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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국은, 고국暠國과의 경계 지역에서 황국 군대의 말 한 마리가 도둑맞은 것을 핑계 삼아 고국 변방의 땅을 요구한다. 우씨의 아버지는 전쟁을 피하자고 주장하나, 변절자로 몰려 사형을 당한다. 그리고 황국의 침략으로 고국은 멸망한다. 아버지가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쓰고 노비가 된 우씨는 호국장군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함 받고 황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황후궁의 궁녀가 된다. 우씨는 황후의 수족으로서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후궁들의 암투에 끼게 되어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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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리고 우희의 오라버니와 함께 목이 잘렸다. 우희는 노비가 되었다. 우희의 아버지가 그토록 피하려고 하였던 전쟁이 났다. 관아가 불타올랐다. 모든 것이 화염에 휩싸였다. 고국의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우희를 욕보이려 하였다. 영웅이 나타났다. 우희의 옷자락을 끌어 내리려던 끔찍한 사람들의 목을 베었다. 고국은 우희에게 비참한 기억들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우희의 고향을 짓밟은 사람은 우희를 구해주었다.

    “주화파였던 우공의 여식 맞소?”

    역적의 딸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려던 아버지의 딸이 되어, 우희는 황국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새로운 주인, 황후를 만나고 황궁에서 황후의 수족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

     

     

    우 씨는 닫힌 창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성내 저잣거리에 도달하였음을 알았다. 자신이 끼어 있는 이 행렬은 개선을 하고 돌아온 군대의 위풍당당함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포로로 사로잡힌 고국의 백성들이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노예로 팔리기 위해 험한 길을 다섯 주나 걸어온 고국의 백성들의 모습이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우 씨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도 그들 사이라는 생각에 절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풍악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우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을 연민해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목을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다. 자신은 달랐다. 전쟁을 피하자 주장하다 가족을 잃어버렸다. 주화파 우공의 여식, 자신의 주인이라던 남자가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우 씨 자신은 고국의 사람들과 달랐다.

    황궁 앞에 도달하였는지, 가마가 내려섰다. 가마에서 내린 우 씨는 수색을 받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사한 색과 생명으로 가득한 황국의 도성은 불타 버린 고국과 대조적이었다. 적국이지만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여야 했다. 이제는 오래전이지만 부모님과 오라버니와 살던 고국의 도성도 이리 활기찼었다는 생각에 입안이 씁쓸하였다.
    우 씨는 황국까지 타고 온 가마보다 널찍하고 화려한 가마에 옮겨 탔다. 망국의 사람인 자신이 이리 좋은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는 다섯 주 전부터 이어온 의문이었다. 자신의 주인이라는 사람은 누구이며, 무슨 연유에서 자신에게 이와 같은 호의를 베푼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황궁은 길이 잘 정돈되어 있는지, 가마는 무척이나 빠르게 이동하는데도 흔들림이 없었다. 우 씨는 아주 조심하여 창밖을 엿보았다. 높은 담 안은 도성의 거리와 달리 적막하였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경계가 삼엄해졌다. 우 씨는 자신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겁이 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우 씨가 도달한 곳은 하나의 전殿 앞이었다. 우 씨가 가마에서 내리자마자 전 앞에 궁녀들이 나섰다. 그리고 곧 황후마마가 납신다는 외침과 함께 황후를 시위한 궁인들이 잿빛 돌계단을 내려왔다. 우 씨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황국의 황후 앞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신은 앞의 궁녀들과 함께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일어들 나라.”
    황후의 목소리는 느리고 나직하였다. 우 씨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황후의 금빛 옷자락에서 시선을 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풍 맞은 노인처럼 떨리는 양손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고국의 왕비도 공주도 본 적이 없건만, 적국의 황후 앞이라니 우스운 일이었다.

    “그대가 호국장군이 본궁에게 남긴 사람이로군.”
    한참을 자신을 살펴보는 것 같은 눈빛이 거둬지는 느낌과 동시에 황후가 말하였다. 여전히 그 목소리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이 탐탁지 않은 것일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런데 잠깐,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이 있었다. 방금 황후가 ‘남기었다’라고 하지 않았나? 황국까지 오는 동안 자신을 호위하던 작은 병사가 자신의 주인이 호국장군이라고 하였다.

