 인간의 삶의 콘셉트에 발목 잡힌 적 있는 이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줄 책이다.
- 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쓰레기 이야기를 계속 먹는다면, 자아는 쓰레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적인 규모로 확대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망상을 믿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망상이 아니다.
1920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태어난 프랭크 허버트는 스무 살 무렵이던 1936년부터 기자, 사진사, 뉴스 해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1952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스타틀링 스토리스’에 첫 SF 단편 <뭔가 찾고 계신가요?>를 발표한 이후, 1955년에 첫 장편인 <바다의 용>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첫 장편 출간 이후 수년 여 동안 오로지 하나의 작품에 몰두하여 이전까지 없었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3년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에 발표한 하나의 단편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2년 뒤 두 번째 장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 작품은 휴고상과 네뷸러상의 장편 소설 부문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바로 <듄>의 탄생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SF소설 <듄>의 작가 프랭크 허버트의 단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의 첫 번째 단편 <뭔가 찾고 계신가요?>로 시작하여 <듄>의 유일한 단편인 <듄으로 가는 길> 등 1952년부터 그가 사망하기 직전인 1985년까지 30여 년 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된 32편의 단편을 담았다. 수록작 중에는 <듄> 시리즈의 주요 개념들의 실마리가 엿보이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베네 게세리트의 개념을 처음 선보인 <건초 더미 작전>(1959)이나 <듄> 후반부 주요 소재인 유전을 통해 전이되는 기억을 처음으로 다룬 <GM 효과>(1965)등은 ‘듀니버스’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외에도 SF의 틀 안에서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드는 단편들을 통해 작가의 독창적인 설정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 소설 MD 박동명
작가의 말
“SF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됨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 프랭크 허버트
'00년 00월 00일. 해가 구름을 이긴 날'. 나는 가끔 우리 집 아이가 어릴 때 써두었던 일기장을 보곤 한다. 차곡차곡 모아 놓은 일기장은 아이의 성장 과정을 담은 기록이나 마찬가지여서 가끔씩 펼쳐보는데, 곳곳에 내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려 보기도 한다. '이때 나는 이랬구나'
* 기록(記錄) : 주로 후일에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생각해 보면 나는 하루에도 무수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메일, 메신저, SNS 등을 통해 나의 흔적들을 남기고 있으니. 여러 이유로 가끔 지난날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 공간,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나의 모습들을 보면서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 내리라.
쓰는 사람 '빵이'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수없이 지나쳐가는 나의 오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며, 기록하며 삶이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않았지만 기록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100권이 넘는 노트에 기록하며 쌓아온 기록하는 법과 기록을 계속하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공개한다. 더불어 저자가 직접 만든 템플릿까지. 수년간 매일을 기록을 SNS에 공유하고, 기록하는 틀을 제공하면서 '왜 기록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는 저자는 그 답을 이렇게 말한다.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 자기계발 MD 김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