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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이 돌아왔다.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이후 4년, 60년 전 출간된 전봉건의 첫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서 제목을 빌린 세번째 시집으로. "전봉건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데 어째서 그를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유 같은 것은 언제나 나중에 붙는 것이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 시집이 황인찬의 것임을 새삼 알아채게 된다. 말을 '되풀이'하며 장난처럼 말하던 시의 세계가 전환한다. '차가운 정념으로 비워낸 시'(김현, 추천사)가 묘사하는 장소들.
과거의 어느 시절의 장소들. 과거의 학교 (<무대의 생령>) 혹은 폐업한 온천 (<부곡>) 혹은 시골에 있는 나의 작은 집(<피카레스크>) 혹은 방학 직전의 어느 날의 교실 (<재생력>). 애틋함만 남아있는 퇴락한 장소를 기억한다. 위기라고 해도 '지구의 위기까진 아니어도 마을의 위기쯤은 되는 사건' (<재생력>) 정도일 것을 알고, 작은 성장을 이뤄나가겠지만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영화는 상영되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 '앞으로 벌어질 마음 아픈 일들을 알지 못하는 방학 직전 어느 날'(<재생력>)을 이미 지난 이들의 이야기를 시로 쓴다면 꼭 이런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고,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은 증오와 의심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많은 것을 만났고, 그것들을 좋아했으며, 그러한 일들이 모여 이 시집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황인찬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