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향한 집착으로 가득 찬 세계에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숨구멍을 찾아야 할까?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잠시간의 위안을 주겠지만 안식이 되어주진 않는다. '~해야 한다'의 주문이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은 얕은 해방일 뿐이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야 한다'가 전제된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창하는 주문을 무력화하는 비법은 오직 그 주문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엿한 숨구멍으로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 잭 핼버스탬은 실패의 기능과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그의 실패론을 걸친 채 기존의 성공론을 바라보자면 낡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핼버스탬은 실패를 저항과 비판의 한 양식으로 개념화한다. 실패를 실패로 규정하는 자본주의의 틈바구니에서 그는 실패를 삶의 한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반식민주의 투쟁, 젠더와 종 다양성, 인종 감수성과 연결 지을 때, 이 힘이 얼마나 전복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파한다. 실패는 약자들의 무기가 될 수 있고 실패는 기존 성공을 뒤엎을 수도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애니메이션, 대중문화, 하위문화 반문화를 훑으며 작품들로부터 전복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끌어낸다.
문화와 반문화에 관해,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룰과 그에 대한 대응에 관해 그가 풀어내는 문장들은 통쾌하고 개운하다. 그의 시각은 유연하되 단단한 뼈대가 있고, 그렇기에 수많은 작품들의 얘기가 촘촘히 이어져도 혼란하지 않은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서문에서 그는 "전복이라는 개념이 슬프게도 유행이 지난 듯 보이는 시대에도 나는 여전히 끈질긴 전복적 지성들로 이루어진 배교자 무리에 속하기를 원한다."라고 썼는데, 이 책은 바로 이 문장으로부터 높아지는 기대를 전혀 실망시키지 않는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보면 실패는 종종 성공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 여성의 성공이 항상 남성적 기준으로 재단되고 젠더적 실패가 종종 가부장적 이상에 부합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할 때, 여성 되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바로 이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왔다.
나를 펼쳐주세요 나는 줄줄 흐르고 싶어요 강이 될래요 바다가 될래요 마그마가 될래요.... <독서 유예> 24쪽
2020년 <침착하게 사랑하기> 외 4편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차도하의 첫 시집. <침착하게 사랑하기>는 신에게 손을 붙잡혀 강변을 걷는 화자가 맡은 물비린내로 시작되어 마지막 행의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마무리된다. '기성 시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게 한 개성의 충만함이 눈부셨다'는 평처럼 이 시의 비범함을 감각한 많은 이가 그의 첫 시집을 기다렸다. 그때 독자의 '미래의 손'엔 이 시집이 쥐어진 듯도 했다.
산문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2021)에 시인은 이렇게 썼다.
죽은 사람의 글은 더 꼼꼼하게 읽힌다. 특히 그의 일생과 관련하여. 내가 죽어도,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내 글을 대충 읽어주면 좋겠다. 다음 작업을 기대해주면 좋겠다. (17쪽)
'천국은 외국이다.' (<입국 심사>)로 열린 시집은 '그것은 이미 내가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그러나 풍경은 아름답다>)로 닫힌다. 시인이 남긴 62편의 시를 강성은, 신해욱, 김승일 시인이 책임편집을 맡아 적절한 자리에 놓았고 남지은 시인이 편집해 봄날의 시집으로 출간했다. 닫힌 시집의 판권을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우정으로 이 시집의 손을 쥔 이들과 함께 그의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내가 죽고 나서도 나는 돌을 던질 것이다.'(<돌 던지기> 부분)라고 적은 시인의 옆에 서서 그의 시를 사랑한 이들도 돌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 시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이런 기록을 남겼다
: 그는 무척 뜨거운 것을 쥐고 있었다
일지를 쓰다 엎드려 잠든
그의 꿈속으로부터
도시가 재건되고 있었다.
<추모> 부분, 50쪽
인간관계는 소통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가. 소통의 어려움은 누구나,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문제다. 아동.청소년 심리치료사, 의사소통 전문가, 부모 교육 전문가로서 다양한 치료 교육과 강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이임숙 작가가, 본격적인 사회화 과정에 발을 내디딘 초등학교 아이들이 쉽게 따라 해 볼 수 있는 대화법을 제안한다.
내가 하기 싫은 걸 친구가 하자고 할 때, 사과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싫은 걸 참고 겨우 사과했는데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을 때, 내가 뒷담화한 걸 친구가 알게 되었을 때, 친구가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닐 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을 때. 이 책에는 50가지 상황별 대화법을 1단계, 2단계로 나누어 제시한다. 간명하고 명쾌한 설명과 대화문 예시, 만화가 수록되어 있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똑 부러지게, 혹은, 똑똑하게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일단 용기 내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책은 아이들이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 어린이 MD 송진경
성적표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얇은 그 종이에 전교 등수, 반등 수가 적혀 있는데 비교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야 너 몇 등이야?" "너 이렇게 공부 잘했었어?"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꽤 괜찮다고 여겨졌던 나의 숫자는 형편없는 것이었다. 체력장에서 유연성을 체크하기 위해 앞으로 몸을 숙였을 때는 심지어 마이너스였다. 나의 유연성은 0을 넘지 못했다. 숫자로 설명되던 학창 시절을 벗어나 어떤 때에는 혈액형으로 나 자신이 규정되었고 또 요즘은 MBTI로 서로를 구분 짓는다. "너 T야?"
권정민 작가는 무엇이든 비교하고 수치화하게 만드는 ‘측정’의 본질에 주목하여 독특한 형식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이 그림책을 읽는 순간 모두 측정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를 서열화하기 위해 하던 측정뿐만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숨겨진 측정까지, 심오한 모든 서열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너무 깊이 빠져들어 질이 아닌 숫자만 들여다볼 경우 나의 행복점수가 타인보다 떨어질 수 있으므로 그것만은 경계하자. 감히 측정값을 계산해 보지 말자고 제안해 본다. 단 하루라도. 사계절출판사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협업으로 출간하는 논픽션 그림책 '민주인권그림책' 시리즈.
- 유아 MD 임이지
이 책의 한 문장
이제 여러분은 누구보다 측정에 능숙해졌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측정하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별다른 도구 없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