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가난하고 평범한 동네에서 홀로 세탁소를 꾸려가며 살고 있는 명정. 아내와는 몇년 전 사별했고, 외국에 살고 있던 외아들마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그에게 발신자가 아들인 택배 상자 속,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이 도착한다. 명정은 로봇에서 둘째에게 붙여주고 싶었던 이름 '은결'을 붙여준다. 그렇게 은결은 세탁소에서 프로토콜로 해석할 수 없는 인간들의 삶을 바라보며 얼룩, 세탁, 표백, 건조가 반복되는 삶의 비밀을 배워나간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으로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구병모 장편소설. 특유의 긴 문장으로 날카롭게 세계를 묘파했던 작가가 이번엔 따뜻한 시선으로 로봇의 세상을 상상한다. 다정한 동네에서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시호, 성실하고 단단한 준교, 은결을 처음 작동시켜준 세주를 만나 은결은 삶이라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한 사람의 시간이 퍼져가며 내는 울림이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