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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통해 받은 감동이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의 원작 단편집으로 이끌었다. 영상은 영상대로, 활자는 활자대로 각각의 빛을 발하며 깊고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강렬하게 남은 그 기억의 흔적이 이번 책 <생의 실루엣>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게 만들었다.
미야모토 테루는 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본 문예지가 너무 재미없어서 '나라면 이 글보다 백배는 더 재밌는 소설을 하룻밤 만에 쓸 수 있겠다' 생각하며 그 순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로 알려진 작가다. 소설가가 된 독특한 계기처럼, 이 에세이집이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다. 교토의 요릿집 '고다이지 와쿠덴' 주인장의 강한 권유로 그곳에서 발간하는 에세이 잡지 ≪소유≫에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다. 작가는 기껏 오래가봤자 3호까지 내고 폐간될 것을 예측했으나 잡지는 무려 10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모아진 테루의 에세이를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에 특별한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실크로드 여행 중 만난 어린 남매, 타클라마칸사막을 향해 걸어가던 청년, 결핵 병동에서 알게 된 과묵한 노인, 동네 두부 가게의 양자가 된 아이, 경마회에서 연을 맺게 된 인물들. 평범한 일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억하여 유려한 문장으로 한 편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해냈다. 서정적인 그의 소설과 같은 느낌을 간직한 채, 담백한 문체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모든 글들이 마음을 몹시 흔든다.