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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얼근히 오르면 가마니짝 위에서 / 국수내기 나이롱뻥을 치고는 / 텅 빈 공사장엘 올라가 본다 / 물 구경 나온 아낙네들은 우릴 피해 / 녹슨 트럭터 뒤에 가 숨고 / 그 유월에 아들을 잃은 밥집 할머니가 / 넋을 잃고 앉아 비를 맞는 장마철 / 서형은 바람기 있는 여편네 걱정을 하고 / 박서방은 끝내 못 사준 딸년의 / 살이 비치는 그 양말 타령을 늘어 놓는다'윗 시행을 통해 시인은 건설 노동자들의 무료하고 신산스런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보인다. 그런데 이 시를 2000년인 오늘과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그렇더라도 '가마니짝', '나이롱뻥', '살이 비치는 양말'같은 시어들만 바뀔 뿐 시의 분위기와 어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시는 삶의 한 단편을 현실감있게 포착하고 있다.
'녹슨 삽과 괭이를 들고 모였다. / 달빛이 환한 가마니 창고 뒷수풀 / 뉘우치고 그리고 다시 맹세하다가 / 어깨를 끼어 보고 비로소 갈길을 안다'는 시구는 <직조공 봉기> 연작중에서도 집회를 조직하기 위해 어두운 불빛 아래에 모여든 노동자들을 그린 <회의>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분위기 뿐만 아니라 그 속의 인물들을 스케치하는 방식 또한 매우 닮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눈 오는 밤에 / 나를 찾아 온다. / 창밖에서 문을 때린다 / 무엇인가 / 말을 하려고 한다. // 꿈 속에서 / 다시 그를 본다. / 맨발로 눈 위에 서 있는 / 그를. / 그 발에서 / 피가 흐른다. // 안타까운 눈으로 / 나를 쳐다본다 / 내게 다가와서 손을 잡는다. / 입속에서 / 내 이름을 부른다. // 잠이 깨면 / 새벽 종이 운다. / 그 종소리 속에서 /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 일어나 / 창을 열어 본다. // 창 밖에 쌓인 눈을 본다. / 눈 위에 얼룩진 그의 / 피 자국을. 그 / 성난 눈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