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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태어난 나보코프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붕괴되자 서유럽으로 망명했고 영국, 독일,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이 시기는 작가 나보코프의 작품세계에 있어서도 망명의 시기였다. 러시아어에서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에 정착했고, 시에서 희곡을 거쳐 소설에 정착했다. 러시아를 떠나 탄생한 68편의 단편은 나보코프가 여러 겹의 경계를 넘어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탐구해온 여정이다.
<롤리타>의 성공 이후, 미국에서 나보코프는 그동안 쓴 단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꿈과 함께 대장정을 시작했다. 주제와 시대 등을 고려한 기준을 정해 직접 작품을 골라 배열했으며, 영어로 소개된 적 없는 소설은 아들 드미트리와 함께 번역하기도 했다. 나보코프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부인 베라와 드미트리가 작업을 이어나갔고, 신문 등에 발표되었으나 격동의 시대 속에서 원고와 매체가 유실되었던 작품들까지 샅샅이 찾아냈다. 그렇게 68편의 단편을 총망라하여 ‘완전판 단편전집’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드미트리가 책을 편집하며 쓴 서문과, 각 단편마다 나보코프 본인과 드미트리가 붙인 주석이 함께 실려 있어 깊은 독서의 여운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