    “본궁이 그대의 새 주인이노라. 만효가 그대를 맡아 가르칠 것이다.”
    우 씨의 생각의 실타래가 미처 다 풀리기 전, 황후가 우 씨의 처우를 정하고 뒤돌아섰다. 황후의 옷자락이 원호를 그리고는 멀어졌다. 우 씨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우 씨 옆으로 쉰이 넘어 보이는 궁녀가 다가왔다. 다른 궁녀들에 비해 화려한 머리 장식
    을 보아하니 신분이 높은 궁녀일 것이라 짐작되었다.

    “내 황후마마의 명을 받들어 그대를 교육시킬 만효네. 따라오시게.”
    먼지 하나 날릴 것 같지 않은 연한 잿빛의 돌을 깔아 만든 길을 걸어 전의 뒤로 돌아가니 엄청난 꽃향기가 밀려왔다. 달콤하면서도 쓸쓸한 향이었다. 그러나 그 향이 진해지기 전, 만효는 길을 꺾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문을 넘었다. 문 안은 궁녀들의 생활공간인 듯, 앞서 보았던 전에 비해 수수한 목조 건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만효는 그중 한
    방으로 들어섰고, 우 씨는 빠른 걸음의 만효의 모습을 놓칠세라 서둘렀다.

    “황후마마께서 내게 그대의 교육을 맡기신 것으로 짐작하건대, 그대를 가까이 두시려는 뜻이시네. 황후마마를 곁에서 모시려면 말 하나, 행동 하나에서도 실수가 없어야 하네.”
    우 씨는 만효의 경고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고국에서 대비의 담배를 들던 아이가 대비가 아끼시는 옷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목이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고는 하였다. 그러나 황궁에 들어와 보니 실로 목숨이 위험한 일이었다.
    우 씨는 만효가 건네는 청록색 치마를 받아들었다. 하늘거리는 고국의 것보다 천이 두꺼웠지만 폭이 넓어 활동은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소매에 파도 문양의 단순한 자수가 놓인 연녹색 상의를 입고 나니, 만효가 남쪽에서 온 우 씨에게 황국의 날씨는 쌀쌀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하얀색 반비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였다. 황궁에 들어오기에 앞서 본 사람들과 달리 황후궁의 사람들은 상복으로 착각하기 쉬운 흰색을 입고 있었다. 황후궁의 복색인가 보았다. 그러나 방금 만효가 자신에게 건넨 것은 연녹색이었기에, 자신이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궁녀라고는 하나 황후를 곁에서 모시는 이들의 것이어서 그런지 천도 나쁜 것이 아니었고, 태도 깔끔하였다. 그리고 우 씨가 옷을 정돈하자 만효가 머리를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우 씨는 저도 모르게 앞서 방문을 나서려는 만효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리고 만효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재빨리 손을 놓았다. 호국장군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차가운 바람 냄새가 나던, 묽은 다색 눈동자의 남자는 어디에 있는지, 어째서 자신을 황후에게 남긴 것인지 궁금한 것이 넘쳐났다. 그러나 만효의 옷을 잡는 순간, 그리고 자신이 입은 옷을 인식하는 순간, 이 궁 안에서 자신은 그런 질문들을 할 처지가 못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효는 황후의 안전에서는 어떻게 서야 하는지, 인사 예법과 황후의 부름에 답하는 방법부터 황후의 차를 준비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우 씨는 고국에서 귀족으로 자랐기에 이와 같은 예법이 너무 낯선 것은 아니었다. 만효는 우 씨가 빠르게 학습하는 것에 만족하였고, 우 씨는 황궁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황후의 앞에 서게 되었다.
    만효가 황후를 모시느라 바빴기에, 우 씨는 만효와 함께 자신의 교육을 담당해 온 소향이라는 또래의 궁녀를 따라갔다. 설설한 성미의 소향은 잠시도 쉬지 않고 궁의 이곳저곳을 설명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소개해 주기 바빴다.
    궁녀들의 처소에서 멀어져 황후의 궁으로 다가갈수록 첫날 황궁에 도착하여 맡았던 꽃향기가 진해졌다. 그리고 눈앞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소향은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우 씨가 황홀한 광경에 넋을 놓는 모습을 보고 밝게 웃었다.

