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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리기 힘든 사상과 복잡다단한 진리가 난무하는 세상, 사상가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의 진리를 가지고 있을 뿐더러 각각의 사람들도 자신만의 생각을 지닌 채 살아간다. 우리는 확실히 과거보다 더욱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아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모르게 되기도 하였다. 너무 많은 지식 때문에 오히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터.
조르바는 그런 사회의 우스꽝스러움을 단박에 깨는 인물이다. 그는 지식을 비웃지만 누구보다 지혜로우며, 신을 조롱하지만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믿음을 지니고 있다. 카잔차키스는 '앎'이라는 그물에 뒤얽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조르바는 머리로 고민하고 애태우는 법이 없다. 그는 몸으로 고민하며 몸으로 생각한다. 그의 몸부림이야말로 지리한 삶에 대한 저항이며, 자유에의 투쟁인 셈.
<그리스인 조르바>는 지지부진하고 어설픈 지식, 죽어 있는 몸뚱아리에 살아 있는 심장을 불쑥 내민 통쾌한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모두가 아는 바, 이 책은 이미 스무 해 전에 이윤기 씨가 우리말로 옮겨 선보였던 작품이다. 최고의 번역가로 인정받는 이윤기 씨는 다른나라말을 우리말로 읽어내는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그 바탕을 이루는 인문학적 지식이라든지 글솜씨의 대단함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고로 꼽고 싶은 건 역시 번역가(家, 번역者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로서의 장인정신이다.
이미 번역해서 한번 내놓았던 책을, 책의 작가도 아니고 옮긴이란 사람이 새로 다듬고 손보기란 그 성정(性情)이 어지간하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장미의 이름>이니, <푸코의 진자> 또한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끼고 그리 새로 번역한 책. 자신의 번역은--자신이 번역한 책은--자신이 책임진다는 정신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새 번역은 새 책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실감한다.
책의 장정 또한 옛판(고려원 출간)의 투박한 모습(개인적으로는 카잔차키스의 모습이 어두운 톤의 색감 아래 자리한 표지라든지 오돌톨톨한 활판 인쇄의 느낌마저 좋았지만서도)과는 달리 두툼하지만 한 손에 턱 잡히고, 아담하면서도 하드커버로 실하게 짜여진 판형은 보기만 해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 임지호(200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