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 좀 일찍 도착해 마음도
식힐 겸 그녀의 책을 펼쳐들었다. 어디 있더라. 한 눈에 '뱀장어 스튜'를 말해주던 그 문장이. 음, 여기
있군. "인생이란 화려하지도 않고, 더군다나 장엄하지도 않으며 다만 뱀장어의 몸부림과 같은 격정을 조용히 끓여내는
것이 아닐까." (<뱀장어 스튜> p.31 중에서)
예닐곱
번을 웅얼거리고 있자니 '드르르르르' 진동이 온다. "여보세요. 예, 선생님이시군요. 지금 보이네요. 네,
그럼." 첫눈에 그녀는 아담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사진으로 미리 익혀둔 얼굴이지만, 영 다르다. 흐흐...
드디어 그녀와의 행복한 미팅이 시작되었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문학담당 최성혜)
소설창작에 영향을 준 것은 "삶이 달라졌다"는 인식
알라딘: <꿈꾸는 마리오네뜨>
서문에서 동생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걸 두고 '아이러니'라고 했는데, 그 체험이 당신의 소설 쓰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권지예: 세 살 아래 동생은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유난히 재능이 뛰어났다. 한 번은 중학생이 된 동생의 서랍에서
문집을 발견하고 밤새 읽은 적이 있다. 너무도 참담했다. 그 얼마 후, 나는 난생 처음으로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동생의 글을 베껴 낸 덕분이었다.
그런 동생이 1979년, 17세의 나이로 죽었다. 하늘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그 때 결심했다. 글에서 내 동생이
항상 살아 있도록 하자고. 동생은 나에게 상처이자, 힘이다.
알라딘: 소설에서 프랑스 체험이 많이 드러나는 만큼 프랑스 체험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체험이 창작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권지예 : 프랑스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나에게 많은 자극제가 됐다. 그렇긴 하지만 프랑스인들과의 체험을 소설화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 그 경우, 소설보다는 에세이 형식이 더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9년도에 「행복이 가득한
집」에 프랑스에서의 일상과 에피소드, 사람들과의 만남을 에세이 형식으로 1년간 연재한 바 있다.
그보다 소설창작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삶이 달라졌다"는 인식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 사람들과의 단절감, 프랑스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비만 내리는 겨울 날씨 등이 그렇다. 정착 초기, 나에게 소설 창작은 언어소통의 어려움,
공부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거기에 몰두할 수 있어 행복했다.
알라딘: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소설을 발표해왔다. <꿈꾸는 마리오네뜨>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다.
혹, 온전히 서울에서만 쓴 소설이 있는가? 있다면, 그렇지 않은 소설들과 어떤 점에서 크게 차이나는가? 공간이 소설의
집필동기가 되는 것 같아 묻는 질문이다.
권지예: 서울에서 쓴 것은 '고요한 나날', '풋고추', '정육점 여자', '뱀장어 스튜', <이상한 오렌지>에
실린 '행복한 재앙' 등이다. '고요한 나날'은 교통사고를 당한 뒤 병상체험을 바탕으로, '풋고추'는 80년대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쓴 것이다. '정육점 여자'와 '뱀장어 스튜'의 소설 공간은 서울과 프랑스지만 서울에서 탈고한 작품이다.
현재 한국생활은 3년째지만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8년을 살았더니 그곳이 완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잠시 한국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 글쎄, 이중국적자, 또는 이방인 의식이랄까? 그걸 그냥 자연스럽게 내보이고 싶었다.
한 가지 더. 프랑스에서의 기억이 더 그립고 절실하게 다가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안의 기억을 소설로 표현했기
때문에 집필 공간에 구애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 다른 성향의 작품을 꼽자면, '행복한 재앙' 정도? 이것도 '고요한 나날' 처럼 병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건데,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펼쳐져 마치 희극 같은 느낌이다. 그외에는 별다르지 않다.
불륜보다는 삶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것
알라딘: 소설에서 '불륜'은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 부연설명하자면, 권지예 씨의 소설에서
'불륜'은 삶의 부스러기 정도로 해석되는 듯 하다. 삶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 '불륜'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개성, 또는 효과는 무엇인가?
권지예: 소설집이 출간되었을 때 미디어 등에서 내 소설을 불륜 소설로 미는 경향이 있더라. 나는 어떤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사랑을 재단하기보다는 사랑의 상처, 아픔이 지난 후의 쓸쓸함을 그리고 싶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불륜의 경험을 인생 전체로 넓혀서 과거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다. 좀더 길게
보면 불륜도 삶을 확장시키는 무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다는 몸부림, 그걸 풍요롭게 표현하려 했다. 삶에 대한
사랑을 확인시키고 싶었다.
알라딘: 권지예 씨의 소설을 읽다보면, 갑자기 울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거꾸로,
소설을 쓰면서 울고 싶은 적이 있었나?
(작가가 되물었다. 어떤 때에 울고 싶었냐고. 나의 경우는, '고요한 나날'의 주인공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이나 불행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을 때, '꿈꾸는 마리오네뜨'에서 아내가 화장실 변기에
터럭을 털어버리는 장면이 그랬다고 답했다.)
권지예: 나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다. 웬만해서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고로 울지 않는다. 내 작품에서 뭔가 느꼈다면
아마도 삶에 대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늘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건 동생의 죽음이
준 충격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소진할 만큼 노력을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이 내 생활관이요, 인생관이 되었다.
사람의 목숨이야 하늘에서 주관한다지만, 나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과정에 충실하고 삶을 사랑하고 싶다. 그걸 구태의연하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작품에선 앞서 말한 것들이 올올이 느껴진다. 삶에 대한 강한 열정과 사랑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또 소중하게
다가온다.)
