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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의 8평짜리 새장 같은 아파트에 살던 '그'에게 '그녀'가 찾아왔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이자 가끔 TV에도 출연하는, 이제는 한물갔지만 여전히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그녀'는 제대로 된 잠을 이룬 지 아주 오래였다. 파리의 그 새장 같은 아파트에 들어서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대로 된 잠을 자는 것이다. '그'의 옆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이 아역 배우 시절 촬영했던 매트리스 CF 현장에서부터 그랬다. 잠에서 깨고 나면 파리 시내를 산책하고, 주린 배를 달랠 얼굴보다 더 큰 크루아상을 먹고, 영화를 볼 것이다. 그리고 함께 낭트에 갈 것이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출연했던, 천산갑이 나오는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낭트 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되었고, '그녀'와 '그'가 영화제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에겐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와 찾아야 할 누군가가 있다.
올해 1월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은 <귀신들의 땅>의 작가 천쓰홍의 최신작.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은 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관계를 통해 고독과 치유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탐색한다. 소설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그는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은 가부장제 관점에서 볼 때 특이한 관계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모두 가부장제하에서 이등 시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수모와 고통, 성소수자가 겪는 트라우마 등을 아프게 드러낸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속 혹독한 상처를 이해하고, 그 고통을 헤아리기에 서로를 찾는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이자, 많은 여성들의 '게이미(Gay蜜, 이성애자 여성의 게이 남성 친구)'였던 작가는 한국 독자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독재, 성차별 등 억압을 겪고 자란 한국인과 대만인의 정서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출간 후 제가 해방감을 느낀 것처럼 한국 독자들도 제 책을 통해 더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