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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이 6년 만에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 심상치않다. <백치>와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그것이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인용하는, 미결사건의 살인자가 첫 장을 시작한다.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라는 고백과 함께. 장강명은 원고지 3천 매가 넘는, 지난 세기에 사라진 듯한 '소설'의 전범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을 이렇게 시작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유독 방대한 것은, 도박빚에 쫓기던 그가 글자수 단위로 원고료를 받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검거되지 않은 살인자의 뒤편에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있다. 연지혜는 22년 전 발생한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고, 드디어 이야기가 추동한다. 연지혜는 "차도를 건널 때면 횡단보도에서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기보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지하도나 육교를 택"(12쪽)하는 사람이다. 이런 두 사람이 마주치면 불꽃이 튀지 않을 수가 없다. 100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범죄자와 형사의 내면을 취재하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을 죽게 하고,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 것이 과연 한 악인의 잘못에 불과한지, 한 사회의 사법 시스템이 이 사건의 본질적인 원인이 아닌지, 소설은 주장하는 대신 캐묻는다.
문학상을 석권하며 자신의 존재를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각인시킨 이후, 장강명은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때론 불편한 질문이 되기도 했을 그 질문들의 방식처럼, 장강명은 쓴다. 소설가 정유정이 먼저 장강명을 읽었다. "마침내 나는 상상 속의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소설이다." 이것이 정유정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