프랑스 기억은 생활과 낭만, 두 가지
알라딘: 프랑스는 그곳을 지나온 사람들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라고 들었다. 어느
때, 프랑스가 가장 그립나?
권지예: 프랑스의 생활은 내게 생활과 낭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가난했던 유학생이기에 더 여실하게 느껴지던
일상, 외국인이었지만 차별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던 생활 등. 나는 그곳에서 정부 보조금도 탔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이 받았다. 그 점에서 프랑스는 나에게 위안을 되었던 나라다. 되려 고국에 오니까 돈이 없으면 서럽고 괴롭더라.
낭만적인 면에서 보면, 프랑스는 아슴아슴한 곳이다. 그곳에서의 삶은 자유롭고, 충실하다. 사람들도 순진하고 순수하다.
각박함은 찾아볼 수 없다. 그곳에선 노래도 시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선지, 샹송을 들으면 프랑스가 무척 그리워진다.
즐겨듣는 샹송으로는 (빠리 체류의 마지막 시기인 97년-98년에 빠리와 유럽에서 대성황을 이뤘던 오페라 <노트르담 드 빠리 Notredame de Paris>
에 나오는 빠트릭 피오리와 두 남자 가수가 부른 주제곡)과 Enrico Macias의 ,
Lara Fabian의 , Serge Gainsbourg의 노래들, Edit Piaf의
등이 있다.
알라딘: 프랑스에서 작품 발표 지면을 얻는 일은 무척 고달팠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 또는 어떤 자각이 있었다면? 가령, 문단의 스타 시스템이라든가,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 등등...
권지예:
나는 운이 좋았다. 97년 봄에 「라쁠륨」에 처음 작품을 발표한 뒤, 여름호에도 작품이 추천되어 등단 완료할 수 있었다.
가을호에도 작품이 실렸는데, 그렇게 연속 3번 작품을 실었더니 창작과비평사에서 프랑스로 연락이 왔다. 그때 용기를
많이 받았다.
그걸 문단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의 경우, 주요 문예지에만 작품을 발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 문예지에도 투고를 많이 했다. 허나 결과를 놓고 보자면, 대표적인 문예지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영향력
면에서 주요 문예지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점을 문단 권력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작품 발표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창작과비평」에 '투우'와 '고요한 나날' 등을 발표한 뒤에는 「현대문학」(2001.7)에 '뱀장어 스튜'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 뒤에 김윤식 선생님이 「문학사상」(2001.8)에서 호평을 해주셨다. 그 다음부터는 인지도가 좀 높아진
것 같다.
고통 자체를 어떻게 다스리고 사는가가 중요
알라딘: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내내 작중 인물과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데, 권지예 씨는 그중
누구와 가장 사랑에 빠졌나?
권지예:
'뱀장어 스튜'와 '고요한 나날'의 주인공이 그랬다. '뱀장어..'의 경우는 설명을 달지 않고 장면 장면 영화처럼
끊어서 쓴 소설이다. 나름대로 포스트모던하게 써보겠다고 쓴 작품이다 (웃음).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은 삶을 허무하게
받아들이며, 바람부는 곳에 서 있는 듯 위태롭다. 남자로부터 보호받고 싶어하지만 또 집에 있으면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여자이기도 하다.
그 여자의 모습이 '인생이란 쓸쓸하고 허무한 것'이라는 내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애정이 간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변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는다. 그 점이 내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바다. 상처를 오래 고아내 인생을 이끌어가는 힘을 만드는 과정,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요한 나날'의 주인공은 용기있는 여성이다. 그래서 좋다. 한때 인생을 걸기도 했던 사람에게서 초연히 벗어나는
모습, 육체적 고통을 극복한다는 모습이 그렇다. 몸 아픈 게 정말 고통스럽다는 걸 교통사고를 당하고 알았다. 고통스러워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보다는 고통 자체를 어떻게 다스리며 사는가가
참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결국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고요한 나날'의 주인공은 그처럼 치열한 고통을 다스려
보색대비처럼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그 점에서 애정이 간다.
알라딘: 여러 언어를 다룰 줄 아는 소설가들이 많이 있고, 개중에는 번역가로 나선 분들도
있다. 혹 번역을 할 생각은 없는가?
권지예: 창작은 나 자신을 위한 작업이다. 번역은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진다. 아직은
소설에 내 열정 전부를 걸고 싶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면, 동화 번역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 : 최근 구상중인 소설을 소개한다면?
권지예: 10년 전에 조금 써놓은 장편 소설이 있다. 1970, 80년대 이야기를 소재로, 습작할 겸 편안하게 써본
것이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선지, 중간에 한계를 느껴 더 쓸 수 없었다. 현실에 맞게 구성을 달리해 완성할 생각이다.
하나 더, 연애소설도 생각중이다. 사건보다는 인물의 심리에 밀착해서 서술할 예정이다. (연애소설은 <문학동네 32호 - 2002.가을호>에
발표되었다. 제목, '설탕')
알라딘: 끝으로 프랑스에서 읽은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작가나 작품 추천을 꼽는다면?
권지예:
쿤데라 소설의 철학적 사유를 변주하는 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시각적인 문장(<모데라토 칸타빌레>)이 인상 깊었다.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시선이 마음에 와 닿은 르 클레지오와 <호프만의 허기>처럼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비애, 알랭 레몽의 작품(<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슬픔도 좋았다.
알라딘: 긴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신간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 ^^
1960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91년
프랑스 유학생활을 시작해 빠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근대문학의 여성문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에 있던 1997년, 「라쁠륨」에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뜨', 중편 '상자 속의 푸른 칼'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밖의 작품으로 '사라진 마녀, 투우, 나무 물고기,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 섬, 풋고추,
고요한 나날, 정육점 여자, 행복한 재앙' 등이 있다. 2002년 제2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