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 eBook | 알라딘 직접배송 중고 | 이 광활한 우주점 (3) | 판매자 중고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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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우리 집 단골이신 손님 한 분이 빵을 주문하셨다. 배달할 장소는 황궁 제1회의실. 양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난 배달용 바구니 중 가장 큰 것을 들고 날았다. 내 빗자루 그랑그랑이 튼튼해서 망정이지, 다른 빗자루였다면 두 번 왕복해야 할 양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문한 시종장 호루스 님에게 다가간 나는 정중하게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랑그랑에서 배달 왔습니다. 주문하신 크림빵 세 개, 고기파이 둘, 갓 구운 식빵 한 개, 초콜릿 슈 일곱 개, 샌드위치 다섯 개입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바쁘지 않다면 접시 위에 놓아주시겠습니까?”
“네, 어렵지 않아요.”
아, 우리 가게는 손님이 원할 경우 빵을 접시에 놓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가 이 마법을 퍽 잘 사용하거든. 마법이 신기해서 일부러 배달을 시키는 손님도 있을 정도다. 추가비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다들 무척 좋아한다.
양손을 맞대고 가볍게 손뼉을 친 다음 접시를 살짝 건드렸다.
“춤춰라, 접시!”
빙글빙글 접시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빵의 크기에 따라 크고 작은 접시들이 탁자 위를 뛰놀며 착착 가야 할 곳으로 나아간다. 가장 작은 접시에는 슈를, 커다란 접시에는 통으로 구운 식빵을. 먹기 좋도록 나이프로 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고기파이 하나를 다 해치우고 크림빵 반쪽까지 다 드신 시종장님이 내 쪽으로 다가오셨다. 돈을 이제 주시려나 싶어서 잔뜩 기대를 하는데 갑자기 흠흠 헛기침을 하시더니 앞쪽에 쭉 앉은 사람들에게 선언하셨다.
“이분이 여러분들이 찾으시던 유일하게 생존한 황족입니다. 마녀 라기 노르의 딸 시스티나 노르. 황궁 시종장 델레판 남작의 이름을 걸고 보증합니다.”
이게 뭔 미친 소리래? 순간 나는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얼굴을 찌그러뜨리고 말았다. 황족 사칭 죄는 사형! 이분이 지금 날 부모님 계시는 저세상으로 보내려고 작정을 하셨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컷 빵 먹고 배부른 사람들의 얼굴을 쭉 둘러보았다. 설마 믿겠어? 이런 마음이었는데 엄마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저기요, 저기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청록색이 도는 검은 머리에 짙은 검은색 눈동자를 가진 잘생긴 기사는 레이딘 경. 대제의 최측근으로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전투에 나가 항상 이겨 전쟁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 옆에 앉은 사람은 재상 마테르.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례적으로 재상 자리에 올라 황제가 없는데도 제국을 어떻게든 잘 꾸려가고 있다.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티네 장군. 모든 군인의 통솔자. 총사령관이다. 해군, 육군을 포함한 제국의 전 군을 다 움직일 수 있다.
즉,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새 황제가 즉위하지 않은 지금 제국을 움직이는 중추 중의 중추다. 막 속는 바보들이 아니라는 거다.
여기에 쭉 앉은 사람 중 그나마 나와 안면이 있는 레이딘 경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빵집 딸인 나는 아카데미 단기코스를 밟을 때 그와 같은 수업을 하나 들은 적이 있다. 높으신 분들이 많았는지라 난 최대한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 쿠키와 케이크를 잔뜩 뿌렸다. 참고로 그 수업의 수강생 중 여학생은 나 하나뿐. 다들 먹성 좋은 남학생이었기 때문에 음식으로 홀리기는 쉽더라. 그렇게 한 학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때 얻어먹은 정이 있으니 날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탈출시켜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했지만 슬프게도 그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델레판 남작의 말이 진실이라면 제가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내 앞에 척 내밀어지는 검. 내 사랑스러운 빗자루 그랑그랑이 부르르 떨었다. 마녀들은 특수하게 무력을 닦은 기사 마녀 외에는 다 약하다보니. 빗자루들이 남자가 접근하는 거에는 되게 민감하거든.
이거 기사의 맹세구나. 옛날에 아버지 목말을 타고 보았던 그 장면이랑 아주 똑같다. 저 검 받으면 진짜 큰일 난다. 똥 되는 거야!
젠장, 아무래도 안 되겠어. 돈 안 받아도 돼! 나 여기서 도망갈 거야!
이 사람들, 이상해. 이상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