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대해서라면 최근 1-2년 사이에 가장 많은 말이 오가는 것 같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번역가의 역할이 한동안 주요 화제였는가 하면 또 최근에는 AI 번역의 윤리성과 완성도에 대한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번역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기 좋은 이때 '영미권 최고의 번역자'라 평가받는 데이미언 설스의 책이 출간됐다.
그가 말하는 번역의 핵심은 '읽기'다. 설스는 번역가가 옮기는 것이 단순히 단어나 문장의 배열과 뜻이 아니라 '언어의 사용' 자체라고 말한다. 맥락 속에서 문장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내밀어지는가를 읽어내어 그 방식을 다른 언어로 구현해 내는 작업이 번역이라고. 그렇기에 번역은 번역가가 탐구해낸 읽기의 한 가지 방식일 수밖에 없으며 한 인간으로서 고유한 무늬를 가지고 읽어낸 결과인 번역을 AI가 손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리 없다.
한 분야에서 웅숭깊게 자신의 철학을 쌓아온 사람이 겸손하게 내보이는 통찰이 이 책에 있다. 또 하나의 자신만의 방식대로 읽는 사람으로서 번역이라는 작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서 번역의 불가능성에 대해 아름답게 표현했던 홍한별이 직접 번역하고 옮긴이의 말을 덧붙인 점도 의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