    “아름답지? 황후마마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꽃이 국화라 사시사철 황상께서 보내셔.”
    이제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국화가 만개하였고, 황금빛 천지 너머에 인형이 보였다. 국화 향기에 코가 마비될 정도로 꽃 사이로 기다랗게 난 길을 따라가니 황후가 걸어오고 있었다. 우 씨는 소향과 함께 재빨리 무릎을 꿇으며 배운 대로 황후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일어들 나라.”
    우 씨의 살짝 들춘 눈에 황후가 인사를 받으며 느린 손짓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황색이 황국의 색이어서 그런지, 황후가 좋아한다는 국화의 색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황후는 첫날과 이날 모두 금색 치맛자락을 끌고 있었다. 치마 끝단에는 국화 문양이 오배자의 연한 황색으로, 그리고 호두나무 껍질로 물들인 흙색의 실로 잎맥까지 살린 이 파리가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오늘부터 황후마마를 모실 우 씨이옵나이다.”
    소향이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며 말하였다. 우 씨는 소향의 옷자락을 붙잡고 가지 말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 씨는 그러지 못하였고, 온전히 홀로 황후의 시선을 받고 서 있었다. 고국을 멸망시킨 황국의 안주인이었다. 고국에 대한 애증은 제쳐 두고, 우 씨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효가 네가 영특하다 하더구나. 고개를 들어보아라.”
    황색은 바닥을 쓰는 끝자락에만 내비칠 뿐, 황후는 은사로 용을 수놓은 상아색 비단을 입고 있었다. 황후의 의복을 따라 올라간 우 씨는 황후와 시선을 마주쳤다. 밤색 눈은 느긋한 황후의 말투를 닮아 꼬리가 처져 있었고, 양귀비 같이 붉은 입술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고국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관아를 살라먹던 불길의 불그스름한 빛을 띤 어두운 머리 타래는 거대한 황국黃菊을 중심으로, 홍옥과 비취로 만든 구슬을 중앙에 박은 자잘한 금색 꽃들로 둘러싸인 장신구들로 높이 틀어 올려져 있었다. 황후의 목소리를 듣고 상상해 온 그대로였다. 우 씨는 황후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시선을 내렸다.

    “어여쁜 아이구나.”
    황후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 씨는 황후가 그리 밝은 웃음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였다. 황후도 자신과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인가? 황후는 용이나 기린처럼 신성한 존재가 아닌가? 주변을 살피니, 다른 궁녀들도 황후의 웃음에 다소 놀란 내색을 보였다.
    그러나 우 씨와 같이 황후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라, 당황함이 섞인 표정이었다.

    “계속하여 잘 가르치도록 하여라.”
    황후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소향과 만효를 향하여 말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 씨는 재빨리 황후의 길을 트고는 황후의 뒤를 따르는 궁녀들의 맨 끝으로 가려 하였다. 그러자 황후의 바로 뒤를 따르던 만효가 우 씨를 멈추고는 자신과 함께 황후를 가까이에서 따르게 하였다. 황후의 발걸음은 우 씨가 길을 외울 시간이 충분할 정도로 무척 느렸다.

