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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함께 김승옥문학상이 돌아왔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복자에게>를 출간하며 바쁜 한 해를 보낸 소설가 김금희가 김금희다운 감각적인 소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로 대상을 수상했다. '기오성'의 이십대 시절을 알고 싶다고 내게 연락한 정이라는 피디의 이메일은 기오성과 내가 함께 보냈던 그 여름, 노교수의 고택으로 나를 이끈다. 족보 정리를 위한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나와 기오성은 고택에 머물던 교수의 큰손녀 강선과 함께 교수의 사모가 끓여준 편수며 칼국수를 나눠먹으며 그 지루한 여름을 보냈다. 작열하는 여름볕 아래 모란시장을 걷거나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에서 문자를 주고받던 순간. '사랑이 발생했다'(21쪽)고 말할 수밖에 없던 섬세한 마음도 흘러가고 '연애랄 것도 없는 일'(31쪽)로 요약되기까지의 긴 시간. '우리'는 어디에서 발생해 어디를 향해 흘러왔는지, 소설은 소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묻는다.
두 소꿉친구가 뉴욕의 낡고 좁은 방에서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피로를 마주하는 소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은희경답게 예리하게 두 친구의 속을 들여다 본다. 자신이 '버린' 딸과 떠난 일박 이일의 여행에서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149쪽)라고 말하는 '엄마' 반희씨가 말하는 존엄은 권여선답게 독보적이고 귀하다. (<실버들 천만사>) 두번째 이혼 후 시간강사 자리마저 잃고, 아버지의 건물 관리를 맡은 정한아의 주인공이 마주하는 자신의 얼굴은 비관없이 정직하다.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 "자신을 가장 부딪히게 하고 굴절시켰던 것에 대해 쓰고 싶었고, 그래서 썼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그 글을 쓴 것을 후회"(225쪽)하고 있는 작가 유정의 이야기는 가족 안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을, 그 폭력 이후의 마음을 묘사하는 데 있어 최은미답게 물러남이 없다.(<내게 내가 나일 그때>) 나는 들소를 보았다,라고 쓰는 대신 "나는 그게 들소라고 느낀다."(292쪽)라고 쓰는 기준영의 소설이 선사하는 감각 역시 기준영답다.(<들소>) 김승옥문학상은 등단 후 십년이 지난 작가들이 일년 동안 발표한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한다.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작가들의 잘 익은 이 소설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 읽는 즐거움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날렵하고 다정하고 정직하게, 우리의 소설이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