    (중략)

    “조금도 눈을 뗄 수 없구나.”
    낮은 목소리가 부주의함을 지적하였다. 우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상하를 올려다보았다. 달콤한 단어를 골랐다고는 할 수 없었다. 눈빛은 자상하였다. 황궁에 한 번이라도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속과 말이 일치할 수 없는 것이 숙명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것 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언제 오셨습니까?”
    물으면서 내심 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린아이 위에 떨어졌으면, 그리고 그 아이가 다쳤으면 큰일이었다. 어째서 황녕궁의 궁녀가 궁 밖에 있었냐고 질책을 당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시선을 돌린 사이에 다칠까 봐 무서워한다는 말을 할 때부터 있었는데 보지 못했느냐?”
    갑작스레 현기증이 찾아온 탓에 상하가 나무 아래에 자신을 찾아온 줄도 알지 못했다. 우희는 상하의 질문에 고개를 저어 대답하였다. 자신을 받쳐 든 사람이 하필이면 다른 누구도 아닌 상하라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희를 찾아낸 것이 상하였기에 그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다. 우희는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우희가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인정일지도 몰랐다.
    우희는 한 발짝 물러섰다. 상하와 지나치게 가까이 서 있으니 머리에 구름이 낀 것만 같았다. 또렷하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상하가 느릿하게 팔을 뻗었다. 다시금 우희의 어깨를 감쌌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희를 끌어당겼다. 우희는 상하의 가슴에 이마를 부딪쳤다. 겨울이 아닌데도, 매화 아래가 아닌데도 향이 났다.

    “볼 수 있는 곳에 있으라.”
    둥근 이마에 얇은 여름 비단이 닿았다. 상하의 목소리가 우희의 귀를 울렸다. 단단한 가슴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간지러웠다. 도망가고 싶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머물고 싶었다.

    “내가 근심하길 바라느냐?”
    상하의 물음에 웃음이 담겨 있었다. 우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상하는 다정하면서도 짓궂다고 생각하였다. 진정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우희가 다칠까 걱정할 리 없었다. 그러나 자애로운 상하의 성정에 비추어 보면 한낱 궁녀인 우희라도 무심히 생각지는 않을 것 같았다. 헛된 희망이라고 이름 지을 수밖에 없는 기포가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우희는 조그만 미소를 띠고 아니라고 답했다.
    상하는 우희가 떨어뜨렸던 소쿠리에 다시 한가득 담아왔던 자두를 나누어주었다. 상하의 크고 길쭉한 손안에 들린 자두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우희를 품으로 끌어당길 때에는 힘 있던 손길이 여린 과실을 건넬 때에는 부드러웠다.

    “상하는 다른 이들과 다르십니다.”
    상하의 키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자두를 건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보며 우희가 툭 내뱉었다. 상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는 우희를 향해 웃어 보였다. 우희가 제 마음을 의지대로 막을 수 없게 만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은 잃어본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상하가 짐을 뒤적거리더니 따로 남겨두었던 자두 한 알을 옷자락에 쓱쓱 닦아 건넸다. 우희는 머뭇거리다 과실을 한입 베어 물었다. 손을 내밀었던 모든 아이들에게 한 알씩 주었으니 저도 하나쯤은 먹어도 되리라 생각하였다.

    “상하는 무엇을 잃으셨습니까?”
    우희가 우물거리며 물었다. 여름의 태양에 익은 자두는 미지근했다. 첫맛은 눈이 시리게 시었고, 달콤한 맛이 뒤늦게야 혀에 찾아왔다. 소향에게서 사랑이란 것이 이렇다고 들었다. 하지만 제 첫사랑은 한동안 감각을 잃을 정도로 씁쓸하게 끝나 버렸고, 두 번째 사랑도 달콤한 끝은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다. 사람을 잃었다. 보아하니 우미희도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구나.”
    상하는 진한 눈썹을 무너뜨리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눈으로 말하였다. 우희는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리고 자두만 조금 더 베었다.

    “예. 상하는 한때 제가 아주 소중히 여겼던 사람을 닮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지만 상대는 마음에 둔 다른 이가 있는 것마저 닮았다. 비극으로 끝날 사랑을 하는 것까지 같았다. 강유의 감정은 연인을 지키려다 죽음으로 끝났고, 상하의 감정은 이루어지기도 전에 역모로 우희의 아버지와 오라버니처럼 목이 장대 끝에 걸리는 것으로 끝날 것이었다.

    “한때라? 마치 지금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상하의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우희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리고 낮에도 밤같이 어두운 상하의 눈을 마주보았다. 우희는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고백을 하였다.

    “예. 저를 배신하였고, 복수도 할 수 없게 죽어버렸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십 년도 넘게 알아왔다. 강유가 그럴 리 없었다. 제가 혼기를 넘기면서까지 기다리기는 하였지만 혼약을 맺은 적도 없으니, 부마가 되는 것을 막을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가족같이 지내던 우희의 아버지를 역적으로 몬 것은 믿을 수 없던 배신이었다. 그 까닭조차 알 수 없는 배반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눈을 하고 있느냐? 네 눈에는 분노가 담겨 있지 않구나. 마치 변절했다는 그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여름 공기는 뜨거웠다. 무거웠다. 강유가 자신을 저버린 것도 이런 여름날이었다. 지금 앉아 있는 곳보다 조금 더 북적이던 시장에서 인파를 헤치고, 등 뒤로 하얀 꽃씨를 흩날리며 날카로운 풀들이 한창이 들로 산으로 날아다니다, 미끄러지듯 계곡물에 빠지던 십 년의 날들도 이런 여름날이었다.

    “분합니다. 무척 분합니다. 저를 배신하고, 너무나도 큰 슬픔을 안긴 사람인데도 과거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온전히 미워할 수 없습니다.”
    처형장에 가면 다시 배신감을 떠올리고 치를 떨 수 있을까? 나무 상자에 담긴 사과를 보아도, 길가에 서 있는 배꽃나무를 보아도 함께 행복했던 날들만 떠오르니 매번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차라리 연 귀인을 미워해 보려 하였다. 강유를 유혹해, 협박해 자신을 배신하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공주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연 귀인도 혼약자를 눈앞에서 잃고 타국에 인질로 끌려온 희생양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인가?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원인을 누구에게로 돌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용서해 주어라. 네게 그리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너도 그 사람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이었지 않겠느냐?”
    강유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유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늘 자신을 향하고 있는 눈이 너무나 아름다워 어느 순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조금도 모자람 없이 소중하게 생각했었다.

    “맞습니다. 그 사람이 배신을 하기 직전까지도 저는 그 사람이 저를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희는 고개를 들어 파랗다 못해 하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삼켜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끝내 작은 방
    울 하나가 그 뜻을 거스르고 흘러내렸다.

    “필경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너를 그리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불가피하여 네게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었겠느냐?”
    우희는 상하의 말을 들으며 노란 속살과 자색 껍질이 뜯겨나간 자두를 쳐다보았다. 옳지 않은 비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달콤한 노란 과실을 먹으려다 피치 못하게 시큼하고 질긴 켜까지 뜯었듯 이, 강유도 다른 목적을 이루려다가 자신까지 슬프게 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습니다. 강, 아니 그 사람이 제게 고의로 고통을 안겼을 리가 없습니다.”
    우희가 그제야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대답하였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으면 미워하지 않으면 된다. 날은 맑았고, 옷은 고왔다. 절기마다 다른 음식은 부족함이 없었고, 누구도 황후궁의 궁녀인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모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지만, 익숙해지니 지금 생활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굳이 과거의 악몽에 사로잡혀 괴롭게 지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 우미희처럼 고운 이에게 증오라는 감정은 어울리지 않는다.”
    상하가 던지듯 우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말을 하고는 커다란 손을 뻗어 우희의 손에 들려 있던 자그만 자두를 뺏어갔다. 그 잠깐의 사이에 스친 손끝도 홧홧했다. 우희는 제 속내를 들킬까 봐 시선을 돌리려 했으나 눈은 저의 잇자국이 난 자두를 베어 무는 상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울지 마라. 다음번에 또 하나 주면 되지 않겠느냐?”
    상하가 우희가 흘렸던 눈물 자국을 닦아주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우희는 상하의 손과 눈길이 제 뺨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만 있다가 뒤늦게야 귀가 타오르고 이내 뺨도 같이 붉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잊으시면 안 됩니다.”
    우희는 땅만 쳐다보며 웅얼거렸다. 옆에서 상하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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